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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을 바로 알아감(4) (민 13:25-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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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지금 하나님에 대한 바른 지식이 빈곤하게 될 때에 어떠한 결과를 초래하게 되는지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습니다. 지난 시간(2월 5일)에는 시내산 아래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금송아지를 만들어 놓고서 하나님이라며 섬겼던 사건을 통해서 신지식의 빈곤이 가져오는 결과 한 가지를 생각했습니다. 명의만 하나님을 믿는다 하면서 실상은 우상숭배하게 된다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실상은 애굽의 아피스 신개념을 가지고서 이름만 하나님이라고 섬겼던 것입니다. 그들의 신개념은 이방 종교적 신개념을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그들이 애굽의 신(神) 아피스를 그대로 섬기려고 한 것은 아니지만, 바른 신지식(神知識)이 빈곤하였기에 결국은 아피스를 섬기게 되었던 것입니다.
오늘날에 있어서도 하나님에 대한 바른 지식을 갖지 못하고, 과거에 자기가 생각해 왔던 이방신 개념을 벗어나지 못한다면 이름만 하나님이라고 하면서 실상은 우상숭배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바르게 믿고 섬기려면, 과거에 생각해 왔던 이방 신 개념에서 벗어나서 믿음의 대상이신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바르게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구원해 내시고 숫한 기적적인 사건과 말씀(율법)을 통해서 하나님 자신이 어떤 분이신가를 계시해 주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바르게 믿고 섬기려면 우선 하나님에 대한 바른 지식이 있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기적적인 사건들이나 율법을 통해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배우려는데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저 기적을 통해서 돌아오는 혜택을 누리는데만 관심이 있었고, 율법을 문건으로만 받았던 것입니다. 그 결과 그들은 하나님에 대한 바른 지식이 빈곤하게 되었고, 결국 애굽에서 보고 배운 이방신 개념의 테두리에서 아피스 신상을 만들어 놓고서 하나님이라며 섬겼던 것입니다.
이러한 역사적인 사실을 통해서 우리는 귀중한 교훈을 얻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할 때에 가장 힘써야 할 부분 중의 하나는 ‘하나님을 알아가는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자꾸 알아가야 합니다. 그래서 바른 신관이 뚜렷하게 서야지만 하나님을 바로 믿고 섬길 수 있습니다. 명의만 하나님을 섬긴다면서 실상은 우상숭배하는 자리에 빠지지 않을려면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자꾸 알아가야 합니다.
오늘도 신지식(神知識)이 빈곤하게 되면 그릇된 인생관을 초래하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신지식(神知識)의 빈곤은 그릇된 인생관을 초래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바르게 알지 못하면 사람이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며, 어떠한 존재이며, 왜 이땅에 존재하는지, 인생의 존재의의나 목적, 나아가야 할 방향을 바르게 파악할 수 없습니다. 이 땅에 인생을 내신 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을 떠나서는 왜 하나님께서 나를 이땅에 보내셨고, 당신의 자녀로 구속해 주셨는지 알 길이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인생을 불러 가시는 분도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을 떠나서는 어디를 향하여 가는지를 알 수 없습니다. 인생의 목적이나 방향에 대해서 알고 바른 인생관을 가지고서 살아갈려면 인생을 이땅에 내신 하나님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어떠한 목적으로 인생들을 이땅에 지으셨는지, 특히 타락한 후에 우리를 구원해 내신 것은 어떠한 큰 역사를 지어가시려는 것인지 하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한 인생관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경륜을 알아야지만 생기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어떠한 경륜과 목적을 가지시고 나를 불러내셨는지를 알아야지만, 하나님 나라의 전체 경륜 속에서 내가 감당해야 할 시대적인 사명에 대한 각성이 명백하게 서는 것입니다. 내가 한 평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하는 인생관은 나를 이땅에 내시고 구속하신 하나님과 하나님의 경륜에 대한 지식에서부터 뚜렷하게 바로 서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하나님의 경륜에 대한 지식이 빈곤하기 때문에 인생관도 빈약하거나 그릇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결국 하나님께서 나를 이땅에 내시고 구속하신 본의에서는 멀리 떨어져서 하나님 나라의 경륜의 전체 행진 가운데서 별 의미나 가치를 발휘하지 못하고 쓸모없이 인생을 낭비하고 마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자기의 인생을 낭비하지 않고 가장 가치있게 살아가는 것이 되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왜 나를 이땅에 내셨고 구속하여 내셨는지 하나님의 의중을 잘 알고, 하나님의 나라가 지금 어떠한 모습으로 진행되어 가소 있으며 지금 내가 어느 시점에 서 있으며 특별히 어는 부분을 담당하고 나가야 하겠는지, 그리고 그 부분을 담당하고 나가기 위해서 나의 남은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하는 인식이 뚜렷할때에 바른 인생관을 가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바른 인생관을 가지고 하나님께서 자기를 이땅에 보내시고 구속하신 본의에 합당하게 자기를 드리고 나아갈 때에 자기의 인생을 쓸데없이 낭비하거나 허송세월하지 않고 가장 가치있게 발휘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에 대한 지식이 있어야지만 자기의 인생을 낭비하지 않고 가장 가치있게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빈곤하게 되면 자기 인생의 의미나 목적을 바로 알 수 없고, 결국 나름대로는 열심히 산다고 하면서도 실상은 인생을 낭비하는 일이 발생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난 시간에(1월셋째주-2월첫째주) 이어서 출애굽 1세대들이 신지식의 빈곤으로 인하여 어떠한 결과를 가져 왔는지 한 가지를 더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릇된 인생관을 갖게 되어 하나님 나라의 진행에 아무런 가치를 발휘하지 못하고 쓸데없이 인생을 낭비하고 말았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모습은 출애굽 2세대들에게서도 그대로 재현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제 출애굽 1세대들과 2세대들이 신지식(神知識)의 빈곤으로 인하여 그릇된 인생관의 지배를 받으며 자기들의 인생을 낭비하고 말았던 역사적 사실을 통해서 교훈을 얻고자 합니다.
첫째, 38년 동안 광야에서 배회하다 죽은 출애굽 1세대들(민14장)
 사명의 땅으로 들어가기를 포기하기까지의 과정
(1) 가나안을 향한 행진의 의미
이스라엘의 가안땅을 향한 행진은 거룩한 전쟁을 위한 행진이었던 것입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반신국적이며 죄악으로 관영한 일곱족속을 몰아내고 거기에 거룩한 신정국을 건설하는 사명을 위한 행진이었던 것입니다.
(2) 사명보다는 자신의 풍요로움을 누리려는데만 마음이 사로잡힘(민11:4-6)
그러나 출애굽 1세대들은 거룩한 사명의식 보다는 풍요로운 삶을 누리려는데만 마음이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애굽에 있을 때에는 값없이 생선과 외와 수박과 부추와 파와 마늘들을 먹었는데, 이 광야에서는 마나 외에는 보이는 것이 없어 정력이 쇠하게 되었다며 원망을 했습니다(민11:4-6). 그들이 이렇게 과일이나 반찬이 없다며 음식 타박을 하는 모습속에서, 그들의 마음이 어디에 사로잡혀 있는가를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 나라 건설이라는 거룩한 사명 보다는 풍요한 삶을 누리려는데만 마음이 가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3) 사명의 땅으로 들어가기를 포기함(민13:25-14:10)
요단강 건너편에 신정국 건설이라는 사명을 위해서 들어가야 할 역속의 땅 가나안이 보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요단강을 건너서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정복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정탐군을 보내어서 가나안 땅의 형편을 살펴보고 오겠다며 허락해 주시기를 구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요청을 허락하셨습니다. 이스라엘 열 두 지파에서 각각 한 사람씩 열 두명이 정탐을 갔다가 돌아와서 이스라엘 회중 앞에서 보고를 했습니다. 열명의 정탐군이 보고하기를 “그 땅에 거하는 백성들은 강하고 성읍은 견고하고, 우리는 그들에 비하면 메뚜기 같고, 그들은 신장이 장대하고 거인들이었다!”고 했습니다. 그 보고를 듣고 있던 갈렙이 “능히 이기리라”면서 곧 올라가서 그 땅을 취하자고 했지만, 열 명의 정탐군은 계속해서 “그들과의 싸움은 게임이 안된다!”고 강변(强辯:강제로 하는 주장-이론에 맞지 않는 것을 도리가 있는 것처럼 굳이 변명함)하였습니다.
이스라엘 온 회중은 열명의 정탐군의 말을 신뢰하고 소리를 높여 부르짖으며 밤새도록 통곡을 했습니다. 그들은 모세를 원망하며 차라리 애굽에서 죽었거나 이 과야에서 죽었더면 좋았을 것을 어찌하여 여호와가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칼에 망하게 하려 하는지 모르겠다며 원망했습니다. “우리의 처자가 사로잡히리니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이 낫지 않겠느냐!”면서 한 장관을 세우고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그들은 자신의 처자의 신변안전을 위해서 가나안 정복이라는 시대적인 사명 감당하기를 포기하고 애굽으로 돌아가려고 하였던 것입니다.
그러한 모습을 보고있던 여호수아와 갈렙이 온 회중 앞에서 옷을 찢으며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에 반드시 이길터이니 그들을 두려워 마라!”고 외쳤지만, 온 회중이 그들의 말을 듣지 않고 오히려 돌로 치려고 하였습니다. 이러한 모습 속에서 출애굽 1세대들의 신관이나 인생관이 어느 정도였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4) 38년 동안 인생을 낭비하고 죽음(민14:11-38)
하나님께서는 출애굽 1세대들의 이러한 모습을 보시고, “이 백성이 어느 때까지 나를 멸시하겠느냐!”고 하시면서 그들을 ‘전염병’으로 쳐서 멸하시겠다고 그들의 죄를 죄를 사하셔서 전염병으로 치지는 않으시고,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고(14:30) 광야에서 40년 동안 유리하면서 소멸되어 죽게 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33-35). 그들은 ‘전염병’으로 쳐셔서 그 자리에서 멸하시지는 않으시고 제 수명대로 살려두셨지만, 그 이후의 그들의 생애는 소모되는 것일뿐 하나님 나라의 역사에 아무런 가치를 발휘하지 못한다는 말씀입니다. 이렇게 해서 출애굽시 20세 이상되었던 1세대들은 광야 40년 동안 인생을 낭비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부정적인 보고를 하여 온 회중으로 모세를 원망케 했던 열명의 정탐군들은 하나님 앞에서 재앙으로 죽었습니다.
사명의 땅으로 들어가기를 포기하고, 38년 동안 광야에서 인생을 낭비하게 되었던 이유
그 원인을 우리는 여호수아와 갈렙의 말에 대해서 회중이 취했던 태도와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서 하신 말씀에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이 회중 앞에서 외쳤던 내용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에 가나안 족속들을 두려워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회중들은 일제히 이 두 사람을 돌로 치려고 하였습니다. 이런 태도에서 출애굽 1세대들에게는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빈약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들에게 하나님에 대한 바른 지식이 있었더라면 그렇게까지 하나님을 거역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도 모세를 통해서 하신 말씀에서 그점을 지적하셨습니다.
“이 백성이 어느 때까지 나를 멸시하겠느냐 내가 그들 중에 모든 이적을 행한 것도 생각하지 아니하고 어느 때까지 나를 믿지 않겠느냐”(11절)
“나의 영광과 애굽과 광야에서 행한 나의 이적을 보고도 이같이 열번이나 나를 시험하고 내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한 그 사람들은”(절)
그들의 빈곤한 신지식(神知識)은 그들의 인생관을 그릇되게 했습니다. 한걸음 더 나아가서 그들의 인생관이 그릇되니까 그들의 인생은 하나님 나라의 진행에 아무런 가치를 발휘하지 못하고 낭비되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이렇게 신지식의 빈곤은 그릇된 인생관을 초래하게 되고, 결국은 인생을 낭비하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오늘 우리는 이러한 사실을 뼈아픈 교훈으로 삼아야 하겠습니다.
 두 종류의 인생관
출애굽 1세대들의 인생관이 어떠했으며, 여호수아와 갈렙의 인생관은 어떠했는지 생각해 보겠습니다.

1. 무신론적 인생관을 보여주는 출애굽 1세대들
한마디로 그들은 ‘자신들이 왜, 어디로 가는 것이냐에 대한 명확한 의식(意識)이 큰 사상으로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1) 자기들이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 것인지를 알지 못했습니다.
“...우리가 애굽 땅에서 죽었거나 이 광야에서 죽었더면 좋았을 것을 어찌하여 여호와가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칼에 망하게 하려 하는고...”(14:2)
그들은 과거에 하나님께서 어떠한 자리에서 자기들을 구원해 주셨으며, 장차 어디로 인도하여 가시겠다고 하셨는지에 대한 의식(意識)이 뚜렷하게 서 있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장차 어디로, 어떠한 목적을 위해서 인도하시겠다고 하셨는지에 대해서 알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디인지 그들을 데리고 가시면서 무슨 일을 하시려고 그들을 이렇게 보존하신다는 것을 생각지 않았습니다.
과거에 하나님께서 인도해 오신 것을 보아서 지금 그들이 직면한 현실적인 어려움 앞에서도 하나님께서 어떻게 인도하시겠는가를 추찰(推察:미루어 생각하여 살핌)해야 할 것을 하지 못하고, 현실적인 어려움만을 보고서 원망을 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2) 자기들이 왜 구원받았으며, 왜 존재하는지 그 목적을 알지 못했습니다.
“우리 처자가 사로잡히리니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이 낫지 아니하랴!”(14:3하)
자기들은 이제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원주민들을 몰아내고 거기에 거룩한 하나님 나라의 문화를 지어가야 할 사명을 위해서 구원받은 것이요, 존재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습니다. 자신들이 하나님 나라의 전체 진행 가운데서 지금 시대적인 사명으로 감당해야 할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의식(意識)이 전혀 없었습니다.
구속받은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서 존재의 의의나 목적이 뚜렷하게 서 있지 않고, 그저 자신과 가족의 생존과 신변안전에만 마음이 가 있었습니다. 이러한 출애굽 1세대들의 인생관은 무신론자들이 가지고 있는 인생관과 다를바 없는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경영해 가시는 전체 역사에는 전혀 관심이 없고, 그저 자기 한 목숨을 위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한 인생관은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없는 이방인들의 세계에서나 볼 수 있는 인생관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러한 인생관을 가지고 있었다는 데서 오늘 우리에게 경작심을 갖게 합니다. 우리는 이러한 역사를 통해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있어서도 신지식(神知識)이 빈곤하면 인생관이 빈약하고 왜곡되어서 결국은 인생을 낭비하게 된다는 귀중한 교훈을 얻습니다.

2. 참된 인생관을 보여주는 여호수아와 갈렙의 인생관
우리는 여호수아와 갈렙 이 두사람의 인생관을 통해서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마땅히 갖아야 할 인생관의 전형을 보게 됩니다.
(1) 그들은 하나님께서 왜, 어디로 인도하여 가시는지를 알았습니다.
“우리가 두루 다니며 탐지한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이라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14:7-8)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인도해 오신 손길을 보면서 장차 어떻게 인도하시겠는가를 정상적으로 추찰(推察:미루어 생각하여 살핌)할 만한 신지식(神知識)이 그들에게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한 신지식에 근거해서 추찰(推察:미루어 생각하여 살핌)한 결과 하나님께서 어디서 인도하셔서 어디로 인도해 가는지를 뚜렷이 바라 볼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 결과 자신들이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구속받은 자로서의 인생관이 뚜렷이 섰던 것입니다.
(2) 그들은 시대적인 사명에 대한 자각이 뚜렷했습니다.
“오직 여호와를 거역하지 말라 또 그 땅 백성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 밥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14:9)
그들은 하나님 나라의 거룩한 사명을 위해서 존재한다는 자각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가나안에 들어가서 일곱족속을 정복하는 것이 그들의 시대적인 사명이라는 사실도 자각하고 있었습니다. 그 사명을 위해서 나아가면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생존을 보장하셔서 감당하게 하시고, 그결과로서 그 땅을 기업으로 주셔서 누리게 하실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던 것입니다. 자신이 어떠한 목적을 위해서 구원받았으며, 존재의 의의가 무엇인지를 뚜렷이 인식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두 사람은 바른 신지식에 근거한 추찰(推察:미루어 생각하여 살핌)을 통해서 바르고 뚜렷한 인생관을 가지고 있었기에 다른 모든 회중들과는 달리 그들의 인생을 낭비하지 않고 하나님 나라의 진행에 큰 가치를 발휘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있어서도 바른 신지식이 있어야 하고, 그 신지식에 근거한 추찰(推察:미루어 생각하여 살핌)을 통해서 바른 인생관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지만 우리의 인생을 나 자신만을 위해서 낭비하지 않고, 하나님 나라의 거룩한 사명을 위해서 가치를 발휘할 수 있습니다.
둘째, 물 없다며 원망하고 반찬타박했던 출애굽 2세대들(민20-21장)
그런데 출애굽 2세대들도 역시 1세대과 다를바 없었습니다. 출애굽 1세대들은 하나님 나라의 사명에는 전혀 마음을 기울이지 않고 자기 자신과 가족의 신변안전만을 염려하면서 광야에서 40년 동안 소멸되어 갔고, 그 어간에 2세대들이 태어나고 자라났습니다. 모세의 누림 미리암이나(민20:1), 형님 아론이(민20:29) 세상을 떠나간 것을 보면 출애굽 당시 20세 이상되었던 1세대들은 거의 떠나가고, 2세대들로 세대교체를 하게 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2세대들의 상태는 어떠했습니까 그들도 1세대들과 다를 바 없었습니다. 그들도 역시 자기들이 왜 구원받았으며, 어디를 향하여 가는 인생인지를 바르게 알지 못했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사명에 대한 자각이 없이 자기들의 생존이나 무엇을 먹으며 무엇을 마실까만을 염려하면서 인생을 낭비하였습니다.
“회중이 물이 없으므로 모여서 모세와 아론을 공박하니라 백성이 모세와 다투어 말하여 가로되 우리 형제들이 여호와 앞에서 죽을 때에 우리도 죽었더면 좋을뻔 하였도다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의 총회를 이 광야로 인도하여 올려서 우리와 우리 짐승으로 다 여기서 죽게하느냐 너희가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나오게 하여 이 악한 곳으로 인도하였느냐 이곳에는 파종할 곳이 없고 무화과도 없고 포도도 없고 석류도 없고 마실 물도 없도가”(20:2-5)
“백성이 하나님과 모세를 향하여 원망하되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올려서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는고 이곳에는 식물도 없고 물도 없도다 우리 마음이 이 박한식물을 싫어 하노라 하매”(21:5)
맺는말
이렇게 이스라엘 백성들은 신지식의 빈곤으로 인하여, 명의만 하나님을 섬긴다 하면서 실상은 우상을 섬겼을 뿐만 아니라, 그릇된 인생관도 초래하였습니다. 신지식의 빈곤은 하나님을 바로 섬기지 못하게 할 뿐만 아니라, 인생의 목적이나 존재에 대한 파악을 그릇되게 하고, 결국 자기의 생존만을 염려하며 인생을 낭비하게 합니다. 그러나 신지식은 바른 인생관을 갖게 하고, 하나님 나라의 진행에 유조(有助:도움이 있음)한 인생으로 살아가게 합니다. 쓸데없이 인생을 낭비하지 않고, 가치있게 살아가게 합니다. 자기 한 목숨의 생존만을 염려하면서 인생을 낭비하지 않고,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먼저 구하면서 가치를 발휘하며 살아가게 합니다.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더! 이를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죽었다가 다시 살으셨으니 곧 죽은 자와 산자의 주가 되려 하심이니라!”(롬14:7-9)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니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니라!”(마6:31-33)
담임교역자 라황용
전북 김제 송상교회 /☏(0658) 542-53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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