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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믿을 때 성령을 받았느냐 (행 1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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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바울의 3차 전도여행이 안디옥에서부터 시작이 됩니다. 이곳은 1차, 2차 전도여행이 시작되었었던 곳입니다. 안디옥 교회는 피곤하고 지쳐서 돌아온 선교사를 다시한번 위로하고 용기를 주고 재무장하는 곳입니다. 이런 안디옥이 필요합니다. 우리 교회가 이런 안디옥 교회같은 교회가 되어지기를 원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 교회에 와서 재충전을 받고 용기를 받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런 장소가 또하나 필요합니다. 안디옥과 같은 장소가 여러분의 가정이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가정이 그런 영적인 재충전하는 곳이어야 합니다. 세상에 나가서 열심히 예수의 이름으로 살다가 집에 돌아오면 위로를 받아야 합니다. 안디옥들이 여러 곳에 필요합니다.
사도바울도 얼마나 피곤했겠습니까 그러나 사도바울은 주님의 부름 받은 것이 너무나 강렬하고 자기가 전도했던 사람들이 너무나 보고 싶어서 얼마 지나지 않아서 안디옥을 출발하는 것입니다.
18:22절-23절을 읽겠습니다.
에베소로 들어갑니다. 에베소는 우리가 아는 대로 고대에 가장 발달되고 화려했던 도시 중에 하나입니다. 특별히 에베소는 아덴과 고린도처럼 알려진 도시인데 아데미 신전이 거기에 있습니다. 우상의 결정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아데미 신전이 에베소를 전체적으로 차지한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바울일행이 에베소에 도착하자마자 알렉산드리아에서 온 아볼로를 만나게 됩니다. 특별히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는 먼저 아볼로를 만나 영적인 교제를 합니다. 일찍부터 주의 도를 배워 열심히 가르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알기는 알았만 뭘 잘 모르는 사람이었습니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그를 데리고 조용히 갑니다. 그리고 예수에 관한 도를 더 자세히 가르쳐 줍니다. 아마 성령에 관한 이야기였던 것 같습니다. 말씀은 강하나 성령에 대해서 약한 것이 아볼로가 그랬던 것 같습니다. 장로교가 그렇죠.
사도바울은 몇몇 그리스도인들을 만나게 됩니다. 1-2절,
7절을 보십시오. 12명 정도되는 사람들을 만납니다.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이것은 사도바울의 관심이었습니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도 아볼로의 이야기를 가만히 듣다가 좀더 깊은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바울이 에베소에 가서 예수 믿는 것을 보면서 뭔가 하나 빠진 것 같았어요. 그래서 그가 이렇게 묻습니다. “예수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이 질문은 오늘 우리들에게도 굉장히 중요합니다. 이것이 왜 그렇게 중요합니까 그것은 성령의 세례와 성령의 충만함을 얻지 못하면 기독교는 하나의 이론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 우리는 “예수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이 말씀을 생각해 보기를 원합니다.
“성령을 받았느냐” 이 말 이전에는 “너희가 믿을 때에”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성령의 능력과 성령의 세례와 성령의 충만함을 누가 받을 수 있느냐 아무나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 성령이 임하는 것입니다. 또 이 말에는 예수는 믿지만 성령의 체험이 있을 수도 있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은 예수를 믿고 나서 성령을 체험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예수를 믿을 때에 성령을 체험하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은 성령세례가 먼저 오고 물세례가 나중에 올 수도 있습니다. 고넬료와 같은 사람이 그렇습니다. 베드로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미 성령의 세례가 임했는데 어찌 물세례 주는 것을 금하리요”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세상 땅끝까지 나의 증인이 되어라. 그런데 승천하시면서 너희는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어라. 그리고는 전도하러 가기전에 먼저 받을 것이 있다. 경험할 것이 있다. 체험할 것이 있다. 그것을 받기 전까지는 떠나지 말라.”
그렇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잘 들어야 합니다. 여러분이 예수를 안믿는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십자가와 부활을 안믿는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다 믿습니다. 그러나 과연 여러분들이 성령으로 옷입었느냐 안입었느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의지와 지성으로 예수를 믿고 있는가 아니면 성령님의 은혜를 옷입고 그분의 힘에 의해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아주 결정적인 차이가 여기에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세상에 내보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들로 하여금 기도하게 했습니다.
오늘 우리들에게 참으로 중요한 것은 건축하는 것이 아니고, 학교 잘 다니는 것도 아니고 성령받는 것입니다. 능력을 받아야 합니다. 그 다음에 다른 것을 해야 합니다. 예수를 힘있게, 능력있게 믿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고 한 것입니다. 그들은 한 다락방에 모였습니다. 그리고 전심으로 기도했습니다. 그때 홀연히 급하고 강한 바람같은 성령의 임재와 기름부으심이, 나타나심을 그들은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가 예수를 믿을 때에 성령이 없이 어떻게 믿을 수 있겠습니까 성령님 없이 어찌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겠습니까 내가 예수를 영접하는 모든 것이 성령님의 역사입니다.
그러나 오순절의 경험은 이것과 다른 것입니다. 어떤 특별한 경험입니다. 저와 여러분에게 이런 특별한 경험이 있어지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을 세상에 전도하러 보내시지 않고 먼저 이 경험을 할 것을 말씀하신 것을 잘 생각해 보십시오. 예수 믿지만 이런 경험이 필요합니다. 이런 것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예수를 영접했다는 것이 무슨 뜻입니까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이며, 육체로 세상에 오셔서 우리 죄를 위해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믿고, 영접하는 것입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것이 구원을 받았다는 것인데,
먼저 신분이 바뀌었다는 것입니다. 시민권이 바꾸어졌어요. 마귀의 자식들이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었어요. 구원받았다는 것은 위치의 변화입니다. 종의 위치에서 아들의 위치로 변한 것입니다. 또한 죄의 자녀가 의의 자녀가 되었어요. 물리 변하여 포도주가 되었어요. 그렇다고 예수를 믿고 구원을 얻었다고 해서 능력을 얻은 것은 아닙니다. 기쁜 것이죠. 야! 내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 그러지 능력을 얻었다. 하지는 않습니다.
바울은 예수를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하고 묻습니다. 성령을 받으면 능력이 임합니다. “성령이 임하면 능력을 받고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성령을 받은 다음 기도하던 그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습니다. 예수 믿고 성령을 받은 사람은 과거의 자기의 자리를 털고 일어납니다. 바울은 그래서 이 문제에 대해서 굉장히 관심이 많았습니다.
사람은 자기가 경험한 것에 대해서 굉장히 관심이 많습니다. 예수를 경험한 사람은 단순히 교회다니고, 헌금하고, 이런 삶이 아니에요. 더욱 깊은 놀라운 것들이 있어요. 부숴지고, 자아가 깨어지고, 이런 놀라운 경험을 합니다.
옛날에 유명한 한얼산 기도원의 이천석 목사님은 아십니까 왜 그렇게 욕을 하면서 예수를 전할까 험악한 목회자다. 이런 말을 많이 들었다고 합니다. 많은 목회자들은 그래서 그를 가까이를 잘 못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분이 맞는 것이 하나 있대요. “우장창, 왕창” 그래요. 부르도자로 밀어버려요. 인간은 욕좀 먹어도 싸다 이거에요. 부숴버려야 한 대요.
그렇습니다. 인간은 부숴져야 합니다. 깨져야 합니다. 녹아져야 합니다. 그런데 이게 안되니까 밤나 왔다갔다 하고, 믿을까 말까 하고, 그러면서 사는 거에요. 촛불처럼 왔다갔다. 바람 막아 놓으면 좀 살다가 배껴놓으면 간들간들. 죽어가는 불씨들, 다죽어가다가 후하면 또 살아나. 자기 혼자 예수 믿기가 힘들고 버겨워요.
성령받은 사람은 기도하는 것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성령 받지 못한 사람은 5분을 기도못합니다. 기도 소리를 들으면 자기가 졸아요. 성령 받은 사람은 앉아서 기도할 수 없어요. 침이 막튀어요. 그게 맞는 거에요. 아니 하나님이 내게 들어왔는데 그렇게 점챦게 믿을 수 있겠습니까 새차를 사도 흥분을 하는데 예수를 믿고 흥분을 안하는게 문제입니다.
성령을 받았는지 안받았는지는 찬송 부르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찬송 부르다가 5절 나오면 인상을 찌푸립니다. 왜 찬송가 긴 것 골랐냐 이거에요. 재미가 없으니까. 그렇게 흥분해서 부를 노래가 없어요. 유행가 부르면 잘 부르고, 흥분하지만... 그러나 성령받은 사람은 안그래요. 너무 좋아서 춤춰요. 감격이 있는거에요. 기쁨이 있는거에요. 능력이 있는 것입니다.
예수를 똑같이 믿어도 달라요. 성령 안받은 사람들은 사회의 일에 관심이 많고 성령을 받은 사람은 은혜받는데에 관심이 많아요. 어떻게 하면 전도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은혜받을 수 있을까 그러나 한 영혼이 변하는 것에 대해서 별로 관심이 없어요. 성령받은 삶은 시간 가는줄 모르고 기도합니다.
냉방교인이 있고 온방교인이 있어요. 방은 방인데 냉기만 있어요. 찬 방은 아무도 안들어 갑니다. 온방은 다 아랫목에다 다리 갖다가 집어넣습니다. 따뜻하니까.. 성령 충만한 사람의 주변에는 사람이 있습니다. 성령충만하지 않은 사람은 주변에서 다 쫓아 내요. 또 봉사하면서도 말이 많고, 신경질을 부리고, 불평이 많아요. 뭔가 달라요.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는가
사람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예수도 알고 세례 요한도 알지만 당신이 말한 것은 모르겠다. 그래요. 알기는 알지만 경험이 없어요. 제한하고 있어요. 모든 것을 자기의 경험과 의지로 판단하고 있어요.
성령의 음성을 들었다는 사람이 있고, 하나님의 뜻을 깨달았다는 사람이 있어요. 여러분은 어느 쪽에 속하십니까
3-4절,
요한의 세례를 받았다고 말하니까 요한은 이렇게 말했다. 내 뒤에 오시는 이가 있는데 이분을 믿어라. 이분은 예수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예수 믿고 교회다니면서 봉사하고, 세례받고 다했어요. 그러나 변화나 기적이나 능력을 체험한 적이 없어요. 그런 것을 들으면 안믿는 것은 아니지만 믿는 것도 아니에요.
그런 분들은 자기혼자 예수 믿는 것이 버겨워요. 아주 상식적이고 일상적인 것 뿐이에에요. 그리고는 그것이 정상적인 것처럼 우기고, 다른 사람들을 그렇게 만들어요. 아닙니다. 사도행전을 보십시오. 그것이 정상입니다.
그들은 그 말을 듣고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저런 세계가 있구나. 저런 경험이 있구나. 그들은 간절히 사모했습니다.
5절, “저희가 듣고 예수의 이름으로 물세례가 아니라 성령의 불세례를, 성령의 인치심을 사모했습니다.
바울의 말을 듣고 그다음에 에베소 교인들은 어떻게 했어요. 주예수의 이름으로 이 세례 받기를 사모했어요. 그순간에 그런 일이 일어났어요.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영접하면 그 순간에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한참 있다가 되는 것 아닙니다. 영접하는 그 순간에 예수님이 내안에 들어가서 내죄를 사하시며 내주인이 됩니다. 마찬가지로 성령님도 이런 말씀을 듣는 순간에 임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 임했습니다. 정말로 사모할 때에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성령이 임하게 되면 그렇게 눈물이 나면서 자기의 교만과 율법적이고 인간적인 모습들이 다 보여지고 뭔가 달라졌어요. 딱불어지게 뭔가 달라졌는가는 모르겠지만 뭔가 달라졌어요. 여러분도 뭔가 달라지기를 바랍니다.
이론적으로 교회를 다니는게 아니에요. 여러분에게도 진리가 없다는 것이 아니에요. 능력이 없는게 문제에요. 영적인 능력이 없어요. 우리가 돈으로 전도합니까 능력으로 전도하지요.
6-7절,
그때 성령의 세례가 임했어요. 이것은 자기가 압니다. 뭔가 왔다. 담배가 딱 끊어져요. 그렇게 좋아하던 것들을 안하게 돼요. 싫어하게 돼요. 그렇게 재미있던 것이 재미가 없어요. 이상하다, 내가 왜이러지. 그리고는 영혼에 대해서 눈을 뜨게 됩니다. 사람들을 불쌍하게 보기 시작합니다.
성령이 임했습니다. 바울이 그들에게 안수를 했습니다. 터졌습니다. 그게 방언이고 예언입니다. 기도를 하는데 이상한 말이 막 나옵니다.
바울이 안수를 한 것은 성령받은 사람을 통해서 역사하는 겁니다. 성령받지 않은 사람을 통해서 역사하지 않습니다. 물론 성령받은 사람이 인격적으로 성숙한 것은 아닙니다. 좀 모자랄수도 있어요. 사고를 많이 쳐요. 그러나 사람보고 시험들지 말고 성령받은 것이 중요한 거에요. 성령받은 사람을 통해서 역사합니다.
오늘 나는 여러분이 정말 믿음으로 이시간에, 이 예배가 끝나기 전에 하나님의 성령이 여러분을 만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만질 때에 온갖 기적들이 나타납니다.
이것은 예수를 믿는 것과 다릅니다. 베드로는 오순절 이전과 이후가 분명히 다릅니다. 오순절 이전에도 얼마나 큰 소리를 쳤다구요. 죽기까지 당신을 따르겠습니다. 별소릴 다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도 못했습니다. 그러나 오순절 이후에 베드로는 주님이 없어도 누가 보지 않아요, 영광스럽게 살았습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오늘 나는 여러분이 성령의 그런 임재가 오늘 이시간에 우리에게 임하기를 원합니다.
모두 일어 서셔서 [주님 성령님을 사모합니다. 이 능력을 주시옵소서. 내가 예수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 확실합니다. 분명합니다. 그러나 능력 주시옵소서. 능력을 사모하며 기도합시다.]
메마른 나의 가슴에 오시옵소서. 성령이 임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모든 악한 것들, 세상을 사랑하는 모든 것들이 끊어지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를 겨우 믿는 자리에서 일어나게 해 주시고, 빈 그물이 아니라 꽉찬 그물이 되게 해 주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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