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탕자의 비유 (눅 15:1-2)

첨부 1


아버지에 대하여 이 보다 더 잘 이야기한 본문이 있을까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본문은 일반적으로 탕자의 비유라고 불리워진다.

그러나 실상은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아버지의 분깃을 가지고 집을 나간 둘째 아들이 아니라 그를 기다리는 아버지이시다.

죄인들을 영접하신 이는 성육신 하신 하나님이시다.

그는 가장 온유하고 마음을 끄는 위대한 신의 현현을, 전인류에게 나타내 주셨다.

그가 죄인들을 영접 하시는 방법은 사랑의 팔을 펴서 전인류를 감싸주시는 방법이다.

그가 죄인들을 비난하지도 않고,오히려 그를 영접 하시고, 말할 수 없는 하늘의 복을 나누어 주실 때, 사람들은 그를 비난 하였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특별한 보호와 인도로 죄인들을 당신의 은혜의 왕국으로 불러 주신다.

그리스도는 죄인을 친구로 삼으시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죄에 얽매어 고통받는 인간들 에게 베푸시는 최대,최고의 선물이다.

본문의 비유는 서로 상관성 있는 비유이다.

세리와 죄인들,그리고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서로 대조되는 그룹 이다.

세리와 죄인들은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마땅히 그들에게 가르침을 베풀어 바른 삶으로 이끌어야 한다.

그들에게는 그만한 능력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오히려 세리와 죄인들을 배척하고, 정죄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그리스도인의 책임을 우리가 생각해 본다면, 교회와 세상이 나뉘어져 이원화 되는 현실이 바리새인과 서기관 그리고 세리와 죄인들의 이원구도 처럼 위험을 내포하는 것은 아닌지 살펴야 할 것이다.

예수님은 죄인들을 영접 하신다.

죄로 번민하는 가련한 인생들을 그리스도는 언제나 영접 하신다.

그리스도께서는 죄인들을 사랑으로 다루신다.

죄인들을 대하시는 예수님의 태도는 그들을 영접하고, 그들과 함께 식탁을 나누는 것이다.

우리 주변의 불신자들은 이같이 사랑을 나누어 줄 대상이며, 관계의 회복을 통하여 하늘나라의 식탁을 함께 할 대상이지 정죄의 대상은 아니다.

11절에서 32절 까지의 두 아들의 비유는 1,2절의 등장인물을 반영하는 것이다.

동시에 죄인 하나가 회개하는데 대한 아버지의 기쁨을 보여 주며, 회개하는 자를 다루시는 하나님의 방법을 가르쳐 준다.

본문은 여러가지 진리를 가르쳐 준다.

세상이 인간을 버릴 때 인간도 세상을 버린다.

탕자는 더 이상 먹을 만한 것이 없을 때, 비로소 정신이 들었다.

또 허랑방탕한 생활을 한 후에 회개하는 자의 위치는 자유인의 상태가 아니라, 노예의 상태라는 것이다.

그가 노예의 심정의 심정이 되어 돌아온 것에 주목하자.

그러나 그러한 죄인이 하나님께로 돌아올 때 받는 환영은 비교할 바가 아니다.

아들이 돌아온 데 대한 아버지의 기쁨은, 돌아온 죄인에 대한 하나님의 기쁨이다.

아들에게 베풀어지는 향연과 춤은 아들에게 있어서 오랫동안 잃어버렸던 것이다.

본문을 통하여 특별히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주시는 훈계가 있다.

본문에 나오는 큰 아들은 불공평한 것 처럼 생각되는 이해할 수 없는 아버지의 조치에 당황하고,불만을 갖는다.

그러나 그는 일생을 하나님의 종으로 살아가는 복이 얼마나 큰 것인가를 알지 못한다.

그래서 그는 <내가 여러해 아버지를 섬겼으나,내게는 염소 한마리 주시지 않는구나>라고 불평하는 것이다.

아버지는 이렇게 대답 하신다.

<얘, 너는 항상 나와 함께 있으니, 내것이 다 네것이로되> 탕자의 기쁨은 한시간의 커다란 것이지만,맏아들은 일생을 통하여 평강을 누렸다.

꾸준한 신앙생활은 황홀경을 체험하지 못하더라도 값진 것이다.

하나님의 잔잔하고 영원한 임재 하심으로 부터 오는 평강은 궁극적으로 가장 좋은 것이다.

이제 본문을 통하여 우리에게도 있는 죄의 모습을 보자.

탕자를 통하여 우리는 모든 사람에게서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배반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우리는 이 비유에서 그 마음이 선천적인 성향을 따르고 있는 한 인물을 보는 것이다.

우리 모두가 가지고 있는 마음을 본문은 충실하게 묘사해 준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뜻대로 하는이가 세상에 얼마나 많은가 우리는 모두 본질적으로 교만하고,자기 멋대로이다.

자신을 살펴 보면 어떠한가 이것은 엄청난 위험을 수반한다.

이 아들의 요구에 따라 아버지는 각각 그 살림을 나누어 주었다.

[12절] 그러면 큰아들의 재산은 어디에 갔는가 그는 그 분깃을 즉시 아버지에게로 돌렸다.

그는 지혜롭고 현명한 자이다.

아버지의 재산은 원하였으나, 그의 사랑은 구하지 않은 둘째아들은 그 자비로운 아버지를 말로만 아버지라 불렀고, 그에 대한 존경과 아버지를 중시하는 마음은 없었다.

그는 바로 우리 자신을 반영하는 거울 속의 나와 같은 자이다.

세상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 보다 하나님의 선물에만 더 관심을 가지는가 죄은 근원이 바로 여기에 있다.

하나님의 뜻은 아랑곳 없고,자신의 만족을 채우기에 급급한 사람은 자신의 정욕을 만족 시키기 위한 방종한 삶이 반드시 따르기 마련이다.

죄의 추진력은 굉장하다.

<그 후 며칠이 못되어, 둘째 아들이 재물을 다 모아 가지고> 아버지의 곁을 떠나 간 것이다.

이러한 죄에 대하여 하나님의 임재는 결코 함께 하시지 않는다.

<먼나라>는 어리석은 자들이 염원하는 실재하지 않는 상상속의 낙원일 뿐이다.

거기에서 아버지를 떠난 아들은 허랄방탕하여 재산을 허비하였다.

죄는 끊임없이 죄의 결과를 가중 시킨다.

그는 행복을 얻는 대신에 빈곤에 휩싸이게 되었다.

풍요하고,명예로운 삶 대신에 그는 예속과 수치의 삶을 살아야만 했다.

그는 어디를 가나 이방인이었고,단지 붙여 사는 돼지치기일 뿐이 었다.

그의 식물은 사람이 먹을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금수의 먹이는 결코 사람의 배를 만족 시킬 수 없다.

그에게 먹는 기쁨은 사라졌다.

이와같은 말씀은 전체가 신자에게 주는 진리의 말씀이기도 하다.

사람이 하나님 없이 자기 만족의 삶을 추구하여도 결코 만족에 이를수가 없다.

세상적인 것만으로는 참된 만족에 도달할 수 없는 것이다.

오늘의 본문은 얼마나 많은 것을 이야기 하는가 인간의 헛된 추구와 그로인한 실패는 물론 인간의 자율성을 허용 하시는 하나님에 관하여 말씀하고 있다.

아들의 분깃요구를 거절할 수도 있는 아버지, 그러나 그는 아들의 요구가 결코 갑작스러운 충동에 의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므로 아버지의 재산분배는 아버지의 응징의 방법인 것이다.

본문에는 죄의 성질이 잘 나타나 있다.

그것은 하나님을 떠나려는 마음이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은 인간영혼에 엄청난 파멸을 불러 일으킨다.

우리가 하나님께 등을 돌렸을 때, 우리의 영혼이 택한 여정은 길고도 지루하다.

거기에는 기쁨이 없다.

아침 일찍 일어나고, 일하며 밤 늦게야 휴식을 취하며 빵을 먹는다 할지라도 그 모든 것들은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헛수고 일 뿐이다.

죄를 짓는 영혼의 고통은 어떤 것들인가 그 하나는 결핍[결핍]이다.

죄는 영혼을 굶주리게 한다.

채워질 수 없는 인간의 욕망을 채울 수 있는 분은 하나님 한분 밖에는 없다.

친구가 없게 되는 고통이 또 있다.

이 세상의 진정한 친구는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없다.

또 하나의 고통은 노예생활이다.

죄 아래 있는 모두가 사탄의 노예이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고난을 통해서 회개의 마음을 주신다.

이것은 하나님의 은총이다.

우리가 회개에 이르는 마음을 본문을 통하여 살펴볼 수 있다.

본문의 아들은 죄악에 빠졌던 과거의 삶을 돌이켜 봄으로써 회개하기에 이르렀다.

그는 자신의 고난을 통하여 자신의 선택이 잘못된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 또 자신의 위치를 살펴 봄으로써 회개하게 되었다.

그는 자기에게 죽음이 다가오고 있는 것을 절실히 느끼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미래를 생각하여 회개하기에 이르렀다.

그는 또 아버지에 대하여 잘못되었고,그릇된 견해를 가지고 있었 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는 아버지를 멀고 어려운 사람으로 생각하였다.

그러나 그는 고통을 통하여 아버지를 발견하였다.

그리고 부족함이 없는 아버지의 집을 생각하게 되었다.

오늘의 본문은 무엇 보다도 자비와 긍휼에 풍성하신 아버지 하나님에 대하여 가르친다.

본문의 중심은 돌아온 탕자가 아니라, 그 아들을 맞으시는 아버지이시다.

아버지의 긍휼과 자비를 보라.

그는 완전한 복음의 사면장을 우리에게 주신다.

우리는 모두 아버지가 필요하다.

그 아버지는 오늘도 집나간 아들을 기다리신다.

아버지는 집나가 고통받는 아들의 처지를 이미 다 알고 계신다.

아버지는 아들의 실패를 이미 다 알고 계신다.

날마다 문열어 놓고,집나간 아들을 기다리신다.

그러므로 회개를 미루지 말라.

용서를 위한 아버지의 준비를 보라.

그는 제일좋은 옷을 준비하고 계신다.

그는 지환을 낄 자격이 없는 사람에게, 상속자임을 인정하는 지환을 준비하고 계신다.

아버지를 떠난 자는 지금 즉시 돌아가라.

그리고 아버지와 함께 하는자의 계속적인 순종의 큰 가치를 알라.

오늘도 이 말씀을 듣는 성도 여러분이 순종하는 삶을 통하여 아버지와 더불어 사는 행복을 누리기를 바란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