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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 (시 2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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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모 일간지에는
조기퇴직 신드롬이라는 제목의 특집 기사 가 연재되고 있습니다. 아마 여 러분도 읽어보셨으리라 생각합니 다만 저는 그 기사를 읽으면서 참 찹찹한 심정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습니다. 한참 일할 나이에 있는 사람들이 갈 곳이 없어서 길거리를 헤매며 다니거나 방구 석에 쭈그리고 앉아 빨리 하루해 가 지기를 기다리는 그런 일들이 이제 더 이상 낯설게 여겨지지 않을 만큼 주변 도처에서 일어나 고 있기 때문입니다.
잘 알려진 모 기업에서 소위 '잘 나가는' 부장으로 명성을 떨 쳤던 정 모씨의 이야기는 특히 제 마음을 아프게 했습니다. 그 는 올해로 마흔 네 살입니다. 회 사를 위해서나 나라를 위해서, 혹은 가정을 위해서 보다 원숙한 처지에서 신바람 나게 뛸 수 있 는 그런 처지에 있는 사람이었습 니다. 그런데 그런 그가 하루아 침에 퇴물 취급을 받아 회사를 나올 수밖에 없게 된 것입니다. 실직을 당하고 난 그 다음날에도 그는 평일과 다름없이 넥타이를 메고 정장차림을 한 채 집을 나 섰습니다. 마땅히 갈 곳이 있어 서라기보다 가족들이 알까봐 집 에 있을 수도 없었기 때문입니 다. 그는 먼저 영화관에 들려 조 조 영화를 한 편 보고 과천 경마 장으로 가서 한참 동안을 멍청하 게 앉아 있었습니다. 그래도 아 직 시간이 많이 남아 종합 전시 관을 둘러서 여기저기 살피며 소 일하다가 청계천으로 가서 벼룩 시장을 기웃거렸습니다. 그래도 여전히 하루해가 많이 남아있었 습니다. 그에게는 하루가 천년과 같이 길게 느껴졌습니다. 퇴직을 당한 후 4개월 동안 대학 행정직 을 구한다기에 이력서를 내보았 지만 감감 무소식이었고, 농협에 가서 돈을 융자를 내려 해도 뜻 대로 안되고, 중소기업에 가서
아무 일이라도 좋으니 날 좀 써 주시오
하고 사정을 했지만 그 어디에서도 신통한 대답을 듣지 못했습니다.
저는 그가 신문기자에게 털어 놓은 말을 읽으며 가슴이 저미어 오는 것을 느꼈습니다.
저는 열 심히 일했습니다. 정말 열심히 일했습니다. 직장에 충실한다는 것이 나와 처자를 먹여 살리는 길이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한 번도 직장을 떠난다는 생각은 해 보지 못했습니다. 이제 생각하니 나의 가장 큰 실수는 직장에만 충성하면 된다는 착각 때문에 앞 날을 대비하지 못했다는 것입니 다.
저는 그 한 마디 한 마디에 얼마나 진한 슬픔과 탄식과 원망 과 서러움이 배어 있는지를 피부 깊숙이 느낄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미국 기업 중 에 AT&T라는 유명한 통신회사 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 기업은 최근 경영 합리화를 위해서 그룹 을 일곱 개의 회사로 나누는 매 우 어려운 작업을 시작했다고 합 니다. 그러니 그 과정에서 얼마 나 많은 사람들이 다쳤겠습니까 종신 고용의 특혜도 없어졌습니 다. 그리고 이 때까지 누려왔던 지위도 다 날아가게 되었습니다. 다행히 회사에 남게 된다 해도 월급이 깎일 수밖에 없는 그런 기가 막힌 처지가 된 것입니다. 회사는 사원들에게 회사의 사정 과 그로 인해 발생될 수 있는 여 러 가지 어려움을 솔직하게 다 털어놓았습니다. 사원들로 하여 금 비극적인 현실을 애도하고 미 리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도록 시간을 준 것입니다. 사원들이 모인 곳이면 어디든지 회사와 자 신들의 운명에 대한 화제가 만발 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들의 앞날을 놓고 걱정하다가 한숨을 쉬기도 하고, 눈물을 흘리기도 했습니다. 그럴 때 회사는 눈물 흘리는 사람들을 위해 손수건까 지 주었다고 합니다. 얼마나 인 간적인 세상입니까 마음대로 부 려먹다가 안되겠다 싶으면 눈 딱 감고 그냥 잘라버리는 우리 나라 기업들과 얼마나 다릅니까 정말 인간적인 기업주라면 최소한도 사원들로 하여금 불가피하게 당 하게 될 불이익을 슬퍼할 수 있 는 기간도 주어야 되고, 눈물을 흘리는 사람이 있으면 손수건을 주어 눈물이라도 닦을 수 있게 해 준 뒤에 어떻게 하든지 해야 마땅한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앞으로 3-4년이 지나면 베이비붐 세대가 떠밀고 올라오기 때문에 지금의 4-50대 들이 잘못하면 대량 실직 사태를 맞이하게 될지도 모른다고 분석 했습니다. 화이트칼라나 고학력 자일수록 더 어려운 상황에 빠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런지 모르지만 요즘 시중에는
40이면 늦으리 30대에 준비하 자.는 식의 말이 많이 돈다고 합니다. 그리고 요즈음에는 '간 큰 여자 시리즈'가 유행하고 있 다고 합니다. 그 한 가지 예를 들면, 남편 월급 봉투만 쳐다보 고 사는 여자는 간 큰 여자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현실이 그 만 큼 달라졌다 하는 것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들이 아닌가 합니다.
우리는 지금 참으로 어려운 현 실에 처해 있습니다. 불과 1,2년 전만 해도 아무런 걱정도 장미 빛 내일을 꿈꿀 수 있었지만 이 제는 내일은 고사하고 당장 오늘 어떻게 될지 몰라 불안에 떨 수 밖에 없는 그런 상황이 된 것입 니다. 이러한 때에 하나님의 자 녀라면 마땅히 어떤 자세를 취해 야 할까요 멍청하게 앉아서 불 안에 떨다가 당하고 있어야 할까 요 천만의 말씀입니다. 하나님 의 자녀는 이러한 현실의 변화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합니 다. 하나님이 아직 힘을 주시고, 시간을 주시고, 건강을 주실 때 한 발짝 앞서 변화를 예상하고, 열심히 대비해야 합니다. 완전고 용이 폐지됩니까 종신직장 개념 이 퇴색합니까 그렇다면 그에 대한 대비를 해야 됩니다. 기술 이 필요하면 잠을 안 자고서라도 기술을 배워야 합니다. 자격증이 필요하면 여가를 접어두고라도 자격증을 따야 합니다. 이제 혼 자 벌어서는 살 수 없는 세상이 면 부부가 함께 팔을 걷어 부치 고 나서야 합니다. 그렇게 함으 로써 하나님의 자녀는 어떤 상황 에서도 떳떳하게 대응하면서 산 다는 것을 우리가 보여주어야 합 니다.
그런데 교회 다니는 분들 가운 데 보면 이런 사람들이 꽤 있습 니다. 형통할 때는 굉장히 믿음 이 좋은 것처럼 보이는데 조금 배가 흔들린다 싶으니까 옛날의 그 좋다던 믿음은 다 어디로 가 고 근심 걱정이 가득한 얼굴이 되어 괴로워하는 사람들이 의외 로 많습니다. 그러나 정말 예수 믿는 사람이라면 그래서는 안됩 니다. 설사 상황이 바뀌어 월급 100만원을 받던 사람이 50만원밖 에 못 받게 된다 해도 의기소침 해 한다거나 술독에 빠져 신세타 령이나 하는 자포자기 인생이 되 어서는 안됩니다. 평생을 몸담아 왔던 회사에서 실직을 당하는 것 은 우리 모두에게 두렵고 막막한 위기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참으로 무서운 것은 실직이 아닙 니다. 실직 때문에 오는 불안이 나 공포, 원망, 연민의 정을 이겨 낼 만한 내적인 강인함이 없는 것이 더 큰 문제인 입니다. 사는 형편이 달라졌다고 해서 마음이 무너지면 안됩니다. 그것 때문에 우울증에 빠지거나 자포자기 인 생이 되어 버리면 안됩니다. 그 것은 자기만 망할 뿐 아니라 사 랑하는 가족들까지 망하게 하는 길입니다.
예수 믿는 우리는 세상 사람들 처럼 행동해서는 안됩니다. 상황 이 바뀌었다고 속 사람이 꺾이면 안됩니다. 믿음의 사람은 그런 자들이 아닙니다. 우리는 오늘 읽은 말씀을 통해 그 이유를 분 명히 배울 수 있습니다. 오늘 성 령께서 여러분의 마음에 빛을 비 추시어 시편 23편의 말씀을 통해 그 이유를 분명히 깨닫게 하시기 를 축원합니다.
인생의 두 주소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면 자주 옮겨 다녀야 할 주소가 두 곳 있 습니다. 먼저는, '푸른 초장'입니 다. 2절을 보십시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 가으로 인도하시는도다.
'푸른 초장'이란 형통한 때를 말합니다. 세상 말로 하면 행복을 구가하는 때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무엇이 든지 원하는 대로 잘 됩니다. 마 음먹은 대로 안 되는 것이 별로 없습니다. 가족들을 보아도 다 젊고 건강합니다. 경제적으로도 여유를 즐길 만큼 넉넉합니다. 앞으로 걱정할 일도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런 은혜를 자주 주십니다. 그 럴 때면 우리는
야, 하나님께서 나를 푸른 초장으로 인도하셨구 나.
하고 온 식구들이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양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가끔 옮겨가야 될 또 하나의 주소가 있습니다. '사망의 골짜기'입니다. 4절을 보 십시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 짜기로 다닐지라도...
'사망의 음 침한 골짜기'란 역경을 말합니다. 이것은 생각지도 아니한 때 불어 닥치는 무서운 돌풍일 수 있습니 다. 실직을 당했습니까 아마 사 망의 음침한 골짜기가 입을 벌린 채 우리를 삼키려고 기다리고 있 는지도 모릅니다. 갑자기 몸에 이상이 생겼습니까 아마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 발을 들여놓는 단계인지도 모릅니다. 집안에 예 상하지 못한 어떤 불길한 일이 일어났습니까 아마 먹구름이 그 가정을 뒤덮고 있는지도 모릅니 다. 이러한 상황들을 일컬어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라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 중에는 평생을 풀밭에서 만 뛰놀다가 죽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만약 그런 사람이 있 다면 그 사람은 정말 불행한 사 람일 것입니다. 그리고 평생을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 고통 하다가 죽는 사람도 없습니다. 만약 그런 사람이 있다면 그보다 더 불행한 사람은 없을 것입니 다. 우리는 이 세상을 사는 동안 한 사람의 예외 없이 '푸른 초장' 과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왔 다 갔다 해야합니다. 그런 의미 에서 이 두 곳은 하숙집이거나 전셋집이지 영원토록 머물 집이 아닙니다. 한 몇 년 살다가 또 옮겨야 됩니다. 지금 내가 푸른 초장에 산다고 해서
여기가 영 원한 내 집이다
라며 마음놓고 있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 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집을 또 옮겨야 됩니다. 그리고 지금 내 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 산다 고 해서 소망이 끊어진 자처럼 살 필요도 없습니다. 그곳 역시 평생 머물 집이 아니기 때문입니 다. 조금 지나면 또 다른 주소로 옮겨야 되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에게 영원히 거할 집 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성경은 푸른 초장과 골짜기를 오가며 살 수밖에 없는 우리에게도 영원히 거할 집이 있다고 말합니다. '여 호와의 집'입니다. 6절을 보십시 오.
나의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 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 다.
'여호와의 집'은 우리가 또 다시 옮겨야 될 전셋집이 아닙니 다. 영원토록 거할 수 있는 우리 의 집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 집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아직 이 세상에 사는 동안에는 별 수 없습니다. 어떤 때는 푸른 초장 에 거하며 형통하기도 하고, 또 어떤 때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 에 들어가서 곤고를 겪으며 살아 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인생입니다.
전도서만큼 이 사실을 명료하 게 말씀하고 있는 곳은 없을 것 입니다. 전도서 3장 1절 이하를 보십시오. 사람이 살다 보면 헐 때가 있는가 하면 세울 때가 있 다는 것입니다. 또 웃을 때가 있 는가 하면 울 때도 있다는 것입 니다. 어떤 때는 손에 움켜쥐기 도 하지만 손에 있는 것을 놓아 야 할 때도 있다는 것입니다. 전 도서 7장 14절은 더 확실하게 말 씀합니다.
형통한 날에는 기뻐 하고 곤고한 날에는 생각하라. 하나님이 이 두 가지를 병행하게 하사 사람으로 그 장래 일을 능 히 헤아려 알지 못하게 하셨느니 라.
하나님은 인생에 형통한 날 을 주셨습니다. 푸른 초장에서 뛰놀고 쉴만한 물가에서 쉴 수 있는 날을 주신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는 기뻐하고 즐거워해야 합니다. 그러나 곤고한 날도 주 셨습니다. 음침한 골짜기를 한숨 을 쉬며 걸어가야 할 때도 있는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는 기도 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한치 앞도 내다 볼 수 없는 인생 이지만, 인생의 가는 길은 우리 자신이 아니라 우리 걸음을 인도 하시는 하나님께 달려 있기 때문 입니다. 우리는 그가 푸른 초장 으로 인도하시면 푸른 초장으로 가고, 골짜기로 인도하면 골짜기 로 가면 됩니다. 기도란 인생 전 부를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 앞에 의탁하고 따라가는 것을 말합니 다.
사람들은 누구나 사망의 음침 한 골짜기를 싫어합니다. 저나 여러분이나 마찬가지일 것이라 생각합니다. 우리 중에 평생을 고생만 하다가 끝내고 싶은 사람 은 아무도 없습니다. 가급적이면 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는 피하 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왜 남몰 래 밤을 지새워 가며 공부를 합 니까 왜 회사에서 자기 몸도 돌 보지 않고 열심히 뜁니까 왜 다 른 사람보다 더 뛰어난 실력을 가지고자 피나는 노력을 합니까 가능하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 를 피해서 조금이라도 편하게 인 생을 살고 싶어서 그러는 것입니 다. 물론 이것은 절대 잘못된 것 이 아닙니다. 하나님도 이것을 보고 잘못되었다고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한가지 꼭 알아야 할 것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자녀 들을 사망의 골짜기로 밀어 넣으 실 때가 종종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싫어함에도 하나님이 우 리를 밀어 넣으실 때가 있는 것 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지혜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아브라함의 경우가 좋은 예가 될 것입니다. 이사야 41장 8절을 보면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자기 벗이라고 부르셨습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벗'이라고 하는 말은 아무에게나 쓰는 말이 아닙니다. 특별한 관계가 아니고는 '벗'이라 는 말을 쓰지 않는 것입니다. 성 경을 보면 하나님께서도 이 표현 을 상당히 아끼신 것을 알 수 있 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벗'이라는 표현을 쓰신 것은 그 를 그만큼 사랑하셨기 때문입니 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브라함의 인생을 한번 보십시오. 그는 백 세가 될 때까지 그 수많은 세월 동안 혈육이 끊긴 집안으로 남에 게 천대와 수모를 당하며 살아야 했습니다. 그리고 너무 예쁜 부 인을 만나 가는 곳마다 그것 때 문에 생명의 위협을 느껴야 했습 니다. 또 어떤 때는 흉년이 들어 거처를 옮겨가야 했고, 이웃에 있는 부족들로부터 질시를 받아 불이익을 당할 때도 한 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이 자기의 '벗'인 아브라함 역시 사망의 음 침한 골짜기에 처하게 했던 때가 많았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방법인 것입니다.
또 다윗은 어떻습니까 다윗 은 하나님으로부터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는 말을 들은 사 람입니다(행13:22). 쉽게 말해 다 윗은 하나님 눈에 꼭 드는 사람 이었습니다. 우리가 생각하기에 는 하나님이 그렇게 눈에 쏙 들 어 하는 사람 같으면 발에 흙먼 지 하나 묻히지 않고 인생을 살 게 하셨어야 마땅하지 않겠습니 까 그러나 다윗을 보십시오. 그 가 얼마나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 를 지나며 얼마나 많은 고생을 겪어야 했습니까
우리는 예수 잘 믿는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평생 풀밭에 서만 뛰놀게 하시지는 않는다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그 것이 지혜입니다. 가끔 보면
기 도만 많이 하면 절대 어려운 일 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 나 그것은 너무 순진하고 바보 같은 생각입니다. 아무리 예수를 잘 믿는다 해도, 아무리 기도를 많이 한다 해도 죽을지 살지 알 수 없는 어두운 골짜기를 지나야 할 때를 얼마든지 만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여러분 가운 데 직장을 잃은 분이 계십니까 여러분 가운데 하는 일들이 잘 안되어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할 지 도무지 그 대답을 알지 못해 답답해하시는 분이 계십니까 차 마 남에게 드러낼 수 없는 가정 의 어려움 때문에 고통하고 있는 분이 계십니까 그렇게 안심하고 있던 몸에 심각한 병이 든 분이 계십니까 이 한 가지는 꼭 기억 하시기 바랍니다. 그러한 일들은 이상한 일도 아니요, 부끄러운 일도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하나 님의 자녀인 우리에게도 그런 일 들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습니 다.
운이 없어서 그렇게 되었 다.라거나
하나님이 나를 사랑 하지 않나 보다.하는 따위의 말 은 뿌리 채 뽑아버리십시오. 오 히려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다윗 을 골짜기로 믿어 넣으셨듯이 나 도 그렇게 밀어 넣으시는구나.'하 고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우리가 시편 23편을 노래 한 다윗을 통해서 배워야 할 보 화와 같은 진리는 이것입니다. 상황이 달라져도 하나님은 여전 히 우리의 목자가 되신다는 사실 입니다. 다윗의 고백이 무엇입니 까
내가 푸른 초장에서 뛰놀고 쉴만한 물가에서 평안히 살 때 하나님은 나의 목자이셨다. 그래 서 나는 전혀 부족함이 없었다. 그뿐 아니라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닐 때에도 하나님은 여전히 나의 목자이셨다. 그래서 나는 그 때도 전혀 부족함이 없 었다.
하는 이야기입니다. 그가 푸른 초장에 있든, 아니면 상황 이 바뀌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 에 있든 간에 그를 지키고 그에 게 필요한 모든 것을 공급해 주 시는 하나님은 변함이 없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것이 중요한 것 입니다.
만일 다윗이 푸른 초장에서만 이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면,
여 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 함이 없으리라고 천번 만번 노 래한다 해도 조금도 이상할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다윗의 고백은 거기에 머물지 않았습니다.
푸 른 초장에서 만난 하나님은 사망 의 음침한 골짜기에서 만난 하나 님은 절대 다른 분이 아니다. 내 가 비록 먹을 것이나 마실 것도 없고, 사방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걸 어갈 때에라도 나는 이렇게 말할 수 있다. 푸른 초장에서 나의 목 자 되신 하나님은 이곳에서도 나 의 목자 되시며, 푸른 초장에서 내가 부족함이 없었던 것처럼 사 망의 골짜기에서도 내가 부족함 이 없었노라고 분명히 말할 수 있다.라고 고백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오늘 우리는 어떻습니까
여호 와가 내 목자가 되시기 때문에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 있 다 해도 나는 아무 부족한 것이 없다.하는 고백이 우리에게 있 습니까 만일 그렇지 못하다면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생활의 작은 변화에 그토록 괴로워하고 기가 죽어 벌벌 떨고 있는 이유 가 어디에 있습니까 상황이 바 뀌었기 때문입니까 아니면 믿음 이 부족한 탓입니까 직장을 잃 어버렸기 때문입니까 아니면 믿 음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까 생 활이 궁핍해서입니까 아니면 믿 음이 궁핍해서입니까 이 시간 각자의 고통의 뿌리가 어디에 있 는 지 심각하게 살펴보기를 바랍 니다.

함께 하시는 은혜
그렇다면 우리가 사망의 음침 한 골짜기에서도 하나님이 목자 가 되시므로 아무 부족함이 없다 고 고백할 수 있는 이유가 무엇 일까요 4절을 보십시오. 다윗은 이에 대해 두 가지 이유를 말하 고 있습니다.
내가 사망의 음침 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 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다윗이 말하는 첫 번째 이유는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시기 때문
이라는 것입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도 목자 되신 하나님 이 함께 하시기 때문에 우리가 해를 두려워하거나 부족함을 느 낄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물 론 푸른 초장에서도 하나님은 함 께 해 주시지만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 얻게되는
함께의 은혜는 보통은혜가 아닙니다. 푸 른 초장에서 마냥 기쁘고 풍족한 생활을 할 때는 절대 이 은혜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합니다.
사람끼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인간 관계에서 가장 깊은 관계를 꼽으라고 한다면 부부 관계를 들 수 있을 것입니다. 결혼을 해서 머리가 하얗게 될 때까지 서로 손잡고 한집에 '함께' 살다가 '함 께' 죽는 것이 부부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부부만큼 함께의 의미 를 잘 이해할 수 있는 관계는 없 습니다. 그런데 남편 일이 잘 되 고 두 사람 다 건강하고 자녀들 이 쑥쑥 잘 자라주고 아직도 젊 어서 힘있고 할 때는 함께 지내 는 기쁨이 있기는 하지만 함께 지내는 진미는 없습니다. 눈만 뜨면 남편은 남편대로 자기 스케 줄을 따라 바쁘게 돌고 아내는 아내대로 자기 스케줄을 따라 살 아가기에 바쁩니다. 그러면서도 어쩌다가 저녁에 함께 노래도 부 르고 춤도 출 기회를 가지게 되 면 행복감을 느끼며
넌 시집 잘 왔고 나는 장가 잘 갔다. 그러니 까 우리가 이렇게 함께 살지 않 냐하고 말할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렇게 살면 겉으로 보 기에는 행복한 것 같고 함께 사 는 행복이 있을 것 같은데 사실 은 그렇지 못하기 쉽습니다. 부 부가 진짜 함께 있다는 것을 가 슴 찡하게 느끼는 것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 들어가 봐야 가 능합니다. 남편이 실직 당하거나 아내 몸이 갑자기 약해질 때에야 비로소 '내 남편','내 아내'가 가 슴에 와 닿는 것입니다.
저는 7년 전에 건강이 몹시 좋 지 않아 얼마동안 하와이에 머물 렀던 적이 있습니다. 그 때 얼마 나 어려움을 당했는지 모릅니다. 텔레비전을 볼 수 있습니까 그 렇다고 책을 읽을 수 있습니까 운전을 할 수 있습니까 오직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귀에 리시버 를 끼고 설교나 음악을 듣다가 멍청하게 바다를 쳐다보는 것뿐 이었습니다. 제가 큰 교회 목사 였지만 제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 습니다. 게다가 제 병이 앞으로 어떻게 발전할지, 일을 다시 할 수 있을지 없을지 하나님은 아무 말씀도 안 해 주셨습니다. 그야 말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 발 을 들여놓은 것입니다. 그럴 때 제 마음에 새삼스럽게 조용히 다 가오는 존재가 있었습니다. 하루 종일 말도 못하고 멍청하게 앉아 있는 제 곁에 붙어서 말도 걸어 주고, 먹을 것도 갖다 주고, 한 순간도 저를 떠나지 않고 묵묵히 자리를 지키며 기도해 주는 사람 이 있었습니다. 바로 제 아내였 습니다. 제가 사망의 음침한 골 짜기에서 헤매면서 보니까 사람 끼리도 함께 있는 것의 차원이 다르게 전달이 되더라고요. 내 곁에 사랑하는 아내가 있다는 것 이 얼마나 감사하고 귀한 것인지 비로소 느끼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걸을 때에야 비 로소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는 은혜가 어떤 것인지 진정 깨달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잘 부르는 찬송 가운데 이런 가사가 있습니 다.
나의 등뒤에서 나를 도우시 는 주/평안히 길을 갈 때보이지 않아도/ 지치고 곤하여 넘어질 때면 다가와 손 내미시네.
그렇 습니다. 평안할 때에도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계시지만 우리는 그 것을 잘 못 느낍니다. 그러다가 지치고 곤고하여 허덕이게 될 때 에야 비로소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큰손을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이따 금씩 우리를 사망의 음침한 골짜 기로 밀어 넣으시는 이유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고 봅니다.
내가 여기 있다. 내 존재를 좀 알아다 오.하는 의미에서 하나님은 우 리를 사망의 골짜기로 밀어 넣으 시는 것입니다.

안위하시는 은혜
우리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 에서도 여호와가 목자가 되시므 로 부족함이 없다고 말할 수 있 는 두 번째 이유에 대해 다윗은 이렇게 말합니다.
주의 지팡이 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 다.
그때에도 하나님은 변함없 이 우리를 안위해주시기 때문이 라는 것입니다. '안위하다'라는 말은 '위로하다','보호하다'라는 뜻이 있습니다. 목자는 항상 지 팡이를 들고 다닙니다. 이것은 양떼들을 몰고 다닐 때 반드시 필요한 필수품입니다. 양떼들은 목자의 지팡이를 보고 따라 다닙 니다. 그리고 해가 져서 양떼들 을 우리에 들일 때에는 우리 문 에다가 나지막하게 지팡이를 걸 어 놓고 양들이 그 밑으로 통과 하게 만듭니다. 한 마리씩 한 마 리씩 지팡이 밑으로 통과하게 합 니다. 목자는 그 옆에 앉아서 지 팡이 밑으로 지나가는 양들을 한 마리씩 유심히 살핍니다. 어디 다친 데는 없는지, 다리를 절지 는 않는지 세밀히 살핀 후 아무 이상이 없으면 안으로 들여보내 는 것입니다. 목자에게 있어서나 양떼에게 있어서 지팡이는 그만 큼 소중한 것입니다.
한편 막대기는 표범, 사자와 같은 짐승들이 양을 덮치려고 할 때 양떼들을 보호하기 위해 필요 한 무기입니다. 막대기는 양떼들 의 안전과 직결되어 있는 것입니 다. 그러므로 이 막대기와 지팡 이를 들고 있는 목자만 곁에 서 있으면 양떼들은 어디를 가든지 상관이 없습니다. 푸른 초장도 좋고, 물가도 좋고, 사망의 음침 한 골짜기도 좋습니다. 지팡이와 막대기를 든 목자만 있으면 그 어느 곳에 있든 양떼들은 안심할 수 있는 것입니다.
다윗은 어려서부터 목동 생활 을 했기 때문에 이 사실을 너무 나 잘 알고 있습니다. 그는 건너 편 초원으로 가기 위해 부득불 양떼들을 몰아 사망의 음침한 골 짜기를 통과해야 했던 적이 많았 을 것입니다. 그 골짜기는 참으 로 위험한 곳입니다. 그러나 양 떼들은 머뭇머뭇 거리지 않습니 다. 목자만 앞에 가면 우르르하 고 따라 옵니다. 양떼 중에
목 자님, 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 를 어떻게 지나가려고 합니까 우리는 뭘 먹고 마십니까하고 하소연하는 양은 단 한 마리도 없었습니다. 불안에 떠는 놈도 없었습니다. 지팡이와 막대기를 든 목자만 있으면 양떼들은 안심 하고 따라가는 것입니다.
다윗이 하나님을 목자라고 할 때는 양떼들이 목자에 대해 같은 그와 같은 심정을 가지고 노래하 는 것입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 짜기면 어떻고 푸른 초장이면 어 떠냐는 것입니다. 상황이 어떻게 바뀌든 그것은 큰 문제가 아닙니 다. 지팡이와 막대기를 드신 자 비로우신 하나님만 내 곁에 계시 면 괜찮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 나면서도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 므로 아무 부족함이 없도다
하 고 외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 역시 이러한 믿음을 가져야 되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이 험한 세상을 살아가려면 믿는 구석이 있어야 됩니다. 우리 예 수 믿는 사람이 믿고 의지할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밖에 없습 니다. 가끔 저를 만나려 찾아오 시는 교인들 중에는 이런 분들이 있습니다.
아이구, 목사님 이거 사업이 영 잘 안 되서 문을 닫아 야 되겠습니다.
그래요 어떻 게 하실래요
예, 지금 생각 중에 있습니다.
말은 그렇게 하 는데 얼굴은 이상하리 만치 천하 태평입니다. 그러면 저는 '무슨 믿는 구석이 있는 모양이구나'하 고 감을 잡습니다. 제가 보기에 는 진짜 믿음이 좋아서 다윗처럼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가면서 도 목자 되신 하나님을 생각하며 아무 걱정을 안 하든지, 아니면 처가가 잘 살거나 숨겨 놓은 재 산이 있든지 둘 중의 하나입니 다. 뭔가 믿는 구석이 있으니까 그렇게 태평일 수 있는 것입니 다.
우리가 담대하게 이 세상을 살 아가려면 목자 되신 하나님을 굳 게 믿어야 합니다.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 나를 안위하시는 하나님을 깊이 체험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푸른 초장에서만 살 생 각은 하지 마십시오. 우리의 믿 음이 강해지기 위해서는 가끔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나 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내가 지 금 직장을 잃어.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몰라 불안하다. 하지만 하 나님은 내가 이 일을 통해 나와 함께 계시는 그 하나님을 정말 신바람 나게 체험하게 하시려고 이런 과정을 겪게 하신다고 믿는 다.' 이렇게 생각하시면 틀림없습 니다. 또 어떤 어려움을 당했습 니까 갑자기 몸이 안 좋아졌습 니까 '아, 하나님께서 지팡이와 막대기로 나를 안위하고 계신다 는 것을 눈으로 똑똑히 보고 귀 로 똑똑히 듣고 손으로 만지게 하기 위해서 나를 이런 어려운 과정으로 밀어 넣으시는구나.'하 고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그 하 나님을 우리가 믿고 살아야지 누 굴 믿고 이 세상을 살겠습니까
그러므로 사망의 골짜기를 피 하려고만 하지 마십시오. 이왕 하나님이 우리에게 허락을 하신 것이 틀림없다고 믿으면 그 다음 부터는 적극적인 자세로 긍정적 인 자세로 모든 것을 받아들이십 시오. 저는 여러 번 사망의 음침 한 골짜기를 통과해 본 사람입니 다. 그러나 지나고 보면 제게 손 해가 된 것은 하나도 없었습니 다. 하나님은 절대 우리에게 손 해 되게 안 하십니다.
한번 예를 들어봅시다. 40평 짜리 아파트에 살다가 직장을 잃 어버려서, 혹은 수입이 줄어서 20평이나 15평 짜리로 옮겼다고 합시다. 40평 짜리는 푸른 초장 이라 할 것입니다. 그때는 참 신 바람 나게 살았습니다. 하지만 너무 세상사는 재미에 빠지다 보 니 하나님과의 관계가 별로였던 것이 사실이지 않습니까 우리의 믿음이 어떤 면에서는 진미가 흐 르지를 않았습니다. 그러나 상황 이 바뀌어 20평 짜리로 옮길 수 밖에 없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20평 짜리는 사망의 음침한 골짜 기라고 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 일이 우리의 눈을 목자 되신 하 나님께 향하게 하여 우리와 함께 하시며 안위하시는 그 은혜를 체 험하게 하는 얼마나 소중한 기회 가 됩니까 남편과 아내가 함께 손을 맞잡고 말씀을 읽다가 눈물 흘리면서 서로 위로해 주고, 자 녀들이 부모 곁에 앉아서 함께 머리를 숙이고 기도하면서 그 어 려운 고비에서 하나님을 바라보 는 아름다운 믿음을 순수하게 키 울 수만 있다면 20평 짜리가 천 국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40 평에 살 때에는 예배 드리자고 하면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며 도 망가던 자식들이 상황이 급해지 니까 부모 곁에 와서 무릎 꿇고 함께 기도하면서 아빠와 엄마를 위해 기도해 주는 아름다운 모습 을 보는20평 짜리가 푸른 초장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부부가 함께 그랜저를 타고 다니면서도 뭐가 그렇게 불만이 많은지 뿌루 퉁해 가지고 한 시간이 가도 말 한마디, 눈길 한번 건네지 않고 사느니 차라리 티코를 타고 다니 더라도 부부가 서로 딱 붙어 가 지고 손도 잡아 주고 서로를 위 로하며 사는 편이 더 낫지 않겠 습니까
물론 갑자기 상황이 바뀌면 고 통스럽습니다. 한동안은 불안할 것입니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될 지 몰라 막막할 수 있습니다. 어쩌면 기도도 안될 수도 있습니 다. 성경 말씀도 눈에 안 들어 올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가 잠시 겪는 혼란일 뿐입니 다. 하나님의 강하신 손이 우리 를 꽉 붙들고
이놈아, 정신차려. 이 까짓 일로 네가 죽을 것 같으 냐 안 죽어.하고 깨닫게 하시 면 우리가 비로소 하나님의 은혜 에 눈을 뜨게 됩니다. 비록 수입 이 줄어들어 생활은 쪼달릴지 모 르지만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 님께서 우리에게 아무런 부족함 이 없도록 공급해주시고, 또 우 리가 사망의 골짜기를 지나는 동 안 어떠한 해도 입지 않도록 보 호하신다는 사실을 매일매일 체 험하는 기적 같은 삶을 살게 됩 니다.
우리 자녀들 역시 마찬가지입 니다. 오늘날 우리 자녀들의 문 제가 어디에 있습니까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는 아예 멀리 피하 고 푸른 초장에서만 뛰놀았기 때 문에 우리 자녀들이 약하고 병들 고 인격이 삐뚤어진 것이 아닙니 까 더러 고생도 알게 했더라면 자녀들이 그렇게 나약하게 되지 는 않았을 텐데, 무엇이든 원하 는 것은 다 사주고, 하고 싶은 것은 다해주고, 온갖 사랑을 독 차지하게 하도록 만들다 보니 이 런 푸른 초장을 벗어나면 맥을 못 추는 약골들이 되어버린 것입 니다. 조금만 상황이 바뀌고 조 금만 어려운 일이 생겨도 참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 중등부를 책임지고 있는 이찬수 목사님이 언젠가 수 요일날 설교한 테이프를 제가 들 었습니다. 그 목사님은 이사야 43장 2절을 인용했습니다.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함 께 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치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행할 때에 불 꽃이 너를 사르지 못하리니, 대 저 나는 여호와 네 하나님이요 구속자이심이라.
여러분, 물 가 운데로 지날 때 나와 함께 하시 는 하나님을 체험하려면 물 속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닙니까 불 속으로 지나갈 때 불꽃이 나를 사르지 못하도록 보호하시는 하 나님의 은혜를 체험하려면 불꽃 을 통과하는 것 같은 어려운 시 련과 고통도 맛보아야 이 말씀이 얼마나 진리인가를 체험할 것 아 닙니까 그런데 요즘 부모들은 자녀를 키우면서 불꽃이 있으면 자기가 먼저 가서 가로막고 얘들 이 절대 못 들어가게 만듭니다. 물에도 들어가 봐야 하는데 물가 에는 얼씬도 못하도록 부모가 가 서 막고 서 있습니다. 그러니 아 이들이 물 가운데나 불 가운데로 지날 어떠한 기회도 갖지 못하고 마는 것입니다. 아이들을 이런 식으로 키우니까 얘들이 고통을 감당할 만한 자생력이 없는 것입 니다. 오늘 우리 자녀들의 문제 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에는 과거에 모 부처 차관을 지낸 집사님이 한 분 계 십니다. 저는 그를 참 존경합니 다. 그는 현직에 있는 동안 자녀 가 군에 입대를 했는데도 전혀 손을 쓰지 않았습니다. 요즘 말 로 하면 빽을 안 쓴 것입니다. 그래서 그의 아들은 전방 최전선 까지 가게 되었습니다. 부대장이 사병의 여러 가지 가정 상황을 체크 해보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현직 차관의 아들이 자기 부대에 와 있거든요.
야, 너 이리 좀 와 봐라. 아버지가 너를 이렇게 그 냥 내버려두시냐 지금이라도 한 마디만 하면 좀 더 나은 곳으로 갈 수 있어. 응 아버지에게 한 번 부탁해 봐.
그래 가지고 이 애가 전화를 했는지, 지휘관이 전화를 했는지 모르지만 집사님 이 그러한 내용을 듣게 되었습니 다. 한마디만 해주면 애를 다른 곳으로 빼돌릴 수 있다는 것입니 다. 그런데 이 집사님은 단호히 거절했습니다. 결국 그의 아들은 전방 최전선 초소에서 불침번을 서면서, 또 의무병까지 같이 떠 맡아 가지고 고된 군대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가운데는 '야, 그 자식 지지리도 복이 없다.'라고 생각하 시는 분이 계실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그 아 들이 거기에 가서 1년 넘게 고생 을 하면서 비로소 부모님 고마운 줄 알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자기가 너무 편하게 살았다는 것 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어려움을 당하면서 그 의 믿음도 좋아졌고, 생각도 건 전해졌습니다. 이제는 웬만한 어 려움을 당해도 그렇게 벌벌 떠는 애송이가 아닙니다. 아주 강인한 사람으로 바뀌어 가고 있는 것입 니다. 가끔 이 집사님께 편지를 보내오는데 부모를 감격시키는 그런 이야기들을 하나 봅니다. 얼마나 멋있습니까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우리가 이 세상을 강하게 살아가 려면, 세상을 이기는 강한 믿음 을 가지려면 절대 푸른 초장에서 만 뛰놀아서는 안됩니다. 어려움 도 당해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 자신은 물론, 우리 자녀들에게도 진리입니다. 하나 님께서 가끔 우리를 사망의 음침 한 골짜기로 밀어 넣으시는 것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 사실을 이해하면 비록 어려움이 눈앞에 닥쳐와도 우리는 대범하 게 믿음으로 대처할 수 있습니 다.
A.B. 심슨(Simpson)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면 강한 믿음을 가질 수 있을 까요 강한 믿음을 배우는 길은 커다란 시련을 겪는 것입니다. 믿는 때가 모든 것을 이기는 때 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망의 음 침한 골짜기는 우리가 오래 머물 곳이 아닙니다. 양들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 절대 그렇게 오래 배겨내지 못합니다. 하나님 은 이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계 십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는 양들이 푸른 초장으로 가기 위해 잠깐 통과하는 곳일 뿐입니다. 이것은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입니 다. 하나님은 우리가 사망의 음 침한 골짜기에서 마냥 신음하면 서 살 수 없다는 것을 잘 아십니 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적당하다 고 생각하시는 때에 그 고통스러 운 골짜기를 통과하게 하시고 다 시금 우리에게 푸른 초장을 허락 해 주실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선하신 분이십 니다. 우리 하나님은 너무 좋으 신 분이십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 로다.
푸른 초장에서도 이 찬양 을 합시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 기에서도 이 신앙을 고백합시다. 그렇게 하면서 우리가 세상 사람 과 어떤 면에서 다른가 하는 것 을 보여줍시다. 상황이 바뀌어도 우리는 불행해지지 않습니다. 왜 냐하면 선한 목자 되신 하나님께 서 그 어떤 상황에서도 우리와 함께 계시며 우리를 안위해 주시 기 때문입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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