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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배일운동이 된 광주학생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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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9년 11월 3일, 광주로 통학하는 기차 안에서 일본 중학생이 한국 여학생에게 모욕적인 언사로 희롱한 것을 시초로 한국인 남학생의 의분이 폭발되어 말다툼이 시작되었다. 이 말다툼은 곧 한국학생 대 일본 학생의 싸움으로 확대되었고, 싸움은 더 커져서 일반승객까지 가담하게 되어 한일 민족간의 감정대립 싸움으로 번졌다. 기차가 광주역에 도착했는데도 싸움은 끝나지 않고 역에 나와 있던 군중의 격려까지 받게 되어 양쪽의 싸움은 역에서 시가로 옮겨 계속되었고, 시간이 지날수록 양쪽 시민까지 가세가 되어 싸움은 험악하게 번져갔다. 이에 당황한 일본 경찰은 소방대까지 출동시켜 강제 진압을 하였다. 진압하는 과정 속에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하였고, 싸우던 사람들은 물론 모였던 시민까지도 “일본 제국주의를 타도하라.”, “조선독립 만세”를 위치며 돌연 배일운동으로 변하였고 싸움은 3일을 두고 계속되었다. 마침내 일본 군대가 출동하고 나서야 제지되었다. 일본 정부는 이 사실이 보도될까 우려했고, 여론화될 모든 조치를 막기 위해 서울행 기차까지도 운행을 중지시켰다. 그러나 광주의 지사들은 밤을 새우며 걸어서 서울에 이르러 이 소식을 전달하였고 곧 전국적인 만세운동으로 발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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