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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감추어진 생명 (골 0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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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서신의 첫 두 장에서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을 중심으로 한 교리적인 문제들을 다루었습니다. 바울의 이러한 접근법은 골로새 교회를 위협하는 오류와 싸우고 진리를 방어하려는 뜨거운 열정에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바울의 이러한 관심은 처음부터 두두러진 것이었지만 2장이 끝나는 즈음에서 더욱 논증적인 어조로 선명히 부각됩니다.
바울의 사상적 흐름은 탁월하기 때문에 본문을 주의 깊게 읽어야 합니다. 그는 본 서를 쓰게 된 이유였다고 볼 수 있는 문제들을 당장 쳐들고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런 문제들은 바울의 생각 속에 있었지만 그는 서둘러서 거론하지 않았습니다. 바울의 논쟁점은 모두 복음과 은혜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어둠을 헤치는 빛이며, 죽음을 정복하는 생명이며(고후5:4). 두려움을 내쫒는 사랑이며(요일4:18), 옛 삶을 대치시키는 새 생활이며, 우리들의 육적 본성을 억제하는 성령의 충만입니다. 복음은 하나의 도덕 규범이 아니고 살아 있는 능력입니다. 기독교는 종교가 아닙니다. 기독교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그의 빛이 인간의 가슴 속에 비칠 때 오류를 지우시는 분입니다. 이것이 본 서신의 첫 부분에서 강조된 내용입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는 생명이십니다. 이 생명이 인간의 가슴 속에 스며들면 악을 누리고 승리하게 됩니다. 이 주제가 본 서신으리 두 번째 내용입니다. 이 부분에서는 신앙생활의 실제적인 문제들이 거론될 것입니다.
3장의 첫 4절은 지금까지의 내용에 걸맞는 결론이자 다음에 따르는 본문의 적합한 서론입니다.
그리스도인 생활의 근원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엣것을 찾으라’(3:1).
우리들은 흔히 그리스도인의 생활을 부정적인 측면에서 생각하기 쉽습니다. 예를 들면 신자 생활이란 옛 자아에 죽고 세상과 분리되며 단념과 희생으로 사는 것이라고 보는 경향이 짙습니다. 그렇지만 바울은 이런 측면들을 먼저 내세우지 않았습니다. 물론 그는 나중에 자아에 대한 항속적인 죽음의 고통스런 실체에 대해 부득불 언급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의 가르침은 언제나 균형을 잃지 않습니다. 그래서 부정적인 그리스도인 생활의 측면을 바울은 그리스도의 부활과 그 안에 있는 우리들의 새 생명의 긍정적인 관점에서 다룹니다.
바울은 골로새 교인들의 죄들을 나무라기 전에 성도들의 마음을 참 생명의 근원이신 그리스도를 향한 실체들로 돌리게 합니다. 골로새 교인들은 죄와 이 세상과 육신에 속한 것들은 대항하여 그들 자신드르이 발판 위에서 싸워 이길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또한 바울이 정죄하는 인간적인 수단들을 통해서도 죄를 이길 수 없는 자들이었습니다. 바울이 그들에게 제시하는 승리의 길은 죄와 세상과 육신에 속한 것들을 초월하는 길입니다.
바울의 대안은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생명을 나누게 된 사람들입니다. 여러분은 이제 다른 세계의 시민들입니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며 또한 이것이 당신의 체험이라면 당신의 전 생애가 변화될 것입니다. 당신은 더 이상 이 세상의 눈으로 사물을 보지 않으며, 더 이상 이 세상의 방법대로 악과 싸우지 않습니다.
과거에는 당신이 스스로의 아이디어에서 힘과 영감을 받았으며 자신의 이익에 의해서만 동기를 부여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가 당신을 만난 이후로는 그리스도가 당신을 붙잡고 계십니다. 그래서 당신의 삶은 그분에게로부터 힘을 받아내고 영감을 받으며 의미를 찾아냅니다. 땅을 향하던 당신의 삶은 이제 하늘을 향하는 새로운 차원에 놓여져 있습니다. 하나님은 위엣 것을 보도록 신령한 하늘의 창문을 열어 주셨습니다. 그 창문으로 하나님 자신의 생명이 흘러 내리고 당신의 소망들은 최대의 목표와 완전한 성취를 이루기 위해 저 높은 곳으로 비상(飛上)합니다.
그리스도인 생활의 영역
그럼 위에 있는 것들을 추구하는 자세가 일상 생활에서 어떤 영향을 끼칠까요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마6:21).
일단 우리들의 보물과 우리들의 관심과 인생의 목적이 지상적이면 우리들의 마음은 좋은 것이건 나쁜 것이건 이 세상의 사물들에 집착됩니다. 그런데 이제 그리스도께서 우리들을 구원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가 우리 삶의 목표가 되어 우리들의 시선이 구분께서 앉아 계신 하나님의 우편을 향하게 되었습니다. 환언하면, 우리의 관심과 목적과 마음은 그리스도가 계신 곳에 있습니다.
‘위엣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3:1)
인간의 마음이란 하늘의 사물에 관심을 두고서 항상 영적인 목표를 생각하며 만사를 보이지 않는 영원한 것들의 관점에서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 자연스럽지가 않습니다. 이런 일은 예수 그리스도를 개인적으로 만나 본 일이 없는 사람이 종교적인 사람이 되고 싶어 힘쓸 경우에는 더욱 어렵습니다
그렇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것을 발견한 자들의 경우는 다릅니다! 그런 사람에게는 과거에는 본성에 거슬렸던 일이 이제는 아주 자연스럽게 느껴집니다. 우리들은 새로 태어날 때에 하나의 새로운 생명으로 탄생되었습니다. 세례(침례)의식이 상징하듯이, 우리들은 옛 생명에는 죽고 새 생명안에서 그리스도를 위해 삽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리스도를 찾아 그분이 계신 곳으로 갑니다. 우리는 그분이 사랑하는 것을 사랑하게 되고 그분의 생각이 우리들의 생각으로 옮겨지며 그분의 관심이 우리들의 관심이 됩니다.
한마다로, 위에 있는 것들이 모두 우리들의 관심을 일치시키며 영적 사물들을 추구하는 것은 회심을 했다는 증거입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자신은 교인이라고 주장하면서, 자신의 관심이 온통 세상 사람들과 동일하고, 생활 스타일이 세속적이며, 높은 신앙적 이상이나 영원한 실체의 가치를 무시한다면 자기 기만에 빠진 것입니다. 포로민이 고국을 그리지 않겠습니까 우리들이 과연 ‘위에서’ 났다면(거듭났다면)위에 있는 것들을 사모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요3:3)
그럼 위엣 것들을 추구하다고 해서 지상의 것들을 업신여기고 우리들이 처한 이 세상을 무관심과 비웃음으로 대하란 말인가요 하늘이 도피처란 말인가요 어떤 교인들을 보면 이 질문에 그렇다고 대답할수 있을 듯합니다. 왜냐하면 그런 교인들은 너무도 지나치게 하늘의 사물들만 생각하여 지상에 발을 딛고 사는 사람들 같지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 경우라면 하늘 소망이라는 것은 일종의 마약처럼 이 세상의 모든 고민들로부터 벗어나게 해 주는 환각제가 아닐까요
바울이 말하는 뜻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한 쪽은 천상적이고 다른 한 쪽은 지상적인 상호 모순되는 이해 관계가 밀고 당기는 줄다리기식의 이중 생활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의 생활에 이원론적인 갈등이 없다는 사실은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생활은 완전히 정착된 생명 자체입니다. 이 생활은 지상 대 하늘이 아니고 지사엥서의 하늘 생활입니다. 즉, 지상의 사물속에서 위에 있는 것들을 사모하고, 인간들의 추구 속에서 하늘의 관심들을 생각하며, 인간의 문제들 속에서 하나님을 바라봅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이란 지상의 현실과 하늘의 가치들을 직시하면서 이 세상을 충실하고 철저하게 사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교인들의 삶이란 지상적이고 가시적이며 유형적인 것들을 넘어 비가시적이고 영원한 것들 속에서 궁극적인 성취가 이루어질 것을 믿으며 가정에서나 직작에서 성실히 사는 생활입니다. 영적생활은 영의 영역에만(몸의 영역과 대치되는).머무는 삶이 아니고 성령에 의해 고취되고 인도되며 지배되는 총체적(실제적인 인간 생활)인 생활입니다. 바울은 이 주제를 더 발전시켜 설명할 것입니다. 이러한 새로운 생활 영역에 대한 인식은 우리들의 삶이 지닌 가치와 질을 올바르게 평가하고 매순간을 훨씬 성실하게 살아 가도록 해 줍니다.

그리스도인 생활의 신비
위에서 살펴 본 내용에 비추어 보면 다음 말씀이 쉽게 이해될 수 있습니다.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었음이라’(3:3).
그리스도인의 생활에는 신비의 일면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모르거나 위에 있는 것들과의 수직적인 차원을 갖지 않은 자들에게는 그리스도인의 생활은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과 그리스도와 자신의 체험 밖에 있는 ‘위에’ 있는 것들로부터 삶의 동기를 발견합니다. 이 세상 사람들에게는 그리스도인의 자신의 모든 환상의 영역을 넘어 영원하고 신령한 목표를 추구하는 것이 도대체 이해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인도 어려움을 당합니다. 그러나 애통해 할지라도 소망이 없이 흐느끼지는 않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성공을 하여도 자신의 능력이나 재주의 결과라고 뽐내지 않고 하나님 덕분이라고 겸손해 합니다. 혹은 실패를 하여도 절망하지 않습니다. 돈을 벌어도 교만하거나 호사하지 않고 가난한 중에서도 남을 도와 줍니다. 또한 억울한 일을 당해도 보복할 생각을 않습니다. 이런 생활은 이 세상의 눈으로 보면 어리석습니다. 그같은 생활을 가능케 하는 감추어진 원동력의 근원이나 목표나 원리를 세상이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너희가 죽었고’ 여러분은 이 세상이 이해할 수 없는 지경으로 넘어섰습니다. 세상은 죽음의 피안을 넘어서 여러분을 추적할 수 없습니다.
‘육에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은 다 이러하니라’(요3:6-8).
이것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생명의 신비입니다. 이 감추어진 생명은 그리스도와의 영적 교통에서 흘러나오는 영원한 샘물로 늘 새롭게 갱신됩니다. 이 생명은 마치 메마른 사막의 한 중간에서 뜻밖에 만나게 되는 오아시스와 같습니다. 이 오아시스는 겉으로만 보아서는 도저히 설명될 수 없는 현상입니다. 그러나 사실은 불모의 땅 밑에 감추어진, 눈에 보이지 않는 물줄기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위에 있는 것들에 마음을 두는 자들은 복 있는 사람들입니다. 복있는 자는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그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시1:2-3)
그리스도인 생활의 계시
그러나 이 세상이 이해하지 못하고 흔히 우리들까지도 어리둥절하게 하는 수수께끼같고 정의할 수 없는 감추어진 생명은 언젠가는 그 신비의 베일을 벗고 그 의미를 드러낼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이 생명을 취하여 죽음을 넘어 다른 세계로 데리고 갔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이 생명은 분석의 차원을 초월합니다. 하지만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셔서 자기 속에 감추어진 이 생명을 계시할 것입니다.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리라’(3:4)
그리스도는 생명이십니다. 그리스도는 생명의 근원과 목적일 뿐 아니라 생명 그 자체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가 나타나시면 이 세상은 참 생명이 어떤 것인지를 발견케 될 것입니다. 우리들이 우리 자신들의 모습으로 반영시키는 참 생명의 이미지는 흔히 불투명하고 왜곡되었으며 퇴색되고 유약하며 죄로 얼굴져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가 나타나실 때에는 만물이 새로워질 것입니다. 창조계는 그 목적과 의미를 재발견하고 생명은 그 무한성과 영광을 과시할 것입니다.
우리들의 운명은 그리스도의 운명과 영원히 연결되었습니다.! 우리는 그와 함께 죽고, 그와 함께 생명의 부활을 하였습니다. 우리는 그와 함께 고난도 받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언젠가 그분과 함께 나타날 것입니다. 창조계는 그 목적과 의미를 재발견하고 생명은 그 무한성과 영광을 과시할 것입니다.
우리들의 운명은 그리스도의 운명과 영원히 연결되었습니다.! 우리는 그와 함께 죽고, 그와 함께 생명의 부활을 하였습니다. 우리는 그와 함께 고난도 받을 것입니다. 그러나 언제가 그분과 함께 나타날 것입니다. 그 때에는 그리스도의 영광이 우리의 영광이 될 것입니다. 그분이 오시면 ‘세상적인 것들’의 공허성을 모두 들추어 내고 ‘위에 있는 것들’의 참됨을 온전히 증명해 주실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만물의 중심이신 예수님 안으로 들어와 있습니다. 만물이 그리스도를 통하여, 또 그를 위하여 존재하며 그분 안에서 모든 것들이 지탱됩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의 생활은 영위키위해 율법주의의 무거운 짐을 지거나, 이 세상을 초월할 수 없는 ‘지상적인 것들’에게 마음을 빼앗기면서 인간적인 수단들을 고용하지 맙시다. 그 대신 그리스도껫 하나님 위편에 죄정해 계신 저 위에 있는 것들을 바라 보십시다. 위에 있는 것들과 모든 하늘은 한마디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즉 그리스도입니다.
그리스도를 바라 보십시오. 그러면 모든 것이 선명히 조명될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들은 그리스도의 승리의 힘으로 무장되어 죄와 육신과 이 세상의 공격을 막아내고 바울이 다음에 다룰 삶의 문제들과 갈등들을 직면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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