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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민족에의 열망을 주께 바친 제자/가나안인 시몬 (행 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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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배경과 인물
열 두 제자 가운데 거의 성경에 자료가 없는 제자가 바로 가나안인 시몬이다. 성경에서 그의 배경에 관한 자료를 얻자면, 우리가 알 수 있는 자료는 두 가지 밖에 없다. 그 하나는 그가 가나안 출신이라는 것이다. 마 10:4, 막 3:18에 ‘가나안인 시몬’이라 기록하고 있다. 또 하나의 소재는 눅 6:15, 행 1:13에 ‘셀롯인’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마태와 도마와 및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및 셀롯이라 하는 시몬과....(눅 6:15)” 이 말씀에서 ‘셀롯’이라고 표기한 옆에 아라비아 숫자로 1이라고 표기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성경 아랫 부분에 그 해석을 ‘열심당원’이라고 씌고 있다. 이 정도가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그의 전부이다. 열심당이란 예수님 당시에 아주 극렬한 민족주의자들의 집단이다. 이스라엘에는 ‘마사다’라는 유명한 관광지가 있다. 이 ‘마사다’는 사해바다를 따라서 내려가면 서남쪽에 위치해 있다. 예수님이 돌아가시기 전에도 그러했지만, 특히 돌아가신 이후에 유대 나라는 로마의 강압적이고 직접적인 통치를 받았다.
그리고 예루살렘 성전은 예수님께서 예언하신 그대로 돌 위에 돌 하나도 남지 않고 파괴되었으며, 많은 유태인들은 로마에 잡혀가게 되었다. 이렇게 민족적인 수난을 겪으면서 남은 유태인들은 로마에 대하여 끝까지 항전할 것을 선언하고 마사다라는 높은 산에 올라간다. 그곳은 헤롯의 헤롯 궁전의 잔해가 남아 있었기에 그 안에는 피나처도 있었고, 비가 오면 빗물을 담아서 연못처럼 모아 둘 수 있는 천연석으로 된 못도 있었다. 이곳은 유태인들에게 물을 공급하는 원천이 되었다. 메마른 사막 지대의 대단히 높은 산 위에 올라가서 로마에 항복하기를 거절하고 그곳에서 로마 병사들과 싸움을 하였다.
패배는 정해진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로마에 절대 항복할 수 없다는 민족적인 자존심을 가지고 끝까지 항전하였다. 마지막 싸움에서 승부가 결판날 때에 로마 병사들에게 죽을 수 없다는 생각에 이들은 그들이 올라오기 전에 천여명이 집단자살을 하였다. 지금도 유태인들은 징집되어 군대에 갈 때는 이곳 마사다에서 서약을 하게 된다. 마사다에 가보면 관광용품을 파는데 어느 물건을 사든지 물건마다에는 “마사다는 결코 두번 다시 함락되지 않을 것이다”라는 글귀가 적혀 있다.
유태인들의 민족적인 자존심과 로마에게 끝내 질 수 없다는 절개를 끝까지 고백하고 죽어간, 그 장렬한 죽음의 자리가 마사다 언덕이다. 바로 이 마사다 언덕에서 끝까지 투쟁을 했던 이 당파가 열심당이다.
열심당의 역사적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B.C 167년경에 소위 신.구약 중간기라는 시대가 있었는데, 그 시기에 마카비 형제를 중심하여 역시 외세의 침입에 항쟁하여 민족을 지키려는 무리가 있었다. 그때부터 이스라엘 민족사에 자기 민족을 외세의 침입으로부터 보호하고, 민족의 독립과 자주성을 지키려는 운동이 지속되었다. 이들은 아주 극단적인 생각도 가지고 있어 친로마적 성향이 있는 사람은 동족임에도 불구하고 과감하게 죽여버리는 잔인성도 가지고 있었다.
예수님의 제자 중에 작은 야고보 같은 사람도 열심당 출신이었다. 그러나 다른 제자들은 열심당이라는 뜻인 ‘셀롯인’이라는 말은 안썼는데 이 시몬은 그 이름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아마 이사람은 예수님의 제자가 된 후에도 그들과 관련을 맺고 있었거나 그들의 일을 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만큼 시몬은 민족에 대한 긍지와 민족에 대한 열망이 가장 투철했던 사람이었다.
이 열심당에 가입하려면 불타는 애국심과 철저하게 헌신할 수 있는 결단이 있어야 가능했다. 이러한 결심이 없으면 아예 받아주지도 않았다. 이 정도가 성경에서 얻을 수 있는 모든자료이다. 그런데 우리에게 관심을 끌게 하는 부분이 있다. 이 사람이 열심당원 출신이었다면 그 성격에 제자들과 많이 다투었을 성도 싶은데 전혀 그런 기록을 찾아 볼 수 없다. 그것은 시몬인 열심 당원이었던 반면에 예수님의 모습과 말씀을 보고 들으면서 끊임없이 생각했던 번민했던 탓이었을 것이다.
행 1:6에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때니이까”라는 질문이 나오는데 이것을 가나안인 시몬이 했을 것이라고 추측하는 이들이 많다. 우리는 복음서를 통하여 예수님께서 자신을 언제나 메시야로 구세주로 증거하시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예수님의 메시야관과 제자와 이스라엘 사람들의 메시야 개념은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이스라엘은 로마의 압제하에서 자신들을 구해줄 정치적 메시야를 기다렸고, 예수님은 인간을 영적으로 구원하시는 분으로서의 메시야셨다. 이러한 배경으로 우리는 가나안인 시몬이 왜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는가를 생각할 수 있다.
예수님에게 남다른 능력이 있어 그를 이스라엘을 로마의 압제하에서 구원해줄 정치적 메시야로 따랐는데 십자가에서 죽으시자 그는 크게 실망하였다. 그런데 예수님이 삼일만에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시자 다시 가슴 부푼 기대를 가지게 되었다. 그 주님이 승천하실 때가 가까와오자 시몬은 물었던 것이다.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때니이까” 이때 예수님의 답변은 어떠했는가 “때와 기한은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의 알 바 아니요 오직 너희에게 성령이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행 1:7-8)” 주님은 협소한 민족주의자가 아니셨다.
주님은 우리가 민족을 사랑하는 것을 나무라지 않으신다. 그러나 주님의 차원은 민족보다는 훨씬 높다. 그는 세계를 보신다. 모든 인류를 억압하고 있는 죄로부터 해방하고 구원얻게 하는 것이 주님의 더 깊은 관심이었다.
2)생애
초대 교회 문서들을 보면 열 두 제자 가운데 시몬은 가장 열심히 주님을 전했던 제자로 나타나고 있다. 처음에 시몬은 민족에 대한 열심을 지녔던 사람이다. 예수님을 만나 변화받고 오순절 성령 사건 이후에 그는 복음 전하는 일에 자신의 생애를 바쳤다. 문서들에 의하면 그는 소아시아에서 전도하고, 북아프리카, 에집트, 흑해 지역까지 가서 복음을 전하였다. 나아가 영국에 처음으로 복음을 전한 사람이 되었다. 영국은 세계로 복음이 전파되는 일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감당했던 나라이다. 시몬의 가슴에 붙었던 불이 영국인의 가슴에 붙음으로 복음이 세계로 증거되게 되었었다.
그는 다시 페르시아로 돌아와 복음을 전하다가 폭도들에게 붙잡혀 톱으로 켜서 죽음을 당했다.
3)교훈과 문제 제기
자기의 개인적 야망을 하나님의 뜻 앞에 복종시키는 훈련을 했던 사람이다.
나와 이념과의 조화를 이룬 사람이다.
주님이 원하시는 더 큰 목적과 사역, 위대한 이상을 위해 자기 삶을 바쳤던 사람이
다.
$.열 두 제자 강해를 마치면서..............
열 두 제자 모두는 죽었지만 그들의 삶의 결과는 오늘의 우리에게 살아 숨을 쉬고 있다. 그들 때문에 내가 신앙을 받고 감사하면서 세상에서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들이 전한 복음 때문에 세상에 교회가 세워졌다. 이 제자들을 통해 주께서 내게 주신 교훈들을 정리하면서 하나님이 당신에게 오늘 요구하시는 헌신이 무엇인가를 주님 앞에서 대답하자. “주님! 나도 내 몫을 다하고 삶을 끝마치는 내가 될 수 있도록 도와 주옵소서.”.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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