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한 사람의 순교의 제물 (행 07:54-60)

첨부 1


사도행전은 다른 말로 '성령행전'이라고도 합니다.

그것은 사도행전의 별명이기도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의 부활 승천후 사도들은 예루살렘 다락방에 모여 기 도했고 거기에 주님이 약속하신 성령이 오순절에 강 림하셨으며, 이 성령님의 역사로 말미암아 사도들을 통하여 교회가 복음의 사역을 힘있게 할 수 있었습니 다.

디벨리우스라는 사람은 사도행전의 목적은 일어난 사실들의 기록에 있지 않고, 일어난 일들이 무엇을 의 미하는가를 가르쳐 주기 위해 가록되었다고 했습니 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사도행전을 통하여 성령의 세 미한 음성과 그 역사를 알 수 있어야 합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신 말씀은 초대교회의 집사였던 스데반 집사의 순교의 모습입니다. 스데반 집사는 성 령과 지혜가 충만한 사람으로 집사로 임명받았습니다.

사도행전 6-7장은 그의 사역이 얼마나 능력이 있었는 가를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특히 7장은 유대인들을 향한 그의 설교입니다. 이 설교 때문에 스데반 집사는 순교를 하게 되었습니다.

(행7:54)저희가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저를 향 하여 이를 갈거늘 이 말씀은 스데반 집사의 설교를 듣고 유대인들의 반응을 말한 것입니다.

마음에 찔려라고 하는 말씀은 디아프리오( )-'조각 조각 톱질하다' 는 말씀입니다. 그것은 스데반 집사의 설교 때문입니다. 그의 설교는 유대인들의 마 음을 조각 조각 톱질하여 버렸습니다. 실제로 스데반 집사의 설교를 읽어 보십시오. 모든 역사적인 사실들 을 열거하면서 그들의 조상적부터 행하여진 악한 일 들, 선지자를 죽이고 불신으로 달려갔던 그들이 결국 은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죽였다고 증거하고 있 습니다.

스데반 집사의 설교는 능력이 있었습니다. 그들의 강팍한 마음을 톱질하여 조각 조각 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본문은 그들이 오히려 스데반 집사를 향하여 이를 갈았다고 합니다. 유대인들은 극심한 분노를 나 타낼 때에 옷을 찢거나 머리에 재를 뒤집어쓰는 행동 을 보였습니다. 그러나 이를 갈았다고 하는 이들이 얼 마나 격분하고 있는 지를 알 수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사람이 능력 있는 설교를 들었을 때에 그 때가 바로 회개할 수 있는 기회입니다. (행2:37)이 하에는 사람들이 베드로 사도의 설교를 듣고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저희가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가로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행2:38)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 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행2:39)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데 사람 곧 주 우 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 라 하고 (행2:40) 또 여러 말로 확증하며 권하여 가로 되 너희가 이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으라 하니 (행2:41) 그 말을 받는 사람들은 세례를 받으매 이 날 에 제자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 여러분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사람들의 마음이 찔 려다고 합니다. 찔려라는 헬라어 카타닛소라는 말 은 '강하게 찌르다' '관통했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스 데반 집사의 설교는 그들의 마음을 조각 조각 내는 설교였습니다. 사람들은 능력있는 설교를 듣고 정 반 대의 반응을 나타냈습니다.

이 세상에 능력있는 설교자가 없어서 아직도 변화 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의 설교를 직접 듣고도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마7:29) 이는 그 가르치시는 것이 권세 있는 자와 같고 저희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함일러라 (막1:27) 다 놀라 서로 물어 가로되 이는 어찜이뇨 권세 있는 새 교훈이로다 더러운 귀신들을 명한즉 순종하는도다 하더라 마태복음13장의 예수님의 말씀 씨뿌리는 비유에서 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똑 같이 들어도 사람에 따라 그 반응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 이 강하게 선포되어 우리의 마음을 감동할 때에 그 때가 회개할 기회인 것입니다.

(계3:14) 라오디게아 교회 내가 네 행위를 아노 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더웁지도 아니 하도다 네가 차든지 더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계3:16) 네가 이같 이 미지근하여 더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치리라(계3:17) 네가 말하기 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벌 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계3:18) 내가 너를 권하노 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계3:19)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오늘 이 시대는 물량주의에 빠진 라오디게아 교회 와 같습니다. 물질적으로는 부요하나 영적으로는 빈곤 한 우리의 모습입니다.

(행7:55) 스데반이 성령이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 에 서신 것을 보고 스데반은 성령이 충만한 사역자입니다. (행6:3)에는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였다고 하며, (행6:5)믿음과 성령이 충만하였다고 하며,(행6:8)스데반이 은혜와 권능이 충만하여 큰 기사와 표적을 민간에 행하니 (행6:15)공회 중에 앉은 사람들이 다 스데반을 주목 하여 보니 그 얼굴이 천사의 얼굴과 같더라고 하고 있습니다.

어떤 목사님은 스데반 집사를 너무너무 부러워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성령의 충만은 이상의 말씀과 같이 지혜충만, 믿음충만, 능력충만,권능충만,을 말합니다.

이러한 스데반 집사는 하나님의 영광과 예수께서 하나님의 우편에 서신 것을 보았습니다. 이것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이 말씀은 권세있는 설교를 듣고도 회개하지 않는 유대인들의 모습과 대조가 되고 있습 니다. 스데반 집사는 성령충만으로 그의 성품뿐만 아 니라 그의 모습까지도 변화되어 버렵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의 모습은 그 반대입니다. 성도는 성령이 충 만해야 합니다. 성령충만은 성경의 요구입니다. (엡 5:18)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 의 충만을 받으라고 하십니다.

성령이 충만한 사람은 능력 있게 됩니다. 지혜가 넘 치게 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됩니다. 그러나 성령이 충만치 못한 사람은 그렇지 못합니다. 이 땅의 영광을 생각합니다. 인간적인 능력을 생각합니다. 우 리는 성령 충만치 못한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행1:8)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 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 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권능 뒤나미스-어근(뒤나마이)다이나마이트라는 뜻,'-을 할 수 있다','능히...을 되게하다'.라는 뜻, 증 인이 됩니다. 예수를 능력 있게 증거하게 된다는 말 씀입니다. 성령이 충만해야 합니다.

55-56절에 하늘을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말하되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 라 이 말씀은 스데반 집사에게는 말로 다 할 수 없는 확신을 주는 광경입니다. 스데반은 하나님의 영광의 보좌를 보았습니다. 지금 스데반은 이스라엘의 최고 종교 재판석인 산헤드린이 개최중이었으므로 재판장 안에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의 눈을 열으셔 서 하나님의 영광의 보좌를 보게 했습니다. 모세는 그 것을 애굽 땅에서와 시내산에서 보았고(히11:27),이사 야는 성전에서(사6:1),에스겔은 그발강 가에서(겔1:1), 베르로는 변화산에서 요한과 야고보와 함께 보았고 또 행10:9에는 지붕 위에서 보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요한은 밧모섬에서 보았습니다(계4:1).

하나님께서 하늘이 열리고 영광의 보좌를 보여주신 것은 무엇 때문일까요 그에게 더 확실한 믿음이 필 요했기 때문일까요 하나님께서 스데반 집사에게 하 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영광의 보좌 우편에 예수께서 서신 것을 보게하신 것은 유대인들에게 있어서는 충 격적인 말이 없습니다. 모든 선지자들을 죽이고 하나 님의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 까지 죽였던 그들이 하나 님을 대적했다는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의 입장에 있어서는 그것은 용납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 들이 죽인 예수가 하나님 우편에 서 있다는 것은 유 대인들에게는 상상할 수 없고, 그렇게 되어서도 안됩 니다. 이러한 스데반의 증거는 그들에게 있어서 하나 님을 모독하는 말처럼 들렸습니다.

(행7:57)저희가 큰 소리를 지르며 귀를 막고 일심으 로 그에게 달려들어 이들은 더이상 스데반 집사의 말을 들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들의 감정은 고조되어 재판의 절차 없이 스데반을 처형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여기에 대하여 모 두가 한 마음이었습니다. 아마 그들은 빨리 할수록 좋 다고 고 느꼈을 것입니다. 어떤 학자는 이 광경은 증 오와 죄의 결합이었다고 전합니다. 얼마전 '지존파'라 는 살인 집단은 바로 이러한 증오와 죄의 결합체 라 고 할 수 있습니다.

마음이 굳어진 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이 자신을 향 하여 선포될 때에 자신의 귀를 막아 버립니다. 그리고 심한 욕설과 함께 공격해 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도 이렇게 하여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하여 비판적이거 나 공격적인 사람을 보았을 것입니다. 사도 바울도 자 신이 알지 못할 때에는 그러했다고 합니다.우리의 마 음이 강팍해 질 때에도 그럴 수 있습니다. 진실로 하 나님을 대적하는 것입니다.

(행7:58)성 밖에 내치고 돌로 칠세 증인들이 옷을 벗어 사울이라 하는 청년의 발앞에 두니라 유대인들은 하나님을 모독하는 자는 진 박으로 끌 고가 돌로 쳐서 사형을 시켰습니다. 처형할 때에는 죄 인을 고소한 증인이 맨 먼저 머리통 만한 돌로 쳤고 그 다음에 사람들이 돌로 쳐서 그를 죽였습니다. 지 금 스데반 집사를 처형한 이들은 예수님께서 처형 받 으실 때처럼 그들의 종교적인 편견 때문에 생긴 극악 한 행동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정치적으로 죄인을 사 형에 처할 권리가 없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로마 의 재판을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정식 재판도 없이 돌로 쳐서 사람을 죽이는 것은 율법의 정신에도 맞지 않습니다.

우리 나라에도 얼마전 임홍천 전도사가 자신이 다 니는 교회의 목사에게 충성하기 위하여 탁명환씨를 살해했습니다. 종교적인 편견은 악한 결과를 가져옵니 다. 우리들에게도 이러한 종교적인 편견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왕국을 생각지 않고 지교회만 생각하는 사 람 그래서 다른 교회를 비방한다든지, 만인제사장이라 는 생각을 버리고 특별한 직분자들만 사명자라고 생 각하는 사람들, 아니면 그 반대로 자신만이 특별한 사 명자라고 한다든지, 성속 이원론적인 생각으로 교회안 에서는 거룩한데 자신이 다니는 직장은 세속적이라 생각하는 것도 종교적인 편견입니다. 이러한 종교적인 편견 때문에 한국교회는 썩어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교육을 받고 선교사로 나간 우리나라 선교사들은 서 로가 경쟁자이지 협력자가 아니라는 것입니다.우리는 종교적인 편견 때문에 하나님 앞에나 사람 앞에 얼마 나 많은 악을 저질렀습니까 (행7:58)하반절에 ...증인들이 옷을 벗어 사울이라 하 는 청년의 발앞에 두니라고 하고 있습니다.

스데반 집사를 죽이는데 증인이 되고 가장 주도적 인 역할을 한 사람은 사울이라고 하는 청년이었습니 다. 이 청년은 왜 이러한 일에 앞장을 섰을까요 이 사람은 전자에 말한 것과 같이 유대교에 대한 열심이 있기 때문이며,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하는 마음이 있 기 때문입니다. 다만 그는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이 보내신 메시야인 것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본문 은 의도적으로 사울이라는 청년의 이름을 적고 있습 니다.

(행22:3)이하에서 그는 스데반을 죽였던 산헤드린 재판석에 자신이 서서 재판을 받으면서 이렇게 증거 합니다.

나는 유대인으로 길리기아 다소에서 났고 이 성에 서 자라 가말리엘의 문하에서 우리 조상들의 율법의 엄한 교훈을 받았고 오늘 너희 모든 사람처럼 하나님 께 대하여 열심하는 자라(행22:4) 내가 이 도를 핍박 하여 사람을 죽이기까지 하고 남녀를 결박하여 옥에 넘겼노니 (행22:20)또 주의 증인 스데반의 피를 흘릴 적에 내가 곁에 서서 찬성하고 그 죽이는 사람들의 옷을 지킨줄 저희도 아나이다 율법과 하나님께 대한 열심 때문에 그러했습니다.

성도 여러분! 이렇게 율법을 알고 하나님께 대하여 열 심이 있는 사람도 잘못된 종교적인 편견에 빠지게 될 때에 감히 인간으로는 할 수 없는 일을 저질을 수 있 습니다.

그러나 그의 증거처럼 스데반을 죽인 곳에서 증인 된 그가 성령이 충만한 스데반 집사를 통하여 받은 모든 것은 그의 머리에서 떠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주님께서 성령이 충만한 스데반 집사 를 통하여 많은 사람을 구원하였을 것을 확신합니다.

그 중에 그의 순교의 피를 통하여 얻은 열매는 바로 율법에 열심이 있고, 하나님께 열심이 있는 사울이라 는 사람에게 많은 영향력을 끼쳤을 것입니다. 한 사람 의 영혼이라도 수고하지 않고 얻을 수 있는 영혼은 없습니다. 마귀는 절대로 한 영혼도 그냥 돌려주지 않 습니다. 오늘날도 우리는 한 영혼을 주님 앞에 인도하 기 위해 몇 년을 기도해야 하고,몇 년을 울어야 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시126:5)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 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시126:6) 울며 씨를 뿌 리러 나가는 자는 정녕 기쁨으로 그 단을 가지고 돌 아 오리로다 (행7:59) 저희가 돌로 스데반을 치니 스데반이 부르 짖어 가로되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하고 (행7:60) 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가로되 주여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 스데반 집사는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 서라고 기도합니다. 그리고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 지 마옵소서라고 기도합니다.

여러분! 우리는 우리의 인격이 예수 그리스도를 닮 아가야 합니다. 전 삶이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 가야 합니다. 우리의 마지막 임종까지도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 가야 합니다. 스데반 집사의 죽음은 예수 그리스 도의 죽음의 모습과 너무나 닮았습니다. 예수님은 골 고다 언덕에서 십자가에 죽으시면서 (눅23:46)예수 께서 큰 소리로 불러 가라사대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하고 이 말씀을 하신 후 운명하시다 (눅23:34)이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 다 하시더라 이 기도는 사람을 사랑하는 주님의 기도와 같이 원 수까지도 사랑하는 성숙된 신앙인의 기도입니다. 어거 스틴은 만일 스데반이 기도하지 않았더라면 교회는 바울을 얻지 못했을 것이다고 했습니다.

해밀턴 대학의 유명한 교수인 바커스는 병세가 악 화되어 위독한 상태에 이르게 되었다. 의사가 교수 부 인의 귀에 대고 박사님의 임종의 때가 가까왔습니 다라고 속삭였습니다. 우연히 이것을 들은 교수는 만 면에 웃음을 띄우면서 말했다.

:의사 선생님,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곧 죽음의 시간이군요. 미안하지만 나를 좀 일으켜 자리에서 나 오게 해서 무릎을 꿇게 해 주십시오. 해밀턴 대학의 학생들을 위해,하나님의 축복을 기도한 후 죽고 싶습 니다..

집안 사람들은 의사를 도와 그의 소원대로 침대 곁 에 무릎을 꿇게 했다. 그의 안색은 점점 변하고 죽음 의 때가 성큼성큼 다가오고 있었다.. 그는 힘을 다하 여 기도하기 시작했다.

하나님이시여, 해밀턴 대학의 학생들을 죄에서 구하 여 주시옵소서. 이 기도는 그의 힘이 미약하여 입술 을 움직이는 정도로 약해지고 임종을 맞았다.그런데 이 기도의 결과는 놀랍게도 해밀턴 대학의 학생 거의 전부가 예수를 구주로 믿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결론:성도 여러분 스데반 집사는 기독교 역사상 최 초의 순교자입니다.그는 너무나 담대한 믿음의 사람으 로 유대인들의 불신앙을 지적한 능력의 설교를 한 사 람이기도 합니다.

스데반 집사의 순교는 교회사적인 의미에서 중요 한 의미가 있습니다.예루살렘에서 산헤드린 공회에 의 해서 핍박을 받은 세차례가 됩니다.처음에는 위협으로 끝났고(4:17,21),두번째는 채찍질로 끝났으나(5:40),본문 에는 돌로 쳐죽이는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스데반 집 사의 순교 후에 성도들은 핍박으로 인하여 흩어지기 시작했습니다. 흩어지면서 성도들은 복음을 전파했고, 그 결과 복음이 사마리아와 이방인과 그리고 바울을 통하여 전 세계로 전파되는 출발점이 되었던 것입니 다. 복음의 역사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피에서 시 작하여 그를 믿는 자들의 순교의 피를 따라 강한 능 력으로 전파되며,생명을 살리게 되는 것입니다.

이 시대에 부름받은 우리는 본문을 통하여 볼 때에 너무나 약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성도는 성령이 충만하여 강하고 담대한 믿음이 필요합니다. 한 시람 의 헌신이 이렇게 교회사의 큰 전환점이 될 수 있었 고, 바울이라는 사람을 얻게 되는 초석이 되었다는 것 입니다. 한 알의 밀알이 되어 썩어지면 많은 열매를 얻게 될 것입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