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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거라사의 귀신 (막 05: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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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한 종교단체에서 조사 보고된 내용을 보면 우리나라의 교회가 지난 90년을 전후하여 하나의 전환점을 맞이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현재 교회에 출석하고 있는 자들에게 문의한 결과 43%가 '교회를 떠나고 싶다'는 것이었다. 떠나고 싶으나 떠날 수 없어서 그저 머물러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미 교회를 떠난 자들에게 다시 교회로 돌아 오고 싶은가를 조사를 해 보니 50% 이상이 '다시는 교회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대답하였다는 것이다.
오늘의 교회에 왜 이와같은 현상이 있을까 이것은 교회가 지난 60년대 70년대 80 년대를 지나면서 세대를 간파하지 못한데 그 이유가 있다. 요즈음 한참 인기가 있는 은행상품이 있다. 소위 '차세대 통장'이라는 것으로 부모들이 자라나는 자녀들을 위하여 마련하는 예금으로 학자금이나 결혼자금 그리고 주택자금 마련에 좋은 상품이라고 한다. 소위 말하는 바 '차세대'라는 뜻은 적어도 다음에 오는 시대적인 흐름이나 어떤 무리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우리가 이와같이 차세대를 미리 간파하지 못하면 모든 일에 뒤 쳐지는 후진성을 면할 수 없다.
지금 세상은 급변하고 있다. 장작을 지피던 50년대가 아니다. 연탄을 사용하던 60년대도 아니다. 풍요를 구가하며 기름을 사용하던 70년대도 아니다. 80년대의 소위 가스사용의 시대도 아니다. 90년대는 무엇을 사용하는가 지금은 전기 혹은 레이저의 시대이다. 그러고 보면 우리의 시대는 지금 10년을 주기로 무섭게 변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시대의 변화와 도전이 어떤 것인지 제대로 파악도 하지 못하면서 거의 무방비 상태로 노출되어 있는 것이 오늘의 교회이다. 이것은 매우 걱정이 되는 일이다. 오늘 날 정당의 이합집산은 우리나라 뿐 아니라 세계 모든 나라들에서 보게 된다. 그들이 사는 길이 그 방법 밖에 없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여야 정치인들이 정치개혁법을 무리없이 수용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모 재벌기업이 출퇴근시간을 앞 당기고 Re-Enginering을 하는 것은 새로운 돌파구를 찾자는 것이다. 얼마 전 우리나라 증권가에서는 억대 증권 중개인이 생겼대서 화제를 일으켰다. 돈 버는 기술 뿐 아니라 시간사용에 대한 기술이 논의되고, 세계적인 사조들이 쉴 틈도 주지 않고 밀려 들고 있다.
우르과이 라운드(UR) 때문에 농수산 장관이 몇명 바뀌고 엊그제는 국무총리가 전격 경질되는 일이 일어났다. 우리나라의 농촌과 정가에서 피를 토하며 괴로워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그것들을 미리 내다보면서 영농을 펼쳐 온 사람도 있다. 미리 대처해 온 사람들에게는 그것이 그렇게 큰 문제가 아니다. 우리가 이것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우리 교회에도 E-Land 직원이 몇분 계신데 그 회사 간부들은 UR이 오기를 5년 동안 기도하였다고 한다. 그 이유는 그래야 전 세계를 무대화할 수 있으며 그들의 사역이 지구화 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그들은 UR 에 대한 대비를 5년 전에 이미 다 끝냈다는 것이다. 단지 무역장벽 때문에 세계로 나가지 못하였을 뿐이라는 것이다.
UR은 21세기를 준비하지 않은 자들에게는 매우 난감한 현실일 뿐이다.
모든 일에 그렇지만, 준비하지 않은 자는 당황하기 마련이고 무슨 일이든지 재앙으로 생각될 뿐이다. 변화를 싫어하고 전통적인 틀에서 벗어나기를 주저하다 보면 생존경쟁에서 저만치 낙후된 자신을 발견하고 후회를 하게 된다.
12제자들을 선택하신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천국 복음을 가르치셨다.
마가는 씨 뿌리는 비유가 가장 인상적이었던 모양이었다. 4장에서 그것을 비교적 자세하게 기록하였다. 바람과 파도를 잠잠하게 하신 것도 매우 감동적이었다. 저가 뉘기에 바람과 바다라도 순종하는가 싶었다. 갈릴리 바다 건너편 거라사에 들어가 한 귀신 들린 사람을 만나 그를 고치신 것도 생각 밖의 일이었다.
그러나 이것은 오늘 우리의 현실이다. 누구나 다 평안하고 즐거운 일들이 있기를 소원하지만 세상은 파도치며 덤벼들고 귀신들린 사람이 튀쳐 나오는 세상이다. 귀신들린 사람이 무덤 사이에서 먼저 알아보고 예수님 앞에 뛰쳐나온 것 처럼 생각 밖의 일들이 우리들의 면전에 놀라움을 던져 놓는 일이 많다.
사실 귀신의 존재는 그렇게 달가운 존재는 아니다. 귀신이 안주해 온 곳은 무덤이었다. 유대인들은 동굴을 파서 그 안에 시체를 두었다. 귀신이 무덤 가운데 거한다는 것은 바로 동굴 속에서 시체들과 함께 살았다는 것이다. 귀신은 사는 곳과 하는 짓이 다 더럽다.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무덤 가운데 살리가 없는 것이다. 귀신은 그 힘이 강하여 도무지 통제불능이다. 뿐 만 아니라 아주 간교하다. 뱀이 두개의 혀를 사용하는 것 처럼 참말과 거짓말을 교묘하게 섞어서 사람들을 혼란에 빠지게 한다. 귀신은 소리 지르기를 좋아한다. 제 몸을 상하면서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 나서지 않아도 될 곳에 나서기 좋아하고 조용하게 말할 수 있는데도 공연히 소리를 지르고 화를 돋군다. 한마디로 귀신은 부끄러운 줄도 모르며 화인 맞은 것과 꼭 같다. 귀신은 누구인가 마귀의 하수인이다. 귀신은 인간을 괴롭히고 불행과 절망을 만들어 내는 파괴주의자이다.

1. 귀신은 인격을 파괴한다.
사람이 사는 동안은 누군가와 부대끼며 살게 마련이다. 경우에 따라 사람만나는 것이 무서운 때도 있으나 서로 함께 한다는 것은 얼마나 좋은 일인가 등산을 하다보면 때로 무덤이반가울 때가 있다. 비록 죽은 사람이지만 그래도 등산하는 사람에게 외로움을 덜어줄 수 있어서 무덤에 베이스를 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하룻밤의 일일 뿐 언제나 무덤 동굴 속에 거하며 쇠고랑을 끊으며 되는대로 소리를 지르며 돌로 제 몸을 상하는 경우란 인격이 파괴된 자가 아니고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인격이 파괴된 것은 생각이 잘못된 것이다. 사람 구실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귀신이 노리는 일이다. 귀신은 한 사람이라도 더 무질서하고 방종하고 타락한 삶을 가지고자 애를 쓴다.

2. 가정을 파괴한다.
마귀가 노린 제일 첫번째 가정은 에덴동산의 아담의 가정이다. 마귀는 행복한 아담의 가정을 파괴하였다. 마귀가 택한 방법은 여자 하와를 통하여 그의 감성을 자극한 것이다.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 열매를 볼 때 '먹음직하고 보암직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로 여겨지게 하였다. 여인은 손을 뻗어 열매를 따 먹었다.
오늘도 마귀가 노리는 것은 가정의 파괴이다. 부부간에 이혼을 재촉하고 온갖 유혹으로 청소년들에게 가출을 충동하고 이성간에 욕정으로 불 타오르게 하는 일은 가정을 파괴하고자하는 마귀의 수순이다.

3. 마귀는 교회를 파괴한다.
교회가 성장하고 발전하는 일을 가장 싫어하는 것은 누구인가 마귀이다. 왜 그런가 교회가 성장하면 자기들의 영역이 그 만큼 좁아지기 때문이다. 교회가 성장한다는 것은 마귀들에게는 비상이다. 그러나 교회가 잠잠하고 활동을 멈추게 되면 마귀도 함께 잠을 잘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교회가 큰 소리로 기도하고 전도하고 봉사하느라고 분주해 지면 그들 마귀에게는 비상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동안 교회는 이단활동을 통하여 교회를 깨트리려 하였다. 때로는 정치집단이나 권력의 힘을 통하여 교회를 무너 트리려 하였다.
지식인이나 혹은 신학자들을 통하여 교회 안에 내분을 일으키기도 하였다. 때로는 크고 작은 문제들이 일어나 교회가 분란에 휩싸이게도 하였다. 이 모든 일들은 교회가 성장하는 것에 대한 마귀의 책략임을 크게 깨달아야 한다.
얼마 전에 불교계에서 일어난 불상사가 있었다. 스님들의 세계에서 어떻게 이런 복잡한 일들이 있을 수 있는가 의심스럽지만 이것은 오래 전부터 있었던 불교계의 현실이다. 그러나 이러한 일들이 그곳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예루살렘 망대가 무너진 것이 너희보다 죄가 많아서 그리 된 것이 아니라 너희도 회개하지 않으면 다 이와같이 망하리라는 주님의 경고를 깊이 생각할 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은 교회의 자각을 바라시면서 먼저 불교계의 치부를 드러내신 것으로 알아야 할 것이다. 즉 하나님의 경고인 것이다.

4. 마귀는 평화를 싫어한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비유 가운데 가라지 비유가 있다. 주인은 밭에 좋은 씨를 뿌렸다. 그런데 밭에 가라지가 함께 자라고 있었다. 이유가 무엇인가 악한 자가 밤 중에 와서 가라지를 뿌리고 간 때문이다.사도 바울이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에 대하여 확실하게 가르쳐 놓았는데 어떤 유대인들이 와서 그래도 '할례'를 받아야 한다고 가르침으로 율법을 따라야 한다고 가르쳤다. 오늘 그리스도인들에게 가장 위험스러운 일이 무엇인가 1) 지나친 율법주의를 가르침으로 무거운 짐을 그 어깨에 지우는 일과
2) 지나친 자유주의로 그리스도인의 책임조차 망각하는 일이다.
한 가정에서 부부는 권리만 있지 않고 의무와 책임이 있다. 한 집안 형제끼리에게도 권리가 있는가 하면 의무와 책임이 있다. 만일 권리만 행사하고 자신에게 맡겨진 의무와 책임을 수행하지 않는다면 사람들은 이 일로 불평을 하게 된다. 마귀는 바로 이 점에 착안하여 사람들의 마음 속에 불평을 일으킨다. 불평많고 분쟁 많은 고린도 교회를 향하여 바울은 '하나님이 어지러움의 하나님이 아니라 질서의 하나님이심'을 분명하게 말하였다. 평화를 깨는 일은 마귀의 주된 사업 중의 하나이다.

5. 마귀는 신앙을 파괴한다.
신앙이란 그 대상이 반드시 있다. 우리의 신앙의 대상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런데 마귀는 예수 그리스도 대신에 다른 것을 올려 놓았다.
3M(mammon, money, marchine), 3S(sports, speed, sex) 요즘 말하는 소위 신 세대들은 컴퓨터, 자동차, 그리고 핸드폰 혹은 삐삐를 선호한다고 한다. 어떤 통계에 따르면 요즘 20-30대들 중 50%가 자동차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기성세대가 '황성 옛터'를 노래하고 '두만강 푸른 물'에 눈물을 뿌리는 동안 신세대들은 '서태지'를 노래하고 '마지막 승부'에 인생을 던지고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문제의 해결은 언제나 원점으로 돌아가야 한다. 물 속에 빠진 사람이 솟구칠려면 그의 발이 땅에 닿아야 치고 오를 수 있다. 잃어버린 신앙을 찾으려면 처음 은혜받던 그 자리에 돌아가야 한다. 유월절에 예루살렘에 올라갔던 예수를 잃어버린 그의 부모는 아이 예수를 찾기 위하여 다시 사흘길을 걸어 예루살렘으로 돌아 갔다. 거기에서 부모는 예수를 만날 수 있었다. 오늘의 교회가 교회의 본질을 잃었다고 한다. 그러나 탄식할 것만이 아니다. 교회의 본질로 돌아가야 한다. 썩었다는 말을 하기는 쉽다. 그러나 그것을 도려내는 일은 누군가 해야 하지 않겠는가 수술은 환자와 보호자의 동의없이 의사 혼자서 처리하기 어려운 일이다.
사단이 밀까부르듯 할 때에 예수는 베드로의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 위하여 간절하게 기도하였다. 유흥업소에서 보내는 시간이나 팁으로 꺼내주는 액수는 아까워 하지 않으면서 하나님 앞에 드리는 시간과 물질은 마치 큰 손해 보는 것 처럼 인색하지 말자.
우리는 이 시간 주님께서 귀신들린 사람에게 명령하듯이 명령해야 한다.
'귀신아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 이것은 오늘 이 시대를 살아 가는 우리들에게 매우 절실한 요구이다. '인격을 파괴하고, 가정을 파괴하고, 교회를 파괴하는 귀신아 나가라!' 이것은 우리들 스스로에게 명해야 한다. 평화를 깨드리고 신앙을 파괴하며 우리에게서 모든 행복과 안정과 질서를 파괴하는 모든 귀신은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쫓아내야 한다. 그 후에 우리들은 이 기쁜 소식 곧 주께서 우리들에게 어떻게 큰 일을 행하셨는지를 모든 사람들에게 나타내는 생활을 해야 한다. 이것은 주님의 명령이다. 오늘 본문 19 에서 주님은 '집으로 돌아가 주께서 네게 어떻게 큰 일을 행하사 너를 불쌍히 여기신 것을 네 친속에게 고하라.'
여러분이 은혜를 받은 사람이라면 받은 바 은혜를 모든 사람들에게 전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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