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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문을 두드리는 그리스도 (계 03: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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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멘이시요,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요, 의 창조의 근본이신 주님께서 라오디게아교회에 나타나셔서 하신 말씀이 바로 본문이다.
본문을 통하여 주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귀한 음성을 들으시기 바랍니다.

1. 두가지 책망1) 소극적 태도를 책망(15) 미지근하여 차지도 않고 덥지도 않다.
덥고 차다는 것은 두가지로 해석한다.
하나는 더운 것은 복음을 믿음으로써 사랑과 열심이 가득한 상태를 말한다. 반면 차다는 말은 전연 복음과 접촉이 없는 불신상태를 말한다. 이런 의미에서 미지근한 것은 되지도 못하고 된줄로 아는 가증한 태도를 말합니다.
다른 하나는 더운 것은 뜨거운 신앙, 찬 것은 냉철한 신앙을 의미한다.
이런 의미에서 미지근하다는 것은 어정쩡한 신앙생활을 말합니다.
신앙생활은 본래 뜨거움에 이르러야 합니다. 미지근한 태도는 찬 태도(무신앙)보다 못합니다. 주님은 적극적인 신앙을 원하시며 미온적인 태도를 버리지 않는 자는 토해낸다고 말씀하셨습니다.(16) 이것은 주님은 그들과 교제하지 않겠다는 경고의 말씀입니다.
특별히 주님은 오늘 라오디게아교회를 향하여 이런 말씀을 왜 하시고 계신가
그들의 미지근한 신앙, 그들의 무관심에 대한 책망의 말씀을 하시고 계십니다.
신자임을 자처하면서 스스로 교만하여 영적 향상이나 도덕적 노력에 전혀 무성
의한 그런 사람들 보다 차라리 아무 신앙적고백이 없이 도덕적으로 심령적으로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다고 자인하는 자들이 훨씬 소망이 있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신앙생활을 부정하는 말은 아닙니다)
예수님의 태도에서 우리는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를 생각해봐야 합니다.
예수님는 신앙인의 생활에는 무관심하고 종교적인 열심만을 내는 바리새인을 책망하셨습니다. 그러나 전혀 신앙적이지 않은 세리에 대하여 깊은 관심을 가지셨다. 라오디게아 교회는 자기가 미지근한 형편에 있다는 사실을 알지도 못하고 알려고도 하지 않는 교회였습니다.
예수님은 달란트의 비유를 통하여 한 달란트를 땅에 묻어둔 종에게 책망과 더불어 나라에 참여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 종의 소극적인 그런 자세가 책망의 원인입니다.
열심을 품고 뜨거운 성도가 되길 바랍니다.
2) 스스로 부유한 체하는 것을 책망하고 있습니다.(17)
라오디게아교회는 곤고하고 가련하고 가난하고 눈멀고 벌거벚은 교회이나
스스로 말하기를 부요하다 만족하다 자랑하는 교만한 교회엿습니다.
라오디게아 교회의 비극은 자기 부요만 알고 가난을 모르는 것입니다.
인간의 눈으로 볼 때, 인간의 표준으로 볼 때 소아시아 교회중에서 라오디게아
교회처럼 부요한 도시는 없습니다. 그러나 영적인 면에 있어서, 정신적인 면에 있어서 라오디게아 교회처럼 가난한 교회도 없다.
믿음이 좋다. 성경을 많이 안다. 기도를 잘한다. 열심이 있다.
하면서 진정으로 행함이 없는 신앙인들을 볼 수 있다.

2. 엄숙한 권면
이 비참한 처지에 놓여 있는 교회에 대하여 주님은 실망하지 아니하시고 안타
까운 심정으로 이 탕자같은 교회를 권면하고 계십니다.1) 세가지를 사라
ㄱ.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라(18)
시련과 승리로 정화되고 강력해진 생기있는 믿음을 말합니다.
ㄴ. 흰옷을 사서 입어 벌거벚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라(18)
흰옷은 의의 옷을 말합니다.
ㄷ. 안야 ㄱ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하라고 햇습니다.(18)
안야 ㄱ은 기름을 말합니다. 성령
2) 열심을 내라(19)
열심은 크리스챤이 종말까지 유지해야할 신앙태도 입니다.
바울은 크리스챤을 경주하는 사람에 비유하였습니다. 상을 받기까지 열심을
내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3) 회개하라(19)
미온적인 태도에서 전환하라
죄의 수치에서 돌아서라는 것입니다.

3. 주님의 약속1) 주로 더불어 교재(20)
문 밖에 서서 문을 두드리는 주님의 모습.
우리는 이 주님이 문을 두르리는 장면을 연상하며, 그림을 생각해봐야 한다.
주님의 이 음성은 경고와 협박의 음성이 아니라 호소와 사랑의 음성입니다.
솔로몬의 노래 중에 그런 상황을 노래하는 모습.
이것은 나를 사랑하는 이가 문을 두드리어 나의 누이, 나의 사랑, 나의 비둘
기, 나의 순결한 자야 문을 열라는 소리다.
여러분 사랑하는 주님은 우리의 마음문을 두드리고 계십니다.
기독교가 다른 종교와 다른 점은 있다면 사람이 을 찾는 것이 아니라 이
몸소 사람을 찾으신다는 신앙입니다.
예수님은 라오디게아 교회를 향하여 또 지금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향하여 친히 부르시며 문을 두드리고 계십니다.
내 소리를 들고 문을 열면 내가 저희에게 들어가 저로 더불어 먹는다
마음 문을 열기만 하면 더 깊은 사귐이 있다는 말입니다.
저로 더불어 먹는다의 의미를 파악해야 한다.
헬라인은 3끼 중에 아침은 마른 떡 한조각을 포도주에 찍어 먹을 뿐이다. 점
심은 집으로 가는 일 없이 어디나 있는 장소에서 잠깐 입가심을 하는 것이다. 저녁식사는 세끼중에서 가장 잘먹는데 하루 일을 끝내고 가족들과 함께 앉아 여유있게 먹고 마시며 단란하게 지냅니다. 더불어 먹는 다는 것은 바로 이런 상태를 말합니다.
그것은 잠깐 앉거나 서서 먹는 간단한 식사가 아니라 한가로이 앉아 친교를 하
며 즐기는 애찬입니다. 예수님은 친밀한 교재를 원하십니다. 친밀한 교재를 야 ㄱ속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오늘 우리의 문을 두드리고 계십니다. 예수님은 강권적으로 우리의 문을 열고 들어 오시지를 않습니다. 두드리고 계십니다. 비가와도 눈이와도 추워져도 그 문이 열릴때까지 예수님은 문 밖에 두드리고 계십니다.
마음문을 열고 주님을 영접하여 깊은 사귐, 친교를 나누는 성도.

2) 주와 함께 다스립니다.(21)
그리스도와 함께 만민을 다스리는 왕노릇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므로 말미암아 왕노릇할 수 있다.
물질에 종,
명예의 종,
성공의 종,
지식의 종,
출세의 종,
사단의 종,
그리스도가 내 안에 계시면 우리는 그 모든 것을 다스르는 자리에 임할 줄 믿
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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