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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구원의 역사와 성령 (겔 37:1-14, 고전 02: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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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성령강림주일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수님이 부활 승천하신 후에 예루살렘을 떠나지 아니하고 다락방에 모여서 기도하던 중에 오순절에 성령께서 그들 가운데 임하여 오시므로 그들이 하늘의 능력을 받게 되었고, 그때부터 교회가 시작되었습니다. 이것을 기념하는 주일이 바로 성령 강림주일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알아야할 것은 이것은 단순한 기념일이 아닙니다. 옛날에 한번 있었던 어떤 사건을 기념하는 것이 아니고 바로 그때부터 시작해서 오늘까지 계속되고 있는 성령의 역사를 재확인하고 오늘의 교회가 초대교회와 같이 활기에 넘친 교회가 되고자함에 이 절기를 지키는 목적이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성령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에는 성령만이 활동하시는 것이 아니라 다른 영들도 같이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령의 활동과 다른 영들의 활동이 혼돈되고 있는 시대입니다. 우리가 바른 신앙생활을 하고자 할 때 이 영들의 활동을 바로 구분할 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흔히 성령 충만을 이야기합니다. 그러면서도 성령의 주된 활동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지 못한 것이 우리의 실정이라고 봅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는 성경 전체를 통해서 성령의 하시는 일이 무엇이며 그래서 그것이 어떻게 다른 영들과 구분되고 있는지 알아 보고자 합니다.
구약에 있어서 영감의 능력으로서의 성령
먼저 우리가 구약성경을 보면, 하나님의 영은 하나님의 능력을 의미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영이 나타나는 곳에는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서 거기에 하나의 사건이 일어나게 됩니다. 구약에서 보면, 대부분 하나님의 영은 주로 지도자들에게 나타나서 그들 속에 하나님의 능력을 넣어주고 지도자로서의 사명을 온전히 감당케 하셨습니다.
가령 사사시대에 지도자들이었던 사사들은 반드시 주의 영으로 말미암아 활동하였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삼손은 하나님의 영에 크게 감동되었을 때 그는 사자를 맨 손으로 잡아 죽였습니다(삿 14:6). 주의 영이 임하실 때 삼손과 같이 육체적인 힘을 얻기도 하지만 내적인 담대함을 얻기도 합니다. 가령 3백명 군사로 미디안 군대를 쳐부신 기드온의 경우 하나님의 영이 그에게 강림하실 때 비로소 지도자로서 담대하게 나설 수가 있었습니다(삿 6:34). 이 사사들의 역할은 그 민족이 위기를 당하거나 혹은 다른 민족의 압제하에 있을 때 그 민족을 구출하는 지도자로서의 역할이었습니다. 즉 하나님의 영이 임하시는 곳에 구원의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구약의 지도자들중 특별히 예언자들에게 하나님의 영이 임하여 오셔서 그들로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케 하였습니다. 예언자들에게 있어서는 하나님의 영이 구원의 역사를 판단할 수 있는 통찰력으로 나타나거나 혹은 하나님의 공의를 실현하는 내적인 힘으로 나타났습니다. 미가서에 보면 나는 여호와의 신으로 말미암아 권능과 공의와 재능으로 채움을 얻고 야곱의 허물과 이스라엘의 죄를 그들에게 보이리라(3:8)고 하였고, 이사야 61장에 보면 주 여호와의 신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예언자들의 말씀은 하나님의 영에 의하여 그 역사 속에 주어진 말씀이기 때문에 이것은 곧 하나님의 말씀이 되었습니다. 예언은 사람의 뜻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성령의 감동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말씀을 말한 것입니다(벧후 1:21). 그런데 이 예언자들의 메시지는 다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와 관련된 것입니다.
결국 구약에서는 성령이 구원의 역사를 성취시키는 지도자들에게 주로 주어지며, 그들로 하나님의 계획하신 구원을 이루어 나가도록 능력을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약에서의 성령의 활동은 계속적인 것이 아니고 언제나 잠정적인 것이요 일시적인 것으로 나타났던 것입니다. 그러나 한편 말세에는 이 성령이 모든 사람에게 임할 것이고 또 새로운 생명을 탄생시키는 역할을 할 것이라고 예언되어 있습니다. 오늘의 구약본문은 에스겔이 본 환상인데 죽은 뼈들이 흩어진 골짜기에 주의 영이 그 위에 임하시자 뼈들이 마추어지고 살아나 큰 군대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환상의 의미는 마른 뼈와 같이 시들은 사람들의 영혼이 성령의 역사로 다시 살아날 것을 의미한 것입니다.
구약에서는 성령의 역사가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와 관계되어 있지만 그것은 영속적인 것이 아니라 잠정적인 것이요 일시적인 것이었습니다.
예수와 연합된 신적 능력으로서의 성령
다음으로 우리는 예수님과 성령과의 관계를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복음서에 보면,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실 때 그 머리 위에 성령이 임하여 오셨습니다. 요한복음에는 더 명백하게 성령이 내려와 그의 위에 머물렀다고 하였습니다(요 1:32). 그리고 하나님이 성령을 한량없이 주었다(요 3:34)고 합니다. 이때부터 성령은 예수님의 인격과 결합하였으며, 성령은 예수님을 떠나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예수님은 예언자들과도 다르고 성령이 충만했던 이전의 지도자들과도 다른 것입니다. 이들에게는 성령이 일시적이요 간헐적으로 역사하였지만, 예수님에게 있어서는 그의 인격과 성령이 완전히 하나로 결합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이 땅에 계실 때에 성령은 다른 곳에 혹은 다른 사람 속에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는 오직 예수님 안에서만 활동하였던 것입니다. 요한복음에 말씀하시길 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못하신고로 성령이 아직 저희에게 계시지 아니 하시더라(7:39)고 하였습니다. 이 말은 성령이 예수와 독립된 능력으로 활동하시지 않았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하나님의 능력이 충만한 분이었습니다. 그가 가는 곳에는 귀신들이 나가고 병든 자들이 고침을 받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고 가난한 자들에게 복음이 전파되었습니다. 사도행전 10:38에는 예수님의 이 선교의 과정을 한 귀절에다 요약하여 놓았습니다.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부어주셨습니다. 이 예수는 두루 다니시며 선한 일을 행하시고 귀신에게 억눌린 사람들을 모두 고쳐 주셨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게서 그와 함께 하셨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게서 이 땅 위에 계실 때 구원의 역사가 직접 이루어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인간을 새롭게 할 구원의 역사가 직접 이루어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모든 일을 이룩하실 수 있었던 것은 그 안에 들어와 계신 성령 즉 하나님의 능력으로 가능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이 예수님이 이룩하시려는 구원의 의미를 몰랐습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성령이 이룩하신 일이기 때문에 성령의 감동 없이는 깨닫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제자들에게는 아지 성령이 임하시지 않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보혜사 성령을 보내 주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내가 떠나가지 않으면 보혜사가 너희에게 오시지 않을 것이며 내가 가면 그분은 너희에게 보낼 것이라고 하시고 그가 오시면 제자들을 진리 가운데도 인도하실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또 말씀하시기를 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겠음이니라고 하셨습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게서 떠나가시면 보혜사 성령을 보내실텐데, 그가 와서 하시는 일은 예수님께서 이룩하신 구원의 역사를 깨닫게 하시며 그것을 받아드리게 하시는 일입니다.
결국 성령은 예수와 함께 연합하여 구원의 역사를 성취시키셨습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에 제자들에게 나타나시어 그들을 향하여 숨을 내쉬시며 성령을 받으라고 하셨습니다. 약속대로 제자들에게 성령을 보내신 것입니다.
교회에서 거듭나는 능력으로서의 성령
예수님의 부활은, 예언자들이 모든 사람에게 성령의 은사를 주리라고 약속한 것을 실현한 것입니다. 이 부활하신 예수님은 사도들에게 그 자신이 저들에게 약속하신 성령을 보내 주셨습니다. 그 이후 성령은 우리 주님을 무덤에서 일으키신 생명의 능력으로서 이 세상에 머물러 계시게 되었습니다. 성령은 교회 안에서 역사하고 있으며, 이 교회를 통하여 믿는 자들을 새로운 피조물로 변화시키시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시던 성령은 이제는 교회 안에서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이 교회와 분리된 성령은 한낱 귀신에 지나지 않으며, 성령과 분리된 교회는 세속적인 집단에 불과합니다. 그러므로 신약에 있어서 성령과 교회는 언제나 함께 결부되어 있어서 서로 떨어질 수 없는 관계에 있습니다. 결국 교회와 성령은 연합하여 그리스도의 몸을 이룩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교회와 성령은 그리스도가 이룩하신 구원의 역사와 깊이 관련을 갖고 있습니다.
성령을 흔히 보혜사라고 하는데 이 말은 보호자 또는 지지자를 뜻합니다. 이 보호자로서의 성령의 기능은 크리스찬들이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하는 일에 있어서 그들을 돕고 강하게 하는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이 보호자로서의 성령은 크리스찬들을 진리 가운데로 인도합니다. 그런데 예수님 자신이 진리라고 하였으므로 성령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계시를 충분히 알게 하며, 이 계시를 세상에 선포할 능력을 주시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성령은 교회로 하여금 그리스도께서 이룩하신 구원의 역사를 깨닫게 하시며, 믿게 하시며, 그것을 선포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결국 성령은 교회를 통하여 이 구원의 복음을 널리 확장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도행전을 볼 때 그곳에 나타난 주인공은 사도 베드로나 사도 바울로 알기 쉽지만, 사실은 교회 안에서 역사하시는 성령이 주인공이심을 알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에서 성령이 하시는 일은 병고치는 기적이나 방언하는데 있는 것이 아니고, 예루살렘에서 시작된 구원의 역사를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전파하게 하시는 일임을 알 수 있습니다. 성령은 때로 병도 고치게 하시고 방언도 하게 하시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복음을 전하는 방편일 뿐이지 그것이 성령의 주 임무가 아니라는 것이 너무나 확실합니다.
본문 고린도전서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성령을 통하여 하나님의 신비로운 지혜를 우리에게 나타내 보이셨다고 하였습니다(2:19). 그런데 이 신비로운 하나님의 지혜란 바로 그리스도라고 하였습니다(고전 1:24). 다시 반복되지만 결국 성령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룩된 구원의 역사를 깨닫게 하시고 널리 확장되게 하시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우리 믿는 이들을 향하여 하시는 일이 무엇입니까 그것 역시 구원의 역사와 관계된 것입니다. 성령은 우리를 육적인 죄에서 구원하시고(고전 6:11), 거듭나게 하시며, 성령은 기도로 우리를 도우시며, 우리로 봉사할 수 있게 하십니다. 성령은 은사를 우리에게 나누어 주시며, 우리를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변하게 하십니다. 성령께서 신자를 강건하게 하사 그리스도게서 그의 안에 계심을 믿게 하시며,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하나되게 하십니다. 성령은 믿는 이들로 참고 기도할 수 있게 하시며, 신자들 간의 친교를 두텁게 하십니다. 결국 성령은 우리의 믿음을 보전하시고 성장하게 하시며, 보다 완전한 신앙으로 인도해 드리시므로 구원을 성취시키시는 것입니다.
이상에서 살핀대로 성령은 하나님의 능력의 영으로서 그의 구원의 역사를 이룩하시는 분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성령이 필요한 것은 바로 그가 이룩하시는 이 구원의 역사에 동참하기 위함이며, 그 역사를 바로 깨달아 알기 위함이고, 그 구원을 성취시켜 나가기 위함입니다. 이 일을 위하여 우리는 성령 충만을 받아야 합니다.
성령 충만이란 빛이 방안에 가득 차듯이 그리스도께서 내 생활 구석구석에 시간시간마다 임재하여 계심을 말합니다. 다시 말해서 내 생애 전체가 그리스도의 이룩하시는 구원의 역사를 위하여 헌신되어지는 것을 뜻합니다.
우리는 흔히 성령 충만을 말할 때 지나치게 성령의 은사와 관련시켜 생각하기 때문에 잘못될 수가 있습니다. 성령의 은사에는 여러가지가 있습니다. 고전 12장에 나타난 은사를 볼 것 같으면, 지혜의 말씀, 지식의 말씀, 믿음, 신유, 능력 행함, 예언, 방언, 방언 통역 등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유독 신유나 방언의 은사를 원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있어야만 꼭 성령을 받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아직도 나타난 어떤 증거가 없이는 예수를 믿지 않는 연약한 자들입니다. 또 한가지 은사란 선물을 뜻하는 것으로 주는 사람의 뜻에 달린 것입니다. 성령께서 원하는대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신다고 하였습니다(12:11). 또 선물은 받을 수도 있고 못 받을 수도 있습니다. 필요하면 주실 것이고 필요치 않으면 주시지 않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성령 충만함을 입어 초대교회와 같이 되십시다. 이것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우리의 죄를 회개하고 마음문을 열기만 하면 성령께서 우리 안에 충만히 거하시는 것입니다. 성령 충만한 신앙, 성령 충만한 가정, 성령 충만한 교회 되어 맡겨진 복음의 사명을 이루어 가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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