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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쓸모 없던 존재가 소중한 인생이 되어 (시 118:14-25, 고전 15:1-11, 요 20:1-18)

첨부 1


가족 중에 폐암 말기 환자가 있었다고 합시다. 거의 죽어가는 형편에 놓여 있어서 다시 살 가망이 없기 때문에, 식구들은 맘 졸이며 안타까워 할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의사가 말하기를 ‘환자가 다시 살 수 있는 가능성이 생겼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 의사 말대로, 환자는 다시 회복되어서 건강한 생활을 하게 되었다고 합시다.
이처럼, 살 가망이 없어 삶을 포기했던 사람이 다시 건강을 회복했다면, 그 가족들의 기쁨도 말할 수 없거니와, 본인도 정말 무한한 기쁨을 가지고 새로운 자세와 각오로 인생을 다시 살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이 그런 감격과 기쁨 속에서 인생을 다시 살게 되었노라고 고백한 일이 있습니다. 그가 무슨 죽을병에 걸렸다가 다시 살아나게 되어 그렇게 고백한 것이 아닙니다. 육신의 죽음이 아닌 영혼의 죽음에서 벗어났기 때문에, 그는 그토록 기뻐했던 것입니다. 물론, 그가 예수를 영접하기 전에는, 자신이 그런 죽음의 길로 빠져가고 있는 줄을 전혀 모르고 있었습니다.
『오늘의 내가 있게 된 것은 오직 하나님의 자비와 은혜 덕분입니다(9)』라고, 바울은 고린도전서 15장에서 고백했습니다. 바울은 도무지 주의 사도라고 불릴 수 없었던 입장이었는데, 순전히 하나님의 큰 은혜로 인하여 영광스럽게도 사도라 불릴 수 있는 자격을 얻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사실 예수님 입장에서 볼 때에, 바울만큼 더 지독한 원수는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원수 같은 바울이 예수님의 가장 훌륭한 사도로 탈바꿈하게 된 것은, 그야말로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요 기적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 은혜가 헛되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다른 어떤 사도들보다 더 열심히 일했노라고 말했습니다.
중고등 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KBS-TV의 ‘도전, 골든 벨’이라는 퀴즈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100명의 학생들이 출연하여 도전하게 되는데, 모두 50문제를 풀면 골든 벨을 차지하게 됩니다. 20문제정도 풀 때쯤이면, 많은 학생들이 탈락합니다. 그때에, 패자 부활의 기회가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패자 부활전에는 세 분 선생님들이 나와서 학생들을 구원하게 됩니다. 탈락했던 학생들은 세 분 선생님 중에서 한 분의 뒤를 따라가야 합니다. 그러면, 세 분 중에서 한 분만 살아남게 되는데, 그 선생님을 선택한 학생들은 부활해서 문제를 다시 풀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집니다. 물론, 자신이 따르던 선생님이 탈락하면, 그 따르던 학생들도 완전히 탈락하게 마련입니다.
바울이 예수를 만나지 못했더라면, 그는 영원히 구원받지 못하고 멸망에 처했을 것입니다. 어쩌면, 기독교 역사에 있어서 가장 흉악한 적(敵) 그리스도로 기록될 뻔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은혜로 주님을 알게 되었고, 주의 사도가 되는 영광까지 누리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기독교인들로부터 예수님 다음으로 존경받는 인물이 된 것입니다.
이처럼, 기독교를 박해하던 바울이 복음을 전하는 사도가 된 것처럼, 이 세상에서 아무 쓸모가 없거나 해롭기만 하던 존재가 변하여 새사람이 되는 역사가, 예수님의 부활 이후에 헤아릴 수 없이 일어나게 되었던 것입니다. 베드로를 비롯한 예수님의 제자들도, 사실은 예수님의 부활 사건 이후에 진정한 제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이런 변화를 가리켜서, 시편 기자는 다음과 같이 노래했습니다. ‘집 짓는 이가 쓸모 없다고 버린 돌이, 그 어떤 돌보다 소중하고 값진 돌이 되었다(118:22)’고. 그러면서, ‘하나님께서 이루시는 이런 일들은 그저 놀랍고 엄청날 뿐이다’라고 했습니다.
새로운 천년의 첫 번째로 맞이하는 이 부활절 아침에, 우리는 지금까지 어떤 변화의 과정을 겪었는지 살펴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부활하신 예수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정말 쓸모 있고 값진 인생이 되었는지, 아니면 여전히 예수 믿기 이전과 똑같은, 그 성품과 그 성격을 그대로 갖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자기 자신을 돌아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은 지 아무리 오래 되었다 할지라도, 부활의 진리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으면, 믿음을 오래 가진 햇수가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부활 신앙이 확고하지 않으면 주님을 위해 헌신하는 일도 없을 것이며,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힘쓰는 일도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말하기를 『굳게 서서 흔들리지 말고 주님의 일에 항상 힘쓰도록 하라』고 하면서, 『부활은 분명히 이루어지며 주님을 위해 일하는 것이 결코 헛되지 않다는 것을 기억하라(고전15:58)』고 했습니다. 결국, 부활 신앙이 있어야 주님 예수를 위해서 일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부활 신앙을 제대로 갖지 못할 경우에는

1.바른 인생을 살 수 없습니다.
소망교회 곽선희 목사님이 이런 말씀을 한 적이 있습니다.
서울대학교 모 단과대학 학장으로 계시는 분이 위암으로 거의 죽게 되었다고 합니다. 사회적으로 참 유능하고 지성적인 분인데, 유감스럽게도 예수를 믿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 부인은 교회 집사였습니다.
임종시간은 다가오는데, 남편이 벌여놓은 일들을 어떻게 수습해야 할지, 죽어가는 남편에게 어떻게 대하여야 할지 난처한 지경에 빠졌습니다. 그래서, 곽 목사님을 찾아뵙고 ‘유서를 쓰고 유언을 하라’는 말을 좀 해달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그래서, 목사님이 단독으로 만나서 권면을 했습니다.
“아무래도 당신은 며칠 못 살 것 같습니다. 이제 유언을 해야 되겠습니다”라고, 정중하고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는 “내가 왜 죽어”하고 버럭 화를 내더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몇 시간 후에 죽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그가 비록 서울대 교수였지만, 유언하기를 거부했던 것을 보아, 그는 죽을 준비를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바울이 말한 대로라면, 그는 부활 진리를 믿지 않았던 사람이기에 올바른 인생을 살았다고 할 수 없습니다. 엄연히 죽어가고 있는 데도 불구하고, 그 죽음을 부인한 것을 보면, 그는 하나님의 심판을 믿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런 사람뿐만 아니라, 기독교 신앙을 가지고 있는 분들 중에서도
①부활 신앙이 굳건하지 못하여, 죽음의 준비를 하지 않고 사는 이들이 있습니다.
요한복음 20장의 말씀을 보면,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께서 부활하셨을 때까지도 주의 부활을 믿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요한 사도는 20장 8절에서, 『그때까지도 그들은, 그분이 다시 살아나실 것이라고 말한 성경 말씀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그들은 스승 예수를 배반하고 도망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죽은 이후에 부활이 있다는 사실을 믿었더라면, 그처럼 신의 없이 배반하는 짓은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처럼, 부활 신앙이 없으면,
②올바른 인생을 살기가 어렵습니다.
더군다나, 부활 신앙 없이 주의 뜻을 이루어 산다고 하는 것은 거의 기대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살고자 할 때에는, 자신의 것을 아낌없이 희생해야 할 뿐만 아니라, 때로는 목숨까지도 담보 잡혀야 할 때가 많기 때문입니다.
내세와 부활을 믿는다면, 이 세상 것에 대한 집착을 버려야 합니다. 이 땅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않으면, 결코 하나님 보시기에 올바른 인생을 살 수 없습니다.
시118:14 말씀에, 하나님은 올바르게 사는 자에게 힘이 되어 주신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바르게 살고자 하는 자와 함께 하십니다. 바르게 살려고 하면 부활 신앙을 확고히 가져야 합니다. 결과적으로, 부활 신앙을 갖고 살아야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게 되어 승리하는 인생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예수를 십자가에서 죽게 하시어 우리의 죄를 씻어주셨고, 또한 예수를 다시 살리셔서 부활의 소망을 갖고 올바른 인생을 살도록 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그러한 구원의 은총과 사랑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③그 하나님의 은혜를 저버리고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부활의 소망을 갖고 진실하고도 올바르게 살기를 원하십니다. 이 세상에 대한 미련과 집착을 버리고, 하늘에서 이루어질 심판을 대비하면서 살도록 권고하십니다. 그 권고를 따르면, 우리가 올바르게 살 수 있도록 힘과 용기를 주신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기도도 들어주시고, 소중한 인생을 살 수 있도록 도와주신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우리에게 많은 관심과 특별한 사랑을 쏟고 계신데, 우리는 그 은혜에 제대로 보답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주의 제자들이 예수님을 등지고 도망쳤듯이, 우리 또한 하나님 뜻을 저버리고 살 때가 많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 결과, 부활의 기쁨을 맛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꼭 필요로 하는 유익한 존재가 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부활의 예수를 믿는 사람들입니다. 지금도 살아 계셔서 우리의 일거수일투족(一擧手一投足)을 지켜보시는 하나님을, 우리는 의지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부활하신 주님의 뒤를 따라서, 하나님께서 진정 원하시는 올바른 인생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2.부활의 진리를 깨닫고 바르게 삽시다.
주께서 부활하시던 날 아침,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의 부활을 믿지 못하고 있었던 까닭에 빈 무덤으로 찾아가서 주님의 시신을 찾고 있었습니다. 그때 그 막달라 마리아처럼, 오늘 우리도 이 헛된 세상 것에서 예수의 구원을 찾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①우리는 부활의 진리를 깊이 잘 깨닫고 기쁘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래서, 바르게 사는 자에게 힘이 되어 주시는 하나님을 믿고, 주님이 원하시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사울이 바울로 변하여 주님의 사도가 되었던 것처럼, 오늘 우리도 세상적인 자랑과 권세를 버리고 주님이 원하시는 백성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세상 죄에서 벗어나 쓸모 있는 인생이 되도록 하기 위해,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주를 위해서 바르게 사는 자에게는 천국에서 영생을 누리게 된다는 사실을 확신시켜 주시기 위해, 죽은 지 사흘만에 부활하셨습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확신해야 합니다.
②그래서, 여호와를 의지하고 바르게 살아야 할 것입니다.
부활을 믿고 바르게 살 때, 하나님은 그런 사람에게 승리를 안겨주십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구원하신 하나님 은혜가 헛되지 않도록 살아야 합니다. 바울은 자신을 구원하여 사도로 삼아주신 주의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열심히 일했다고 했습니다. 우리도 바울과 같은 심정으로 살아야 합니다.
터키에서 선교하던 한 선교사가 사람들에게 예수의 부활을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나는 여행하고 있습니다. 길을 가는데 두 갈래의 길을 만났습니다. 어느 길로 가야 할 지 알 수 없었습니다. 누군가에게 길을 묻고자 하는데, 두 사람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 사람은 살아있는 사람이요, 또 한 사람은 죽어있는 사람이었습니다. 내가 누구에게 길을 물어야 하겠습니까 산 사람입니까 죽은 사람입니까”
그들은 “그야 물론 산 사람에게 물어야 하겠지요”라고 답했습니다. 이 때, 그 선교사는 “그렇다면, 어찌 내가 살아 계신 예수께 찾아가지 않고 죽은 마호멧을 찾아가겠습니까”하면서 복음을 전했다고 합니다.
우리는 죽음에서 부활하여 지금도 살아 계신 주님의 뒤를 따라가야 합니다. 그래야만, 부활하여 영생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 부활의 삶이란 거짓을 멀리하고 진실하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감자를 심을 때에는 싹이 위로 향하도록 정성스럽게 심어야 합니다. 썩은 감자를 심거나 벌레 먹은 것을 심으면 안 됩니다. 싱싱하고 충실한 감자를 골라서 바르게 심어야, 그 감자는 싹이 잘 터서 많은 열매를 맺게 될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주신 인생을 진지하고 정성스럽게 살아가는 것이 부활의 삶인 것입니다.
진실하고 바르게 사는 삶이어야, 부활과 영생의 길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런 삶이라야, 승리의 기쁨과 보람을 누릴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 그런 부활의 삶을 살 수 있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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