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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사랑을 입은 자녀의 생활 (엡 05: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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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에게 어떻게 믿음을 지킬 것이며, 어떤 생활이 온전한 신앙생활이며,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자녀의 삶인지 우리는 혼돈 될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물질만능의 시대에 살고 있는 성도들!, 이기주의와 개인주의가 만연된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는 성도들!, 육체의 향략을 추구하는 모습이 최고도로 달하고 있는 시대에 살아가고 있는 성도들!, 크리스챤이라고 하면서 무리를 일으켜서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드는 시대를 사는 우리 성도들! 과연,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는 생활이 주님이 요구하시는 참된 생활이 되는 것인지를 분별하지 못할 경우들이 많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우리의 생활과 비슷한 환경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권면을 받은 에베소 교인들의 모습을 살펴보면서 우리의 나아갈 해답을 찾아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본문은 바울이 에베소 교인들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면서도 불구하고, 과거의 어두움의 죄악된 생활을 벗어버리지 못하고 그 생활을 추구하고 있는 에베소 성도들에게 이제는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자녀가 되었으니 사랑을 입은 자녀처럼 변화된 생활을 하라는 말씀이 되겠습니다. 구체적으로 당부한 내용이 무엇인지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하나님을 본 받는 생활을 하는 것이다(1-2절).1)본문설명:
여기에서 ‘본받는 자(미메테스)’는 ‘흉내를 잘 내는 사람(미모스)’에서 유래된 말로 ‘모방자’의 뜻을 지니고 있다. 이 단어는 신약 성경에서 인간을 본받는다는 뜻으로 주로 사용되었는데(고전4:16;11:1), 본 절에서만은 ‘하나님을 본받는다’는 뜻으로 쓰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자녀는 하나님을 본받는 생활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는 자녀 된 자로서 마땅히 아버지의 성품을 닮아 가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이러한 삶은 구원의 주체이신 하나님께 대하여 가져야 할 기본적인 삶의 자세로써 성도의 삶 전체가 하나님의 구원 목적에 적합하며 구원의 주체이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거룩하고 순결한 삶이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2절에서는 하나님을 본받는 생활이 무엇인지를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 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을 본받는 구체적인 내용이 사랑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죄인된 우리를 무조건적으로 택하시고 친히 희생제물이 되어 주신 그리스도의 완전한 사랑을 보여주신 것처럼 우리도 우리의 몸과 생명까지 다 드려서 그 주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행하라(페리파테이테)’는 뜻은 현재 명령형으로 계속되는 반복의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즉 그리스도의 사랑을 본받아 계속해서 실천하라는 명령인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을 본받는 생활입니다.
2)성경적 연결:
바울은 고전11:1에서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 된 것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 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역시 살전1:6에서 또 너희는 많은 환난 가운데서 성령의 기쁨으로 도를 받아 우리와 주를 본받은 자가 되었으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본받는 생활이 바로 새 계명을 지키는 것, 즉 서로 사랑하는 것이라고 주님도 요13:34에서 말씀하고 계십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바울사도 역시 고전16:14에서 너희 모든 일을 사랑으로 행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3)적용)
많은 성도들이 주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하면서도 주위의 사람들을 사랑하지 못하는 경우들이 많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함께 신앙 생활하는 교회 공동체 안에서도 서로 신뢰하지 못하고 마음을 열지 못한 불신 가운데서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성도들을 사랑하지 못하고, 담임 목사님을 사랑하지 못하고, 부모님을 신뢰하지 못한 가운데서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외식이요, 형식적인 것임을 깨달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모든 일의 최우선이 바로 사랑입니다. 성도들은 사랑이신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 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임을 다시금 기억하면서 그분의 사랑가운데 행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러한 생활이야말로 하나님을 본받는 생활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2. 죄악 된 삶을 버리는 생활입니다(3-7)1)본문설명:
바울 당시 에베소 교회가 위치해 있는 지역은 헬라의 문명을 받아 들였고, 아데미 여신을 숭배하는 지역이었으며, 여러 나라의 통치를 받은 지역으로 에베소에는 여러 다양한 문화가 혼합되어 발전한 도시였다. 그러므로 고대 종교의 중심지 가운데 하나로도 널리 알려졌고, 그런 이유로 에베소 교인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은 주님을 영접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옛 사람의 성품을 벗어버리지 못하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당시 고대 문란했던 세계의 죄악 된 풍습을 버리고 거룩한 생활을 해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본문에서 여러 가지의 죄악 된 생활을 열거해 놓고 있습니다. 그 종류를 살펴보면, ‘음행’은, ‘간음’, ‘매음’의 뜻을 지니는 말로 결혼 관계 이 외의 모든 불법적인 성관계를 가리키고 있습니다. 이 음행은 이교도들의 종교의식의 한 특징으로 나타나기도 하는데, 성경에서는 이스라엘의 우상 숭배의 죄를 음행에 비유하고 있기도 합니다. ‘더러운 것’은 성 문제에 대한 불결한 생각과 말과 행위를 말하는 것입니다. ‘탐욕’은 이익만을 추구하는 정욕적인 욕심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이런 것들은 이름도 부르지 말라고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누추함’은 천하고 속되고 더러운 말을 가리키고 있으며, ‘어리석은 말’은 아무 유익이나 가치가 없는 말이라는 의미 이상의 죄성을 띤 말을 가리키고 있다. ‘희롱하는 말’은 저속한 의미로 상스러운 말, 독설 등의 뜻으로 쓰인다. 바울은 이러한 죄악 된 언어와 모습에서 돌이켜서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의 말을 하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세상의 거짓 스승들은 위의 죄들을 죄가 아니라고 거짓말하여 유혹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여기에 속지 말아야 합니다. 이는 하나님의 진노가 불순종하는 아들에게 임하기 때문입니다.
2)성경적 연결:
예수님은 마5:32에서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음행한 연고 없이 아내를 버리면 이는 저로 간음하게 함이요 또 누구든지 버린 여자에게 장가드는 자도 간음함이니라고 말씀하고 계시며, 사도 바울은 고전5:11 이제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만일 어떤 형제라 일컫는 자가 음행하거나 탐람하거나 우상 숭배를 하거나 후욕하거나 술 취하거나 토색하거든 사귀지도 말고 그런 자와는 함께 먹지도 말라 함이라고 강하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또한 더러운 말에 대해서는 엡4:29에서 입 밖에도 내지 말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
3)적용
바울 당대의 에베소 지역에서의 만연된 죄악들과 우리가 사는 이 시대의 죄악의 종류들을 살펴 볼 때에 유사점들이 많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유사점들이 많이 있을뿐더러 그 악함이 에베소 지역 보다 더 가증하고 더 악하다는 것에 우리는 문제가 심각함을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바울이 에베소 성도들에게 이러한 죄악된 길에서 떠나라는 말씀을 한 것처럼 이 시대에 교회 내에 성도들에게도 이 명령이 더욱 절실하고 강하게 외쳐져야 할 필요성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주님을 믿노라고 하면서도 옛 풍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세상과 벗하면서 살아가는 성도들이 많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숭배니라”(골3:5)고 말씀하십니다.

3. 빛 가운데 거하는 생활입니다(8-14).1)본문설명:
그리스도인들은 이제 이전의 어두움이 더 이상 아니므로 어두움의 일을 행치 말고 빛의 자녀들처럼 행할 것을 권면 하고 있습니다. ‘빛’은 죄악 세상과 대조된 것으로 ‘하나님 나라’를 의미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은 빛이시라’(요일1:5)고 증거하며 하나님을 아는 지식, 거룩하고 깨끗한 생활, 인간에게 자신을 타나내시는 계시인 진리를 빛으로 상징하고 있습니다. 에베소 교인들에게 바울은 과거에 불신앙 상태에 놓여 있었던 생활에 있었으나 지금은 참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어둠의 권세에서 벗어나 빛의 자녀가 되었으니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고 권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빛의 열매는 악에 대한 일반적인 선을 말하고 있는 ‘착함’이며, 도덕적 악과 불안을 버린 정직하며 성실한 생활인 ‘의로움’이며, 허위와 외식에 반대되는 도덕적 진실을 의미하는 ‘진실함’입니다. 여기서 ‘어두움의 일’은 ‘악한일’, ‘육체의 일’, ‘죽음의 일’로서 열매가 없는 사망에 이르는 길인 것입니다. 바울은 세상 사람들과 근본적으로 구별된 성결하고 거룩한 빛으로 생활하면서 세상사람들의 죄를 들춰내어 부끄럽게 만들고 책망하라는 적극적인 자세를 또한 원하고 있는 것입니다.
2)성경적 연결:
바울은 살전5:5에서 “너희는 다 빛의 아들이요 낮의 아들이라 우리가 밤이나 어두움에 속하지 아니하나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빛의 아들입니다. 고후4:6에서도 어두운데서 빛이 비취리라 하시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취셨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골1:13에서도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고 옮기셨으니”라고 바울사도는 빛 되신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임을 확증하고 있습니다.
3)적용:
이 시대에 어두움의 일들이 더욱 번성하고 있으며, 거기에 종사하고 있는 자들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습니다. 국가 경제도 실명제로 들어 난 돈도 많지만, 지하에 숨어 있는 돈들이 엄청나다고 합니다. 세상 모습은 가면 갈수록 어두움의 일들이 판을 치고 득세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밤은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두움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롬13:12)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습니다. 다시 오실 주님의 나라가 임박하였을진대 우리가 더 이상 어두움의 자녀로 살아서는 안되겠습니다. 어두움의 자녀들에게 보장된 것이 아무것도 없으며, 그 길은 사망에 이르는 것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잠자는 자리에서 깨어 모든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서서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으로 빛의 생활을 감당하시기 바랍니다.
결론
우리가 지금까지 어떻게 생활하고 있었는지 잠시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면서도, 크리스챤이라는 좋은 이름을 가졌으면서도 진정한 삶의 모습은 어떠하였는지 오늘 말씀을 통하여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에베소 교인들에게 하신 바울의 권면을 우리도 깊이 받아 들여서 우리 속에 잔재해 있는 어두움의 일들을 벗어버리고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자녀로서 하나님을 본받는 생활을 하시고, 죄악된 어두움의 생활을 벗어 버리고, 빛의 자녀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이 시대에 진정으로 필요한 사람은 세상과 교회와 번갈아 가면서 이중적으로 생활하는 교인이 필요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 앞에 신실하고 진실 된 빛의 자녀가 필요한 시대요, 그러한 교회가 절실히 요청되는 시대입니다. 이미 우리는 빛의 자녀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과거의 죄악 된 생활을 동경하는 어리석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제는 변함없는 예수 그리스도를 푯대 삼아 전진할 수 있는 목표가 있고, 비젼이 있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진심으로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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