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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드로아에서 본 바울의 환상 (행 16: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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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하시는 일에는 닫힌 문이 있고 열린 문이 있습니다. 어떤 문은 아주 오랫동안 닫혀져서 열려지지 않는 반면에 어떤 문은 노력하지 않았는데도 슬쩍 건드렸는데도 열리는 문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문을 닫으시면 아무리 열려고 해도 안 열린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하나님께서 문을 여시면 어떤 사람도 그것을 막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복음의 문을 여시고 계십니다.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타난 사도바울의 2차 전도 여행에서 특별한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1차 전도 여행은 가는 대로 쭉 가게 하는데 2차 전도 여행은 그렇질 않습니다. 성령께서 간섭하는 선교 여행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1절,
사도바울은 바나바와 헤어진 뒤에 더베와 루스드라까지 오게 됩니다.
여기서 특별한 하나님의 손이 개입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성령님의 간섭이 있는데 그러면 무엇을 보고 성령님의 간섭이라고 합니까 사도바울의 마음대로 안된다는 것입니다. 자꾸 계획이 수정이 되어 갑니다. 이렇게 하려고 했는데 하나님께서 자꾸 바꾸시는 거에요. 여기에 놀라운 하나님의 비밀이 있고, 성령의 인도하심이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 하나님의 막으시는 문이 있고, 열리시는 문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바울의 전도 여행을 고쳐 나가시는 것을 몇 가지로 볼 수 있습니다. 첫 번째 사건은 바나바와 바울이 헤어진 사건입니다. 바울은 처음부터 바나바와 헤어질 마음이 없었습니다. 그와 함께 더불어 2차 전도 여행을 출발하고자 했습니다. (15:36참고) 그러나 마가요한이라는 사람 때문에 다투게 되고 헤어지게 됩니다.
사도바울의 생각과 뭔가 잘 안 맞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전도 여행의 코스도 그렇습니다. 바울 생각에는 1차 전도 여행을 하던 대로 돌려고 했는데 바나바와 마가가 자기의 전도 여행 코스로 먼저 갑니다. 그러니까 바울이 따라가기가 난처합니다. 그래서 거꾸로 갑니다. 반대로 가게 되었습니다. 거꾸로 가기 때문에 바울이 예상하지 못했던 일들이 자꾸 생기는 겁니다. 이것이 성령의 역사입니다. 특별히 그가 돌에 맞아 죽을 뻔했던 곳이 루스드라인데 거기에 가서 생각지도 못했던 젊은 청년 디모데를 만나게 됩니다. 이것도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입니다. 디모데는 아버지가 헬라 사람이고 어머니는 유대계 사람입니다. 그는 어머니 쪽은 3대 그리스도인 가정입니다. 디모데는 바울을 만나게 되고 거기서 큰 충격을 받게 됩니다. 디모데는 바울의 사역에 있어서 큰 영향을 끼치는 인물이 됩니다.
하나님은 그분의 일을 해 나갈 때마다 사람을 세워서 붙여 주십니다. 참여렵고 힘들 때마다 사람이 나타나서 조건 없이 희생 없이 돕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일인가 아닌가는 하나님이 사람을 붙여 주시는가 안 붙여 주시는가를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아무리 좋은 계획이 준비되어 있다 하더라도 사람을 붙여 주시지 않으면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생각지도 않은데서 하나님이 사람을 보내 주십니다. 오늘 우리는 디모데를 붙여 주시는 하나님을 봅니다. 디모데를 붙여 주셔서 바울의 선교 사역을 완성하는 데에 결정적인 도움을 주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바울은 결코 혼자서 일할 수 없었습니다. 사람은 누구든지 혼자 일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들과 더불어 같이 일하며 하나님의 사람들과 같이 고생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은 명예나 돈과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그냥 와서 일하는 것입니다. 무슨 조건이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하나님의 사람들은 희생하는 것입니다.
드디어 여기서 바울은 생각지도 않은 디모데를 얻게 됩니다. 그리고 바울이 생각지도 않은 사건이 생기게 됩니다.
2절, 3절,
디모데는 아버지 어머니가 다르기 때문에 두계통의 사람들을 다 만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유대계 친척들을 만날 수 있었을 것이고, 헬라계 친척들을 만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이제 디모데를 데리고 가서 전도하려고 하니까 유대인들에게는 할례 문제가 아직도 중요합니다. 그러니까 디모데를 할례를 시킵니다. 그리고 사역에 데리고 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바울의 이중적인 명을 보게 됩니다. 지금까지 사도바울이 왜 화를 내며 예루살렘까지 가서 논쟁을 했습니까 할례라고 하는 무거운 짐을 지우지 말라는 것 때문에 그렇게 한 겁니다. 예수 믿는 데 유대인들처럼 꼭 할례를 받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이것이 바울의 주장 아닙니까
그런데 지금 바울은 디모데를 할례 시키고 있습니다. 바울이 두얼굴을 가진 사람이냐 그러나 우리가 본문을 가만히 보면 바울에게는 할례를 받느냐, 안 받느냐 이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복음이 중요하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됩니다. 복음이 중요하다. 그래 유대인들에게 필요하면 할례 받고 예수 믿어라. 바울의 관심은 예수를 믿게 하는 데 있었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데 관심이 있었습니다. 조금 있으면 보지만 바울은 겐그레아에서 머리를 빡빡 깎습니다. 그게 중요하지 않아요. 머리를 깎아서 전도할 수 있으면 머리를 깎고 머리를 길러서 전도할 수 있으면 머리를 기르게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걸림돌이 되지 않게 하는 복음을 사랑하는 뜨거운 열정을 보게 됩니다. 먹고 마시는 것도 마찬가지요, 살고 죽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살고 죽는 것은 내게 중요하지 않다. 죽는 것이 유익하다. 내가 무엇을 먹고 무엇을 마시느냐 하는 것도 중요하지 않다. 내게 중요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다. 우리는 바울에게서 이런 모습을 보게 됩니다. 바울이 감옥에 들어갔을 때 바울을 미워하는 사람들은 무척 좋아했습니다. 바울이 감옥에 들어갔으니까 이제는 우리가 인기를 누리게 될 때가 왔다. 이때 바울이 뭐라고 합니까 “어떻게 하든지 시기로도 전도할 수만 있다면 전파되는 것이 그리스도라면 나는 상관이 없다” 바울이 경지를 넘어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네가 유대인을 만날 때에는 할례 받았다고 해라. 헬라인인 만났을 때에는 그건 중요하지 않다고 해라.’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다.
4절, 5절,
바울은 계속해서 여러 성을 다니면서 복음을 증거합니다. 그리고 5절에 보면 사도행전의 교회가 나옵니다. 교회가 더 굳어지고 수가 날로 더하더라. 멈출 줄 모릅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계속해서 움직이는 것입니다. 생명을 계속 생산해 내는 것입니다. 이것이 진정한 교회입니다. 자전거는 뒤돌아 가지 못합니다. 서 있지도 못합니다. 앞으로 전진해야 되는 것처럼 그리스도인들은 서 있을 수 없으며 전진해야 합니다. 복음을 가진 사람들은 성령의 능력을 가진 사람들은 계속해서 뒤를 돌아보지 아니하고 계속해서 푯대를 향하여 나아가는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에게도 이런 믿음의 전진이 있기를 바랍니다. 10년전이나 지금이나 똑같다는 말은 수치스러운 말입니다. 우리의 교회도 계속해서 전진하는 숨쉬는 살아 있는 교회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성령이 역사 하는 교회입니다.
이렇게 열심히 전도하는 바울과 실라에게 문제가 생긴 것입니다.
6-7절,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닫힌 문을 봅니다. 그러나 이 천년이 지난 지금 그 소아시아, 중앙아시아에 선교사들이 들어가고 복음이 전파되고 있습니다. 열린 문이 되었습니다. 성령이 아시아 쪽으로 방향을 못 돌리게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선교 사역입니다. 우리가 알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뭔가 여러분이 열심히 하고 있는데 자꾸 막히고 있다면 하나님이 그 일에 개입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시기 바랍니다. 자꾸 갈려는데 다리가 부러지고, 일이 복잡하게 됩니다. 물론 마귀가 막는 것도 있습니다. 그것은 무슨 일이 있어도 뚫고 가야 합니다. 이걸 잘 분별해야 합니다. 교회를 나오려고 하는 데 못나오게 해요. ‘아 이게 하나님의 뜻인가 보다’하고 안 나오면 안돼요. 그런 때는 예수의 이름으로 귀신을 물리치고, 마귀를 물리치고 그 고난을 뚫고 나가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하고 있을 때는 조심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개입하실 때는 반드시 열린 길을 주십니다. 내가 결정한 것을 따라가지 말라는 것입니다. 내가 결정한 것을 “하나님도 따라오세요” 이렇게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또한 가지 성령이란 무엇인가 예수의 영이라는 것을 보게 됩니다. 6절에서는 성령이 전도하는 것을 막았다고 했죠. 7절에서는 예수의 영이 허락하지 않았다. 성령님은 어떤 분인가 성령은 곧 예수의 영입니다. 그리스도의 영입니다. 예수를 영화롭게 하는 영입니다.
8-9절,
그러면 아시아로 가지 못하게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비두니아로 갈려고 하니 일이 안됩니다. 누군가가 막고 있습니다. 거기를 못 가게 막고 있어요. 할 수 없어서 무시아 쪽으로 드로아로 갔는데 길이 열립니다. 드로아에서 바울은 한 환상을 봅니다. 생각지도 못했던 일입니다. 그는 소아시아로 가려고 했는데 이제는 소아시아에 머물지 말아라. 그리고는 바울로 하여금 드로아를 거쳐서 유럽과 아시아를 경계하는 항구를 거쳐서 유럽으로 가게 합니다. 너의 생각을 넓히라는 것입니다. 너의 지경을 넓히라는 것입니다. 우리 보통 죄인들은 전부 자기 중심의 생각입니다. 자기밖에 모릅니다. 기껏해야 자기 교회밖에 모릅니다. 아닙니다. 우리 만민 교회만 잘 되는 것이 아니라 한국 교회, 세계 교회가 다 잘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바울에게 지경을 넓히게 합니다. 3차 전도 여행 때는 더 넓혀서 로마로 가게하고 스페인을 보게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합니다. “너희 생각을 넓혀라.”
드로아에서 하룻밤을 머무는 데 하나님께서 환상을 보여 주십니다.
10절,
바울이 환상을 본 후에 어떻게 했습니까 “우리가 곧” 마게도냐를 향하여 힘썼다. 순종입니다. 환상을 본 후에 한참 있다가 떠나리라. 아닙니다. 일좀하자고 하면 좀 있다가 한 대요. 순종이란 시간과 관계가 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순종이 아닐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면 곧 순종해야 합니다. 바울은 곧 떠났습니다. 그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일인데 순종했던 것입니다.
두 번째 마게도냐 사람이 ‘우리를 도우라’라는 것을 어떻게 해석했습니까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라는 뜻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와서 우리를 도우라. 지금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들은 우리를 이렇게 심각하게 부르고 있습니다. 이것을 들을 수 있는 귀가 열리기를 바랍니다. 우리 주위에서 우리를 도와주십시오.
이렇게 해서 우럽의 복음의 문이 열리게 됩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민감하시기 바랍니다.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를 도와 달라는 영적인 비참한 음성을 듣게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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