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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두려워 하지 말라 (민 14: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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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누구나 두려움을 가지고 있읍니다. 물론 이 두려움은 사람마다 그종류가 다름니다만 그러나 이 두려움이 다 나쁜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롬13:7절에 보면 두려워할 자를 두려워하라 고 했읍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인간의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그런데 두려움이 문제가 되는 것은 두려워하지 않아야 할 사람이나 다른 것들을 두려워하는 나머지,실망하고 좌절하고 포기하고 실패해서 넘어지는데 문제가 있읍니다. 그래서 십일월을 마감하는 이 마지막 주일에 여러분들과 함께 은혜를 나눌려고 하는 설교의제목은 [두려워하지 말자]는 말씀입니다.

1. 먼저 살펴볼 것은 왜 우리가 두려워하는가 입니다.
우리는 먼저 이 두려움의 원인을 알아야 이 문제를 해결할 수가 있읍니다.
마치 환자가 병을 고치기 위해서 의사에게 와서 청진기로 진찰을 받는 것처럼 우리는 의사되신 예수님께 와서 말씀의 청전기로 진찰을 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성경을 보면 크게 네가지으 경우에 두려워하는 것을 볼 수 있읍니다. 첫째는 죄를지었을 때 인간은 두려워합니다. 아담의 경우를 보십시요 아담과 하와는 선악과를 따먹고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을 때에 동산 나무사이에 숨었읍니다. 아담아 내가 어디 있느냐고 했을 때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라고 대답했읍니다. 아담은 범죄하기 전에는 늘 하나나님과 함께 있었고 그 때마다 기뻣고즐거웠읍니다. 그러나 범죄한 후에는 그형편이 달라졌읍니다. 하나님 뵙기가 두려웠던 것입니다.
구약에 보면 요나란 선지자가 있읍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너는 저원수의나라인 니느웨로 가서 회개를 외쳐 그들을 구원하라는 음성을 듣고 생각했읍니다.
아니 이스라엘의 원수의 나라에 복음을 전해 심판을 받아도 마땅한 놈들인데 하고, 그러나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한 후에는 마음에 겁이 났읍니다. 그래서 그는여호와의 낯을 피하려고 욥바로 내려갔읍니다. 마침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탔지만그래도 마음이 깨름직합니다. 그래서 배 밑층으로 내려가서 숨었읍니다. 요나가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죄를 지었기에 마음에 두려움이 생긴 것입니다. 사람이언제 마음에 두려움이 생깁니까 무엇보다도 죄를 지었을 때에 사람은 두려움을가집니다. 또 요나처럼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하지 않을 때 두려움이 생겨집니다. 이 때 두려움은 양심의 소리입니다. 회개하라는 하나님의 음성입니다. 죄의 문제를 해결하라는 재촉장입니다.
둘째로 언제나 두려움이 옵니까 자신이 너무 연약하다는 것을 깨달았을때에 우리는 두려워합니다. 민수기 13절을 보면 40일 동안 가나안땅을 탐지하고돌아온 정탐군 10명은 가나안 땅이 젖과 꿀이 흐느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러나 (바로 이 그러나란 말이 문제)그 땅 거민은 강하고 성읍은 견고하고 심히 크다고했읍니다.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아요 우리는 능히 올라가서 그 백성을 치지 못합니다 하고 말했읍니다. 이것은 외적으로 볼 때에 하나도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어떻게 보면 올바른 비교입니다. 그러나 신앙인은 외적인 통계나숫자나 규모만 보지 않습니다. 만약에 우리가 외적인 것만 본다면 도대체 안믿는사람과 무엇이 다릅니까 도대체 신앙이란 어떤 가치가 있읍니까 지금 여러분들에게 두려움이 있읍니까 이 두려움은 대부분의 경우 외적인 비교에게 왔다는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셋째로 우리의 두려움은 불확실한 미래 때문에 옵니다. 내일 무슨일이 벌어질까 그러면 난 어떡하지 그러면서 두려움이 생깁니다. 사실 어느 누구엑게나 미래는 확실할 수가 없읍니다. 요13장을 보면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말합니다. 너는 지금은 나의 가는 것에 함께 갈 수가 없다. 그러자 베드로가 대답합니다. 주님, 제목숨이라도 버리겠읍니다. 그 때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진실로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닭이 울기 전에 네가 세번 나를 부인하리라. 그러자 제자들은 마음이 불안하고 두려웠읍니다. 과연 우리들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이 때 주님은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하시면서 저들을 위로해 주셨던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심지어 주님의 제자들까지도 불확실한 미래에 대해서 두려워했던 것을 볼 수가 있읍니다. 어디 예수님의 제자들 뿐이겠읍니까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우리가 두려워하는 이유를 보면 고3에 있는 자녀가 과연 대학에 붙을 것입가 금년에 졸업하는 자녀는 취직을 하게될 것인가, 원화가 계속해서 절상을 하고 있는데 지금 하고 있는 사업에 부도가 나지나 않을 것인가,지금 건강이 계속해서 나빠만 지느데 이러다가 암에 걸려 죽는 것은 아니가 등등크고 작은 많은 두려움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따지고 보면 믿음의 눈으로 보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성의눈으로 볼 때에는 미래만 언제나 불확실하고 그러기에 언제나 불안하지만 그러나믿음의 눈으로 볼 때에는 역사으 흥망성쇠가 다 하나님의 손안에 있기 때문에 두려울 것이 없읍니다. 아니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손 안에 모든 것이 있는데 두렵기는 무엇이 두렵다는 말씀입니까 문제는 어떤 눈으로 보느냐에 있읍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눈으로 보세요. 갈렙과 여호수아처럼 믿음의 눈으로 보면 그들은 우리 밥입니다 라는 고백을 할 것입니다.
끝으로 우리가 두려운 것은 죽음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 제일 무서운 것은 뭐니 뭐니 해도 죽는 것입니다. 죽음은 이 세상에서는 모든 것의 마지막이기때문에 두려운 것입니다. 죽은 뒤에는 그 무었도 다시 시작할 수 없기 때문에 두려운 것입니다. 출14장을 보면 홍해 바다 앞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앞에는바다가 있고 뒤에는 애굽의 군대가 따라 오고 있어서 아리구 이제는 죽었구나,차라리 애굽 사람밑에서 노예생활하는 것이 더 나을걸 여기서 죽다니 하고 두려워하고 있었읍니다. 10절에 보면 이스라엘 자손이 심히 두려워하여 여호와께 부르짖었다고 했읍니다. 이 때에 13절에서 너희는 두려워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날 너희을 위하여 행사하시는 구원을 보라 는 모세의 확신에 찬 말을볼 수 있읍니다.
그러면 모세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없었다는 말입니까 아닙니다. 모세도 인간입니다. 그도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있었읍니다. 그러나 모세는 인간의 생사화복이 바로 하나님의 손 안에 있다는 것을 믿었기 때문에 그는 모든 것을 내어 맡겼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두려움을 극복할 수가 있었읍니다. 이제우리의 생명을 주신 그 하나님께 모든 것을 내어 맡기고 염려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2. 다음으로 살펴볼 것은 그런면 이 두려움을 우리는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입니다. 네가지 방법이 있읍니다.
첫째로 죄의 문제는 어떤 인간도 해결할 수가 없기 때문에 이것을 해결할수 있는 주님에게 맡기면 그가 해결사가 되어주십니다. 사1:18절에 보면 오라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되리라 얼마나 복된 소식입니까 또 요한1서1:9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만일 우리가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하게 하실 것 이라고 했읍니다. 믿으시면 한번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이제 할 것은 하나님께 나오는 것이요 자백하는 것이 남아 있읍니다. 왜 염려합니까 왜 혼자서 해결하려고 괴로워 합니까
두번째 해결방법은 능력의 주님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두려움은우리의 연약성에서 온 것이기 때문에 능력의 주님을 의지하고 그에게서 능력을 받으면 우리는 승리할 수가 있읍니다. 삼상 17장에 보면 어린 소년 다윗이 블레셋의세계적인 명장 골리앗을 물리친 내용이 나옵니다. 당시 다윗에겐 갑옷도 없었고그렇다고 칼이나 방패도 없었읍니다. 다만 목동으로서 가지고 다니던 막대기 하나와 물매돌 다설개만을 그는 가지고 있었읍니다. 45절에 보면 다윗은 이렇게 말합니다.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네게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내게 가노라 다윗은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줄 믿었읍니다. 비록 자신이 군인이 아니고 또 손에 무기가 없지만 그러나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함께계시면 그 누구도 무리칠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읍니다. 바로 이것이 다윗을 다윗되게 한 것입니다. 이 세상 험하고 내 비록 약하지만 만군의 주 여호와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무엇이나 할 수 있다는 이 [불가능의 가능성]을 믿는 그 신앙이 다윗으로 하여금 위대한 군인이 되게 한 것입니다.
여기 종이가 있읍니다. 약합니다. 누구나 찢을 수가 있읍니다. 그러나이것이 뒤에 반석이 붙어있으면 아무도 찢을 수가 없읍니다. 우리도 마찬가지 입니다. 요즈음 전대통령의 친인척들이 구속되거나 조사를 받고 있읍니다. 전에는아무것도 아니 사람들이었지만 대통령이란 빽때문에 마음대로 권력을 휘두르다가그 빽이 권력을 놓자 와르르 무너진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빽입니다. 그런데 세상의 빽은 다 잠정적인 것이요, 일시적인 것입니다. 그래서 열흘 붉은 꽃이 없고, 십년간 계속도리 세도가 없읍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빽은 영원합니다. 그러므로 빽중에 빽은 바로 하나님이신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비록 약한 양들이지만 우리의 목자되시는 주님은 능력이 많으시기 때문에 우리는 두려워할 필요가 없읍니다. 다만 그 주님만 의지하면 그 주님이 모든 것을 해결해주실줄로 믿습니다.
세째로 두려움이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에서 오는 것이기 때문에 마음에 확신을 가지면 이 두려움은 안개처럼 사라집니다. 오늘날 처럼 확신이 없는 시대도없읍니다. 말까지 [... 인것 같아요] 라는 말을 너무 남용하고 있읍니다. 사회가어지럽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도무지 확신이 없읍니다. 그러나 우리 성도들은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면 언제 이 확신이 생깁니까 먼저 믿음을 가질려는 강한의지가 있어야 합니다. 다음은 성령이 주신 믿음을 사용하여야 합니다. 다음에는 어떤 사건이 생겨질 때에 나와 문제 사이에 하나님을 두도록 해야 합니다. 끝으로 믿음은 들음에서 난다. (롬10:17) 고 했으니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딤전4:14절에 보면 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고 했읍니다. 말씀을 배위야 확신이 생깁니다. 성경을 읽고 연구해야 확신이 생깁니다. 믿음의 씨앗은성령께서 뿌려주시지만 이것을 키우는 것을 우리 자신이 하는 것입니다. 영의 양식인 말씀을 배워서 우리 모두가 확신에 거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끝으로 우리가 어떻게 할 때에 두려움이 사라집니까 그것은 생사를 초월하는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이것을 어려운 말로는 종말론적 신앙이라고 말합니다. 이 세상에서 죽는 것이 두렵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겠읍니까 저도 지금 당장죽기는 두렵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재림의 주님을 기다리는 신앙을 가지면우리에게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집니다. 아멘 주 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하는 신앙고백을 할 수가 있읍니다.
이제 설교를 마치려고 합니다. 우리는 다 두려움을 가지고 있읍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대한 두려움을 가지는 것은 당연하지만 죄에대한 두려움이나 우리의 상대와 비교하면서 연약함 때문에 두려워할 필요는 없읍니다. 또 미래가 불투명하다고 두려워할 필요도 없읍니다. 죽음이 다가온다고 두려워할 필요도 없읍니다. 다만 모든 것의 해결사가 되신 주님만 꽉꽉 믿으시기 바랍니다. 주님은 내가세상 끝날 때가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고 약속했읍니다. 능력의 주님께서함께 계시는데 왜 우리는 두려워합니까 무엇보다도 재림의 주님을 고대하시면서살면, 종말론적 신앙을 가지고 살면 모든 것이 해결됩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가 할 것은 주여, 내게 믿음 없음을 도와주소서 하고 기도할 뿐입니다. 다 같이기도하겠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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