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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빌라델비아 교회의 주님 (계 03: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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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모든 사람들의 마음 속에 본능적으 로 지워지지 않는 가장 큰 감정이 하나 있다면 바로 불안과 공포의 감 정입니다. 이 세상 사람들의 대부분이 불안과 공포감으로 항상 마음이 편치 낳은 상태로 살아가는데, 그런 유형의 사람들을 다섯가지로 분류 할 수 있습니다.

첫째로,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영적인 불안을 느끼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신앙적으로 불안한 사람들 중에 아담과 하와가 있습니다.아담아! 네가 어디에 있느냐고 물어오시는 하나님의 질문 에 아담은 말하기를 제가 선악과를 먹고 범죄한 이후에 내가 옷울 벗은 것을 알고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오늘 아담과 같이 자기의 참 모습은 하나님 앞에 숨긴 채, 형식적인 기도의 대화만 을 나누고, 형식적인 찬송만을 주님께 드리며, 형식적으로 신앙의 에 덴에 숨어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둘째로, 사람을 두려워 하는 사람들입니다. 이십 년 전 헤어졌던 에 서가 사백 명의 군사를 거르니고 자기를 죽이러 온다는 절박한 상황앞 에서 사람을 두려워 하는 유형의 사람이 야곱이었습니다. 그는 말 잘 하는 사람들과 많은 선물을 보내면서 에서의 마음을 어떻게든지 풀어 보려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비굴하게 살았습니다. 오늘도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두려워하는 사람들에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비위를 맞춰가며 비굴하게 세상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셋째는, 환란 앞에 불안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베드로와 같은 사람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멀찍이 좇아서 대제사장 가야바의 뜰 에까지 갔습니다. 신앙의 거리감은 생겼을지라도 예수님을 떠날 수는 없어서 여전히 주님을 좇아 갑니다. 하속과 군인들이 불을 쪼이고 있 는 가야바의 뜰에 들어가 스스럼 없이 그중의 한 사람으로 섞여서 불 을 쪼이고 있었습니다.

오늘의 우리도 자신의 앞에 닥친 환란과 어려운 문제 앞에서 거기에 패할까,역경에 쓰러질까 두려워서 하속들 사이에 끼어있던 베드로처럼 불의의 자리, 타협의 자리에 스스럼없이 서면서 세상을 살아가려고 합 니다.

넷째는, 역경을 헤쳐 나갈 방도를 알지 못해 불안한 사람들입니다.

열왕기하 6장에 보면 이른 아픔에 게하시는 엘리사를 향해 외칩니다.

야아, 하나님의 사람이여! 우리가 어찌 하리이까 아람군대가 도단성 을 에워싸 우리를 잡으려고 합니다. 어떻게 하면 해결되겠습니까 우리의 인간 세상에도 도단성을 둘러싼 아람군대와 같이 인간의 힘으 로 해결할 수 없는 인생의 방해꾼들이 너무도 많아 어떻게 해결하고, 어떻게 대처해 나가야 할지를 몰라서 불안과 초조와 공포에 떨고 있는 신자들이 많습니다.

다섯째, 시대의 조류와 사조의 이데올로기의 변화를 느끼고 불안한 사람들입니다. 헤아리기 어려운 세상의 바람, 정치세력의 판도, 시류 를 따라 오는 줄을 잡아야 할지, 누구를 의지 해야 할지, 어떤 처세를 해야할지 그것이 불안한 것입니다.

실존주의 철학의 태두인 케이르 케고르는 사람의 불안과 공포 속에 살게 되면 그것 때문에 죄를 짓고 죄에 빠질 수도 있지만 반대로 그것 이 있다고 간파하여 자신의 실존철학의 출발점을 불안이라고 두 글자 에 두었습니다. 확실히 이 세상은 철학적인 관점에서 볼때에도 불안한 것만은 틀림이 없습니다.

시편 42편에 보면 네 영혼아 어찌하여 네가 낙망하며 어찌하여 네가 불안해 하는고라고 세번 씩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인간의 심령 속에 들어있는 불안과 공포에 대한 것을 들어내 보임으로써 인간 본질 의 껍질을 벗겨 보려는 노력인 것입니다.

여러분은 왜 불안합니까 성경은 우리들에게 불안과 공포를 가져다 주는 여러가지 이유를 말하고 있습니다.

 1. 죄 때문에 인간은 불안하고 말합니다.

자신을 찾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몸을 숨겼던 아담은 왜 즐거 움의 동산인 에덴에서 불안과 두려움 속에 있었습니까 죄를 짓고서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가인이 동생 아벧을 죽이고 그가 받게될 벌을 선고 받은 후 하나님께 고백하기를 내 죄벌이 너무 중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라고 하면서 사람들에게 죽임을 당할까 불안 하게 되어 있습니다. 큰 죄를 지으면 큰 불안이 따르고 작은 죄를 지 으면 작은 불안이 따르게 마련인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다 죄인입 니다. 죄를 짓고 나서 생기는 불안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바로 지옥 에 갈까봐 생기는 불안인 것입니다. 죄는 우리에게 지옥에 대한 공포 와 하나님의 진노에 대한 무서움을 주기 때문에 불안과 두려움을 가져 다 줍니다.

 2. 현 생활이 점점 몰락의 길을 걸어가면 사람들은 불안해 집니다.

시편 42편 4절로 5절을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내가 전에 성일 을 지키는 무리와 동행하여 기쁨과 찬송의 소리를 발하며 저희를 하나 님의 집으로 인도하였더니 이제 이 일을 기억하고 내 마음이 상하는도 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

예전에는 주일성수도 잘하고 기쁨으로 충만했으며 많은 사람들을 하 나님의 교회로 인도했습니다. 헌금도 잘하고 찬양도 열심으로 했으며 하나님의 뜻대로 사느라고 노력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과거의 잘 했던 신앙생활을 생각하며 현재 내 신앙이 형편없이 떨어진 것 때문에 가슴이 아픕니다. 스스로의 마음 속에 신앙의 상처가 생기면서 불안 해 합니다. 그러나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여러분이 무릎꿇고 3-4시간 기도하는 것만 기뻐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아프면 아픈대로,엎드려서 라도,누워서라도 현재의 처지에서 충실히 기도하는 것을 기뻐하시는 것입니다.기도의 생활이 메마르고 말씀보는 생활이 메말라 보십시오.

처음에는 답답하가도 나중에는 성경을 펼치려면 힘들어 집니다. 기도 하려고 앉으면 기도가 안나오고 다리가 아파옵니다.그때 쯤이면 가망 이 없어집니다. 신앙생활이나 세상생활이나 점점 더 약해지고 몰락되 어 가면 어쩔 수 없이 불안해지고 두려워지게 되는 것입니다.

 3. 사람은 욕구를 채우지 못하면 불안해 집니다.

열왕기상 21장 4절에 보면 아합왕은 그렇게 재산이 많은데도 자기 왕 궁의 답벽에 붙어 있는 나봇의 포도원을 자기 것으로 만들려는 요구를 이루지 못하게 되자 근심하고 답답하여 궁으로 돌아와서 침상에 누워 얼굴을 돌이키고 식사를 아니하니라고 했습니다.

오늘날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많은 성도들이 자신의 허황된 욕구 를 충족시키지 못하기 때문에 불안해 하는 경우를 너무도 많이 봅니 다. 다른 사람에게 빼앗길까봐, 다른 사람에게 기회가 넘어 갈까봐, 다른 사람보다 못할까봐, 다른 사람보다 안될까봐서 입니다.

 4. 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을 때 사람들은 불안하고 초조해 집니다.

야곱이 그의 형 에서가 사백임을 거느리고 그에게로 온다는 말을 듣 고 '심히 두렵고 답답하여'하나님께 드린 창세기 32장의 기도는 겁과 두려움에 꽉 찬 기도입니다. 오늘 성도들이 새벽기도, 철야기도에서 부르짖는 기도를 들어보면 눈물이 쏟아집니다. 얼마나 두려움 가운데 드리는 기도들인지 모릅니다.

그리고 신앙과 현실의 갈등속에서 마음에 생기는 현상도 있습니다.

네가 가진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 르라고 하는 주님의 명령을 들은 청년부자는 근심하며 집으로 돌아갔 습니다. 믿기는 믿어야 되는데 해결해야 할 것은 해결하지 않습니다.

천국은 가긴 가야겠는데 세상재미는 끊을 수가 없습니다. '내가 천국 에는 가지 못할걸'하는 불안 때문에 항상 무거운 마음으로 예배를 드 립니다.

만약에 여러분이 예배를 드리고 돌아갈 때에 마음에 기쁨과 감격, 회 개와 눈물, 은헤와 축복, 가벼운 마음을 가지지 못하고 세상재물이 많 으므로 근심하고 돌아가던 부자청년과 같이 근심과 불안한 마음을 가 지고 돌아간다면 예수를 아주 잘못 믿는 것입니다. 해결할 것은 해결 하고 신앙의 자리에 나와야 합니다.

 5. 사람은 곤경에 처할 때 불안해집니다.

본문 10절에서 네가 나와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내가 또한 너를 지키어 시험의 때를 면케 하리니 이는 장차 온 세상에 임하여 땅에 거 하는 자들을 시험할 때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 중에 '내가'는 예수님을 '너'는 빌라델비아교회의 성도들을 의미합니다.환란과 고통과 연단과 시험가운데 있는 빌라델비아교회의 성도들에게 예수님은 지켜주시겠다고 약속하여 주십니다.

오늘 우리들 중에도 빌라델비아 성도들과 같이 시련밥따고 연단받고 있는 성도들이 있습니까 어떠한 시련, 어떠한 연단과 어떠한 고통입 니까 하나님이신 예수님은 바로 이런 역경과 시련 속의 우리를 지켜 주시겠다고 약속해 주신 것입니다.

'내가 너를 돕고 지켜주겠다'에서 '테레오',즉 지켜준다는 뜻의 단어 는 참으로 감격적입니다. 너를 잃어버리지 애다도록 꼭 붙잡아 준다는 의미입니다. 네겔서 일순간도 눈을 떼지 아니하고 일거수 일투족을 살 펴주시고, 너를 붙잡아 주시고, 너를 놓치지 않게다는 주님의 말씀인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사망의 고통을 당하며 사는 이 땅에 인간으로 찾 아오셨습니다. 우리를 죄와 사망의 자리에서,마귀의 노예자리에서 건 져주시고 당신의 백성삼아서 천국에 가는 날까지 우리를 지켜주시려고 예수님이 오신 것입니다.

그러면 어떤 성도를 지켜주십니까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내말을 지 키며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이라고 말했습니다. 내가 세상에는 돈 도, 명예도,권력도, 배경도 없지만 그래도 믿음 생활을 바로하며 주님 을 따라가려고 생각하는 그런 믿음의 사람을 주님께서 굳게 붙잡아 주 실 것입니다.

그리고 어떻게 지켜주십니까 요한1서 5장 18절에 보면 하나님께로 서 나신 자가 저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저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지켜서 영원한 하늘나라에 데리고 가기 위하여 우리가 당하는 고통과 시련의 자리에 오셔서 그 고통을 위해 싸워 주시고, 그 환란을 견디게 해주시고,그 시련을 이기게 해주시는 우리의 보호자, 우리의 보디가드입니다.

우리 예수님은 사망 속에서, 불가능하다고 생각할 수 밖에 없는연단 과 시련 속에서 여러분을 꼭 붙들어 지켜주시고 살려주시고,일어나게 해 주시려고 오신 구세주이십니다. 그런 주님을 의지하고 사시는 여러 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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