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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창 04:2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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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두가지 제사(예배)(1-7절) 1)가인의 제사(3절) 2)아벨의 제사(4절) 3)가인의 분노(5-6절) 4)하나님의 경계(7절)

2.가인이 아벨을 죽임과 그 결과(8-15절) 1)가인이 아벨을 죽임(8절) 2)회개할 기회에 도리어 반항(9절) 3)가인에게 내려진 벌(10-12절)

3.아벨의 피의 호소(10절)-요12:24

4.가인의 계보(16-24절) 1)가인이 하나님을 떠나 놋 땅에 거함(16절) 2)아들을 낳고 성을 쌓다(17절) 3)가인 후예들의 문명(18-24절)

5.아벨의 계보(25-26절)-셋-에노스-“여호와 이름을 불렀더라”

A.첫번 아들의 이름은 [가인]이었는데 그 뜻은 전에 말씀을 드린 대로 소유라는 뜻을 가진 이름이다 아무리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라 지만 어찌 나의 소유라고 못을 밖을 수가 있나 어찌 내가 낳았다고 내 소유라고 할 수 있겠는가
성경은 자식은 하나님께서 맡기신 기업이라고 말하고 있다. 하와가 내 소유라고 했던 것은 아직 신앙이 깊지 못한 상태의 믿음을 보여줌이다. 믿는다고 말하면서도 자기의 모든 일을 하나님의 은혜로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다.
B.두 번 째 아들의 이름은 아벨이었다. [아벨]이라는 이름의 뜻은 허무였다. 이도 마찬가지다. 어떻게 하나님께서 주셨는데 허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아무리 첫 번째 자식이 자기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고 해서 허무라고 할 수 있는가
C.세 번째 아들은 [셋]이라고 했다. 이는 늦게나마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지은 이름이라 할 수 있다. [셋]이란 이름의 뜻을 무어라고 했는가 두다 자리잡다 지정하다 지명하다의 뜻임을 말한바 있다.
그렇다. [가인]처럼 나의 소유도 아니다. [아벨]처럼 허무도 아니다. 어디가지나 하나님께서 지명하신 아들임을 명심하는 이름을 지었었다.셋도 아들을 [에노스]라 하였으며 그때에 사람들이 비로써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하나님께서 후일을 위하여 지명해 주신 아들인 [셋]도 장가를 들고 아들을 낳았다.
D.네번째로 셋이 아들의 이름을 [에노스]라고 지었다. 이름의 뜻은 인류( mankind ) “사람”이라는 뜻이다.
[아담]이란 이름의 뜻이 무엇인가 역시 사람이란 뜻이다 .[셋]의 아버지 [아담]의 이름이 사람이란 뜻을 가졌는데 또 그 아들인 셋도 자식을 낳아서 사람이란 뜻을 가진 [에노스]란 이름을 지었었다.
비로써 란 말이 있다. 여기에 비로써 란 말은 처음이란 말이다. [셋]이 아들의 이름을 [에노스]라고 이름하였을 그때 처음으로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여호와의 이름이 불렀던 것이다. [셋]의 가정만이 그렇게 불렀던 것이 아니다. 사람들이라고 했다.
1,그 이름을 [셋]이라 하였으니
아담이 다시 아내와 동침하매 그가 아들을 낳아 그 이름을 [셋]이라 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이 내게 [가인]의 죽인 [아벨] 대신에 다른 씨를 주셨다 함이여하와는 세 번째 아들을 낳았다. 그 아들들은 그들에게 사랑의 선물이자 소망의 증거였다.
하와는 세 번째 아들을 낳고 그의 이름을 셋이라고 이름을 지었다. [셋]이란 이름의 뜻은 두다 자리잡다 지정하다 지명하다란 의미를 가지고있다. 우리는 아담과 하와에게 주신 아들들의 이름을 보면서 그 이름을 지은 부모의 신앙을 엿볼 수 있다.
첫번 아들의 이름은 [가인]이었는데 그 뜻은 위에 말씀을 드린 대로 소유라는 뜻을 가진 이름이다 아무리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라 지만 어찌 나의 소유라고 못을 밖을 수가 있나 어찌 내가 낳았다고 내 소유라고 할 수 있겠는가
성경은 자식은 하나님께서 맡기신 기업이라고 말하고 있다. 하와가 내 소유라고 했던 것은 아직 신앙이 깊지 못한 상태의 믿음을 보여줌이다. 믿는다고 말하면서도 자기의 모든 일을 하나님의 은혜로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다.
두 번 째 아들의 이름은 아벨이었다. [아벨]이라는 이름의 뜻은 허무였다. 이도 마찬가지다. 어떻게 하나님께서 주셨는데 허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아무리 첫 번째 자식이 자기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고 해서 허무라고 할 수 있는가
세 번째 아들은 [셋]이라고 했다. 이는 늦게나마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지은 이름이라 할 수 있다. [셋]이란 이름의 뜻을 무어라고 했는가 두다 자리잡다 지정하다 지명하다의 뜻임을 말한바 있다.
그렇다. [가인]처럼 나의 소유도 아니다. [아벨]처럼 허무도 아니다. 어디가지나 하나님께서 지명하신 아들임을 명심하는 이름을 지었었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지명한 지명이다. 메시야를 주시기 위한 지명, 구세주를 주시기 위한 지명, 영생을 위한 지명이다. 아담과 하와는 세 아들만에 깨닫는 역사가 있었다.

2,그 이름을 [에노스]라 하였으며
셋도 아들을 [에노스]라 하였으며 그때에 사람들이 비로써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하나님께서 후일을 위하여 지명해 주신 아들인 [셋]도 장가를 들고 아들을 낳았다. 그리고 아들의 이름을 [에노스]라고 지었다. 이름의 뜻은 인류( mankind ) 사람이 라는 뜻이다.
이 단어는 일반적으로는 개인을 지칭할 때 많이 쓰여지고 있다. 사56;2절에 이같이 행하는 사람은 복이 있느니라 욥10;4절에 주께서 사람의 보는 것처럼 보시리이까 시8;4절에서는 사람이 무엇이 관대 땅의 사람을 말하고 있다.
이만큼 말했으면 뭔가 느껴지는 게 없는가
[아담]이란 이름의 뜻이 무엇인가 역시 사람이란 뜻이다 .[셋]의 아버지 [아담]의 이름이 사람이란 뜻을 가졌는데 또 그 아들인 셋도 자식을 낳아서 사람이란 뜻을 가진 [에노스]란 이름을 지었었다.
왜 그랬을까
당시만 해도 아직 사람이 그리 많지 않았기 때문에 중복되는 이름을 짓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왜 하필이면 사람이란 이름으로 아들의 이름을 지었을까
이는 하나님께서 하와로 하여금 신앙의 본질을 깨닫게 하신 후 지명된 아들을 주셨고 그 지명된 아들 셋은 아들을 낳았을 때 참으로 사람다운 사람이 되고 싶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우리네 말에 이런 말이 있다. 사람이면 다 사람인가 사람이 사람답게 사람 노릇을 해야 사람이 사람이지란 말이 있다.
그렇다, 사람의 가죽만 빌렸다고 다 사람일 수가 없어서 지은 말일 것이다. [셋]도 아들의 이름을 사람이라고 했던 심정을 이해할만하다. 누구든지 예외 없이 사람이 먼저 되어야 한다.
내 어떤 위치에 있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다. 지금 내가 사람이 되어 있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먼저 [에노스] 다운 [에노스]가 되어야 한다.

3,그대에 사람들이 비로써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그때 에란 언젠가 바로 셋이 아들의 이름을 [에노스]라고 지은 그때가 아니가 사람이 참 사람이 되려고 시도했을 그 때 비로써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던 것이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아직 가지도 여호와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않는다. 이는 자기들의 행동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예수를 믿는 사람이 예수 때문에 핍박을 받는 것은 참으로 영광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예수쟁이로 다 알려진 사람이 행실이 잘못되어서 욕을 먹는다면 이는 곧 [여호와] 하나님께 욕을 돌리는 결과가 되는 것이다.
사람이 사람다울 때 비로써 하나님께 영광이 돌려질 수 있는 것이다. 26절을 다시 보시라.
... 그 때에 비로써 사람들이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비로써 란 말이 있다. 여기에 비로써 란 말은 처음이란 말이다. [셋]이 아들의 이름을 [에노스]라고 이름하였을 그때 처음으로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여호와의 이름이 불렀던 것이다. [셋]의 가정만이 그렇게 불렀던 것이 아니다. 사람들이라고 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아담과 하와가 믿음의 부모노릇을 바로 했을 때 지명된 아들을 얻었고 지명된 아들 [셋이] [에노스] 즉 사람이 참 사람이 되고자 했을 그때 처음으로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이 불려지게 되었던 것이다.
하나님께서 오늘 그 많고 많은 사람들 중에 왜 우리를 불렀을까 그 잘난 사람이 많고 많은데 하필이면 나 같은 죄인을 불렀을까 그러기 위하여 하나님의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으셔야 했을까
그것은 사람다운 사람이 되라고 부르신 것이다. 여호와의 이름을 바로 부를 수 있는 사람이 되라고 부르신 것이다. 여러분들 때문에 여러분들의 자녀들이 [여호와]의 이름을 부를 수 있기를 바란다. 여러분들의 자녀들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여호와]의 이름을 부를 수 있기 바란다.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창4:25-26절)
[서론]
A.그 이름을 [셋]이라 하였으니
B.그 이름을 [에노스]라 하였으며
C.그 대에 비로써 사람들이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1,그 이름을 [셋]이라 하였으니
아담이 다시 아내와 동침하매 그가 아들을 낳아 그 이름을 [셋]이라 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이 내게 [가인]의 죽인 [아벨] 대신에 다른 씨를 주셨다 함이여하와는 세 번째 아들을 낳았다. 그 아들들은 그들에게 사랑의 선물이자 소망의 증거였다.
하와는 세 번째 아들을 낳고 그의 이름을 셋이라고 이름을 지었다. [셋]이란 이름의 뜻은 두다 자리잡다 지정하다 지명하다란 의미를 가지고있다. 우리는 아담과 하와에게 주신 아들들의 이름을 보면서 그 이름을 지은 부모의 신앙을 엿볼 수 있다.
첫번 아들의 이름은 [가인]이었는데 그 뜻은 전에 말씀을 드린 대로 소유라는 뜻을 가진 이름이다 아무리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라 지만 어찌 나의 소유라고 못을 밖을 수가 있나 어찌 내가 낳았다고 내 소유라고 할 수 있겠는가
성경은 자식은 하나님께서 맡기신 기업이라고 말하고 있다. 하와가 내 소유라고 했던 것은 아직 신앙이 깊지 못한 상태의 믿음을 보여줌이다. 믿는다고 말하면서도 자기의 모든 일을 하나님의 은혜로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다.
두 번 째 아들의 이름은 아벨이었다. [아벨]이라는 이름의 뜻은 허무였다. 이도 마찬가지다. 어떻게 하나님께서 주셨는데 허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아무리 첫 번째 자식이 자기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고 해서 허무라고 할 수 있는가
세 번째 아들은 [셋]이라고 했다. 이는 늦게나마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지은 이름이라 할 수 있다. [셋]이란 이름의 뜻을 무어라고 했는가 두다 자리잡다 지정하다 지명하다의 뜻임을 말한바 있다.
그렇다. [가인]처럼 나의 소유도 아니다. [아벨]처럼 허무도 아니다. 어디가지나 하나님께서 지명하신 아들임을 명심하는 이름을 지었었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지명한 지명이다. 메시야를 주시기 위한 지명, 구세주를 주시기 위한 지명, 영생을 위한 지명이다. 아담과 하와는 세 아들만에 깨닫는 역사가 있었다.
2,그 이름을 [에노스]라 하였으며
셋도 아들을 [에노스]라 하였으며 그때에 사람들이 비로써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하나님께서 후일을 위하여 지명해 주신 아들인 [셋]도 장가를 들고 아들을 낳았다. 그리고 아들의 이름을 [에노스]라고 지었다. 이름의 뜻은 인류( mankind )라는 뜻이다.
이 단어는 일반적으로는 개인을 지칭할 때 많이 쓰여지고 있다. 사56;2절에 이같이 행하는 사람은 복이 있느니라 욥10;4절에 주께서 사람의 보는 것처럼 보시리이까 시8;4절에서는 사람이 무엇이 관대 땅의 사람을 말하고 있다.
이만큼 말했으면 뭔가 느껴지는 게 없는가
[아담]이란 이름의 뜻이 무엇인가 역시 사람이란 뜻이다 .[셋]의 아버지 [아담]의 이름이 사람이란 뜻을 가졌는데 또 그 아들인 셋도 자식을 낳아서 사람이란 뜻을 가진 [에노스]란 이름을 지었었다.
왜 그랬을까
당시만 해도 아직 사람이 그리 많지 않았기 때문에 중복되는 이름을 짓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왜 하필이면 사람이란 이름으로 아들의 이름을 지었을까
이는 하나님께서 하와로 하여금 신앙의 본질을 깨닫게 하신 후 지명된 아들을 주셨고 그 지명된 아들 셋은 아들을 낳았을 때 참으로 사람다운 사람이 되고 싶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우리네 말에 이런 말이 있다. 사람이면 다 사람인가 사람이 사람답게 사람 노릇을 해야 사람이 사람이지란 말이 있다.
그렇다, 사람의 가죽만 빌렸다고 다 사람일 수가 없어서 지은 말일 것이다. [셋]도 아들의 이름을 사람이라고 했던 심정을 이해할만하다. 누구든지 예외 없이 사람이 먼저 되어야 한다.
내 어떤 위치에 있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다. 지금 내가 사람이 되어 있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먼저 [에노스] 다운 [에노스]가 되어야 한다.

3,그대에 사람들이 비로써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그때 에란 언젠가 바로 셋이 아들의 이름을 [에노스]라고 지은 그때가 아니가 사람이 참 사람이 되려고 시도했을 그 때 비로써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던 것이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아직 가지도 여호와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않는다. 이는 자기들의 행동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예수를 믿는 사람이 예수 때문에 핍박을 받는 것은 참으로 영광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예수쟁이로 다 알려진 사람이 행실이 잘못되어서 욕을 먹는다면 이는 곧 [여호와] 하나님께 욕을 돌리는 결과가 되는 것이다.
사람이 사람다울 때 비로써 하나님께 영광이 돌려질 수 있는 것이다. 26절을 다시 보시라.
... 그 때에 비로써 사람들이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비로써 란 말이 있다. 여기에 비로써 란 말은 처음이란 말이다. [셋]이 아들의 이름을 [에노스]라고 이름하였을 그때 처음으로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여호와의 이름이 불렀던 것이다. [셋]의 가정만이 그렇게 불렀던 것이 아니다. 사람들이라고 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아담과 하와가 믿음의 부모노릇을 바로 했을 때 지명된 아들을 얻었고 지명된 아들 [셋이] [에노스] 즉 사람이 참 사람이 되고자 했을 그때 처음으로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이 불려지게 되었던 것이다.
하나님께서 오늘 그 많고 많은 사람들 중에 왜 우리를 불렀을까 그 잘난 사람이 많고 많은데 하필이면 나 같은 죄인을 불렀을까 그러기 위하여 하나님의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으셔야 했을까
그것은 사람다운 사람이 되라고 부르신 것이다. 여호와의 이름을 바로 부를 수 있는 사람이 되라고 부르신 것이다. 여러분들 때문에 여러분들의 자녀들이 [여호와]의 이름을 부를 수 있기를 바란다. 여러분들의 자녀들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여호와]의 이름을 부를 수 있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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