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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헌신의 단계 (창 22: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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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조상이라고 일컫는 아브라함의 전 생애는 하나님 앞에 자신을 온 전히 헌신한 생애였다고 생각됩니다. 그가 처음 하나님을 알고 믿게 되었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너는 네가 살고있는 땅과, 네가 난 곳과, 너의 아버지의 집을 떠나서 내가 네게 지시하는 땅으로 가라.'(창 12:1)고 명하셨습니다. 이 것은 헛된 우상숭배 신앙을 버리고 여호와 하나님 신앙을 가지라는 명령이었 는데 이 때에 아브라함은 즉각 순종하여 따랐습니다.

사람이 무슨 종교나 신앙을 가졌던지 간에 선뜻 그것을 버리고 종교를 바 꾼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헛된 미신과 우상종교 를 즉각 포기하였습니다. 이 이방종교는 그의 집안 대대로 믿어 온 것이고 그 때 그의 아버지 데라는 우상을 만드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러 나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버릴 것을 버리고 떠날 곳을 떠났습니 다. 그는 많은 어려움과 핍박이 있었지만 하나님의 뜻을 따르기 위하여 우상 과 헛된 신앙을 버렸습니다. 그러기 위하여 아브라함은 정든 고향을 떠나야 했으며으며 일가 친척간에 관계마저도 다 끊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이것은 오직 하나님께 자신을 드리기 위한 생각 하나로 모든 것을 버린 훌륭한 용단 이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헌신하는 첫번째 단계는 버릴 것을 버리는데서 시작됩니 다. 버릴 것을 버리고 떠날 곳을 떠나지 않으면 헌신이 될 수 없습니다. 사도 바울도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쫓는 옛 사람을 벗 어 버리라.'(엡 4:22)고 하셨습니다. 우리도 아브라함처럼 헌신적인 믿음의 사 람이 되려면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버려야 할 것입니다. 그럴 때에 헌신 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헌신은 버릴 것을 과감히 버리고 하나님 의 말씀에 순종할 수 있을 때에 가능합니다. 인간의 죄악된 소원과 의지보다 하나님의 명령을 따를 때에 가능한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처음으로 대면하여 알게 된 여호와 하나님'을 따라가게 된 경위를 성서는 '이제 아브라함이 여호와의 말씀을 좇아 갔고 그의 조카 롯도 함께 갔다.'(창 12:4)고 기록하고 있읍니다. 이처럼 순종하여 따를 때에 믿는 자가 되고, 포기 할 것을 포기할 때 헌신이 가능합니다. 이 때부터 아브라함 에게는 전에 느끼지도, 알지도 못했던 은총과 인도하심과 축복이 있게 되었 습니다. 그것은 그 때부터 전능하신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함께 계셨기 때문 입니다.

그 후부터 아브라함은 그가 어디를 가던지 단을 쌓았습니다(창 12:7-8).

'단을 쌓았다'는 것은 어떤 상황 속에서나 하나님을 믿었다는 말이고 그가 하나님을 믿고 있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하여 예배를 드렸다는 말입니다. '단 을 쌓는다'는 것은 예배입니다. 그런데 그는 어디를 가던지, 언제든지, 누구와 함께 있던지, 아무리 바빠도, 아무리 피곤해도, 아무리 시급한 때라도..... 그 런 것을 핑계하지 아니하고 언제나 단을 쌓는 사람이었습니다. 예배는 나의 시 간과 나의 정성을 하나님께 드리는 헌신의 행위입니다. 아브라함 때는 실제 적 제물을 단에 드렸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시간과 정성을 제물로 하나님께 드립니다. 그것은 나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는 실제적 예배행위입니다. 성서는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제사로 드려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이니라.'(롬 12:1)고 했습니다.

여러분 보십시오! '영적예배'라고 하면서 우리의 '몸'을 드리라고 하였습 니다. 몸은 안와도 마음만 드리면 않됩니까 영적이란 것은 마음이요 정신의 문제인데, 성서는 우리의 구체적인 몸을 산제물로 드리라고 말합니다. 그것이 곧 예배입니다. 우리는 보이지 않는 영적인 일을 보이는 일로 구체화할 때 그것을 헌신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내 몸을 실제로 드리는 행위입니다. 아브 라함은 어디를 가던지 단을 쌓음으로써 하나님과의 관계를 지속하고 유지해 나갔습니다.

예배는 하나님과의 교제요, 대화요, 축복의 길이요, 또한 나를 드리는 헌신 과 봉헌의 길입니다. 그래서 성도들은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과 교제하고 사 귀게 됩니다. 그런데 만일 이 예배가 중단되면 하나님과의 관계도 끊어지고 말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의 사람 아브라함은 어디를 가던지 단을 쌓은 것입 니다. 이것이 헌신의 [두번째 단계]입니다. 첫단계가 버릴 것을 버리는 것이 라면 헌신의 두번째 단계는 드릴 것을 드리는 것입니다. 우리의 시간과 마음 과 정성과 몸과 물질을 하나님께 드릴 때 그것이 헌신이 되는 것입니다. 그 러면 이렇게 헌신의 두번째 단계에 이른 아브라함의 생활은 어떠했습니까 세상에서 사람들이 겪어야하는 시련과 고통과 시험과 환란이 여전히 그에 게도있었습니다. 신앙생활을 잘하고 예배 잘드리고 헌신적인 삶을 산다고 해 서 시험과 환란이 없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환경과 상황은 달라진 것이 없었 습니다. 그러나 다른 것이 무엇일까요 시험 환란을 당해도 신앙이 있기때문 에 신앙이 없었던 때와는 달랐습니다. 시험을 두려워 하지 않았고 환란으로 낙심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시험과 모든 환란을 능히 이길 수 있는 힘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 모든 것은 예배를 받으신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중에 도우시는 손길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어떤 때는 포기하는 방법으로, 어떤 때는 지혜로, 어떤 때는 피할 수 있는 통로를 열어 주심으로 하나님께서는 그가 택한 사람을 항상 지키고 보호하셨습니다. 성서는 '하나님이 너를 실족 지 않게 하시고 너를 지키시는 자가 졸지 아니하시리로다.'(시 121:3)고 말씀 하십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당했던 시련과 환란을 통해서 그를 축복하여 주셨는데 '아브라함에게 육축과 은금이 풍부하였더라.'(창 13:2)고 하였고 그는 마침내 거부가 되었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당신에게 헌 신하는 사람을 이렇게 돌보아 주십니다. 여러분 모두 헌신하심으로 시험 환란 이기시고 아브라함처럼 '육축과 은금이 가득한' 축복을 받으시기를 바 랍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것만 가지고는 부족하다고 여기셔서 아브라함을 다시 더 높은 헌신의 자리로 이끌어 가셨습니다. 그것은 자기 조카 롯과의 관계에서 발생된 일입니다. 이들이 하나님께 받은 축복이 너무 많아서 서로 간에 어려운 일이 생겼습니다.

'그들의 소유가 너무 많아서 동거할 수가 없었다'고 하였고 아브라함의 가 축의 목자와 롯의 가축의 목자가 서로 다투고 치고 받고 싸웠습니다. 이것은 복을 너무 많이 받아 오게 된 시험이었습니다. 이것은 서로 양보하지 않아 오게 된 시험이었습니다. 이것은 더 높은 헌신의 생활을 할줄 몰라서 오게 된 시험이었습니다.

아무리 큰 복을 받았더라도 헌신하고자 하는 마음과 정신이 없으면 어리 석은 자가 되고 시험 받는 자가 됩니다. 물질은, 없으면 없는대로 시험이 오 고 있으면 있는대로 시험이 옵니다. 그러나 있던지 없던지, 많이 가졌던지 적 게 가졌던지 희생과 양보와 헌신의 정신만 있으면 문제가 없을 것입니다. 이 때에 아브라함은 롯을 부르면서 '우리는 한 골육이 아니냐 네 앞에 온 땅이 있으니 나를 떠나거라!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 라.'(창 13:8-9)고 하면서 아브라함은 조카에게 모든 것을 양보하였읍니다. 이 것은 물질상 막대한 희생을 감수하였다는 말입니다.

헌신의 셋째 단계는 양보입니다. 타인을 위하여 희생을 감수하는 것이고 손해를 달게 받는 것입니다. 헌신의 첫번째 단계는 포기요, 둘째 단계는 봉헌 이요, 셋째 단계는 양보입니다. 조카때문에 물질상 큰 손해를 본 아브라함은 담담했습니다. 인간적으로는 서운했겠지만 영적으로는 오히려 풍요와 만족과 감사와 찬송이 우러나왔습니다.

이 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찾아 오셔서 '아브라함아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동서남북을 바라 보아라! 네가 눈으로 보는 모든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라!'(창 13:16) '그리고 너는 일어나 그 넓고 끝없는 땅을 종과 횡으로 행하여 보라! 그것을 네게 주리라.'(창 13:17) 이것은 그가 롯에 게 양보한 것보다 몇 백배, 몇 천배 더 많은 엄청난 땅이요 재산이었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이때도 즉시 거기서 여호와 하나님 앞에 단을 쌓고 감사 예배를 드렸습니다.

여러분이 세상에서 사는동안 선한 마음으로 남에게 양보한 것, 인간과 인 간사이에 평화를 이루기 위하여 손해본 것, 그것은 높은 차원의 헌신입니다.

그것은 결코 손해가되지 않습니다. 그것은 큰 축복으로 우리에게 되돌아 올 것입니다. 높은 헌신에는 높은 차원의 축복이 따르게 됩니다.

이 한해에도 하나님의 축복 가운데서 여러분의 눈으로 보는 것, 여러분이 종과 횡으로 거닐며 발로 밟는 것, 그 모든것을 다 얻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다만 높은 차원의 헌신의 삶을 사는 이들에게 이 축복이 허락될 것입니다.

이제 헌신의 마지막 단계는 무엇이겠습니까 내가 예수를 믿기로 작정하 여 버릴 것을 버리고 세례를 받았다. 신앙생활에 어긋나는 말과 행위들을 다 버리기로 했다. 그러면 훌륭한 성도가 된 것입니다. 그러나 그 이후부터 우리 는 교회에 열심히 나오고 모든 예배와 기도회와 속회와 은혜받는 자리에 빠 짐없이 나와야 됩니다. 출장중이나 해외여행 중에라도 제단을 쌓아야 합니다.

시간과 정성과 몸과 마음을 하나님께 드려야 됩니다. 그만하면 훌륭한 교인 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우리는 신앙을 생활에 적용해야 합니다. 내가 믿는 도리를 사람과 사람사이에 실천하는 자가 되야 합니다. 내가 신자이기때문에 손해보고 부득 이 양보해야만 하는 일, 가지려는 자에게 주고 더 주는 일, 싸움과 분쟁을 해 결하기 위해서 내 마음을 비우고 물러서는 일....... 그러한 헌신이 있어야 한 다 고 성경은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것은 대단히 높은 헌신입니다. 그러면 그 만 큼만 했으면 됐지 또 무엇을 하라는 것입니까 그런데 우리가 본 바와 같이 아브라함은 이보다 한단계 더 높은 헌신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것은 그의 사랑하는 외아들 독자 이삭을 하나 님께 제물로 드리는 일이었습니다. 아브라함에게는 독자 이삭이 그의 유일한 희망이요 위로였습니다. 그뿐아니라 아삭은 하나님의 약속가운데 얻은 아들 이요 불가능한데서 믿음으로 낳은 아들이 아닙니까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번제로 드려라'(창 22:2)고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번제가 무엇입 니까 그것은 죽이는 것입니다. 양을 잡아 각을 떠서 잡듯이 흉칙하게 잡으 라는 것이요 그것을 누구에게 시켜서 하는것이 아니고 아브라함 자신이 칼을 들고 하라는 말입니다. 도대체 이런 일이 어떻게 가능하며 도데체 하나님께 서 이런 명령을 왜 아브라함에게 내리십니까 하나님은 두 얼굴을 가지신 신 입니까 하나님은 모든 것을 주시고 도로 빼앗아 가시는 분이신가요 사랑하 시고 축복하시고 약속하셨으면서도 갑자기 이삭을 번제물로 드리라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이런 것을 생각할 때에 아마 아브라함이 지금까지 믿어 온 믿음이 송두리채 파괴되여 버리는 것처럼 느꼈을 것입니다. 이런 시험을 감 당할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헌신 헌신 하지만 이 마지막 단계 의 헌신은 아무도 할 수가 없습니다. 어떻게 아들을 양처럼 잡아 번제물로 드릴 수 있습니까 그런데 아브라함은 그 일 마저도 순종하였습니다. 그는 '아침 일찍 일어 나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주저하지 않고 신속하게 그 일을 단행하였다고 했 으며 번제에 쓸 나무와 불과 칼과 끈을 가지고...' 모든 것을 신중하고 정확 하게 준비했다고 성서는 말하고 있읍니다. 그는 사환들에게 '너희는 나귀와 함께 여기서 기다리라'고 지시했습니다. 아들을 번제물로 드릴 때 종들때문 에 방해를받거나 저지 당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읍니다. 아브라함은 단단 히 마음을 먹고 치밀하게 계획을 세우고 이를 실행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사 실 미친 사람이 아니고서야 어떻게 그런 일을 할 수 있습니까 그러나 그는 하나님께 그토록 순종했습니다.

하나님은 왜 그런 끔찍한 명령을 내리십니까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다.'(롬 4:17)고 했고 '저가 하나님이 능히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했다.'(롬 4:18)고 하였습니다. 그의 믿음 은, 하나님은 죽은자도 다시 살려 내신다고 믿었기 때문에 그 일을 순종하며 단행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참된 헌신은 참으로 하나님을 믿을 때 가 능합니다.

버려야 될 것을 버리는 결단, 바쳐야 할 것을 바치는 헌신, 손해가 되어도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양보하는 일..... 그런 정도는 우리 믿는 성도들이 성령의 도우심으로 어느 정도는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마지막 단 계의 헌신은 아무도 할 수가 없습니다. 어떻게 이 일을 합니까 그러나 아브 라함은 믿음으로 했습니다. 그의 믿음이란 것은 '하나님은 능히 죽은 자 가 운데서라도 살리실 줄 아는 믿음'이었습니다. 그래서 이삭은 '죽은 자 가운 데서 도로 받은 자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성경의 결론은 무엇입니까 '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그를 불러 가라사대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하시는지라 아브라함이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사자가 가로되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아무 일도 그 에게 하지 말라.'(창 22:11)고 하나님은 그 일을 급히 중지 시키셨습니다. 우 리는 여기에서 하나님의 의도가 어디에 계셨었는지를 비로소 알 수 있습니 다. 하나님은 절대 '두얼굴을 가지신 분'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 은 혜 긍휼은 변함이 없으셨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영원불변하십니다. 아마도 아브라함은 이 때 긴 한숨을 내쉬었을 것입니다. 아마도 웬만한 사람같으면 '하나님 그러면 왜 저더러 그런 일을 하라고 하셨습니까 저를 놀리신 것입 니까' 라고 물었을지도 모릅니다. 여러분! 만일 하나님이 이삭을 정말 제물 로 받으셨다면 우리가 과연 그 하나님을 믿을 수 있을까요 그런데 아브라함뿐 아니라 우리에게도 시험은 너무 자주 일어납니다. 이 고비를 넘기고 이젠 괜찮으려니......하면 또 다른 시험이 닥쳐옵니다. 우리 의 생은 여러가지 시험들의 연속입니다. 도대체 우리는 몇 단계의 시험을 통과 해야 합니까 도대체 우리는 언제까지 시험을 받아야 하며 언제 모든 시험이 끝날까요 그것은 아무도 모릅니다. 다만 시험들을 이기는 믿음이 꼭 필요합 니다.

그런데 누구도 할 수 없는 마지막 시험의 관문을 통과한 사람은 아브라함 뿐입니다. 그래서 그를 믿음의 조상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도 '네가 네 아들, 네 독자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 나님을 경외 하는 줄을 아노라'(12이하)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보면 사실은 이삭을 바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다 바치려고 했습니다.

동기로 보면 바친 것이나 다름이 없고 결과로 보면 바치지 않았습니다. 역시 하나님은 인간의 동기를 보십니다. 그 뜻과 생각과 마음을 살펴보십니다. 그 리고 모든 일들의 결과는 하나님께서 선하게 이루어 주십니다. 모든 일이 협 력하여 선하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뜻은 선하신 뜻이지 악한 뜻이라고는 조 금도 없으십니다. 하나님은 이삭을 제물로 받으시려고 한 것이 아니고 아브 라함이 얼마나 헌신적인 사람인가 하는 것을 보셨을 뿐입니다. 우리는 하나 님 앞에 얼마나 헌신적이었습니까 그런데 여러분 정말로 자기의 아들을 제물로 주신 분이 계신데 그 분이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아브라함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이 어려운 일을 몸소 하셨습니다. 정말 하나님이야 말로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않으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 주셨습니다.' 그러니까 가장 큰 희생과 헌신은 아브라함 이 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사실은 하나님께서 하셨습니다. 이삭은 번제물이 되려다가 그만 두었지만 예수님은 실제로 십자가에 희생제물이 되셨습니다.

마지막 만찬에서 주님께서는 떡을 떼어 주시면서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니라.' 잔을 따라 주시면서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 다.'(눅 22:19-)라고 하셨습니다. 그는 떡처럼 찢어지시고 잔처럼 물과 피를 흘리심으로 인류를 죄에서 구원하신 대속제물이 되셨습니다. 그러므로 진정 한 헌신은 우리가 한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하셨습 니다. 그의 죽으심은 최고의 헌신이셨습니다.

그의 희생과 그의 헌신에 비하면 오늘 우리가 조금 희생하고 더러 헌신한 다는 것은 아주 초보적인 것들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 뜻을 깨달아야 되겠습 니다. 우리가 헌신적인 삶을 살면 살수록 하나님과 가까와 지는 것이고 하나 님의 뜻을 이루는 사람들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나를 드리는 거룩한 현 신의 삶을 사는 우리 모두가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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