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하나님과 동행하는 에녹 (창 05:21-24)

첨부 1


인류의 조상 아담은 930년을 살다가 죽었습니다. 그 아담의 7대 손인 에녹은 아담이 622살 될 때에 출생을 했고, 에녹은 365세에 하늘로 승천하여 갔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에녹은 308년 동안을 아 담과 함께 살았고 아담이 죽은지 57년후에 승천한 것으로 되어 있 고 창세후 987년이 되는 때 입니다. 이러한 의미로서 아담이 지은 죄악의 부패가 얼마나 빨리 물들었는가를 교훈해 주고 있습니다.

1세기가 되기 전에 심판을 받을만큼 죄악이 관영했으니 죄로 타 락된 인간의 본질이 얼마나 무서운가를 보여주는 현상입니다. 그러 면 어느 정도로 부패했는가를 두가지 면에서 성경은 증명하고 있 습니다.

에녹의 동시대 사람인 라멕의 경우에 있어서 두 가지로 에녹의 자손들은 종교적, 신앙적인 면에서 노력한 것을 살펴 볼 수가 있습 니다. 창4장26절에 셋도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에노스라 하였으 며, 그 때에 사람들이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고 했습니 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가인의 후손들은 문명을 발전시키면서 성적 으로, 물질적으로 만족을 찾으려 했고, 세상 향락에 만족을 찾으려 했으며, 권세와 권력과 힘으로 만족을 찾으려 했던 흔적을 찾게 됩 니다. 그래서 창6장5-7절에서 처럼 죄악이 세상에 관영하므로, 하 나님께서 만물을 지으심을 한탄하기까지 했습니다.

반면에 신앙에 의존한 백성들은 구속 신앙과 소망속에 살고 있음 을 찾아 보느데, 셋을 주심은 아벨 대신 주시는 그리스도의 형상이 요 부활입니다. 에녹은 성도의 휴거의 상징이요, 노아의 홍수는 이 세상 심판의 징조로서 보여준 것입니다.

이토록 세상 문명은 죄를 더 악하게 음란하게 가중시킬뿐으로서 문명이 발전할수록 죄악은 관영하는 것이요, 이런 때 일수록 신앙 의 사람들은 에녹같은 신앙의 깊은 강도를 보여 주어야 할 것입니 다.

오늘 우리의 현실을 볼지라도 전혀 죄에 대한 두려운 생각이 점 점 마비감 되어가고 있으머, 세상 종말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소망이 우리의 감정과 의지와 생활속에서 멀어저만 가고 있으 머, 신앙이 형식화 되어가고, 생명력이 사라지고 있는 때이니만큼 에녹의 신앙이 더욱 그리워지는 때인줄로 아는 것입니다.

죄악의 두려움보다는 하나님의 사랑이 덜 강조가 되므로 죄악에 대한 두려움과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사라지고, 하나님은 용서 하고 용납하리라는 나태한 심령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주님의 심판 을 의식하고, 하늘을 소망하여 주님을 맞을 영적 준비보다는 현실 에 어려운 문제를 신앙안에서 해결 받고 축복받는 면에 치중하다보 니 말세라는 말은 형식이요, 하늘나라보다도 이 세상 낙에 도취되 어 심령들이 점점 세속화 되어가는 신앙의 부패의 시대를 살고 있 는것 같습니다.

이러한 우리의 입장에서 에녹의 신앙을 본받아 신아의 본질을 되 찾고 우리의 참 목표가 무엇인가를 다시 한번 살펴 봄으로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1. 하나님과 동행합시다.

어떻게 하는것이 동행하는 생활입니까 암3장3절에 두 사람이 의합치 못하고야 어찌 동행하겠으며라고 힝는데 이것이 기본적인 것입니다. 하나님과 동행한다는 사실은 하 나님과 의합하는데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성경은 어떻게 해 석을 하고 있습니까1) 창17장1절에...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셔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 라고 했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과 동행하고 살아가던 생활의 모습인 것입니다. 하나님과 동행한다는 것은 우리 성도들이 하루 24시간의 시간마다, 분, 초마다 하나님앞에서 살아가고 있음을 말 합니다. 사람을 의식하고 사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을 의식하고 살 것을 말씀합니다. 그럼,로 사람을 위주한 신앙은 인본주의 신앙이 고, 하나님을 의식하고 하나님 앞에서 사는 신앙은 신본주의 신앙 인 것입니다.

성경에서 사울왕은 사람 위주로 살았고, 다윗은 하나님을 위주로 살았습니다. 그가 회개할 때도 시51편4절에서 내가 주께만 범죄하 여 주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사오니 주께서 말씀하실 때에 의로우시 다 하고 판단하실 때에 순전하시다 하리이다라고 했습니다.

행5장에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하나님을 속이고 사람앞에서 인본 적으로 살아온 사람이요, 바라바는 하나님앞에서 신본적으로 산 사 람입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앞에서 행함같이 에녹은 하나님앞에 살았던 사람입니다. 우리가 오직 하나님앞에서 사는것이 바로 하나 님과 동행하는 것입니다.

2) 창6장9절에 ...노아는 의인이요, 당세에 완전한 자라, 그가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라고 한 이 노아의 동행은 창6장8절에 노 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고한 말씀에서 그 중심이 있는 것 입니다.

은혜속에 사는 사람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입니다. 은혜속에 서 하나님과 동행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내 육신의 생 각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인도를 따라 사는 것이요, 내 뜻 을 따라 사는 것이 아니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사는 석입니다.

내 중심의 유익을 따라 사는 것이 아니라, 내 중심에 그리스도를 모시고 예수 따라 사는 생활인 것입니다. 베드로도 말로는 주를 위 해 산다고 했으나 어려운 상황에 부딪칠 때는 주님을 버렸던 생활, 이것은 하나님과 동행이 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나를 따라 오려거든 네 십자가를 지고 나를 쫑지 아니하면 내게 합당치 아니하리라고 하심과 같습니다. 베드로가 성령과 말씀과 예수님 포로가 될때 그는 하나님과 동행했과, 십자가에서 거꾸로 죽을수 있었던 것입니다.

3) 엡5장1절에 그러므로 사랑을 입은 자녀같이 너희는 하나님 을 본받는 자가 되고라고 합니다.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하나님과 동행하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본받는 생활은 무엇입니 까 하나님의 행위가 보이지 않는 이 시대에 무엇이 표준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까 신13장4절에서 해답을 주고 있는 것입니다.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순종하며 그를 경외하며 그 명령 을 지키며 그 목소리를 청조하며 그를 섬기며 그에게 부종하고라 고 합니다. 순종하고 경외하고 명령을 지키고, 목소리를 청종하고, 그를 섬기고, 그에게 복종하라의 이 6가지 사실을 말합니다. 이것 이 본받는 길이요, 하나님과 동행하는 길인데, 이 말씀을 한마디로 말하면, [하나님께 말씀으로 순종하는길]이 바로 하나님과 동행하 는 길입니다.

성도들이요! 아무리 어려워도 하나님과 동행합시다. 찬송가 366 장에 [어지러운 세상중에 기쁜소리 들리네 예수 말씀하시기를 믿는 자여 따르라 세상 헛된 신과 영화 모두 내어 버렸네 예수 친히 하 신 말씀 날 더 귀히 여겨라 기쁜 때나 틈날때 예수 친히 하신말씀 날 더 귀히 여겨라 주여 크신 은혜로써 부름 듣게 하시며, 복종하 는 맘을 주사 따라가게 합소서]라고 합니다.

 2. 하나님을 기쁘시게 합시다.

어떻게 하는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까 히11장6절에 믿음이없이는 기쁘시게 못 하나니라고 합니다. 믿음을 가져야 하 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것입니다. 어떤 믿음을 가져야 합니까1) 현실적인 신앙을 가집시다.

히11장1-7절에 신앙의 위인들을 기록할때 아벨,에녹,노아를 들 고 있는데 이 세사람의 신앙적 성격을 보면 재미있는 모습을 발견 합니다. 아벨의 신앙은 4절에서 ...저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써 오히려 말하느니라고 했는데 이것은 과거의 사실을 오늘에 교훈 하고자 하는 성격을 찾아볼수 있고, 노아는 7절에서 믿음으로노아 는 아직 보지 못하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예 비하여 그 집을 구원하였으니...라고 했습니다. 앞으로 될 200년 후의일에 대한 믿음을 오늘에 교훈하는 미래지향적 교훈이고 에녹 은 6절에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 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자들에게 상주시 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고 합니다. 에녹의 신앙은 지금 하나님 과 함께하고 있는 현실적인 신앙인 것입니다. 신앙은 지금이 중요 합니다. 과거가 무슨 소용이 있고,앞으로가 무슨 필요가 있습니 까 지금이 중요한 것입니다.

성도들이여! 지금 이 시간에 여러분의 심령에 확신있는 믿음과 이제라도 주님을 위하여 우리의 전부를 드릴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는 여러분이 되어야 합니다 [내일일은 난 몰라요 하루하루 살아요 불행이나 요행함도 내 뜻 대로 못해요 험한 이길 가고가도 끝은 없고 곤해요 주님 예수 팔 내미사 내 손 잡아 주소서 내일일은 난 몰라요 장래 일도 몰라요 아버지여 날붙드사 평탄한길 주옵소서] 오늘 이 시간 이 자리에서 주님을 전적으로 믿는 이 신앙을 하나 님이 기뻐하십니다.

2) 증거하는 신앙을 가집시다.

유다서 1장14-15절에 아담의 칠세손 에녹이 사람들에게 대하여 도 예언하여 이르되 보라 주께서 그 수만의 기록한 자와 함께 임하 셨나니 이는 뭇 사람을 심판하사 모든 경건치 않은자의 경건치 않 게 행한 모든 경건치 않은 일과 또 경건치 않은 죄인의 주께 거스 려한 모든 강퍅한 말을 인하여 저희를 정죄하려 하심이라 하였느니 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은 주의 재림과 하나님의 심판을 증거하는 신앙입니다.

3) 변함이 없는 신앙입니다.

창5장24절에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 심으로 세상에 있지 아니 하였더라고 합니다. 365세에 세상을 떠 나 하늘에 올랐으니 65년 동안은 어떻게 됐을까요 65세에 므두셀 라를 낳았다고 했으니 홀로 있을 때는 더 잘 믿었을 것인데 결혼한 이후의 300년을 강조한 것은 성경에 자녀를 낳으며 그가 365세를 향수하였더라고 하는데 그 말씀의 중심 뜻이 있습니다. 결혼하여 자녀를 낳으면서 세상고초 다 격으면서도 하나님과 동행했다는데 그 의미가 있습니다. 300년동안 생활에 대해서, 자녀 교육에 대해 서, 경제문제에 대해서 고통스러운때, 괴로운때, 어려운때, 안타까 운 경우가 있어도 그는 하나님과 동행하고 신아에 변함이 없었으니 그 신앙이 얼마나 위대합니까 한 사람의 성도가 일년을 살아갈때 도 신앙에 얼마나 변화가 많이 일어 납니까 이것이 세상이 아닙니 까 그러나 300년동안 하나님과 동행하는 일에 변함도없이 지내다 가 하나님께서 그를 데려가셨으니 데려가심 그 자체가 하나님의 기 뻐하는 종이라는 표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신앙은 변함이 없어 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 신앙이라야 하나님을 기쁘시게하는 신앙입 니다.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 라(히11:6)]고 한 이런 신앙이 바로 하나님을 기쁘시게하는 신앙인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현재의 신앙, 증거 하는 신앙, 변함이 없는 신앙이 됩시다.

[결 론] 현대에는 그 누구가 에녹이 될 것입니까 하나님과 동행하여 하 나님을 기쁨시게 해드리는 성도가 됩시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