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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을 바로 알아감(2) (요 1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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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지난 시간에 왜 하나님을 알아가야 하는지, 그 이유와 중요성 가운데 한 가지를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을 찬미하며 사는 것이 인생의 본분이요, 그 본분을 다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알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고, 우리에게 어떠한 은혜를 베푸셨는지를 알아야 찬미할 수 잇습니다. 오늘도 하나님을 알아가야 하는 이유, 두 가지를 생각하도록 하겠습니다.
첫째, 새 생명을 얻기 위해서 하나님을 알아가야 합니다(요17장 3절, 벧후1장 3절).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으니 이는...우리를 부르신 자를 앎으로 말미암음이라!”(벧후1:3)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되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을 알게 하시므로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을 人格的인 관계 속에서 아는 것이 살아있다는 증거입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는 영적으로 죽어있는 것이요, 하나님을 아는 자가 영적으로 살아난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요한복음 17장 3절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요17:3)
따라서 아직 영적으로 죽어있는 사람이 새 생명을 얻기 위해서는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고는 새 생명을 얻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인생을 어떻게 지으셨는데 인생들이 어떻게 해서 하나님을 떠나 죽게 되었는지, 그리고 하나님께서 영적으로 죽어있는 인생들을 살려내시기 위해서 어떠한 조치를 취하셨는지,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아 이땅에 오셔서 인생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어떤 일을 하셨는지를 들어서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자기의 것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단순히 역사적으로 그러한 일이 있었다는 정도로 지적으로만 수납하는 것이 아니라, ‘과연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그렇게 하셨구나!’하고 자기의 사실로 받아야 합니다. 자기와의 관계속에서 받아들일 때 그 지식이 생명에 이르게 하는 지식입니다. 이렇게 새 생명을 얻기 위해서는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알아야 합니다.
둘째, 자라가면서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가기 위해서 하나님을 알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새 생명을 얻어서 신생한 사람이 자라가기 위해서도 하나님을 알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을 알아가야 하나님의 성품을 닮은 사람으로 자라갈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미 ‘ 새 생명의 장성’의 도리를 생각하면서 ‘장성의 목표’와 ‘그 목표에 이르는 방법’이 무엇인가를 생각한 일이 있습니다. 다시 한번 상기해 보시기 바랍니다.

1. 장성의 목표(에베소서 4장 13절,15절)
장성의 목표는 두 가지 점에서 생각할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하나님의 자녀들이 자라야 할 목표는 ‘그리스도적인 품성’을 全人的으로 갖추어 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전체적으로는 그리스도의 몸으로 세워져 가는 것입니다. 머리이신 그리스도의 명령에 의해서 움직이는 몸으로 자라가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그리스도의 통치를 받아서 살아가는 거룩한 사회가 되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개인적으로는 그리스도적인 품성을 全人的으로 갖추어 가야 하는 것이요, 전체적으로는 그리스도의 다스림을 받아서 살아가는 사회가 되어가야 합니다. 그것이 장성의 목표입니다.
(1). 그리스도적 품성을 全人的으로 갖추어 가는 것이 개인적인 장성의 목표입니다.
우리 개개인들은 全人的으로 자라가야 한다고 했는데, 어떠한 사람으로 자라가야 하는 것일까요 그리스도적인 품격을 갖춘 사람으로 자라가야 합니다. 우리의 지(知), 정(情), 의(意)의 全人格이 그리스도적인 품격을 갖추어 가야 합니다. 엡4:13절과 15절, 그리고 롬8:29절에서도 그 점을 분명하게 말씀하고 잇습니다.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데까지 이르리니”(엡4:13)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찌니라!”(엡4:15)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롬8:29)
우리는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데까지 자라가야 합니다.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라야 합니다.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해서 우리를 미리 정하시고 부르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본받아 그리스도적인 품성을 갖추어 가도록 하기 위해서 우리를 예정하시고 부르신 것입니다.
베드로 사도도 벧후1:3절에서 생명과 경건에 필요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다고 하면서, 그렇게 하신 이유를 4절 하반절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자가 되게 하려는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자가 되게 하시려고 새 생명을 주셨고, 경건에 필요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경건에 필요한 모든 것이란, 새 생명이 자라는데 필요한 모든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1) 신앙 장성의 정도는 풍성의 발휘를 보아서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비록 하나님의 자녀로 태어났을찌라도 아직 미숙한 자녀는 그리스도적인 품성이 잘 발휘되지 않습니다. 아직 미숙한 하나님의 자녀들은 그리스도적인 품성이 거의 발휘되지 않습니다. 사단의 자식이었을 때에 하던 짓을 합니다. 옛 사람의 품성을 벗어버리지 못하고 그대로 들어냅니다. 그러나 장성한 사람일수록 그리스도적인 품성을 잘 드러냅니다.
2) 장성하여 갈수록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새 사람을 입어 갑니다.
그래서 엡4:13-16절에 장성에 대한 말씀을 하고 있는 말씀과 근접한 엡4:22-24절에서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새 사람을 입으라!”고 했습니다. 이러한 바울 사도의 가르침 속에 깔려있는 교훈은, 장성하여 갈수록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새 사람을 입어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아닌 사람들은 옛 사람으로서만 유일하게 살아갑니다. 그러나 하나님 백성들은 새 생명을 받아서 거기에 전혀 다른 하나의 人格的인 발휘가 가능하게 됩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자녀로 태어난 사람이라고 해서 모두 똑같은 정도로 새 생명을 발휘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태어난 사람이라고 할찌라도 장성하지 못한 자는 새 생명의 발휘를 그 만큼 저조하게 나타내는 것입니다. 장성해 가면서 새 사람으로서 생명의 발휘가 활발하고 뚜렷하여 가는 것입니다. 새 사람이 되는 것은 단번에 되는 것이지만, 그러나 그것으로 그가 완전하게 새 사람이 되어버린 것은 아닙니다. 여전히 그에게도 옛 사람적인, 육체적인 모습과 생활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계속 옛 사람을 벗어 버리라고 하는 것이고, 새 사람을 입으라고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새로 지으심을 받은 사람이라면, 단지 기독교라는 종교 하나를 취하고 있다는 정도의 생활을 하면서 옛 사람의 생활과 사고를 가지고 생활하여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여전히 옛 사람을 살아가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새 사람이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으로 자라가야 하는 것일까요 바울 사도는 디도에게 보낸 편지에서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나 우리를 양육하시되 어떤 모습으로 자라가게 하시는지 구체적으로 몇 가지 말씀하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나 우리를 양육하시되 경건치 않는 것과 이 세상 전욕을 다 버리고 근신함과 의로움과 경건함으로 이 세상에 살고, 복스러운 소망과 우리의 크신 하나님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심을 기다리게 하셨으니”(딛2:11-13)
경건치 않는것과 이 세상 정욕을 버리게 하십니다. 이 세상에서 살되 근신함과 의로움과 경건함으로 살도록 양육하십니다. 그리고 궁국적으로는 이 세상에 소망을 두지 않고 장차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심을 소망하며 살도록 양육하십니다. 따라서 장성해 갈수록 그 사람의 인품이 됨됨이가 경건치 않은 것과 이 세상 정욕을 버리게 되고, 근신하며 의롭고 경건한 삶을 살게 됩니다. 그리고 이 세상에 궁극적인 소망을 두지 아니하고, 주님의 영관에 참예하게 될 날을 소망이 더욱 뚜렷해져 갑니다.
(2) 그리스도의 다스림을 받아서 살아가는 사회를 이루어 가는 것이 전체적인 장성의 목표입니다(에베소서 4장 16절, 1장 9절-16절)
전체적으로는 그리스도의 다스리심을 받아서 살아가는 사회를 이루어 가는 것이 장성의 목표입니다. 개개인이 그리스도의 품성을 갖추어 가면서 전체적으로는 그리스도의 몸 하나를 세워가는 것입니다. 엡4:14절 말씀에 보면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몸으로 자라가는 것입니다. 머리이신 그리스도의 다스림을 받아서 살아가는 사회로 세워져 가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가 엡1:9-10절에서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들을 예정하신 것은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롬8:29절에서는 개인적인 차원에서 그리스도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해서 예정하셨다고 말씀하고 있으며, 엡1:10절에서는 전체적인 차원에서 그리스도의 다스림을 받는 사회를 이루기 위해서 예정하셨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개인적으로는 그리스도적인 품성을 全人的으로 갖추어 가는 사람으로 자라가야 하는 것이요, 전체적으로는 그리스도의 다스림을 받아서 살아가는 사회를 이루는 교회로 세워져가야 하는 것입니다. 구속받은 백성들이 모여서 그리스도의 다스림을 받아서 살아가는 통일된 하나의 사회를 이루어 가야 합니다.
◎ 교회가 장성한 정도는 얼마나 그리스도의 다스림을 받아 살아가는 통일된 사회의 성격을 뚜렷이 가지고 있느냐 하는 것으로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한 교회의 장성한 정도는 얼마나 그리스도의 다스림을 잘 받아서 살아가는 통일된 사회의 성격을 뚜렷이 가지고 있느냐 하는 것으로 알 수 있습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다스림을 잘 받아가고, 성도들 상호 간에 그리스도적인 품성을 서로 주고 받는 사회의 모습이 뚜렷하여 가는 쪽으로 자라가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거룩하신 뜻에 의해서 움직여지는 교회가 장성한 교회입니다.
그렇지 않고 사람이 주장하고, 사람의 생각이나 뜻에 의해서 움직이는 교회라면 엄밀한 의미에서는 교회라고 할 수 없고, 교회라고 할지라도 장성하지 못하고 미숙한 교회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목회자와 온 성도들이 한결같이 그리스도의 뜻을 받들어 움직이는 교회라야 장성한 교회라고 할 수 있습니다.

2. 장성의 목표에 이르는 방법
그렇다면 어떻게 장성의 목표에 이를 수 있을까요 어떻게 개개인이 그리스도의 품성을 구비하여 갈 수 있고, 전체적으로는 그리스도의 통치를 받아 사는 사회를 이루어 갈 수 있을까요

1.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가므로 가능합니다(엡3:14, 벧후1:3,8).
그리스도적인 품성을 갖추어 가거나 신의 성품에 참예하기 위해서는 그리스도를 알아가야 하고 하나님을 알아가야 합니다. 그분을 알아 갈수록 그분의 성품에 참예하고, 그분의 품성을 갖추어 갈 수 있습니다.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데까지 이르리니”(엡4:13)
하나님의 아들의 형상을 본받고, 그리스도적인 품성을 갖추어 가지 위해서는 그리스도를 알아야 합니다. 그리스도를 人格的으로 알아갈 때에 그분의 거룩하신 품성들을 본받아 가게 되고 품게 되는 것입니다. 全人的으로 그리스도적인 품성을 갖추어 가게 됩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골1:10절에서도 “하나님을 아는 것에 자라게 해주시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를 앎으로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찌어다! 그의 신기한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필요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으니, 이는 자기의 영광과 덕으로써 우리를 부르신 자를 앎으로 말미암이라! 이로써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으니”
여기 베드로후서 1장에 있는 말씀을 전체적으로 정리해보면, 하나님을 알아가므로 하나님의 성품에 참예하는 자가 되게 하려고 생명과 경건에 필요한 모든 것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人格的으로 알아갈 수록 하나님의 성품에 참예하게 됩니다. 벧후3:18절에서도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라”고 했습니다

2. 자기를 부인하고 그리스도의 뜻을 분별하여 순복하므로 가능합니다.
전체적으로는 그리스도의 뜻에 의해서 통일성을 가지고 움직이는 사회로 장성하여 가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렇게 장성하여 가지 위해서는 두 가지 알아 할 점이 있습니다.1) 자기 부인이 전제 되어야 합니다
자기가 부인 되어야 그리스도의 디스림을 받아 순복하는 사회로 세워져 갈 수 있습니다. 목회자와 먼저 믿는 성도들부터 자기가 부인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나중에 교회에 가담하는 교우들도 자기가 부인된 자세로 교회를 이루는 법을 터득하고 익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목회자나 먼저 믿는 성도들이 자꾸 자기 주장을 내세워 교회를 끌고갈려고 한다면, 나중에 참여하는 교우들도 역시 교회라고 하는 곳은 자기 주장이 강한 사람들에 의해서 움직여지는 사회이구나! 하는 생각을 갖게 되고, 너나 할것 없이 자기 주장을 내세워 교회를 끌어갈려고 할 것입니다. 그렇게 될 때에 그리스도의 다스림을 받는 교회로서의 성격이 형성되지를 않는 것입니다. 누가 되었든지 교회의 구성원들은 주장하는 자세를 버려야 합니다. 그리하여 성도들 모두가 그리스도의 주장하심과 다스리심과 인도하심을 따르겠다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이렇게 성도들 모두가 자기를 부인하고 오직 그리스도의 다스림을 받아서 순복하겠다는 자세가 전제 되어야지만 그리스도의 다스림을 받아서 살아가는 사회로 세워져 갈 수 있고, 자라갈 수 있는 것입니다.
2) 그리스도의 뜻을 더욱 분별하여 가야 합니다.
이렇게 자기가 부인되어 그리스도의 다스림을 받아서 나아가겠다는 자세가 전제되었으면, 이제 그리스도의 뜻을 더욱 분별하여 가야 합니다. 그러한 기본적인 자세가 갖추어진 교회라고 할지라도, 그 교회가 얼마나 그리스도의 뜻을 분별하는냐 하는 정도에 따라서 그리스도께 순복하는 통일된 사회로서의 성격이 그만큼만 나타나는 것입니다. 따라서 자기를 부인하고 그리스도의 다스림을 받겠다는 기본적인 자세를 갖추고서, 계속해서 그리스도의 뜻을 분별하는 일에 자라가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뜻을 분별하는 능력은 교회적으로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을 교우들 모두가 함께 받아서 깨달아갈 때 생겨지는 것입니다.
따라서 장성한 교회일수록 그리스도의 다스림을 잘 받아서 진행하여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뜻이 무엇인가를 걔닫는 것입니다. 교회에 통용되는 원리나 질서나 정서나 정신이나 문화가 이 세상의 것과는 다르게 형성되어 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 교회를 향한 시대적 사명에 대한 자각이 서 가는 것입니다. 교회가 장성하여 갈수록 하나님 나라적인 질서들이 더욱 뚜렷하여 가는 것이고, 하나님 나라를 선양하기 위한 구체적이고 시대적인 사명에 대한 자각이 뚜렷하여지고 감당할 힘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맺는말
이렇게 교회적으로는 그리스도의 다스림을 잘 받아 하나님 나라적인 질서들이 더욱 뚜렷하여 가고, 시대적인 사명에 대한 자각과 능력을 갖추는 쪽으로 자라가야 합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도 그리스도적인 품성을 全人的으로 갖추어 가면서 그리스도의 거룩한 품성을 발휘하여 서로 주고 받는 아름다운 사회를 이루어가는 사람으로 장성하여 가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고, 어떻게 다스려 가시는지, 하나님의 성품과 통치에 대해서 알아가야 합니다. 하나님과 하나님이 경영에 대해서 알지 못하고는 하나님을 닮아갈 수 없고, 하나님께서 다스리시는 거룩한 교회로 자라갈 수 없습니다.
담임교역자 라황용
전북 김제 송상교회 /☏(0658) 542-53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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