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삶의 용기와 자유를 얻으려면 (레 25:8-13, 행 10:34-43, 눅 04:16-19)

첨부 1


내일 모레는 광복 50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5천년이라고 하는 기나긴 역사 를 가지고 있는 우리 민족이 정말 억울하게도 일본인들에게 나라를 빼앗기고 그들의의 지배를 받다가,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1945년 8월 15일에 광복을 하게 되었습니다.

우리 민족이 당한 수치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지금도 책을 읽거 나 TV드라마를 보게 되면, 우리의 할아버지 할머니, 그리고 아버지나 어머니 들이 겪은 그 고통이란, 어떻게 필설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극악한 것이었 습니다.

나라 이름과 땅 이름, 그리고 사람의 이름을 빼앗기고, 또한 언어와 글자를 빼앗겼을 뿐만 아니라, 풍습이나 문화까지도 일본 사람들에 의해서 멋대로 바 뀌거나 변질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일본 사람들은 우리 민족을 자기네 나라에 동화시키거나, 아니면 완전히 말살하려 했던 것입니다. 순순히 자기들 지시대로 따라 주면 일본 사 람으로 만들어 가고, 그렇지 않으면 온갖 구실을 붙여 죽이거나 국외로 몰아 냈던 것입니다.

그야말로 우리 나라는 암흑 천지였습니다. 희망이라곤 눈곱만큼도 없었습 니다. 민족의 지도자를 자처하던 사람들이 하나 둘 변절하여 일본에 협력하기 시작했습니다. 최남선 이광수를 비롯하여

3.1운동 당시 민족 대표였던 정춘수 박희도 최린 같은 이들이 민족을 등지고 말았습니다.

이렇듯 거의 절망적이었을 때에, 하나님은 우리 민족에게 광명을 허락하셨 던 것입니다. 김구 선생을 비롯한 상해 임시정부 사람들이 광복군을 조직하여 일본과의 전쟁을 준비하고 있었다고는 하지만, 우리 나라가 광복을 하게 된 것은 거의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당신이 자라난 고향인 나사렛이라는 동네에 들어가셨습니다. 그 곳에서 예수님은 이사야서의 말씀을 읽으셨습니다.

「불쌍한 사람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마음 상한 이들에게 새로운 용 기를 일으켜 주며, 감옥에 갇힌 이들에게 자유를 선포하도록 하라.

여호와께서 우리의 억울하고 원통한 일을 다 풀어 주시며, 슬피 우는 모든 사람을 위로해 주시는 시대가 되었다고 널리 알리도록 주께서 나를 보내셨다 」는 구절이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예수를 이 땅에 보내시사, 힘이 없어 다른 이들에게 억압당하고 고통 당하는 이들을 해방시키고자 하셨던 것입니다. 주를 믿고 의 지하는 자라면, 이 세상 누구라도 다 구원함을 얻고 참 자유와 기쁨을 누릴 수 있게 해 주셨던 것입니다.

이 사실을 성경 말씀을 통하여 알게 된 우리 믿음의 선조들이 하나님께 호 소했을 것입니다. 우리가 얼마나 억울한 형편에 놓였는지, 그리고 얼마나 고 통과 슬픔을 당하고 있는지, 너무나 원통하다고 하면서 하나님께 소리쳐 기도 했을 것입니다.

이 소리를 하나님께서 들으셨던 것입니다. 할렐루야! 우리 민족을 일본인들 의 압제에서 해방하여 구원해 주신 우리 주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립니 다.

하나님께서 우리 민족을 사랑하시사, 여러 환난과 시련 가운데서도 보호하 시고 인도하여 주셔서, 지금은 세계에서 내노라 하는 부강한 국가가 되게 해 주셨습니다.

올해의 광복절은 광복 50주년이 되는 뜻깊은 날이라고 이미 말씀드렸거니 와, 우리 기독교적으로 보면 희년의 해이기도 합니다.

희년이란 이스라엘 민족에게 명령하고 허락하신 독특한 제도로서, 7년마다 있게 되는 안식년을 일곱 번 거듭한 그 다음 해인 50년째 되는 해를 말합니 다.

「이 해를 다른 해와 구별하여 거룩한 해로 정하고 그 땅에 살고 있는 모 든 사람에게 해방을 선포하라(레25:10)」고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빚 때문에, 땅을 팔았던 사람은 땅을 되찾게 되고, 몸을 팔아 노예 가 되었던 사람은 자유의 몸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땅을 되찾아 기쁘고 자유를 얻게 되어 기쁘게 되는 해라고 해서, 희년(喜年)이라 했던 것 입니다.

사람만 자유를 얻는 것이 아닙니다. 땅까지도 그 해만큼은 자유를 얻도록 했습니다. 땅에다 아무 씨앗도 뿌리지 않음으로써, 땅도 편안히 쉬도록 했던 것입니다.

참 재미있고도 깊은 의미가 있는 제도인 줄 압니다. 오늘날 이처럼 물질문 명이 발달한 시대에 있어서는 더더욱 뜻깊게 생각되어지는 제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제도를 우리가 잘 지켜 실천하게 되면 ①사람이 땅 위에서 편안히 살 수 있게 해 주신다고 했습니다(레25:18).

②땅은 사람이 배불리 먹을 수 있을 만큼 풍성한 열매를 낼 것(레25:19)이 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은 백성들에게 이르기를, 1년동안 농사를 안 짓게 되면 뭘 먹고 살 것인가하고 걱정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 전 해에 3 년 먹어도 남을 만큼 넉넉한 소출을 거두게 해 주실 것임을 약속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러한 하나님의 좋은 뜻을 외면하고 말았습니다. 주님께 서 약속하신 말씀을 믿지 못한 까닭에 하나님의 법을 지켜 살지 않았던 것입 니다.

그 결과, 하나님과 불편한 관계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로 말미암 아, 주께서 선포하신 해방 선언의 기쁨도 잠깐,

1.우리 인간은 또다시 죄를 짓고 부자유한 삶을 살게 된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지금 일제로부터는 분명히 해방이 되어 자유한 나라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오늘 우리는 하나님의 법을 떠나 삶으로 해서, 주께서 허 락하신 참 자유와 기쁨을 누리지못하고 있습니다. 그리고는 우리들 스스로가 보이지 않는 굴레를 만들어 놓고 자기 자신을 억압하며 괴롭히고 있는 것입 니다.

그러한 억눌림과 부자유는 분명히 우리들 스스로가 만들어 놓은 굴레입니 다. 그러면서도 그 부자유와 억눌림에서 벗어날 생각을 못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단지 주께서 일러주시는 대로 살면, 뭘 먹고사느냐고 하는 염려와 걱정 때문입니다.

이처럼 잘못된 우리 인간 생활 양태가 모든 분야에 걸쳐 구조적으로 굳어 져 습관화되어 있습니다. 지금의 생활 방식이 사람답게 사는 게 아니라는 것 을 너무나 잘 알면서도, 어쩔 수 없다는 핑계 하나만으로 자신의 양심이 허락 지 않는 삶을 부득불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는, 우리 인간이 주체가 되어 만물을 다스리고 세상의 모 든 것을 아름답게 가꾸어 가면서 자유와 평안을 누리도록 되어 있는 하나님 의 법을 우리 스스로가 버렸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지금, 우리 인간이 그들의 종속적인 존재가 된 채, 일이 중심이 되고 돈이 중심이 되는 너무나 불행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사람이 일을 주도하는 것이 아니라, 일에 사람이 따라가는 삶을 살고 있다는 말입니다.

여기 아직은 세상 때묻지 않은 어느 고등학생의 외침 소리를 한 번 들어보 시기 바랍니다.

춘천고등학교 1학년 최우주라고 하는 학생이 자신의 학교에서 벌어지고 있는 비교육적인 현상을 컴퓨터 통신의 여론 광장에 발표를 해서 화제가 되 고 있습니다. 또한 그 문제를 가지고 토론 광장에서는 한창 토론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이 학생이 제기하고 있는 것은 보충 수업 문제입니다. 글자 그대로 자율 학습이 되어야 할 보충 수업이 강제적으로 시행되고 있는데 대하여, 이 학생 은 아주 논리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고 있습니다.

〈저는 적극적인 행복 추구권을 요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즉 창의적이고 탐구적이고 효율적인 교육 조건이 구비된 학교를 바라는 것도 아닙니다. 3년 내내 사용하지 못한다는 과학 실습실을 앞으로도 계속 사용하지 않아도 좋습 니다. 어학 실습실에서 헤드폰을 끼고 한다는 영어 듣기 실습을 앞으로도 계 속하지 않아도 좋습니다. 선생님들이 계속해서 암기 위주의 주입식 교육을 해 도 좋습니다. 학교에서 계속해서 학생들을 성적에 따라 차별해도 좋습니다.

겨울에 스팀 시설이 없어도 좋습니다. 학생의 체격에 맞지 않는 책걸상을 바 꿔 주시지 않아도 좋습니다.

저는 단지 상식에 따라 준수되어야 할 합리적인 학교 운영이, 더 이상 학 교운영권자의 자의적이고 전제적인 독단에 의하여 좌우되지 않도록 해 달라 는 것입니다. 즉 방과후의 시간을, 방학 동안의 시간을 당연히 학생들에게 돌 려 달라는 것입니다〉라고 호소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이 학생은 춘천 여고에서는 새로운 교장 선생님이 오셔서 새롭게 교육을 시키고 있음을 상기시키고 있습니다. 이 학교 교장 선생님께서는 〈이 전까지의 입시 위주의 암기식 교육을 지양하며 새로운 시대를 열고 있습니 다. 학생들을 오후 6시에 하교하도록 하고 있고, 그 외의 시간은 자율적으로 남고 싶은 학생만 남아서 스스로 자율 학습을 하고 있으며, 2학기부터는 보 충수업도 완전히 없앤다고 합니다〉라고 밝히고 있는 것입니다.

이 학생은 교회를 다니고 있는데, 주일에 교회에도 못가게 하고 학교만 나 와 공부만 하라고 강요한다는 것입니다. 여름방학 때 갖게 되는 2박 3일의 수 련회에 참석하게 해 달라고 해도 못 가게 한다는 것입니다.

학교에서는 아마 학생을 위해서 시키는 공부라고 할 것입니다. 하지만 공 부를 하는 목적도 참자유한 인간이 되기 위한 것입니다. 아무리 목적이 좋아 도, 그 방법이 정당치 못하여 부자유하고 억압적이면 안되는 것입니다.

대개 학교에서 강제적으로 공부를 시키는 것은 학교와 학교장의 명예를 세 우기 위해서입니다. 진정으로 학생을 위한 보충 수업이라면, 그렇게 강요하지 는 않을 것입니다.

결국 학교 교육조차, 교육을 받는 학생 중심이 아니라, 교육하는 기관인 학 교와 학교장이 중심이 되고 있는 까닭에, 그런 폐단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이제까지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고 있는 학교에서의 억압적인 사례를 어느 학생의 고발을 통하여 말씀드렸습니다. 하지만 오늘 우리는, 다른 사람 이 아닌 우리 자신이 자기 자신을 억누르고 괴롭히는 사례가 너무나 많습니다.

그 첫째 이유는 욕심 때문이고, 두 번째는 하나님을 바로 믿지 않는 까닭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2.하나님을 믿고 그 법을 지켜 행하면 풍성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법을 떠나 살게 되면, 강제와 억압의 방법을 동원할 수밖에 없습 니다. 일본이 우리 나라를 억압했던 것도 하나님의 법을 떠났기 때문이고, 춘 천 고등학교가 학생들을 강압적으로 보충 수업을 하게 하고 돈을 받는 것도 하나님의 법을 떠난 까닭입니다.

하나님의 법은 순리(順理)입니다. 우리 인간이 창조되기 이전에 정해진 법 칙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이 가장 행복하게 잘 살 수 있도록 만들어진 법이 하나님의 법입니다.

인간의 법은 수없이 바뀝니다. 인간이 만든 법은 완전하지 못합니다. 인간 의 법은 사람을 살리자고 만든 법보다는 사람을 얽어매 놓기 위한 법이 더 많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법은 인간을 살리는 법입니다. 인간의 모든 구조와 땅의 구조를 잘 아시는 하나님께서 만드셨기 때문에, 인간이 이 법을 따르면 잘 살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법은 인간이 욕심을 품고 있는 한 따르기가 힘든 법입니 다. 사람이 만든 법이야 돈으로 주무를 수 있지만, 하나님의 법은 그렇게 하 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법은 강제적이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키는 자 에게만 복이 될 뿐입니다.

사도행전 10장 43절에서 「누구든지 예수를 믿으면, 그분의 이름으로 죄의 용서를 받을 수 있다」고 하신 말씀은 하나님의 새로운 법입니다. 지금까지 하나님의 법을 어김으로 말미암아 죄를 짓고 마음 편치 못한 생활을 하던 사 람들이 예수를 진실로 믿기만 하면 지난 모든 죄를 용서받을 수 있는 길을, 하나님께서 열어놓으신 것입니다.

죄의 용서는 하나님과의 화해를 의미합니다. 모든 질서의 근본이 하나님께 로부터 시작되는데, 인간이 하나님의 법을 무시하고 자기 멋대로 살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멀리 떨어져 죄 가운데 살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결과는 뻔한 일입니다. 하나님을 무시하고 인간의 스스로의 힘으로 행 복을 구하려 했으니, 인간은 더욱 비참하게 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특별법을 제정하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를 통한 구원 의 길입니다. 구약 시대 때에 50년마다 특별한 기간을 정하고 해방을 선언하 여 모든 이들을 자유롭게 했듯이, 신약에 와서는 예수를 믿으면 언제든지 자 유롭게 될 수 있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50년을 기다릴 것 없이 언제든지 주 예수만 믿으면 그 지은 죄의 크기와는 상관없이 용서받고 자유함을 얻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여전히 자기 스스로를 강제하고 억압하는 세상 법을 따르겠습니까 아니면 하나님께서 은혜로 베풀어주신 주 의 법안에서 참 자유를 누리며 사시겠습니까 물론 여러분은 지혜롭게도 후자를 택하셔서 이 자리에 나오셨습니다. 참 잘하신 것입니다.

 3.주님의 법을 따르면 세상 사람들이 모르는 참 기쁨과 참 평안의 복을 누리게 됩니다.

누가복음 7장 50절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죄 많은 어느 여인에게 그 죄의 용서를 선포하시면서 말씀하시기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평안히 가 라」고 하셨습니다.

이미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생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길을 열어 놓 으셨습니다. 문제는 그 하나님의 법을 우리가 믿고 받아들이느냐 안 받아들이 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①믿고 받아들이면 구원을 받습니다. 우리 인생의 문제가 일거에 해결이 되는 것입니다.

②그리고 평안함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했다. 평안히 가라」 「누구든지 예수를 믿으면, 그 이름으로 죄의 용서를 받고 구원함을 받게 된다」 이 얼마나 반갑고도 귀한 하나님의 법입니까 광복 50주년이 되는 1995년 오늘 우리는 ①정치적으로는 이미 50년 전에 해방이 되었거니와 ②경제적으로도 거의 완전히 해방이 되어, 의식주 문제로 큰 어려움을 겪 는 사람은 거의 없게 되었습니다.

③종교적으로도 지금 우리는 완전한 자유를 맛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인간으로서 누려야 할 진정한 자유는 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이미 말씀드렸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해야 그 자유 를 누릴 수 있는 지도 말씀드렸습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은총 안에서 누리게 된 그 자유를 바로 사용해야, 그 자유의 참 맛을 알 수 있거니와 그 자유를 계속 누리게 될 것입니다.

자유가 없으면 살맛을 잃어버립니다. 늘 마음을 억누르고 있는 그 무엇이 우리로 하여금 인생의 참된 의미를 상실하게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참된 자 유는 우리에게 살 용기와 소망을 줍니다.

그러니 우리는 예수를 바로 믿고, 그 믿음 안에서 누리게 되는 자유를 잘 사용해야 합니다.

①그 자유는 하나님의 법안에 있음을 깨달아, 우선 주의 법을 잘 지키는데 사용해야 합니다.

자유란 내 멋대로 사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질서 안에서 누리게 되는 자유입니다. 그 하나님의 질서는 내가 먼저 주의 법을 지킴으로써 가능해지 는 것입니다.

②주의 복음을 전하는데 써야 합니다.

바울이 예수를 알고 참 자유를 얻은 후에 한 일은 복음을 전하는 일이었습 니다. 우리 모두가 바울처럼 복음 전하는 일에만 전념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생활 속에서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참 자유가 무엇인지를 보여 줌으로써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물론 입으로도 복음의 참 뜻을 알려주어야 하겠지요. 그래서 저들로 하여 금 복음 안에서 참 자유와 기쁨을 누릴 수 있도록 해 주어야 합니다.

③예수 안에서 참 자유를 누리게 되면, 다른 이의 억압된 심정을 이해할 수가 있습니다.

자유를 모르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짓눌린 마음을 이해하기가 그리 쉽지 않습니다. 의례히 그러려니 하기 때문이지요.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한 자는 너그럽고 여유가 있습니다. 그 무엇에도 얽 매이지 않게 되니 여유가 있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 모두가 주 안에서 자유를 얻고 하나님의 법을 지켜 삶으로써, 삶의 기쁨과 평화를 누릴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