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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의 보호와 도우심 (렘 01:4-10, 히 12:18-29, 눅 13:1)

첨부 1


본문의 배경은 하나님께서 선지자 예레미야를 부르시는 장면입니다.
예레미야가 활동한 시대는 북 이스라엘 멸망한 후 이제 남 유다도 패망의 길로 치닫고 있던 시점입니다.
정치권은 하나님을 의지하기보다는 애굽을 의지할 것인가, 바벨론을 의지할 것인가라는 문제로 (날카롭게,예리하게) 대립, 분열되어 있었습니다.
종교는 종교대로 영적 생명력을 상실해 버렸으며, 종교 지도자들은 타락하고 백성들의 마음도 하나님 의로부터 떠나 있었습니다.
진노와 심판이 임박한 이 시점에서 하나님은 마지막으로 선지자 예레미야를 세워 그 백성을 경고하시고, 마음을 돌이키도록 계획하신 것입니다.
완악한 백성들을 돌이키기 위해 부름 받은 예레미야는 그 부르심 앞에 자신의 모습이 너무 약하고 보잘 것 없음을 탄식하며 아랩니다(렘1:6)
“내가 가로되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보소서 나는 아이라 말할 줄을 알지 못하나이다”( 렘 1:6)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두려워 말 것을 말씀하시면서 “너는 그들을 인하여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하여 너를 구원하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시고”( 렘 1:8)고 말씀하십니다.
본문을 석의 하는 데 있어서 설교자는 당시의 시대적 상황을 깊이 생각하고 한 인간의 나약성을 이해하며, 더 나아가 나약한 인간을 들어 쓰시는 하나님의 섭리와 능력을 볼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님들은 나약하고 연약하지만 하나님의 손에 붙잡힐 때 귀하게 쓰임받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2:18-29
히브리서의 본문은 하늘의 예루살렘 성에 대해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곳은 성도들이 궁극적으로 있게 될 하나님의 보호 처로서 어느 누구도 진동시킬 수 없는 안전한 곳입니다.(히12:28)
“그러므로 우리가 진동치 못할 나라를 받아쓴즉 은혜를 받자 이로 말미암아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섬길지니”( 히 12:28)
구약 시대 시내 산에서 맺은 계약은 불안전합니다.
그곳은 불붙는 산과 흑운과 흑암과 폭풍이 있는 곳입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거기에 접근할 수 없고, 두려움과 떨림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었습니다.(히12:18-21)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열린 시온산의 길은 새로운 계약으로 우리를 인도합니다.(히12:22-24)
옛 계약은 땅에 관한 것으로 우리를 인도하였다면 새 계약은 하늘의 길로 우리를 인도합니다.
그곳은 곧 시온산이요 하나님의 도성인 하늘의 예루살렘입니다.
그곳은 천군 천사와 성도들의 총회와 심판자 하나님과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신 곳입니다.
이제 성도는 누구도 진동케 하지 못할 영원한 나라를 기업으로 받았은즉 더욱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섬겨야 합니다.
누가복음 13:10-17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구원자요 치유 자이십니다.
그분은 이 땅에 오셔서 천국 복음을 전파하셨을 뿐만 아니라 고통 당하는 백성들을 돕고 치유하시는 일을 친히 하셨습니다.
오늘 복음서는 18년 동안 귀신 들려 병든 여인을 치료하신 기사입니다.
유대인들은 안식일 법에만 관심을 갖고 있었으나 예수 그리스도는 한 병든 여인의 고통에 관심(사랑)을 가지셨습니다.(13:14절)
외식 적인 사람들일수록 형식을 고집하기 쉬우나 예수님은 그 본 절에 관심을 갖습니다.
유대 율법주의자들과 예수님의 차이는 바로 여기에 있었습니다.
한편은 형식을 앞세웠으나 한편은 내용과 본질을 우선으로 했습니다.
다른 한편은 제도와 전통에 얽매여 있었으나 한편은 인간을 가장 소중히 여기셨습니다.
한편에서는 안식일에 병을 고쳐 안식을 법을 어겼으므로 분을 내었으나, 한편에서는 병든 자가 그 고통에서 해방된 것으로 기뻐하였습니다.(17절)
인간을 향한 지극한 주님의 사랑과 관심과 능력과 도우심을 본문은 전하고 있습니다

1.함께 하시는 하나님
인간은 누구나 위기 앞에 노출되어 있으며, 크리스천 역시 예외는 아닙니다.
위기에 직면할 때우리 인간은 자신의 연약함과 한계를 느끼면서 절망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 순간 그리스도인은 인간의 연약함을 넘어(건너, 산을 넘어서) 그리고 선택받은 자와 하나님의 능하신 팔을 확신하는 것이 더욱 중요한 일입니다.1).하나님의 선택받은 자(렘1:5)
“내가 너를 복중에 짓기(집을) 전에 너를 알았고 네가 태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구별하였고 너를 열 방의 선지자로 세웠노라 하시기로”( 렘 1:5)
예레미야를 선택하신 하나님께서는 또한(역시) ③.우리를 택하셔서 자녀로 삼아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① .우리를 복중에 짓기(집을) 전에 알았고 ②.태에서 나오기 전에 구별하셨습니다.
자신의 선택받음을 믿는 자는 선택하신 분의 사랑을 확신할 수 있습니다(롬8:35-39)
롬8:35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 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 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롬8:35 누가 감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떼어놓을 수 있겠습니까 환난입니까 역경입니까 박해입니까 굶주림입니까 헐벗음입니까 혹 위험이나 칼입니까
롬8:36 성경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주님 때문에 종일토록 죽임을 당하고 도살당할 양처럼 취급당하며 살아갑니다.'
롬8:37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롬8:38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 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롬8:39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그분은 어떤 상황에서도 나를 놓지 않으십니다.
부모는 자식을 버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행여 육신의 부모는 자식을 버릴지라도 하늘의 아버지는 결코 우리를 잊지 않으십니다.(사49:15)
( 사 49:15)여인이 어찌 그 젖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아니할 것이라
우리는 여호와께 선택된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2).인간의 연약함(렘1:6)
“내가 가로되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보소서 나는 아이라 말할 줄을 알지 못하나이다”
예레미야는 자신을 어린아이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아이에게는 위기를 극복할 힘이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설 때마다 이 점을 분명히 인식해야 합니다.(고전10:12)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그러므로 스스로를 능력 있는 어른이라고 생각할 때 우리는 하나님 앞에 교만하게 되고 넘어지기 쉽습니다.
이와 같은 예를 사울 왕에게서 볼 수 있습니다.
사무엘상 9장 21절의 사울의 15장의 사울의 행위를 비교해 보면 알게 됩니다.
(삼상9:21)사울이 대답하여 가로되 나는 이스라엘 지파의 가장 작은 지파 베냐민 사람이 아니오며 나의 가족은 베냐민 지파 모든 가족중 에 가장 미약하지 아니하니이까 당신이 어찌하여 내게 이같이 말씀하시나이까
(삼상15:17)사무엘이 가로되 왕이 스스로 작게 여길 그 때에 이스라엘 지파 의 머리가 되지 아니하셨나이까 여호와께서 왕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 왕을 삼으시고
위기를 극복하는 힘은 나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연약함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도움을 의지할 때 비로소 하나님으로부터 받게 되는 것입니다.
3).함께 하시는 하나님(렘1:7-8)
( 렘 1:7)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아이라 하지 말고 내가 너를 누구에게 보내든지 너는 가며 내가 네게 무엇을 명하든지 너는 말할지니라
( 렘 1:8)너는 그들을 인하여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하여 너를 구원하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시고
하나님 앞에 우리가 어떤 사람인가는 중요한 문제가 아닙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함께 하심과 그분의 능력을 온전히 신뢰하느냐의 여부에 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신 소년 다윗은 하나님 없는 장수 골리앗을 이길 수 있었습니다.
나의 능력이 문제인가 나의 지식이 문제인가 가문과 배경이 문제라고 생각하는가 결코 아닙니다.
하나님은 세상의 미련하고 약하고 천하고 멸시받으며 없는 자들을 택하사, 세상 지혜를 자랑하고 능력을 앞세우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며 있는 자들을 페하 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고전1:27-29)

2. 치유하시는 예수님
영국의 작가였던 토마스 브라운 경은 그의 저서 [의사의 종교]에서 “이 세상은 여인숙이 아니라 병원이요, 이 세상은 사는 곳이 아니라 죽는 곳”이라고 했습니다.
오늘도 질병은 인간을 끊임없이 괴롭히고 고통스럽게 하고 있습니다.(눅13:11)
( 눅 13:11)십 팔년 동안을 귀신들려 앓으며 꼬부라져 조금도 펴지 못하는 한 여자가 있더라
이 고통의 그림자가 드리울 때 인간은 좌절하고 낙심케 됩니다.
치유의 길은 어디에 있는가 방황하면서,1). 18년 된 병자:그녀는 귀신 들려 앓으며 꼬부라져 조금도 펴지 못했습니다.
악한 영의 역사는 그녀를 병들게 했고, 병은 그의 육신과 함께 삶을 마비시켜 놓았습니다.
( 눅 13:14)회당 장이 예수께서 안식일에 병 고치시는 것을 분 내어 무리에게 이르되 일할 날이 엿새가 있으니 그 동안에 와서 고침을 받을 것이요 안식일에는 말 것이니라 하거늘
오늘 복음서는 18년 동안 귀신 들려 병든 여인을 치료하신 기사입니다.
유대인들은 안식일 법에만 관심을 갖고 있었으나 예수 그리스도는 한 병든 여인의 고통에 관심(사랑)을 가지셨습니다.(13:14절)
2). 율법주의자의 분노:잘못된 인간, 왜곡된 신앙은 형식에 얽매여 본질을 보지 않고, 인간보다 제도를 앞세웁니다.
외식 적인 사람들일수록 형식을 고집하기 쉬우나 예수님은 그 본 절에 관심을 갖습니다.
유대 율법주의자들과 예수님의 차이는 바로 여기에 있었습니다.
한편은 형식을 앞세웠으나 한편은 내용과 본질을 우선으로 했습니다.
다른 한편은 제도와 전통에 얽매여 있었으나 한편은 인간을 가장 소중히 여기셨습니다.
한편에서는 안식일에 병을 고쳐 안식을 법을 어겼으므로 분을 내었으나, 한편에서는 병든 자가 그 고통에서 해방된 것으로 기뻐하였습니다.(17절)
인간을 향한 지극한 주님의 사랑과 관심과 능력과 도우심을 본문은 전하고 있습니다
3). 치유자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사랑은 인간의 문제에 관심을 갖습니다.
예수님은 여인의 고통과 질병을 보셨고, 그 원인이 악한 영으로 인한 것임을 알고 영과 육을 치료하십니다.
육을 치료하려는 의사는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영과 육을 온전히 치료하시는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뿐이라는 사실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마 10:28)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
(눅 12:5)마땅히 두려워할 자를 내가 너희에게 보이리니 곧 죽인 후에 또한 지옥에 던져 넣는 권세 있는 그를 두려워하라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를 두려워하라
기도
위로와 소망이 되시는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저희의 연약함 중에도 주를 의지하여 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택함 받은 자녀로서 언제나 하나님의 크신 사랑과 능력을 신뢰하며, 오늘도 우리와 함께 하시는 그 능력의 손을 붙들게 하옵소서, 광야의 길을 걷는 동안 저희의 목마름과 주림을 살펴 주시고, 불기 등과 구름 기둥으로 인도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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