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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중풍병자가 받은 은총 (막 02:1-12)

첨부 1


오늘 주어진 본문의 말씀은 가버나움이라는 동리에서 일어난 예수님의 기적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가버나움이라는 동리로 가셨고, 그 동리에 있는 한 집으로 들어가셨습니다. 그 집에서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에 관한 말씀을 선포하고 계셨습니다.
예수님이 그 동리에 오셨다는 소식은 온 동리에 널리 퍼졌고 동리 사람들은 너도나도 하며 예수님이 계시는 그 집으로 몰려 들었습니다. 그야말로 인산인해를 이룬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가시는 곳에는 언제나 많은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습니다. 병고침을 받기 위하여 오는 사람, 예수님의 축복해주심을 바라고 오는 사람, 배고픔을 면하기 위하여 오는 사람, 예수님이 행하시는 여러가지 기적들을 구경하기 위하여 오는 사람 등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주변으로 몰려 왔던 것입니다.
마침 그 동리에는 오래 전부터 중풍병으로 고생하는 한 병자가 있었는데 그 병자가 예수님께[로 와서 영혼의 병과 육신의 병까지 고침을 받았습니다.
주어진 본문의 말씀에서 [중풍병자가 받은 은총]이라는 말씀으로 함께 은혜받기를 원합니다.

1. 은혜를 입은 중풍병자, 그는 누구입니까
⑴ 우리 본문은 그 사람을 가리켜 중풍병자라고 하였습니다(3,5,9,10).
3절에 [한 중풍병자가......], 4절과 5절, 9절과 10절에 [중풍병자]라고 하였습니다.
여러분! 병들어 아파 누워 있어본 적이 잇겠지요 여러분이 병들어 누워 있었거나 여러분의 가족 중의 한 사람이 병이 들어 침상에 누워 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그런 때는 온갖 생각이 다 납니다. 왜 내가 병들어 누워 있어야 하나 왜 가족들의 보호와 친구와 친척들의 병문안을 받아야만 하는가 등 별 생각이 다 납니다.
여기 우리 본문에 나오는 사람은 중풍병자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그 사람 개인적으로 큰 불행스러운 일이었습니다. 다른 사람은 멀쩡한데 유독 자기만 그같은 병이 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이 얼마나 고통스럽고 괴롭겠습니까
중풍병이란 뇌일혈로 인하여 일어나는 병이라고 합니다. 몸의 일부 혹은 전부가 마비가 되어 육체적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는 병을 말합니다. 말하는 것, 걷는 것, 움직이는 것이 모두 자유하지 못해서 남의 신세를 지지 않을 수 없는 병입니다. 본문의 경우, 친구들이 침상에 메고 왔다는 것을 보면 하반신이나 전신이 마비가 되어 스스로 일어서거나 걸어다니거나 뛰어다닐 수 없는 병자였습니다.
그는 자기 힘으로는 어떤 곳에도 갈 수 없었습니다. 어디든지 가고 싶을 때는 다른 사람들의 신세를 져야만 했습니다. 그나마 그를 도와줄만한 사람이 없을 때는 그 희망마져 포기해야만 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스스로는 어떤 것도 할 수 없는 무능하기 이를데 없는 자였습니다.
중풍병이라고 하는 그 질병은 그 사람을 항상 괴롭히는 원인이었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질병 때문에 자신을 비관하며 절망 가운데 자주 빠졌습니다. 한 마디로 말해 그는 절망의 사람, 괴로움의 사람, 슬픔의 사람, 아픔의 사람이었습니다.
⑵ 예수님은 그 사람을 [죄인]이라고 하였습니다(5,9,10).
본문 5절 말씀에 ......소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라고 하였습니다.
[소자야], 얼마나 다정한 말입니까
[소자야, 네 죄사함을 받았느니라]고 하는 이 말은 [너는 죄를 지은 사람이 아니더냐]고 하는 말입니다.
이 세상을 살고 간 수억 수만의 사람들, 그 사람이 영웅이든지, 임금이든지, 종이든지, 자유자이든지, 이 세상에 왔던 모든 사람들은 다 죄인입니다. 하나님의 형벌을 받을 수 밖에 없는 죄인입니다(롬3:23, 6:23, 시1:6).
죄가 있어도 스스로 죄인인줄도 모르고 사는 죄인, 죄가 되는 것을 깨닫지도 못하고 살고, 행동하는 죄인이었습니다.
중풍병자, 그는 중풍병이라고 하는 병이 그의 육체를 괴롭혔고, 죄라고 하는 병이 그의 영혼을 괴롭히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아무 것도 하지 못한 죄인,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무능한 자였습니다.
그는 자기 죄를 용서받기 위해서 한 일이 없습니다. 자기 구원을 위하여 그가 한 일은 더욱 없습니다. 설령 그가 자기 죄를 용서받기 위하여 어떤 일을 했다든지, 자기 구원을 위하여 어떤 노력을 하였다고 합시다. 그러한 일들 조차 모두 자기를 멸망으로 이끌고 가는 죄일 뿐입니다. 무능하고 무능한 죄인입니다.

2. 그 사람이 받은 은총이 무엇입니까
바로 이 사람이 큰 은총을 입었습니다.
은총, 은혜란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자에게 거져 주는 것, 값없이 거져 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사람이 받은 은총은 무엇입니까
⑴ 예수의 소문을 들은 것입니다.
본문 1절을 보시면 수일 후에 예수께서 가버나움에 들어가시니 집에 계신 소문이 들린지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이 오셨다! 예수님이 우리 마을에 오셨다!
가바나움, 온 마을은 예수님이 오셨다고 하는 소문으로 가득찼습니다. 그야말로 톱뉴스가 되어 온 마을에 퍼졌습니다. 그 소식을 들은 가버나움 사람들은 너도나도 할 것없이 앞을 다투어 예수님이 계신 집으로 몰려 갔습니다.
예수님이 가버나움에 왔다고 하는 소문은 중풍병으로 침상에 누워 있는 그 병자에게도 전하여 졌습니다. 그것은 아마도 그의 친구들이 그에게 알려주었을 것입니다.
여보게 친구, 예수님이 우리 마을에 왔어, 그는 우리가 기다리고 기다리던 메시야일세, 그는 우리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실 분이야, 그를 만난 사람들 중에 많은 사람들이 병고침을 받았다네, 자네도 그 분에게 가면 나음을 입을 거야....
이렇게 알려 주었을 것입니다.
그 소식은 그 병자로 하여금 희망을 가지게 하였습니다. 그 소식은 그 병자로 하여금 살고 싶은 욕망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생명에 대한 애착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이것이 은혜입니다. 예수님이 오셨다는 소식, 예수님께로 가면 모든 문제를 해결받는다고 하는 소식을 접할 수 있었다는 것이 은혜입니다.
예수님은 인생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기 위하여 하늘에서 내려온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으로 오신 구주입니다. 이 얼마나 귀하고 복된 말씀입니까
⑵ 예수께로 가게 된 것입니다.
본문 3절에 사람들이 한 중풍병자를 네 사람에게 메워 가지고 예수께로 올새......라고 하였습니다.
그가 받은 두 번째 은총은 예수님께로 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그 사람이 예수님께로 나아갔습니다. 이것이 은혜입니다. 자기 스스로 나아갔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그를 메고 예수님께로 갔습니다.
그 사람을 메고 간 사람을 우리는 잘 알지 못합니다. 네 사람입니다. 그 네 사람은 돈으로 고용된 사람인지, 아니면 그의 가족인지, 그의 친구인지 정확히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 네 사람은 그 중풍병자를 위하여 수고와 헌신을 아끼지 않았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그들은 중풍병자를 들 것에 뉘워 예수님이 계시는 집으로 갔습니다. 그러나 그 집은 이미 먼저 온 많은 사람들로 인하여 발을 디뎌 놓을 틈이 없었습니다(2,4). 입추의 여지도 없이 모여든 수많은 사람들이 그 집의 문 앞을 포진하고 있어서 예수님깨로 나아갈 수가 없었습니다. 정작 만나야만 하는 예수님, 도달하여야할 예수님을 지척에 두고도 갈 수가 없었습니다.
낙심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정말 돌아갈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돌아서지 않았습니다. 할 수 있는 일을 찾았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계신 그 집의 지붕으로 올라가 지붕을 뜯어내고 그 병자가 누운 상을 달아내렸습니다. 정말 어처구니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들의 이웃이요, 형제요, 친구인 그 병자를 위하여 이같은 일을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그 병자를 예수님께로 데려갔습니다.
예수님께로 갈 수 없었던 그가 예수님께로 나아가게 되었습니다. 그것도 자신의 의지와 자신의 발로 걸어서 간 것이 아닙니다. 타인의 의지와 타인의 행동에 의하여 간 것입니다. 이것이 은혜요, 은총입니다.
⑶ 죄사함입니다.
본문 5절에 예수께서 저희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소자야, 네 죄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라고 하였습니다.
[소자야, 네 죄사함을 받았느니라]고 하는 이 말은 [너는 죄를 지은 사람이 아니더냐 너는 그 죄로 인하여 눌리고 괴로와 하였지만, 이 시간 너가 지은 죄는 다 사하여졌다]고 하는 복되고 기쁜 소식이 아닙니까
얼마나 듣고 싶었던 소리입니까 얼마나 기다렸던 말입니까
여러분!
여러분이 어릴 적에 아버지나 어머니 몰래 일을 저지러 놓았습니다. 그래서 벌벌 떨고 있을 때, 아버지가 손을 잡아 주시며, 괜찮아, 괜찮아, 내가 용서하마. 다음부터는 그렇게 해서는 안된다라고 했을 때 즐겁지 않던가요 안도의 한숨을 내 쉬어 보지 않았습니까
우리는 그 사람이 어떤 죄를 지었는지 모릅니다. 살인을 했는지 도둑질을 했는지 간음을 했는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는 죄인이었습니다. 예수님 앞에서는 숨길 수 없는 죄인이었습니다.
죄인이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자기 죄를 용서받기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자기 구원을 위하여 할 수 있는 일도 없습니다. 자기 죄를 용서받기 위해서 한다고 하는 일이나, 자기 구원을 위하여 노력한다고 하여도 그 일들은 모두 자기를 멸망으로 이끌고 가는 죄만 될 뿐입니다. 무능하고 무능한 죄인입니다.
이 세상을 살다가 떠났거나 현재에 살고 있거나 앞으로 또 이 세상을 살고 갈 모든 인류는 다 죄인입니다. 조상 아담의 육체적 혈통으로 태어난 모든 인류는 다 죄인으로 하나님의 영원한 형벌을 받아 영원히 영원히 멸망받을 죄인들입니다(롬3:23, 6:23).
병고침 받기를 원하여 예수님께 나아 온 그에게 예수님은 죄문제부터 해결 해 주었습니다. 중풍병자, 사람들은 그를 병자라고 아쉬워하고 안타까와 했지만 예수님은 그 사람을 죄인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의 죄를 다 용서해 주었습니다.
사실 인생이 겪는 숱한 질고는 죄로부터 기인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죄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은 채 질병만 고쳐 놓는 것은 무의미한 것입니다.
그 분이 소자야, 네 죄사함을 받았느니라고 한 것입니다. 죄를 용서 받았다고 하였습니다. 이 얼마나 기쁘고 즐거운 소식입니까 얼마나 기다리던 음성입니까 희망적이고 생명적인 말씀입니까
내가 너를 용서했노라 너의 많은 죄가 사하여졌다
인생이 들을 수 있는 숱한 말 가운데 가장 반갑고 반가운 말씀이 바로 이 말씀입니다. 이 말씀보다 더 기쁘고 즐거운 말은 없을 것입니다. 이 말이야말로 복음 중의 복음입니다.
⑷ 그를 위하여 변호해 주신 것입니다(7-10).
그 병자를 향하여 소자야, 네 죄사함을 받았느니라고 하는 말씀을 하자 거기 있었던 어떤 서기관들이 이 사람이 어찌 이런 말을 하는가 오직 하나님 한 분 외에는 누가 능히 죄를 사하겠느냐고 하였습니다. 그 때 예수님은 어찌하여 이것을 마음에 의논하느냐고 하시며 그 병자를 위한 변호를 하였습니다.
그러나 인자가 땅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하노라
예수님은 죄를 사하여 주시는 주님입니다. 그 분만 인생이 저질러 놓은 모든 죄를 다 용서하실 수 있습니다. 그 분은 죄인을 찾아 구원하려고 세상에 임하신 구주이기 ㄸ문입니다. 그 분은 십자가 위에서 보배 피를 쏟아 죽으심으로 우리의 온갖 죄악을 용서하신 영원한 중보자이신 주님입니다.
그 병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그 중간에 있어서 그를 대신하여 말씀하고 계시니 그가 두려워할 것, 걱정할 것, 염려할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이것이 은혜입니다.
⑸ 병고침입니다(11-12).
본문 11-12절에 내가 네게 이르노니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하시니 그가 일어나 곧 상을 가지고 모든 사람 앞에서 나가거늘......이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자기 앞에 있는 불쌍한 중풍병자를 향하여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네 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고 하였습니다.
이 세상에서 이같은 말을 할 수 있는 자가 어디 있습니까 말씀 한 마디로 죄를 사하고, 병을 고쳐주실 수 있는 자가 어디 있습니까
예수님만 그렇게 하실 수 있습니다. 이유는 그는 우리 죄의 값을 다 치루어 주신 죄인의 구주요, 우리의 약함과 질고를 다 담당하신 영원한 영생의 구주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가버나움의 한 중풍병자가 받은 은총들을 생각하였습니다.
그 사람은 병자였습니다. 고질적인 아픔을 지니고 살던 사람입니다. 질병 때문에 이 세상을 허덕이면서 날마다 괴로워하던 자였습니다. 그 스스로는 어떤 것도 할 수 없었던 죄인이었습니다.
그 사람이 은총을 입었습니다.
예수님이 오셨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예수님은 구주라는 아름다운 소식을 들었습니다. 예수님에 관한 소문은 행복한 소문입니다. 즐거운 소문입니다. 나를 기쁘게 하고 이웃을 기쁘게 하고 민족을 기쁘게 하고 세계를 행복하게 하는 소문입니다.
그 소식이 전하여 졌던 것입니다.
예수님께로 나아가게 된 것입니다.
남의 등에 업혀서 왔던지, 끌려 왔던지 예수님께로 오게 되었다는 것은 참 즐겁고 행복한 일입니다.
이 둘은 선한 이웃들에 의하여 받은 은총입니다.
그 다음 그 병자는 죄의 문제를 해결받았습니다.
예수님의 변호를 받았습니다.
자신의 무서운 질병까지 고침을 받았습니다. 이것이 그가 가버나움에서 받은 은총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모두는 절망의 사람이었습니다. 지옥의 사람이었습니다. 살아있으나 산 자가 아니요, 죽은 자였습니다. 멸망의 자식, 진노의 자식, 마귀의 노예된 자였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주님의 은혜를 받았습니다. 은총을 누리고 삽니다.
예수는 구주라고 하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 예수만 믿으면 죄사함받는다는 용서의 복음을 받았습니다.
이 무슨 은혜입니까 왠 은혜입니까 왠 사랑입니까
우리는 우리 스스로 예수님께 나아갈 수 없었던 죄인이 아니었습니까
절망 가운데서 살고, 흑암 중에서 살아야 했던 영죽어 마땅한 죄인이 아니었습니까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하나님의 은총을 얻었습니다. 중보자 에수님의 은혜로, 성령 하나님의 이끄신 은혜로 말미암아 이 크고 놀라운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 분을 만나고 그에게서 죄용서함을 받고 새생명을 얻었습니다. 그는 우리에게서 우리의 죄과를 멀리 두셨습니다. 주의 등 뒤로 던져버리셨습니다.
이 복을 받은 저와 여러분! 할 일이 있습니다.
⑴ 사람을 예수님께로 인도하는 일입니다.
로마서 10장 13-15절에 누구든지 주의 이름으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그런즉 저희가 믿지 아니하는 자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료,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발이여......라고 하였습니다.
⑵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사는 것입니다.-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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