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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보리떡을 바친 소년 (요 06: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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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의 표현은 어디에 있는가 가장 훌륭한 신앙의 표현은 능력이 아 니다. 아름다운 설교는 더욱 아니다. 신앙의 참된 표현은 헌신에 있 다. 이 헌신의 깊이가 한 사람의 신앙이 어느 경지에 와 있는지를증 거하고 있다.아름다운 말과 세련된 매너를 기독교인들에게서 많이 볼 수 있다. 따뜻한 눈길 다정스러운 인사 교양인의 태도도 볼 수 있다.

훌륭하다.

그러나 가장 확실한 신앙의 표현은 헌신이다. 헌신이란 자신을 드리 고 자신의 재물이나 시간이나 정력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다.그것은 이웃이나 교회나 기타 하나님의 일을 위한 행동으로 표현된다. 훌륭한 신앙의 사람들은 반드시 헌신을 하였다. 훌륭한 신앙을 설명하는 기주 도 헌신이다. 왜냐하면 헌신을 통해서 하나님이 일이 진행되고 열매를 맺기 때문이다.

본문에는 헌신의 아름다운 예가 나타나 있다. 예수께서 갈릴리 바다 건너편으로 가실 때 들로 사람들이 따라갔다. 남자만 5천명이니 수만 명이 따라갔던 것 같다. 그 무리들이 얼마나 오래 있었는지 알 수 없 다. 하지만 오랜 시간이 지나서 모두들 허기진 배를 움켜쥐고 앉아 있 었다. 여기는 민가와 멀리 떨어진 곳이다. 먹을 것을 구하려면 몇 시 간을 가야할지 모른다.

그때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묻는다.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에게 먹게 하겠느냐 제자들의 대답은 이백 데나리온으로도 음 식 값이 부족하리라는 것이다. 그리고 물건을 파는 곳이 얼마나 먼 곳 에 있는데 돈이 있으면 무엇하겠느냐는 것이다. 보통 사람의 상식으로 는 전혀 가능성이 없는 이야기였다. 예수라도 무슨 뽀족한 수가 없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자 다른 보고가 들어왔다. 어린 아이 하나가 보리떡 다섯개와 작 은 물고기 두 마리를 바쳤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으로 이 많은 군중 을 먹이리라는 상상은 아무도 하지 않았다. 이 어려운 판국에 그런 것 이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그러나 예수는 그렇지 않았다. 그것을 가져 오라 하신 다음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그러나 그 모든 군중이 다 배불리 먹었다.

여기서 예수는 확실하게 육신의 양식을 그들에게 공급하셨다. 그것이 무슨 최면숙을 걸거나 아니면 믿음의 방법으로 아무것도 먹지 않았지 만 먹은 것처럼 느끼게 한 것이 아니었다. 그러기에 그들이 먹고 남은 것이 열두 광주리나 된다고 하지 않았던가. 예수께서 확실하게 우리의 물질적인 부족도 책임을 져 주시는것이 여기서 명백히 드러난 것이다.

이 신화같은 이야기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적어도 우리가 믿 는 하나님이 이 정도는 된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는 구태 어 예수를 믿을 필요도 없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의 문제에 이처럼 확실하게 대답을 한다는 것도 그래서 믿는 자들의 삶에는 여러가지 기 적들이 나타난다는 사실을 믿어야 한다.신자는 살아있는 예수 그리스 도의 분신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서 관심을 쏟아야 할 부분은 헌신이다. 이 기적은 어린 아이가 자기의 물건을 바쳤기 때문에 나타난 열매이다. 이것이 또한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의 필수적인 면이다. 대부분의 경우 그리스도의 신성과 그의 권능이 강조되어 왔다. 그러나 인간 쪽의 헌신도 함께 강 조되어야 한다. 헌신은 무엇이건 아름답다. 그러나 기적은 바른 헌신 에서만 나온다.

소년은 보리떡을 이웃과 나눌 수 있었다. 그렇게 함으로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할 수 있었다. 그래서 감사의 말과 칭찬을 들을 수 있었 다.그리고 자기의 따뜻한 마음을 이웃에게 얼마동안 심어줄 수 있었 다.그러나 그는 자기 점심을 주께 드렸다. 아무리 칭찬도 없었따. 하 지만 그의 행적은 성경에 기록되어 모든 사람들에 기감이 되었다. 왜 그럴까 보리떡을 이웃에게 주면 구제가 된다. 이웃에게 주면 개인적인 열매 가 있다. 누가 주는지 모르게 주면 더욱 열매가 크다. 그것을 통해서 신앙의 가장 큰 훈련이 된다. 그러나 주는 것이 나의 것이다. 내 것이 사라져감을 보게된다. 희생의 가장 기본적인 형태가 여기서 이루어진 다. 시간과 정력과 재물을 희생하여 이웃에게 도움을 줄 수 있따. 이 것은 꼭 필요한 훈련이다.

그러나 하찮은 보리떡이라도 주께 드리면 헌금이 된다.주께 드리는 것은 기적이 있다. 그것은 내가 어떻게 하기를 요구할 수 없다. 주께 서 마음대로 하신다. 그러나 그렇게 하면 그리스도가 일을 하신다. 그 래서 기적을 만들어 낸다. 무엇이든 자신의 것을 주께 드려보라. 그러 면 주께서는 그것을 가지고 주의 일을 하신다. 우리의 헌신을 통해서 하나님의 일이 진행된다.

여기서 성경은 인간을 보리떡과 비교한다. 보리떡과 같은 자신을 하 나님께 드려서 하나님이 쓰시게 한다면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가! 그 러나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삶을 드리지 못한다. 너무나 아깝다고 생 각한다. 드려지지 않은 보리떡은 점점 상해갈 것이고 무엇인가에 먹혀 버리고 만다. 그러나 하나님의 손에 들려진 보리떡은 여러 사람들을 유익하게 한다.

헌신의 댓가로 복을 주는 것으로 생각하면 안된다. 내 것을 드리면 그 댓가로 무엇을 주는 하나님이 아니다. 어차피 보리떡은 한 사람분 의 점심이요 더 이상의 가치는 없다.그것으로 복을 살 수는 없다. 많 은 신자들은 자기는 그대로 있고 자기의 무엇인가를 하나님께 드려서 자기에게 복이 돌아오기를 기대한다.그것은 사실상 헌신이 아니다. 헌 신은 몽땅드리는 것이다.

하나님께 드려진 것만이 거룩하다.나는 그대로 있는채로 내 돈을 드 리면 그 돈만 거룩하다.내 물건을 드리면 그 물건만 거룩하다. 하나님 의 것은 거룩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여진히 죄속에 있다. 하나님 밖에 있는 것이다. 그러나 자신을 몽땅드리면 하나님의 것이 된다. 그 러므로 거룩하다. 이것이 바로 산 제사이다. 그리고 내게 속한 모든 것도 역시 거룩하게된다.

자신을 드린다고 하여도 본리 우리는 우리의 것이 아니었다. 하나님 의 것이었는데 배신하고 떠났다. 헌신은 우리의 것을 드리는 것이 아 니다. 하나님의 것이 다시 하나님의 것으로 되는 것이다.어떤 청년이 눈물을 흘리면서 말한다. 주여 내 몸을 바칩니다. 받아 주시옵소서.

하나님은 대답하힌다. 오냐, 그러나 이 점을 명심하라. 네 것은 본래 아무 것도 없었따.

도대체 우리의 것이 어디 있는가.모두가 하나님의 것이다. 그 점을 인정하고 주인에게 돌려드리는 것이 헌신이다. 그러면 주인은 다시 돌 려주어 우리가 청지기로서 일을 하게 하신다. 주인을 알고 주인을 인 정함으로서 우리의 삶은 바른 질서를 잡아간다. 자신을 하나님께 드 리지 않은 사람은 절대로 삶의 질서를 누리지 못할 것이다. 언제나 수 고하지만 곤고할 뿐이다.

헌신한 사람은 이미 자신의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것이다. 헌신하면 즉 내 것을 드리면 복이 오는 것이 아니다. 헌신하면 내 것은 없고 주 의 것만 있다. 그러면 헌신 그 자체가 복이요 능력이다. 천국은 절대 로 내 것으로 살 수 없다. 나의 전체를 팔아야 살 수 있다. 내것은 아 무리 많아도 천국의 한 귀퉁이도 못산다. 하지만 나 자신이 아무리 부 족해도 다 팔면 산다.

나를 주께 바친 사람은 자신이 더 이상 자기의 것이 아님을 알게된 다. 주의 것으로 거룩한 존재이다. 하나님의 것이라는 표현이 나타난 다.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능력이 나타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하나 님의 뜻을 행해야겠다는 신념이 그의 얼굴에 나타난다. 그의 삶 전체 가 바로 하나님의 것으로 진행된다. 이것이 참으로 헌신한 사람이다.

이렇게 될 때 헌신 그 자체가 복이요 능력임이 확실하게 나타난다.

나는 복의 도구가 되고 하나님은 자기의 송퓨에 머무신다. 아무리 작 은 집에라도 자기 집에 살려고 하지 누가 남의 큰 집에서 살겠는가! 하나님의 내 안에서 나와 함께 사신다. 내가 움직일 때 하나님도 함께 움직이고 내가 노래할 때 하나님은 나를 통해서 노래하다. 나를 톺자 해서 하나님은 하나님 되신다.

모세가 80세 되었을때 불붙는 가시나무를 보았다 신비한 불길은 끊임 없이 일어나고 있었다. 그리고 그 강한 불길 속에서 나무는 하나도 타 지 않고 그대로 있었따. 그럼으로 이 불길도 끊어지지 않고 계속되고 있었다.하나님의 것은 불처럼 뜨겁게 탄다. 그러나 타서 없어지지 않 는다. 불사조처럼 영원히 산다. 가시떨기는 헌신한 신자의 모습이다.

사도바울이 헌신한 뒤에 그는 근심하는 것처럼 죽는 자처럼 되고 징 계당하는 자처럼 되었다. 가난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같았다. 그러나 그는 참으로 기뻐하는 자요 영원히 사는 자요 죽임을 당하지 않고 하 늘의 축복으로 채워진 부요한자요 모든 사람을 구원하며 모든 것을 가 진 자라고 스스로 고백하였다. 그는 자신의 삶에 대하여 참으로 자부 심을 가지고 있었다.

모세는 스스로 불붙는 가시나무가 되기로 결심한다. 나 하나 그냥있 으면 가시나무이다. 아무 쓸모없는 나무이다.하지만 주께 드리면 불붙 는 나무가 된다. 바울도 같은 결심을 하였다.우리도 그러하다 주께드 리기로 결심하라. 그리고 매순간을 드리라. 그리하여 뜨겁게 타지만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불사조같은 존재가 되라. 하나님의 것은 거룩하 다. 그리고 영원하다.

스스로 채우라 하나님으로 하나님께 드린 사람은 하나님처럼 생각한 다. 하나님이 그를 통해서 말하고 행동하신다. 그는 이 땅에서 움직이 는 하나님의 집이다. 아무리 남의 집이 크고 아름다워도 그리고 내 집 이 아무리 못생겼어도 내 집만이 안식을 준다.마찬가지고 하나님도 나 만을 집으로 삼고 거하신다.내 안에 하나님의 모든것이 다 주어진다.

헌신한 사람은 하나님의 것이다.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의 방식으로 산다. 하나님의 마음이 그 안에 채워지고 하나님의 복음이 그 생각을 지배한다. 하나님의 생각이나 마음이 곧 내 생각이나 내 마음이기 때 문이다. 그에게는 슬픔이나 근심은 없다. 두려움도없다.하나님의 평안 과 거룩한 기쁨이 넘치고 있다. 헌신한 사람의 모습은 참으로 하나님 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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