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은혜를 은혜로 아는 자 (삼하 09:1-9)

첨부 1


Ⅰ. 은혜는 값없이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膳物)입니다.
은혜와 은총은 같은 말이고 영어 성경은 은혜를 사랑(Love)이라 합니다. 영어는 수평적 문화에서 쓰여진 것뿐이므로 그 말 외에는 잘 없습니다.
찬송이 낮은 사람이 높은 분에게 대해 하는 것이라면 칭찬은 높은 사람으로부터, 윗사람으로부터 아랫사람이 받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은총(세데크)은 높은 이로부터 받는 특별한 은혜(I love you love가 아니라)입니다.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하사하는 은혜, 은총입니다.
세데크 엘로힘-수직적인 하나님의 절대적(絶對的)인 사랑입니다.
Ⅱ. 먼저 본문(本文)의 배경(背景)을 살펴보면
5장은 다윗이 유대인의 왕(王)이 되는 것이 기록됩니다.
6장은 하나님의 법궤를 예루살렘으로 모셔 오는 사건(事件)을 기록합니다.
7장은 하나님의 성전을 지으려고 나단 선지자를 불러 심중의 의중(意中)을 말할 때 하나님이 좋게 보시고 ‘다윗의 나라를 영원히 견고케 하리라’고 하십니다.
8장은 승승장구하는 그의 업적(業績)이 나옵니다.
9장은 받은 은혜를 국내적으로 살펴 베풀고
10장은 구체적으로 은혜를 베풀고 있습니다. 이것을 쭉 연결하면 먼저 하나님의 은총을 알고, 은총을 베푸는 일렬의 사건(事件)이 나옵니다.
이렇게 다윗은 은혜를 은혜로 알았습니다.
Ⅲ. 은혜는 선물(膳物)입니다.
그러므로
① 은혜를 뇌물로 생각하면 안됩니다. 뇌물로 생각하면 은혜가 아닙니다.
② 부담스럽게 생각해도 안됩니다.
③ 선물(은혜)을 수고의 대가로 생각하면 안됩니다. 선물, 은혜는 수고의 대가가 아닙니다.
④ 또 기대감의 수치(數値)가 크면 은혜가 안됩니다. 나는 큰 것을 바랬는데 오히려 생각보다 적게 받았다면 요것쯤이야 생각하게 되고 그래서 선물을 선물로 알지 못한다면 가장 불행한 것입니다.
은혜를 은혜로 알고, 은혜를 깨닫는 자가 신앙자요, 은혜자요,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사람이요, 이러한 이가 겸손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 못하면 좀 잘되면 자기가 잘나서, 자기가 잘 해서 그런 줄 알고 교만해지고 착각하게 됩니다.
잘되었을 때 하나님의 은혜를 아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Ⅳ. 다윗은 왕(王)이 되었을 때 은혜를 알고 은혜를 베풀려고 했습니다.
‘은총을 베풀리라’라는 말이 본문(本文)에 세 번 나옵니다.
1절-요나단을 인하여 그 사람에게 은총을 베풀리라
3절-하나님의 은총을 베풀고자 하노라
7절-요나단을 인하여 네게 은총을 베풀리라
왕이 되었을 때 므비보셋을 왕자같이 베풀고, 아들같이 대하고, 사울가의 그를 숨겨 두었던 마길에게도 은혜를 베풉니다.
목동으로 있던 다윗-이스라엘 지도자(指導者)로 세우셨습니다.
사울의 손에서 구원하고 힘이 되신 여호와를 기억하였습니다.
아무튼 다윗은 하나님의 은혜를 아는 자였습니다.
Ⅴ. 사울왕과 다윗의 관계를 보면
왕 ― 신하의 관계로 다윗은 충성된 신하였습니다. 다윗이 충성을 잘 하므로 사울이 자기 딸 미갈을 주어서 사위로 삼았습니다.
장인 ― 사위 관계입니다. 그런데 다윗이 잘하고 백성들이 사울은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라 하니 사울이 시기하여 음악을 연주하던 다윗을 향해 창을 던져 벽에 꼽으려고 두 번이나 시도를 했습니다. 아예 박재를 하려고 했습니다.
Ⅵ. 다윗과 요나단의 관계
두 사람은 절친한 친구입니다. 요나단이 다윗을 자기의 생명(生命)같이 사랑하여 더불어 언약을 맺으며 요나단이 自己의 입었던 군복, 칼, 활, 띠를 다윗에게 주었습니다(삼상 18:3,4).
아버지 편에서 보면 원수고, 아들 편에서 보면 처남이요, 친구입니다.
Ⅶ. 므비보셋
사울의 손자(孫子)로 사울 가문에 하나밖에 남지 않은 씨요, 다윗으로 보아서는 원수의 자손입니다. 이것만 처치하면 끝입니다. 은혜 받기 전 밧세바를 취하고, 우리아를 처형하려 할 때의 솜씨 같으면 헤치웁니다. 그러나 은혜를 알고 거듭난 다윗은 ① 요나단을 생각했고, ② 하나님 편에서 생각했습니다.
친구의 아들도 자기(自己) 아들같이 생각하고 대합니다.
사울을 봐서는 원수이나 다윗은 하나님 편에서, 요나단 편에서 보고 대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어떤 일을 할 때
자기(自己) 중심(中心)으로 생각하는 것과
남 중심으로 생각하는 것,
하나님 편에서 생각하는 것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Ⅷ. 다윗과 사울의 사이를 나쁜 면에서 보면
장인(아버지)이면서 자기를 죽이려는, 원수 사이입니다.
왕이면서 신하에게 창을 던집니다.
충성스러운 다윗을 죽이려고 군사(軍士)를 데리고 토벌을 나섰습니다.
그런데 이제 다윗이 사울을 죽일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왔습니다.
곁에 있던 종자(從者)가 “하나님께서 죽이라고 보내신 것 같습니다. 죽여버리지요”라고 말합니다. “아서라. 하나님의 기름 부은 종(從)은 하나님이 손대시지 내가 왜...”
끝까지 순종하고 하나님 편에서 봅니다.
이것이 신앙이요, 은혜 받은 자의 표요, 거듭난 자의 표입니다.
또 자기 아들 압살롬이 반란을 일으켰을 때 전부(全部) 숙청해 버릴 수 있었으나 그는 하나님의 역사 인줄 알기에 조용히 왕좌(王座)를 내어놓고 하야(下野)합니다. 이것이 신앙적 겸손입니다.
또 다윗은 므비보셋을 볼 때 사울의 손자로 보거나 생각하지 않고 요나단의 아들, 친구의 아들로 보았습니다. 그리고 왕자처럼 대하였습니다. 자신을 보거나 사울을 보지 않고 요나단을 보고 하나님을 보았습니다.
3절을 다같이 봅시다.
‘왕이 가로되 사울의 집에 남은 사람이 없느냐 내가 그 사람에게 하나님의 은총을 베풀고자 하노라 시바가 왕께 고하되 요나단의 아들 하나가 있는데 절뚝발이니이다’
Ⅸ 다윗은 원래
목동이요, 부모도 별로 신통치 않게 여기던 여덟 번째 아들입니다. 여러 번 죽을 고비를 넘기고, 전쟁도 많이 해서 파란만장한 세월을 보냈습니다.
그럼에도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 인줄 알고 다른 이에게 그 받은 은혜를 베풀려고 합니다.
본문(本文)을 봅시다.
므비보셋을 키워서 덕을 보겠다는 것이 아닙니다.
이득(利得)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도 아닙니다.
용도 있고 쓸모 있어서도 아닙니다.
그를 키워서 ‘다윗 훌륭하다’하는 소리를 듣기 위함도 아닙니다.
다만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은총을 받고 알기에 하나님의 은총을 베풀려는 것입니다.
이것이 귀한 것입니다. 이것이 신앙(信仰)입니다.
이렇게 하나님 편에서 성도를 섬기고 대해야 합니다.
미국의 유명한 흑인 가수 마리안 엔들숀은 음악을 워낙 잘해서 교회(敎會)에서 후원회가 생겨 그를 키웠습니다. 한 번은 〈메나탄 홀〉에서 연주를 했습니다. 그런데 백인들이 흑인 가수를 좋게 평(平)할 리가 없습니다. 베이스 음성이냐, 소프라노냐, 여자 음성이냐 수 없이 나쁜 평을 했는데 이를 듣고 그가 실망하고 절망에 빠져 노래를 하지 않으려 했습니다. 그 때 그 어머니가 “너는 어째서 모든 사람으로부터 칭찬을 듣기를 원하느냐. 은혜가 위대함보다 먼저여야 함을 잊지말아라”라고 했답니다. 그래서 후에 그가 세계적인 가수가 되었다고 합니다.
사업이 먼저, 위대함이 먼저, 명성이 먼저, 업적이 먼저가 아니라 은혜가 먼저여야 합니다. 은혜를 아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설교를 듣는 중에 어떤 의사가 내가 처(妻) 덕에 산다고 느껴졌습니다. 내가 처 덕에 사는 겁니까, 처가 내 덕에 사는 겁니까. 내 덕에 이웃이 산다고 생각하십니까, 이웃 덕에 내가 산다고 생각하십니까 이웃 덕에 내가 산다고 생각하면 편해요. 처 덕에 내가 산다고 생각하면 편해요. 남편 덕에 내가 산다고 생각하면 편하고 흑자인생을 사는 겁니다.
못난 사람이 잘난 사람하고 사니까 가쁘고 행복하고, 감지덕지(感之德之) 아닙니까 그러나 내가 잘났다고 생각하고 살면 못난 사람 데리고 산다 싶어 늘 손해의식 가지고 사니 불행이요, 적자인생을 삽니다. 다윗은 은혜를 알고 사니까 행복했습니다.
Ⅹ. 므비보셋은
“죽은 개 같은 나를 이렇게 사랑합니까”(8)라고 했습니다. 이는 은총을 아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마음에 시험이 들어서 변하는 날에는 ‘우리 할아버지가 사울 왕이요, 아버지는 요나단인데... 그 뒤를 이어 내가 왕이 될 터인데... 저 자리는 내 자리다. 내 자리에 저 사람이 앉아서...’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삼하 4:4 사울과 요나단이 함께 죽었을 때 유모가 다섯 살 된 아이를 데리고 도망을 가다가 떨어뜨려서 두 다리가 부러져 절뚝발이가 됩니다. 엄격히 말하면 다윗 때문이요, 그래서 원수로 여길 것입니다.
문제가 생겼을 때 원망, 불평하기 전에 원인이 내게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을 신앙으로, 하나님 편에서 받아 들여야 합니다. 하나님을 봄으로 그를 보고, 말씀으로 영접하고 섬겨야 합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