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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멜리데 섬에서의 전도 (행 28: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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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로 가고 있었던 사도 바울과 그 배에 타고 있었던 276명의 사람들은 유라굴로라는 광풍을 만나 죽게 되었고 소망이 없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개입하심으로 말미암아 배는 깨졌고 물건은 다 없어졌지만 생명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않은 채 다 구원을 받은 사건을 27장에서 보았습니다. 27장 44절을 다시 한번 보겠습니다.
“마침내 사람들이 다 상륙하여 구원을 얻으니라.” 그들은 생각지도 못하게 한 섬에 도착하게 됩니다. 그 섬의 이름은 멜리데 섬이고 토인들이 살고 있는 섬입니다. 그들은 도착해서 토인들의 보호를 받습니다.
1절,
전혀 알 수 없는 섬, 갈 수 없는 섬에 그들은 도착을 한 것입니다. 그들이 그 섬에 간 이유는 한가지입니다. 가고 싶어서 간 것이 아니라 풍랑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 섬에 가게 된 것입니다. 어쩔 수 없이 가게 된 것, 어쩔 수 없이 하게 된 것에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사람에게는 우연이지만 하나님에게는 필연입니다. 생각하지도 못하게 어쩔 수없이 풍랑을 만나서 그 섬에 도착을 했지만 그것이 멜리데 섬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구원의 기쁜 소식을 받을 수 있는 기회였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이 원치 않는 일을 하게 되었을 때, 원치 않는 길을 가게 되었을 때, 원치 않는 삶을 살아야 했을 때, 그것은 하나님의 기회라는 것입니다. 내가 생각하는 기회가 아니라 하나님이 만들어 주신 기회라고 하는 것입니다.
나는 왜 한국 땅에 태어났는가 아무도 대답할 수 없습니다. 그냥 태어난 것입니다. 그런 일들이 참 많습니다. 우리의 선택과 의지로만 되어지지 않은 일들이 인생에는 너무나 많은 것입니다. 내가 결혼하고 싶은 사람과 결혼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내가 갖고 싶은 직장을 다 갖지 못합니다. 내가 살고 싶은 데서 다 살지 못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은 끊임없이 자기의 선택과 의지가 자기의 길을 만든다고 착각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돌이켜 보면 우리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원치 않는 길을 갈 때도 있는 것이고, 원치 않는 삶을 살 때도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인생의 한 신비입니다. 내맘대로 살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은 좀더 생각해 봐야 합니다. 안 죽을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과 똑같은 것입니다. 영원히 살 수 있다고 착각하는 것과 똑같은 것입니다.
멜리데 섬에 도착한 사도 바울과 그 일행은 본의 아니게 원주민들의 도움을 받습니다. ‘특별한 동정을 받았다’라고 했습니다. 비가 오고 날이 찼습니다. 먹을 것이 없습니다. 추위를 막을 것이 없습니다. 토인들이 불을 피워 도와 주었습니다. 우리는 가끔 주위 사람들로부터 알 수 없는 핍박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그냥 미워해요. 어떤 사람이. 왜 미워하는지 이유를 알 수 없어요. 그렇지만 그렇게 고난을 겪을 때가 있습니다. 눈에 가시처럼 괴롭히는 거에요. 그러나 정반대로 또 어떤 사람은 그렇게 조건 없이 도와주고 사랑하는 사람이 있어요. 은혜를 베풀고, 먹을 것을 갖다 주고, 냉수 한 그릇을 주고, 내가 가장 힘들고 어려울 때 도와주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것도 알 수 없는 인생의 한 사건입니다. 파선하여 다 죽게 되었을 때 바울과 그 일행은 토인들의 따뜻한 영접을 받습니다.
3절,
우리는 이 말씀 속에서 몇 가지 사실을 볼 수 있습니다. 먼저 이 섬에 갔던 일 자체가 의도하지 않은 곳을 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그 의도하지 않은 환경의 지배를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 문화의 지배를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불을 쬐다가 나무 하나를 꺾어서 불에 집어 넣었는데 마침 나무에 뱀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 독사가 불에 뜨거워서 튀어 나오면서 바울을 물었어요. 그들의 문화에 의하면 이렇게 불 속에서 나오는 독사에 물린 사람은 살인자라는 것입니다. 신의 심판이라고 본 것입니다. ‘당신은 물에서는 구원을 받았을지는 모르지만 신의 정의를 피할 길이 없다. 신은 정확하게 당신이 극악범이거나 살인자라는 것을 말해 주기 때문에 그렇게 물었다는 것입니다.’ 그 독사에게 물리면 살 사람이 한 사람도 없다는 것을 그들은 잘 알 고 있었습니다.
4절,
바울이 자기 손을 물고 있던 그 뱀을 불 속에 던졌습니다. 사람들은 기다렸습니다. ‘저 사람은 곧 붓게 될 것이다. 저 사람은 곧 거품을 물게 될 것이다. 저 사람은 온 몸에 독이 퍼지면 죽게 될 것이다.’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한참 기다려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자 그 사람들은 생각을 바꾸었습니다. ‘저 사람은 살인자가 아니라 신이다’ 생각을 하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복음의 능력은 최악의 상황을 최선의 상황으로 바꾸는 것입니다. 똑같은 일이지만 복음의 능력이 있으면 하나님의 축복이 있으면 최악의 조건이 변하여 최선의 조건이 되는 것입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살인자라고 생각했던 그 사람이 순식간에 하늘에서 보낸 신이라고 생각을 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천대를 받다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영화롭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복음의 능력은 환경이나 문화의 영향력과 전통을 뛰어넘는다고 하는 사실을 보게 됩니다. 마가복음 16:17에도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
이 말씀이 바울에게 그대로 적용이 된 것입니다. 믿는 자에게는 이런 기적과 표적이 있다는 것입니다. 항상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꼭 필요할 때 그런 기적과 축복을 우리에게 주신다는 것입니다. 기적은 지금도 있습니다. 뱀을 집고 무슨 독을 마시고 어떤 위기 속에 있다 할지라도 하나님이 원하시면 피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죽을 자도 살리시는 것입니다.
섬에 사람들은 감동하기 시작했습니다. 얼마나 놀랐을까요
지금도 이런 기적은 일어나고 있습니다.
여러분 사도행전의 일들은 필요하면 지금도 똑같이 역사 하신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이 섬에 사람들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특별히 그 섬의 가장 높은 추장인 보블리오가 감동을 받았습니다.
7-8절,
여러분, 열병과 이질이 나면 병원에 가서 진찰 받고 약을 먹는 것이 제일 좋은 방법입니다. 그러나 이 당시에는 그렇게 할 수 있는 여건이 안됩니다. 하나님밖에는 도와줄 수 있는 그런 상황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바울이 열병과 이질을 만난 그 부친에게 기도하고 안수하매 그 이질과 그 열병이 순식간에 사라져 버린 것입니다. 나는 여러분에게도 이런 일이 그대로 일어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오늘 우리 교회에 있을 수 있다고 믿습니다. 하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분이십니다.
그렇다고 사람이 안 죽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또 죽어야 합니다. 그것이 인생입니다. 오래 사는 것만이 인생의 행복인가 그렇지 않습니다. 건강해야지 만 인생의 행복인가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있어야 행복입니다. 병들어도, 건강해도, 일찍 죽어도, 늦게 죽어도, 주님을 위해 살 수 있고, 주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다면 그 사람이 행복한 것입니다.
사람들은 그 부친의 열병과 이질이 치유되는 것을 보고 놀라고 기뻐하고 감사했습니다. 모든 다른 사람들도 데려오기 시작한 것입니다.
9-10절,
오늘 우리 교회에도 이런 일이 있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도 이런 일이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다른 병든 사람들이 다 와서 고침 받고 구원받고, 예수 믿고 축복을 받았습니다. 예수 믿는 것은 고통이라는 한 면이 있지만 동시에 기쁨과 축복이라고 하는 또다른 동전의 면이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이라고 하는 것은 고통만 연속되는 것이 아니고 기쁨만 연속되는 것이 아닙니다. 주안에서 고통도 있고 축복도 기적도 있는 것입니다.
7-10절의 말씀을 보면서 3가지를 말하고 싶습니다.
첫째는 바울과 276명이 원치 않는 섬에 원치 않는 방법으로 도착을 했지만 그것은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였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멜리데 섬의 사람들을 구원하고자 하는 하나님의 섭리였습니다. 불신자의 우연은 하나님의 필연일 수가 있습니다. 인간의 운명은 하나님의 섭리인 것입니다. 그들이 하나님이라고 하는 시각에서 보지 않기 때문에 우연처럼 보여지는 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건강과 성공과 형통함을 통해서도 일하시지만 동시에 우리의 병듦과 실패와 좌절을 통해서도 일을 하십니다.
우리는 이런 질문을 합니다. 나는 왜 이 직장에서 일을 하는가 하나님, 왜 이렇게 고통스런 집에 시집을 가게 하셨습니까 나는 왜 병원에 입원을 했는가
그러나 이런 질문들을 가운데 공통되는 한가지의 그리스도인의 대답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내게 원하시는 것은 네가 있는 그 자리는 복음을 전하기 위한 그 자리”라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빌립을 광야로 내보내신 것은 이디오피아 내시를 만나서 복음을 전하라고 하는 이유 때문인 것입니다. 이렇게 해석을 하면 원망도 시비도 분노도 미움도 없어집니다. 어떤 사람이 내 인생을 망가뜨렸다 라고 생각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또 한 가지 사실은 멜리데 섬에 있었던 기적의 경험들은 지금도 전세계의 선교 현장에서 똑같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필요하면 하나님께서 이런 모든 일들을 허락해 주십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귀신들이 나가고 병들이 치유되고 환경들이 변하는 이런 기적들이 지금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런 기적이 내 경험이 되기를 바랍니다. 죽는 것 같으나 살고 없는 것 같으나 있고 안되는 것 같으나 되는 겁니다.
예수 믿는 사람 중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예수를 믿는데 간신히 구원만 받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떻게 어떻게 해서 억지로 해서 교회에 나오게 되었고, 예수 믿고 구원을 받았어요. 그것이 끝이에요. 교회에 오는 것도 간신히 교회 오는 사람이 있어요. ‘올까말까 올까말까 에라 가자’ 그래가지고 오기는 왔지만 그 이상 아무것도 없어요. 이 사람은 예배가 빨리 끝나야 되요. 이 사람은 하나님이 주시는 그 엄청난 축복을 한 번도 본 일이 없어요. 경험한 일이 없어요. 가장 작게 믿는 거에요.
동시에 어떤 사람은 성경에서 약속된 축복을 다 누리면서 사는 사람이 있어요. 크게 믿어요. 신유도 기적도, 축복도, 사랑도, 나만 가질 뿐만 아니라 다 나누어줍니다. ‘이렇게 기도합시다, 나 만나는 사람은 다 복받을찌어다. 나 만나는 사람은 다 행복한 사람이 될찌어다.’ 우리 교회 나온 사람은 다 복받은 사람입니다. 그렇게 생각하십시오.
어떤 사람은 만나면 재수 없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 만나면 아주 신경질 나요. 뭐 베푸는 것이 없어요. 축복하는 것이 없어요. 만나자 마자 비판하고, 뒤집고, 비비꼬고.
그 사람에게는 얻어먹을 것이 하나도 없어요. 그런 사람되지 마십시오. 사람들이 여러분에게 가야 해요. 왜 사람들이 모일까요 얻을 것이 있으니까 가요 얻어먹을 것이 없는 곳은 절대로 안 갑니다. 식당도 맛없으면 절대로 안가요. 왜 그 식당에 가요 얻어먹을 것이 있으니까 사람도 마찬가지이고,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 축복을 나누어 주는 사람이 되세요! 나도 축복을 받고 다른 사람에게도 주고.
여러분, 십일조가 뭡니까 십의 구조를 해야지. 십의 구조를 하고도 나는 십일조를 가지고도 돈이 너무 많아서 어떻게 살지 모른다면 얼마나 좋겠어요 돈도 나누어 주고 시간도 나누어 주고 기적도 나누어 주는 그런 큰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바랍니다.
세 번째 사실은 영적인 은혜와 물질은 관계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분들이 열병도 낫고, 이질도 나았습니다. 다른 사람들도 와서 병고침을 받았습니다. 너무나 좋아서 이분들이 뭐를 했냐면 후하게 대접을 했다고 했습니다. 후하게 물질로 대접을 하고, 뿐만 아니라 배타고 갈 때 배에다 뭐를 잔뜩 실어 줬다는 것입니다.
이사람들이 후하게 하고 배에다 물건을 잔뜩 실어 줄 때에 찡그리고 했겠어요 너무너무 좋아서 입이 찢어 져라고 웃었겠지요. 기뻤을거에요. 신이 났을거에요. 이것이 물질입니다. 이렇게 돈을 쓸 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너무 좋아서 감사하는 마음으로 드리는 것, 이것이 구제 헌금이고, 감사 헌금이고, 선교 헌금인 것입니다.
이것이 은혜 받은 사람입니다. 은혜 받은 사람은 주게 되어 있습니다. 은혜 받은 사람은 베풀게 되어 있습니다. 은혜 못 받은 사람은 착취하게 되어 있습니다.
물질이란 은혜의 열매입니다. 은혜 받으면 물질이 나오게 되어 있어요. 은혜가 없는 물질은 원망인 것입니다. 일만 악의 뿌리가 됩니다.
물질만 있으면 시험이 됩니다. 그러나 물질이 하나님의 은혜와 연결되어 있을 때 은혜와 축복이 되는 것입니다. 은혜와 더불어 물질이 풍성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은혜 없는 물질은 여러분의 가정과 여러분을 파괴하는 것입니다.
11-14절,
마지막 문장이 무엇입니까 “로마로 가니라”
여러분은 어디로 가고 있습니까 바울은 로마로 가고 있습니다. 왜 공부하십니까 왜 결혼하려고 하십니까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에게 붙잡히고 푯대를 향하여 가고 있는 사람은 바로 로마로 가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무의미하게 살지 않기를 바랍니다. 목적이 없다는 것은 방황한다는 것입니다.
목표를 설정하십시오.
11절에서 14절을 보면 숫자가 나와요. 석달을 있다가 떠났다. 사흘, 하루, 이틀, 이레(7일). 여러분 바울이 얼마나 피곤했는지 아시겠어요. 이것이 바울의 생애입니다.
15절,
바울은 로마로 화려하게 가지 않았습니다. 많은 사람의 환영을 받으면서 가지 않았습니다. 그는 죄인의 모습으로 갔습니다. 그렇지만 바울은 행복한 사람이었습니다.
인생의 화려한 것들이 인생의 기준은 아닌 것입니다.
돈 있으면 있는 대로 사십시오. 그러나 내 중심에 뭐가 있느냐 돈도 있으면서 예수가 더 중심으로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가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여러분과 함께 하기를 바랍니다.
부할 때도 기뻐하게 하시고, 가난할 때도 기뻐하게 하시고, 건강할 때도 기뻐하게 하시고, 병들 때에도 기뻐하게 하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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