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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병과 죽음 (요 1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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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왜 병을 싫어합니까 아프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고통스럽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병이 깊어지고 중해지다 보면 결국은 목숨을 앗아가기 때문에 싫어 무서운 것입니다.
오늘 성경에 어떤 병든 자가 있는데 이는 마리아와 그 형제 마르다의 촌 베다니에 사는 나사로라(1절)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나사로가 병들었다고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병든 자가 있는데 그의 가족은 마리아와 마르다고 그 동네는 베다니고 그리고 그 병자는 나사로다 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이 환자가 그 가족 식구들 특별히 자매들의 도움을 받았기 때문에 그들의 이름이 먼저 언급이 되고 그 자매들이 매우 중요한 존재이다 라는 것을 일깨워 주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마리아를 계속 이야기합니다.
이 마리아는 향유를 주님께 붓고 머리털로 발을 씻기던 사람이다(2절). 마르다도, 나사로도 빼놓고 마리아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마리아의 헌신, 마리아의 사랑, 주님을 섬기는 뜨거운 마음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마리아가 예수님에게 300데나리온이나 되는 향유를 붓고 머리카락으로 예수님의 발을 닦아 드렸습니다. 이 당시 어른들의 하루의 품삯이 1데나리온인데 1데나리온을 가지면 보통 식구들이 하루 생계가 가능했던 돈입니다. 그러므로 300데나리온 은 1년치 노동자의 품삯에 해당하는 돈이며, 이런 귀한 기름을 예수님께 다 쏟아 부었습니다. 그리고서는 자기의 머리카락으로 주님의 사랑하는 딸입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마리아와 같은 믿음있는 형제요 자매입니까 여러분 가정이 마리아와 같이 주님을 사랑하며 주님께 헌신되었습니까 마리아는 이 가정에서 제일로 헌신된 자매입니다. 그런데 이 가정에 병든 자가 있는데 주님께서 사랑하는 자입니다. 주여, 보시옵소서 사랑하는 자가 병들었나이다 (3절)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들이 사는 베다니는 예루살렘에서 2km 떨어진 산골 조그마한 마을입니다. 남쪽 유대에서 예수님이 배척을 받아서 북쪽으로 가셨는데 이제 또 남쪽 조그마한 동네에서 주님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집은 부모님도 언급이 없고 삼남매만 언급이 있습니다. 그러나 저들이 비록 외롭게 산다해도 주님을 모시고, 대접하고, 말씀을 사모하고 또 주님께 사랑을 받고 살았던 귀한 가정입니다.
오늘 주님께서 자주 찾아가셨던 이 집! 여러분의 집에 주님이 오시기를 사모하십니까 마땅히 들릴 십의 일조로 고급 차나, 가구로 편하고 안락하게 해 놓고 주님을 모셨다면 주님께서 편안해 하실 까요 오히려 마음 아파 하실 겁니다.
우리 주님께서 사랑하는 자가 병들었다는 소식을 멀리 북쪽 갈릴리 지방에서 들으셨습니다. 유대 사람이 미워해서 북쪽으로 올라갔는데 이제 내려오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즉시 가시지 않고 이틀을 더 머무셨습니다. 나중에 예수님이 가셨을 때 죽은 지 나흘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우리 주님께서 나사로는 잠들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11절). 이 잠들었다고 하는 말은 성경에 여러 번 나오는데 죽은 것을 잠들었다고 표현합니다. 왜냐면 부활의 기상을 전제하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죽은 야이로의 딸을 고쳐 주셨습니다(마 9:24). 그리고 그 소녀가 죽은 것이 아니고 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스데반이 돌에 맞아서 죽었습니다. 순교했습니다. 스데반이 자니라(행 7:60절)고 했습니다. 또 어떤 이는 잠들었으매(고전 15:6절)하고 했습니다. 이것은 모두 죽은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제자들이 가로되 주야 잠들었으면 낫겠나이다 (12절)고 했습니다. 예수는 그의 죽음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나 저희는 잠들어 쉬는 것을 가리켜 말씀하심인 줄로 생각했습니다(13절).
성도 여러분! 이따금씩 우리가 기도할 때 주님께서 듣지 않으신다고 섭섭한 마음을 가질 때가 있을 것입니다. 마리아와 마르다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셨는데 어찌하여 오시지 않으시는가 우리를 버리셨는가 아닙니다. 주님께서 오셔서 하여야 할 그 때는 꽉 찬 그 때입니다. 그래서 죽은 자를 병자 일으키듯이 주님께서 살리시려고 늦게 오신 것입니다. 이것은 마리아와 마르다에게 더 큰 기쁨이요, 더 큰 선물이요, 더 큰 축복입니다. 뿐만 아니라 마리아와 제자들에게 우리 예수님은 병자만 고치시는 분이 아니라 죽은 자도 살리고 그 죽은 자를 살리심으로 예수님께서 죽었다가 부활하심을 실증적으로 보여주시기 위한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하나님과 예수님을 위한 영광스러운 병이고 영광스러운 죽음입니다. 이것을 볼 때 사람의 생각과 주님의 생각은 다른 것입니다(사 55:8,9). 그래서 주님께서 늦게 오셨지만 더 놀라운 선물과 생명을 주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오늘 성경에서 교훈받는 것은 무엇입니까 병들어서 그 병으로 죽었지만 그것이 그냥 병으로 죽고만 것아 아니라 주님께서 오셔서 살려 주심으로 그 병이, 그 죽음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서 더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 큰 영광을 돌린 것입니다. 그래서 요 11장의 이 표적은 주님의 공생애를 마감하는 결론적인 표적입니다.
오늘 우리가 이 삶을 살아갑니다. 병 많은 세상에 삽니다. 그러나 이 병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하나님께 가까이 하며 기도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고 또 죽는다 할지라도 주님께서 부활하신 첫 열매가 되신 것처럼 우리도 부활할 것을 바라보면서 주님앞에 사나 죽으나 영광돌리며 사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친구 나사로가 잠들었도다 그러나 내가 깨우러 가노라(요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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