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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마 09: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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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루신 오이논 네온 에이스 아스쿠스 카이누스, 새포도주는 새 부대에! 새해의 종소리는 울렸습니다. 나의 심령 깊은 곳에서 울어나는 기도와 더 불어 새해는 밝았습니다. 하나님이여! 새해에는 새롭게 하소서! 새해, 새 바람, 새삶!....

세례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새인들은 매주 월요일(모세가 시내산에서 내려온 날)과 목요일(모세가 시내산에 올라간 날)에 금식했습니다(눅 18:12). 그 어느날 (막 2:18),누가복음에는 '바리새인들'이라고 했습니다(눅 5:33). 이 것을 보면 여기 질문자들은 '바리새인들'과'세례요한의 제자들'이 섞인 무 리였습니다> 어찌하여 당신의 제자들은 금식하지 아니하나이까라고 물었 습니다. 어찌하여라는 말, 디아 티는 목적을 묻는 하나 티 와는 달리 그 들의 행동이 다른 이유를 묻는 말입니다. 본래의 율법은 대속죄일에만 금식 하는 법(레 23:27,행27:9)인데 바리새인들은 이 율법과 그외에 이레에 두번 금식하는 법을 만들어 지킨 것입니다(마 6:16,눅18:12). 이들은 엄격한 생 활을 하는 바리새파,엣세네파일 뿐만 아니라 산악과 사막지대에 사는 선지 자학파며 나사렛파들이었습니다. 이들에게서 세례 요한의 제자들이 나온 것 같습니다. 이에 비해서 예수님의 제자들은 직접 부르심을 받았고 이러한 엄격한 생활의 훈련을 받지 않았습니다. 그런고로 이들의 율법(습관)을 지 키기에는 합당하지 않았습니다.

 1. 여기서 우리는 생각할 내용이 있습니다. 바리새인들과 세례요한의 제자 들은 금식을 정하고 엄격한 생활 훈련을 통해 금식을 제도화하고 있다는 것 입니다. 그리고 원 율법대로 사는 예수의 제자들이 왜 금식일에 금식하지 않는냐는 것입니다. 누가 옳은 것입니까 성경말씀에도 없는 형식! 성경말 씀에도 없는 제도!등을 만들어 놓고 외형적으로 엄격히 지키게 하는 교회! 그런 사람들! 이들이 새로운 것입니까 금식의 내용은 없고 슬픈 기색을 하 는 행동! 사람에게 보이려는 운동!(마 6:16-18). 이것들이 잘된 것입니까 새 포도주는 새 가죽부대에 넣어야 둘다 보존된다고 하셨습니다.

어느것이 새 포도주입니까 생베 조각을 낡은 옷에 붙이는 자가 없다고 하 셨습니다. 어느 것이 생베 조각입니까 원 율법대로 사는 것이 새 포도주입 니다. 성경말씀대로 운동하는 것이 생베 조각입니다. 자기 주관대로 정한 제도, 자기 경험대로 느낀 운동, 그런 것을 정당화하며 고집하는 것을 새 것, 새 포도주라 할 수 있겠습니까 말씀에 내용은 없고 형식만 엄격히 지 키려는 생활을 새것, 생베 조각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금식의 내용은, 금 식의 정신은, 엄밀한 중에 계신 하나님께 보이려는 정신, 이것이 복음의 정 신입니다. 이것이 말씀의 정신입니다.

이 말씀의 정신을 새 포도주, 생베 조각이라 했습니다. 이것이 새것입니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합당한 것입니다. 생베 조각은 새옷에만 합당합니 다.

새 해를 맞는 여러분! 새해 벽두에 새 소망을 가지시겠지요. 새 계획을 세 우시겠지요. 새 생각도 가지고 새 생활도 꿈꾸시겠지요. 새것이란 내 나름 대로의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새것이라 내 나름대로의 주관도 아닙니다.

새 것이란 내 나름대로의 느낌도 아닙니다. 새 것이란 내 나름대로의 운동 도 아닙니다. 새 것이란 내 나름대로의 생활도 아닙니다. 새 것이란 복음대 로의 감정을 말합니다. 새 것이란 성경말씀대로의 객관을 말합니다. 새 것 이란 하나님 뜻대로의 생활을 말합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의 소망! 이것이 새것입니다. 예수님 같으시면 어떻게 하셨을까요 생각하고 예수님 의 고난의 발자취를 따라 가는 생활! 이것이 새것입니다. 새 해입니다. 새 것(새 포도주)으로 새로워져야 하겠습니다.

바리새인들과 세례 요한의 제자들이 질문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은 혼인집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을 동안에 슬퍼할 수 있느냐 그러나 신랑을 빼 앗길 날이 이르리니 그때에는 금식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혼인집 손님들 이라는 말을 헬라어대로는 신랑방의 아들들인데 신랑의 친구들을 가리 켰으며 신랑은예수님을 비유했습니다. 그리고 우리 교회(신자들)은 신 부가 되는 것입니다. 신랑을 빼앗길 날이 이르리니라는 말은 예수께서 십 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기 될 앞날의 사실을 예언한 것입니다 (사 53:8 참 고).

당시 유대인의 혼인 잔치는 일주일 간이나 계속되었는데 그 마지막 날 신 랑을 신부방에 데려다 줌으로 신랑의 친구들을 떠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 주간에는 금식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신랑을 데려다 주고는 금식했습니 다.

 2. 여기서 우리가 살펴 볼 수 있는 내용은 그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곧 기뻐할 때와 슬퍼할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기 제자들이나 요한 의 제자들을 무시하지 아니하고 질문에 잘 대답하신 것입니다. 어찌 삼손의 아내 델릴라와 같이 음흉한 친구로, 잔치의 손님으로 초대받은 사람이 어찌 곡을 하며 천성을 떨겠습니까 범죄하여 불안에 쌓여 있는 인생인지라 이방 인들과 같이 기뻐하며 뛰놀지 못하겠지만(호9:1),부르심을 받은 한님의 사 람들이므로 계속 천국에 참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예수님과 함께 사는 날 동안에는 금식하며 슬퍼할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오히려 기뻐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초대받은 손님입니다. 그런고로 기뻐하고 즐거워해야 합니다. 바리새인들은 초대받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종노릇하는 하가의 자녀들이빈다(갈 4:25,31).

그런고로 그들은 금식하고 슬퍼해야 했습니다. 우리는 신랑의 친구들입니 다. 잔치에서 신랑을 돌보는 봉사자들입니다. 그런고로 잔치가 계속되는 날 동안 기뻐하고 즐거워해야 합니다. 세례 요한의 제자들은 신랑의 친구가 아 니었습니다. 그들의 주인 세례 요한은 옥에 갇혀 있었습니다. 그런고로 그 들은 당연히 금식하고 슬퍼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도 정말 슬퍼하고 금식해야할 때가 있습니다.

그때 는 신랑을 신부에게 빼앗기는 날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돌아 가시는 날입니다. 우리 죄를 위해서 속죄의 죽음을 죽으시는 나립니다. 그 때 진정 우리도 금식하고 울어야만 합니다.

굵은 베옷을 입고 죄를 무릅쓰고 통곡해야 합니다. 살을 여이고 뼈를 깎고 생명을 거는 슬픔을 맛보아야 합니다.

여러분! 그때가 언제입니까 기뻐할 때와 슬퍼할 때가 언제입니까 예수 님은 새 포도주는 새 가죽 부대에 넣어야 둘 다 보존된다고 하셨습니다.

생베 조각을 낡은 옷에 붙이는 자가 없다고 했습니다. 신랑과 함께 있는 때 가 기쁜 때입니다. 예수님과 같이 사는 때가 그때입니다. 그때가 새때 입니다. 새 포도주입니다. 예수님과 같이 역사하는 때가 즐거운 때입니 다. 이 즐거운 때가 바로 그때 입니다. 그때가 새때입니다. 생베 조 각입니다. 이 기쁜 때에, 이 즐거운 그 때의 바리새인들이나 세례요한의 제자들과 같이 금식하고 슬퍼할 수 없습니다. 이것은 때를 거슬리는 것입니 다. 이것은 때를 모르는 것입니다. 이것은 때를 막는 것입니다. 금식의 내 용은 금식의 정신은 엄밀한 중에 계신 하나님께 보이려는 것입니다. 이것이 복음의 정신입니다. 이 복음의 정신을 새 포도주, 생베 조각이라 했습니다.

새 포도주는 새 가죽 부대에만 합당한 것입니다. 생베 조각은 새 옷에만 어 울리는 것입니다.

1985년 새해 벽두에 새 비죤을 가지시겠지요. 새 사업도 꿈꾸고 새 영광 도 바라시겠지요. 새로운 즐거움도 말입니다. 여기 복음의 정신인 새것, 새 포도주, 생베 조각은 내 나름대로의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새 것이란 내 나름댜우의 비죤을 말하지도 않습니다. 새것이란 내 나름대로의 사업도 영 광도, 즐거움도 말하지 않습니다. 새 것이란 말씀의 비죤입니다. 새 것이란 복음의 사업입니다. 새 것이란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새 것이란 주님의 즐 거움을 말합니다.그때는 이 새 것입니다. 신랑이 있을 때 기뻐하고 신랑 이 떠날 때 금식하고 슬퍼하는 때 입니다.

예수님의 대답은 계속되었습니다. 생베 조각을 낡은 옷에 붙이는 자가 없 나니 이는 기운 것이 그 옷을 당기어 헤어짐이 더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헤어지기 시작한 헌옷에 물레에서 새로 짠 생베에서 잘라낸 조각을 집어 헌 옷을 보존하려는 것을 백해무익한 일입니다. 그 이유는 꿰매기 위해서 사용 된 조각이 헌 옷의 일부를 찢거나 뜯음으로 전보다 더 심하게 찢겨지기 때 문입니다.

헌 것은 아주 버리고 완전히 새 것을 받아야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생베 조각이 아니라 새옷이 필요한 것입니다. 일부가 아니라 전체가 새 것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헌 옷은 그 시대의 유대주의,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그 교리와 의식으로 만들었던 그 생베 조각, 예수님의 교훈(복음)의 일부로 때우려는 것은 소용 없는 일입니다. 새 것은 소용없는 일입니다.

새것은 낡은 것을 더 찢기 마련입니다. 새 것에서 솟아나는 은혜와 신앙의 교리는 그것이 옛 형태로든, 현대주의 형태로든 간에 바래새적 유대주의와 조그마한 어느 부준도 결합될 수 없습니다. 헐어 썩은 의복을 벗어 버리고 그 대신 그리스도 예수의 의를 입어야 하는 것입니다. 전체를 갈아야지 임 시 미봉책으로서 부분만의 개혁, 부분만의 변화는 사정을 더 악화시킬 뿐입 니다.

예수님은 또 말씀하셨습니다. 새 포도주는 새 가죽 부대에 넣어야 둘이 다 본된다고 이것을 헬라어로 보면 새 포도주의 새는 네오스요, 새 가족 부대의 새는 카이노스입니다. 네오스는 시간적으로 새로운 것으로 서 시간이 감에 따라 변하지 않고 오히려 더 개량되는 것이요, 카이노스는 질적으로 새로운 것을 말하는데 시간이 감에 따라 가죽이나 옷처럼 변하는 것을 나타내었습니다.

가죽 부대는 찢어 가르지 않고 염소의 몸에서 벗긴 염소 가죽이었습니다.

발과 꼬리의 구멍들은 끈으로 묶었으며 목 부분만을 가죽 부대의 입으로 사 용하기 위해 남겨 놓았습니다. 파레스틴에서는 이 가죽 부대들이 아직도 주 머니로 사용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 가죽이 새 것일 때에는 신 축성이 있으나 낡아지면 뻣뻣해져서 압력을 받으면 갈라지는 것입니다. 그 러므로 사람들은 새 술을 담아서 말라 빠진 가죽 부대와 술이 모두 못쓰게 되기 때문입니다.

 3. 이 말씀에는 심묘한 교훈이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옛 바리 새적인 사상과 생활을 복음의 신앙과 새 교리와 결합하여 둘 다 못쓰게 하 려는 분은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이 이 잘못을 범하기를 원치도 않으십니 다. 옛 바리새적인 것은 옛 것으로 내어 버리고 새 교리와 사상에 합당한 새 생활을 취할 것을 요구하십니다. 한국의 미풍양속도 좋지만 새 것(복음) 은 아닙니다. 기이한 축사 (마귀를 쫓아내는 것)도 좋지만 새 것과는 맞지 않습니다. 자유주의, 현대주의도 좋지만 새것(성경)과는 다릅니다. 옛 바리 새주의를 현대식으로 바꾸어 놓은 것 뿐입니다. 현대주의, 자유주의가 새로 나왔으니 새 것 같지만 새 포도주(복음)가 아닙니다. 예수님의 교훈(성경) 이 옛날에 있었으니 헌 것, 낡은 것 같지만 낡은 헌 옷이 아닙니다. 언제나 예수님의 교훈인 복음이 새 것인 것입니다. 예수님의 복음은 변하지 않습니 다. 언제나 새 것, 새 것 그것이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그리고 세상 끝날까 지 새 것일 것입니다. 새 포도주일 것입니다.

새해를 맞이하여 새 것으로 단장하시기를 원하시는 여러분! 새것이란 예수님의 복음이어야 할 것입니다. 내 나름대로의 새 때, 그것이 아니라 어제나 오늘이나 세상 끝날까지 언제나 새로운 것인 예수님의 복음! 이 복음으로 새해를 단장해 나가야 하겠습니다. 이 복음으로 나를 꾸며 새 롭게 해야 하겠습니다. 이것이 새해에 새 바람! 새 삶! 을 영위하는 일이 될 것입니다. 새해에 우리 하나님의 축복이 함께 하시기를 간절히 기원합니 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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