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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바울의 눈물의 권면1 (행 20: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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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 바울과 그 일행들은 예루살렘에 빨리 도착하기 위해서 에베소에 들리지를 못합니다. 밀레도에 도착한 바울은 사람들을 에베소로 보내서 섬기시는 장로들을 초청합니다. 그리고 그 장로님들에게 고별 설교와 더불어 권면을 마치는 내용이 오늘 말씀입니다.
17-18절, 함께 읽겠습니다.
사도행전 14장 23절을 보면 1차 전도 여행 때 바울이 전도를 하고 교회를 세우고, 또 장로들을 택하여 금식을 하며 저희를 믿음에 부탁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이제 1차, 2차, 3차 전도 여행을 다 마친 바울은 특별히 에베소에서 세웠던 교회, 두란노 서원의 사역이 2년이었고, 2년을 중심으로 에베소에 약 3년을 거하게 되었는데 그 때 세웠고 교제했던 장로들을 이제 초청하는 말씀이 여기에 있습니다.
18절에 보면 고별 설교를 하는데 회상하는 말씀을 먼저 시작합니다. 여기서 바울의 목회자로서의 심정을 볼 수 있습니다. “목회자의 심정”을 갖는 것은 참 중요합니다. 특별히 오늘 이 만남이 최후의 만남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사도 바울은 그들을 눈물로 마지막 설교를 하면서 권면을 하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사도 바울과 장로님들 사이에 목자와 양의 관계를 찾아 볼 수가 있습니다.
먼저 사도 바울은 지나간 3년동안 에베소에서 사역한 사역을 회상하는데 세 가지로 회상을 합니다. 첫째는 지난 3년동안 어떻게 목회를 했는가 어떻게 교제를 했는가 이런 것들을 회상을 합니다.
19절,
여기서 중요한 단어는 ‘주님을 섬긴다’는 것입니다. 그 앞에 있는 모든 내용들은 주님을 어떻게 섬겼는가를 수식하고 있는 말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어떻게 섬겼는가 같이 교회를 섬기면서 어떻게 주님을 섬겼는가 하는 것들을 회상하고 있습니다. 사실 목회란 사람을 섬기는 것이지만 그 사람을 통하여 주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주님의 교회, 주님의 백성들을 돌보고 섬기는 것입니다. 이것이 목회입니다. 사실 모든 것들을 목회적인 관점으로 보면 다 쉽게 풀어집니다. 교수가 학생을 보는 것, 아버지가 아들을 보는 것, 정부가 국민을 보는 것, 아무리 문제가 많이 있어도 쉽게 해결이 됩니다. 바로 이것이 섬긴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교인들을 섬겼습니다. 사도 바울은 교회를 섬겼습니다. 주님을 섬기듯이 그렇게 섬겼습니다. 주님을 어떻게 섬깁니까 3가지 태도로 섬깁니다. 이것을 자기의 경험에 비추어서 3가지로 말합니다. 첫째 모든 겸손으로, 사도 바울은 겸손 목회를 했습니다. 여러분, 아무리 좋은 것도 겸손하지 않으면 사람들을 화나게 하는 것입니다. 왜 구제하고 뺨맞는지 아세요. 겸손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돈은 필요하지만 네 교만은 싫다는 것입니다. 왜 열매가 없습니까 겸손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인간적인 힘과 지식과 방법으로 주님의 교회는 섬겨지지 않습니다. 여러분, 세상적인 것으로 주님의 교회가 섬겨질 것 같습니까 안됩니다. 아무리 지식이 많고, 아무리 능력이 있어도 그것들은 교회에 별 효과가 없습니다. 어떻게 교회를 섬겨야 합니까 어떻게 주님을 섬겨야 합니까 겸손인데 한 두 가지 겸손이 아니고 모든 겸손, 겸손이란 무엇입니까 자신을 생각하지 않는 것이 겸손입니다. 자기가 드러나면 겸손이 아닙니다. 자기가 죽어야 합니다.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나의 생각, 내 주장, 내 방법을 밀고 가면 겸손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주님의 일을 하지 않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일하면서 나에게도 갈등이 있고 다른 사람에게도 갈등이 있는 것은 겸손하지 않아서입니다. 내 것을 자꾸 주장하기 때문에, 내방법을 자꾸 설득하기 때문에 문제가 생기는 것입니다. 겸손은 주님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이런 경우에 어떻게 행동하셨을까 주님의 생각과 주님의 주장과 주님의 방법만 생각하는 것이 겸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11:29에서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게 와서 배우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겸손을 어디서 배울 수 있습니까 주님에게서 배울 수 있습니다. 주님만을 생각하고 주님만을 바라보고, 주님의 뜻만을 생각하면 그것이 겸손이 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자기를 가리켜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종입니다. 나는 종입니다. 종이 무슨 할 말이 있습니까 종이 무슨 감정이 있습니까 시키는 대로 사는 것이 종입니다. 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입니다. 종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참된 겸손이란 자기 포기입니다. 그리고 온전히 그리스도만을 신뢰하는 영적 태도입니다. 사도 바울은 모든 면에서 그는 겸손으로 주님을 섬겼다는 것을 회상을 합니다.
두 번째입니다. 사도 바울은 어떻게 주님을 섬겼습니까 모든 겸손과 눈물입니다. 눈물 목회를 했습니다. 여러분 눈물이 언제 나는지 아세요 머리로 이해하면 눈물이 안납니다. 가슴으로 이해해야 눈물이 납니다. 여러분, 정말 가슴에서 눈물이 나야 합니다. 언제 눈물이 납니까 사랑하면 눈물이 납니다. 불쌍히 여기면 그 눈물이 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생각하면 그 눈물이 나는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눈물은 생리적인 눈물을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물론 아프면 눈물이 나지요. 고통과 억울함과 불편함, 그런 걸로 눈물이 날 수 있습니다.
방송하는 연기자들, 어쩌면 그렇게 눈물을 잘 흘립니까 한참 떠들고 놀다가도 “자. 감정 잡으세요. 큐.” 들어가면 3분이면 눈물이 쭉흐릅니다. 참 신기하죠. 그 눈물 말고. 그런 눈물 말고, 정말 사랑 때문에 내 가슴에서 흘러넘치는 그런 눈물입니다. 주님을 섬기다 보면 어떤 때는 속이 상하고 자존심도 상하고 고통스럽고, 분하고 오해가 있고 억울하고 견딜 수 없는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반항할 수도 없습니다. 눈물, 그리고 눈물, 또 눈물. 바울은 그렇게 목회를 했다는 것입니다.
여러 가지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다 설명할 수도 없고, 다 변명할 수도 없고, 다 반항할 수도 없고, 그냥 눈물을 삼키면서 주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 사람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냥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바울은 어떻게 성도들을 섬겼습니까 “유대인의 간계를 인하여 당한 시험을 참고” 인내의 목회였습니다. 특별히 유대인 형제들로 인하여 수많은 핍박과 고통을 겪었습니다. 그들은 수많은 간계를 사용해서 소동을 일으켰고, 재판을 했고, 어떤 경우에는 돌멩이로 쳐서 거의 죽게끔 했습니다. 이러한 유대인들의 사도 바울의 반응은 무엇입니까 하나밖에 없습니다. 인내였습니다. 그냥 참는 것이었습니다. 참고 또 참고, 또 참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가 쓴 고린도전서 13장에서 사랑이란 오래 참는 것이다. 이런 체험적 고백을 했습니다. 로마서 5:3-4을 보면 “환난은 인내를 낳고, 인내는 연단을 낳고, 연단은 소망을 낳느니라” 이런 편지를 쓰기도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렇게 참은 것입니다. 참고 또 참고 또 참았습니다. 눈물, 또 눈물, 또 눈물이었습니다. 겸손 또 겸손, 또 겸손이었습니다. 이렇게 주님을 섬겼다고 사도 바울은 고백을 합니다.
두 번째 사실을 회상을 합니다. 그것은 자기가 복음을 전파하며 가르친 사실을 회상을 합니다.
20절,
사도 바울의 관심은 복음을 전하는 것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의 관심은 복음을 가르치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에베소에서 2년동안 두란노서원이라는 곳에서 매일 말씀을 강론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20절에서 특이한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것은 사도 바울은 유익한 무엇이든지-이것은 복음을 말합니다. ‘공중 앞에서나 각 집에서나-어떤 곳에서든지,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고 가르치는 것을 가장 중요한 사역으로 삼았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이런 사람이 있습니다. 사람 많으면 안가요. 분위기 안 맞다고 안가고, 얼마나 사람들 비위맞추기가 어려운지 모르겠어요.
바울의 관심은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것이었습니다. 한 사람이라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들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사도 바울은 기뻐했습니다. ‘공중 앞에서나 집에서나 꺼리김없이’ 돈을 한푼도 안 준다 할지라도 아무 상관없이, 이익이 생기지 않는다 할지라도 아무 상관없이, 예수 그리스도를 전했다는 사실 자체가 자기에게 기쁨이 되고 축복인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 보면 분위기를 만들어 줘야 일을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분위기 안 맞으면 안합니다. 사실 그 사람은 주님의 일을 하는 것보다는 분위기와 위치와 환경이 중요했던 사람입니다.
셋째 사도 바울은 회개와 믿음을 증거 했던 일들을 회상하고 있습니다.
21절,
선택받은 유대인들이나, 선택받지 못한 이방인들이나 물론하고 필요한 것은 하나님께 대한 회개요, 두 번째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 구원을 가르킨 것입니다. 구원은 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이라는 두 기둥인 것입니다. 참된 구원은 회개로부터 시작됩니다. 헌옷을 벗지 않고 새 옷을 입을 수가 없습니다. 더러운 물을 버리지 않고 새물이 들어올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이 정리되지 않고 구원이 들어올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또한 가지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로워지는 그런 믿음이 필요한 것입니다. 예수께서 피를 흘려 돌아가심으로 말미암아 그 피가 내죄를 속죄하고 그리스도의 부활로 말미암아 내가 영원한 삶으로 영생으로 부활한 이런 믿음을 통하여 우리의 구원이 완성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사도 바울은 21절에서 내가 너희에게 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가르쳤던 것을 회상한다.
이제 사도 바울은 현실적인 얘기로 돌아갑니다. 내가 왜 예루살렘으로 가야만 하는가
22절에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예루살렘으로 급히 가려고 하는데 이렇게 급히 가게 하시는 분이 성령님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심령에 매임을 받아’ 거기를 안가면 안되는 거에요. 어떤 곳에 하나님이 나를 자꾸 가게 하시느거에요. 그런데 분명한 것은 성령께서 자꾸 몰고 간다는 것입니다. 또 한가지입니다. 성령께서 가르쳐 준 것이 있었는데 네가 예루살렘으로 가면 고통을 당할 것이다. 이런 느낌을 주십니다. 그러니 사도 바울이 얼마나 고민이 많겠습니까 가라고 하나님이 강권하시고, 가게 되면 네가 결박을 당할 것이고 체포를 당할 것이다. 양면을 동시에 주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도대체 예루살렘으로 가면 무슨 불길한 일이 있을 것인가 23절에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바울만 그렇게 느낀 것이 아니라 성령 받은 예언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당신 예루살렘 가면 굉장히 어려움을 당한다.’ ‘성령께서는 예루살렘에 안가면 안된다’ 이렇게 말씀을 하시고.
21장에 보면 아가보라는 선지자가 아예 띠를 자기의 손과 발에 결박을 하면서 예루살렘에 올라가면 이렇게 될 것이다. 라고 예언을 합니다. 여기에 대한 사도 바울의 응답은 무엇입니까 너는 어떻게 할거냐
24절에서 보면,
줄쳐둘만한 성경 구절입니다. 여러분 결정은 내가 하는 것입니다. 결정은 여러분이 하는 것입니다. 성령의 역사가 있지요. 예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 기도하면서 “아버지여 이 잔을 내가 마셔야 합니까” 얼마나 간절하던지 땀이 핏방울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사실 이런 고민과 갈등의 벽을 넘는 것입니다. 이 기도가 얼마나 힘이 들던지, 땀이 핏방울이 되었습니다. 그는 이 문제를 가지고 한 번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제자들은 다 잤습니다. 세번씩이나 했습니다. 마지막에 그는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
사도 바울도 오늘 이런 결단을 합니다. 성령님의 두 가지 역사가 있었을 때 사도 바울은 그렇습니다. ‘나의 달려갈 길과’-나의 인생의 목표입니다. 당신은 무엇을 위해 사십니까 나의 달려갈 길은 곧 주예수께 받은 사명, 은혜의 복음을 증거하는 일인데 이 복음을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가치 있는 것으로 생각하지 않겠다. 그런 결정을 합니다.
인생의 목적은 어디에 있습니까 인생의 방향은 어디에 있습니까 내가 예수를 믿는다고 하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내가 이렇게 살면 세상이 변할까요 내가 안 변하는데 어찌 세상이 변하겠어요 변하기를 바라지요. 그런 정도입니다.
오늘 사도 바울은 24절, 그는 자신이 스스로 그런 결정을 합니다. 나는 내려가면 체포당할 것을 알지만 가는거에요.
25절,
이 장면을 보면 이것이 마지막 장면임을 알 수 있습니다. 바울은 예루살렘으로 가면 이제는 아시아로 안 옵니다. 배타고 로마로 갑니다. 지금 마지막 이별입니다. 바울과 장로들은 해변가에 앉아서 껴안고 막웁니다. 드라마 같습니다. 그렇게 헤어집니다. 여기에 바울의 현주소가 있습니다.
주님의 복음을 전하고자 하는 주님의 복음을 위해서는 어떤 직장도, 어떤 직업도 나의 인생도, 나의 청춘도, 나의 결혼도, 나의 재산도 이런 것은 다 중요하지 않고, 내가 주의 복음을 위해서 최선을 다해 살아야겠다. 나는 죽겠다. 이런 마음입니다.
왜 사도 바울은 2천년의 기독교 역사상 가장 감동적인 영향력을 줄 수가 있었습니까 바로 이런 순교적인 믿음과 종말론적인 결단,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 이런 것이 사람을 이렇게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왜 우리의 삶과 신앙이 세상에 큰 영향력을 못 미치고 있는가 각자가 생각해 볼 주제입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신앙 지키기에 간신히 목을 매단 사람이 있습니다. 남에게 영향력을 주는 것은 생각도 못합니다. 신앙이 간들간들, 이제 꺼질가, 저 제 꺼질까, 촛불 같아요. 그 사람들이 어떻게 남에게 영향력을 끼칠 수 있겠습니까 죽기로 결심하지 아니하면 아무 일도 안 일어납니다. 포기하는 것이 없으면 얻는 것도 없습니다.
26-27절,
24절,
이 엄청난 선언과 맘먹는 큰 선언이 있습니다. 그것은 “나는 모든 사람의 핏값에 대해 깨끗하다.” 대단한 얘기입니다. 26-27절, 나는 하나님을 너희에게 다 전했다. 여러분, 신탄진의 사람들의 핏값에 대해 깨끗하십니까 그렇게 말못합니다. 여러분의 집안 사람에 대해서 핏값에 깨끗하십니까 나는 그렇게 말못합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그렇게 말을 했습니다. 사도 바울이 약간 이상하든지, 아니면 그가 교만하든지 , 과장하든지, 아니면 진실하든지 하나일 것입니다. 이 말씀을 이해하기 위해선 에스겔 3장 17-21절 사이의 말씀을 읽어야 이 말씀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에스겔 3장 17-21절 “인자야 내가 너를 이스라엘 족 속의 파수꾼으로 세웠으니 너는 내 입의 말을 듣고 나를 대신하여 그들을 깨우치라 가령 내가 악인에게 말하기를 너는 꼭 죽으리라 할 때에 네가 깨우치지 아니하거나 말로 악인에게 일러서 그 악한 길을 떠나 생명을 구원케 하지 아니하면 그 악인은 그 죄악 중에서 죽으려니와 내가 그 피 값을 네 손에서 찾을 것이고 네가 악인을 깨우치되 그가 그 악한 마음과 악한 행위에서 돌이키지 아니하면 그는 그 죄악 중에서 죽으려니와 너는 네 생명을 보존하리라 또 의인이 그 의에서 돌이켜 악을 행할 때에는 이미 행한 그 의는 기억할 바 아니라 내가 그 앞에 거치는 것을 두면 그가 죽을지니 이는 네가 그를 깨우치지 않음이라 그가 그 죄 중에서 죽으려니와 그 피 값은 내가 네 손에서 찾으리라 ”
죄인이 죄를 범하면 죄인은 당연히 악인은 자기의 죗값으로 죽는 것이 당연하지만 그 악인을 깨우치지 않고, 전도하지 않은 책임을 너에게 묻겠다는 말입니다.
자 어떤 악인이 있습니다. 악인이 죄를 범했습니다. 죄를 범한 것을 네가 경고하거나 얘기하지 않는다면, 내가 경고해서 그 사람이 고치고 안 고치고는 그 사람의 문제입니다. 내가 전도해서 그 사람이 예수를 믿고 안 믿고는 그 사람의 문제입니다. 네가 전도해서도 안 믿었다면 그것은 괜찮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네가 전도하지 않아서 그 사람이 지옥 갔다면 그 책임을 너에게 묻겠다는 것입니다.
전도하지 않으면 괜찮은 것이 아닙니다. 이런 일이 있습니다. 내가 만난 사람은 복음을 들어야 합니다. 믿고 안 믿고는 그 사람의 문제입니다. 내가 안만난 사람의 문제는 하나님은 이야기하지 않아요. 그러나 내가 만나 사람은 그 핏값을 네 손에서 찾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뭐라고 했습니까 ‘나는 모든 사람의 핏값에 대해서 깨끗하다’ 굉장한 이야기입니다. 아마 이런 것 보면 자기하고 만난 사람은 다 전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니 깨끗하다고 하지요. 자기를 만나는 사람에게는 예수 얘기를 했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놀라운 이야기를 두 가지 합니다. ‘나는 생명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겠다.’ 또 하나는 ‘나는 모든 사람의 피값에 대해서 깨끗하다.’ 하는 것입니다. 이런 바울의 심정을 갖게 되기를 바랍니다.
[핍박 가운데서도 바울의 마음을 갖게 해 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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