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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이름없이 빛없이 섬긴 제자/유다 다대오 (눅 06: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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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이름과 배경
초대 교부 가운데 제롬(Jerom)이라는 사람이 있다. 제롬은 처음으로 성경을 라틴어로 번역한 학자였다. 이 제롬은 다대오를 “세 이름을 가진 제자”라고 불렀다.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에는 ‘다대오’라고 기록하였다. 그러나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을 읽어보면‘유다’라는 이름으로 기록되었다.
그래서 흔히 혼동을 일으키지 않으려 “유다 다대오”라고 부른다.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팔고 자살한 이후 마태와 마가는 다대오를 보호하기 위해 유다라는 이름을 사용하지 않았다. 제자들 사이에서 통용된 이름이 유다였기에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을 기록한 누가는 역사적 사실에 근거하여 그대로 ‘유다’라는 이름으로 기록하였다. 영어 성경에 보면 마태복음 10:3에 ‘레비어스’라고 쓰였다. 그렇기 때문에 제롬이라는 초대 교부는 ‘세 이름을 가진 사나이’라고 불렀다.
2)인물됨과 생애
성경에는 열 두 제자의 명단을 언급할 때를 제외하고 유다 다대오를 말한 곳이 단 한번 나온다.
“가룟인 아닌 유다가 가로되 주여 어찌하여 자기를 우리에게는 나타내시고 세상에는 아니하려 하시나이까(요 14:22)”
요한복음 13장에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는 장면이 나온다. 발을 씻기신 후에 예수님은 제자들과 만찬을 나눈다. 이 만찬이 끝나갈 무렵 예수님은 말씀을 시작하시고 그 말씀은 16장까지 계속 된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설교를 하시는 중간중간에 제자 몇명이 나와 예수님께 질문을 하게 되는데 그 말씀들이 14장에 나온다. 이중에는유다 다대오가 나온다. 일반적으로 질문은 누가 하는가 어떤 상황에 대한 관찰력이 있고,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사람이다.
다대오의 질문의 내용은 이렇다. “예수님의 진정한 본성이 메시야라는 사실을 제자들인 우리에게는 말씀해 주시고, 증거도 보여 주시고, 확신시켜 주셨으면서도 세상을 향해서는 주님 자신을 왜 나타내지 않으십니까” 이질문은 단순하게 보면 지적인 호기심으로 치부할 수도 있으나 다른 각도에서 보면 선교적 관심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주님이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빨리 세상에 알리셔서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당신을 믿도록 해야하지 않습니까” 이것은 예수님을 통해서 오는 놀라운 교훈과 진리를 자기만 독점하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그 사실이 알려지기를 원하는 선교적 차원에서 보는 각도와도 통할 수 있다.
포용력이 넓은 제자의 이미지를 우리는 이 질문을 통해서 생각할 수도 있다. 이상은 질문을 통한 유다 다대오 이해의 전부이다. 이번에는 이름을 통해 인물됨을 생각해 보자. ‘다대오’라는 말의 뜻은 “사랑스러운”이다. 다대오라는 말의 어근은 “도다”라는 말에서 나온 것인데, 이 말의 뿌리는 “찬양”이다. 또 하나의 별명인 레비야스는 본래 히브리 명사인 렛에서 나온 것으로 렛은 ‘가슴’이라는 뜻이다. 이 가슴은 육체적인 가슴 그 자체가 아니라 어떤 깊은 마음이나, 심정을 가리킬 때 쓰여지는 단어였다.
그러면 레비어스와 다대오 이 두 별명은 어떤 연관성을 지녔는가 이 사람의 성격은 다른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또 사랑을 주며, 그리고 깊이 있고 조용한 자신의 가슴을 사람들에게 전달할 수가 있었다. 이상이 성경에서 다대오를 살펴볼 수 있는 자료들이다. 우리가 더 자세한 내용을 알기 위해서는 주변의 자료들을 살펴보는 수 밖에 없다. 물론 이 자료들은 성경보다 우선할 수 없다. 다만 보조적인 자료로서 참고할 뿐이다. 초대 교회 문서 중에 열 두 제자를 비교한 것이 있다.
“또 하나의 유다는 가룟 유다와 여러 면에서 대조를 이루고 있었던 제자이다. 또 가룟 유다가 불평을 하고 있었을 때에 이 사람은 찬양하고 있었다. 가룟 유다가 옥합을 깨뜨린 여인을 향하여 불만을 터뜨리고 있을 때에 이 다대오는 조용히 찬양을 부르고 있었다.” 다른제자들이 분쟁을 일읕키고 아우성을 칠 때도 어느 편에도 가담하지 않고 중립을 지켰던 제자가 바로 다대오였다. 모든 제자들이 불평하고 원망하고 있을 때에 조용히 한 옆에서 주님을 찬양하고 있었던 제자! 유다라는 말의 뜻은 “찬양”이다.
그러나 가룟 유다는 좋은 이름을 가졌으면서도 이름 값에 먹칠을 하고 말았다. 반면에 유다 다대오는 이름 값을 훌륭히 감당했던 제자였다. 이 문서에서 보면 다대오는 모든 제자들 가운데 사랑과 인정을 많이 받았던 그러면서도 다른 제자들앞에 나서기를 꺼려하고 언제나 조용히 자기의 할일을 하던 제자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한 시인은 노래하였다. “오늘 이 시대에 있어서 사람들은 벽을 쌓으려고는 하지만, 다리를 놓으려고 하는 사람은 없다”
오늘 이 시대는 참으로 유다 다대오와 같은 제자가 그리워지는 시대이다.
3)죽음
유다 다대오는 훗날 시리아로, 아라비아로, 페르시아로 찾아 다니면서 복음을 전한다. 그는 특별히 아르메니아에서 주된 활동을 벌였다. 바돌로매와 더불어 동역하면서 그 도시 에뎃사에서 놀라운 선교의 활동을 펼쳤다. A.D 301년에 벌써 그 나라가 기독교화될만큼 복음으로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끼쳤다고 기록되고 있다. 그는 다시 해외에 선교하러 나갔다가 시리아에서 칼에 맞아 순교하였다.
4)교훈과 문제 제기
예수님은 왜 다대오를 제자로 삼으셨을까
$.밝은 면을 바라보는 습관 때문이다.
$.삶의 동기에 있어 이기적인 욕망보다는 이타적 사명이 얼마나 내 사람의 동기가 되고 있는가. 사
$.찬양과 감사를 생활화하는 삶의 태도이다.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로 서로 화답하여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엡 5: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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