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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솔로몬의 성전1 (왕상 0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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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가 종교를 가진 발자취에 대한 증거는 사람이 상주할 수 있었던 곳이라면 어디에서나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예컨대 고대 인류 문화의 발상지로 알려진 메소포타미아, 애굽 등지에는 도처에서 저들이 신(神)을 섬겼던 성소들의 흔적을 볼 수 있습니다.
고대 종교 신앙의 흔적들 중에 발견된 대부분의 특징들은 저들이 신을 섬긴 장소를 주변 지역들로부터 분리시키는 담을 쳐서, 그 장소의 신성성(神聖性)과 신의 우월함을 나타내려고 하였습니다.
저들이 섬긴 대부분의 신들은 모두가 예외없이 우상이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우상의 전각들이있었습니다.
그러나 성경 중에 나타나는 이스라엘의 예배는 이방인들이 섬기는 우상이나, 우상의 전각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이스라엘의 예배는 하나님 자신의 계시에 의한 인간의 응답이었습니다.
우리는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정착한 후 사울과 다윗과 솔로몬으로 이어지는 신정국가 시대에 이르러 하나님을 섬기는 예배의 집, 곧 성전시대가 생겨나게 되었음을 보게 됩니다.
열왕기상 6장 1절에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에서 나온지 사백팔십년이요, 솔로몬이 이스라엘의 왕이 된지 사년, 시브월, 곧 이월에 솔로몬이 여호와를 위하여 전(殿) 건축하기를 시작하였더라고 하였습니다.
Ⅰ. 새 역사의 장(章)
이 말을 실로, 이스라엘 선민 역사에 새로운 한 장(章)을 여는 축복의 장면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선민 이스라엘이 출애굽 이후 하나님 섬기는 종교 행위의 새로운 한 국면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저들은 모세를 앞세우고, 애굽에서 나와 가나안을 향하는 광야교회 시대는 성막을 중심하고 역사를 이룩해 나갔습니다(출25:8). 그 성막 위에 구름 기둥과 불기둥이 나타남으로 하나님의 자기 임재를 알려 주었습니다. 저들은 그 성막에 구름이 덮일 때 여호와의 영광이 충만함을 목도할 수 있었습니다. 구름이 성막 위에서 떠오를 때는 이스라엘 자손이 그 모든 행하는 길에서 앞으로 발행하였습니다. 그러나 구름이 떠오르지 아니할 때도 구름이 떠오르는 날까지 발행하지 않았습니다.
낮에는 여호와의 구름이 성막 위에 있고, 밤에는 불이 그 구름 가운데 있음을 이스라엘 온 족속이 그 모든 행하는 길에서 친히 보았다고 하였습니다(출40:34-38). 이런 경우 광야교회였던 성소는 바로 이스라엘 가운데 친히 나타나시는 하나님 자신이 임재하는 상징이었습니다.
그 다음 저들이 여호수아를 좇아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사사시대를 지날 동안도 실로에서 회막(성막)을 중심하고 움직였습니다(수18:1, 19:51). 그 후 블레셋 사람의 침략을 받아 이 회막이 훼파되고, 법궤를 빼앗긴 후(삼상4:,-6:).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종교적 중심지 역할을 할 만한 장소마저 없어지게 되었습니다.
그 후 사울이 왕이 되었으나, 그는 하나님께 국사(國事)를 물어 보는 신앙이 없었습니다. 다윗이 왕이 되자, 드디어 하나님을 찾게 되고, 하나님의 법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겨오는 큰 종교적 행사를 거행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 하나님의 법궤를 예루살렘에 임시로 만든 장막(휘장) 안에 머물게 되었습니다(삼하7:2).
그 때 다윗은 선지자 나단에게 이르기를 ‘나는 백향목집에 거하거늘, 하나님의 궤는 휘장 가운데 있도다’고 하면서 하나님이 거할 집을 건축하고 싶은 자기 마음의 소원을 알렸습니다(삼하7:5).
그때 하나님은 다윗에게 원칙적으로 성전 건축을 허락하셨으나 다윗은 나라를 위한 여러 전쟁 중에서 너무 피를 많이 흘린 군인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집을 지을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대상28:3). 그러나 그 아들 솔로몬 시대에 와서 이 일을 이룰 것이라고 하였습니다(삼하7:1-12).
다윗은 하나님의 뜻에 감복하였습니다. 그 후 그는 자신과, 그의 참모들과 온 나라 백성들이 솔로몬 시대에 이룩될 하나님의 새 성전을 위하여 만반(萬般)의 준비를 끝내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오늘 주어진 본문은 이러한 역사적 배경을 갖고, 나타나는 새 역사의 장을 알려 주는 말입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에서 나온지 사백팔십년이요, 솔로몬이 이스라엘의 왕이 된지 사년, 시브월, 곧 이월에 솔로몬이 여호와를 위하여 전(殿) 건축하기를 시작 하니라고 하였습니다.
Ⅱ. 솔로몬 성전의 독특성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성전의 현저한 특징 중에 하나가 그 성전 안에 신상(神像)이 없다는 점입니다. 그 안에(지성소)는 구원의 기념물로 간직된 법궤만에 간직되어 있었습니다.
그 법궤 안에는 ① 모세가 시내산에서 하나님께로부터 두 돌비에 직접 새겨 받은 십계명과 ② 아론의 싹난 지팡이와 ③ 광야교회의 주식물이었던 만나 담은 항아리가 있었을 뿐입니다.
솔로몬의 성전에 어떤 형태의 신상(神像)도 없었던 것은 바로 하나님은 우상이 아니요, 인격적인 신이심을 알려 주기 위함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고대 애굽이나, 바벨론, 그리고 가나안 등지의 종교 유적에서 볼 수 있는 우상이나, 우상의 집이 아님을 보여 줍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윗이 하나님의 집을 건축하려고 할 때에도 하나님은 나는 어떤 건축된 공간의 집에서 제한 받을 신이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애굽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여 내실 때도 하나님 자신은 한번도 자기를 위하여 백향목 집을 건축하라고 말씀하신 적이 없다고 하였습니다(삼하7:7).
그러므로 스데반은 그의 설교 중에 솔로몬이 하나님의 집을 지은 일에 대한 역사를 회고하면서 지극히 높으신 이는 손으로 지은 곳에 계시지 아니하시나니 선지자의 말한바 주께서 가라사대 하늘은 나의 보좌요, 땅은 나의 발등상이니 너희가 나를 위하여 무슨 집을 지겠으며 나의 안식할 처소가 어디 있느뇨(행7:47-49)라고 하였습니다.
결코 하나님의 본성은 어떤 사람이 만든 어떤 집에 얽매이지 아니하십니다. 그래서 솔로몬은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이라도 주를 용납하지 못하겠거든, 하물며 내가 건축한 이 전이오리이까(왕상8:27)고 기도하였습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은 우상이 아니십니다. 그리고 어떤 지역과 장소에 얽매이신 분이 아니십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지은 성전 그 자체가 결코 하나님이시거나, 하나님의 집으로 신성시되어 경배의 대상이 될 수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신약시대의 교회당은 결코 다른 이방인들의 신전처럼 여김을 받거나, 또 그 안에 다른 조각이나, 우상의 형상을 만들지 아니하고, 또 우상을 섬기지도 아니합니다. 우리는 이런 의미에서 로마 카톨릭이 얼마나 비기독교적이며, 우상 숭배적인가를 가히 알 수 있습니다.
III. 솔로몬 성전의 존재 이유
우리는 지금 말씀들은 것과 같이 솔로몬이 지은 성전이, 이방인들이 갖고 있던 우상숭배의 신전과 전혀 다르다고 하는 사실을 들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이방인들이 우상을 섬기는 신전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이스라엘도 하나님을 섬기는 신전을 가져야 한다는 것은 이유는 안됩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다윗과 솔로몬에게 성전 건축을 허락하신 이유는 결코 아니었습니다.
그렇다면 솔로몬 성전의 건축과 존재 이유가 무엇인가
첫째로, 그것은 살아 계신 하나님을 향한 이스라엘의 신앙과 신앙보존과 신앙계승을 위함이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이스라엘 하나님 경외를 위한 수단이었습니다.
예컨대 그것은 성전 예배를 통하여 ①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이방 우상숭배자들로부터 구별(성별)시키기 위함이었습니다. ② 뿐 아니라, 그 우상숭배자의 세계로부터 하나님께로 돌아서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곧 불신앙의 가나안 사람들의 악한 풍습을 좇지 않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③ 더욱이 중요한 것은 종되었던 애굽에서 저들을 구원하여 주신 은혜를 감사하는 보은의 기념으로, 하나님만 섬기고, 하나님만 사랑하고, 하나님께만 기도하고, 하나님께만 봉헌하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둘째로, 선민 연합과 동맹의 힘을 위해서였습니다.
이 사실은 이미 모세를 통하여 예언된 사실의 성취입니다. 신명기 12장 10-15절에는 이스라엘 백성이 요단을 건너가서, 기업의 땅 가나안에 정착하게 될 때는, 하나님 여호와께서 자기 이름을 두시려고 한 곳을 택하실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때 구원받은 모든 이스라엘은 여러류의 번제와, 희생과, 십일조와 거제와 아름다운 서원의 예물들을 가지고 하나님께 예배하러 나가라고 하였습니다.
그때는 한 집안에 자녀는 물론이고, 노비와 함께 가서 하나님 앞에서 즐거워할 것이요, 성전에 수종드는 성직자들인 레위인과 함께 즐거워하라고 하였습니다.
특별히 일년에 3차씩, 즉 유월절과 오순절(칠칠절, 맥추절)과, 장막절(추수절)은 예루살렘성전에서 거족적(擧族的)이고, 거국적(擧國的)인 감사제전을 명(命)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저들의 예루살렘성전 예배는 초대 이스라엘이 실로나, 놉이나, 벧엘이나, 세겜이나, 기브아 등지에서 지파별로, 개별적으로 제각기 나누어져서 행하던 여러 양태의 예배 행위를 하나로 묶어 하나님께 드림으로, 이스라엘의 연합과 동맹을 나타내는데 목적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루살렘성전 예배는 이스라엘 역사의 동맥이 된 것입니다.
셋째는, 무엇보다도 선민을 위한 하나님 자신의 특별 임재의 장소가 되기 위함이었습니다.
구약 여러 시대, 여러 모양으로 하나님은 자신이 인생가운데 찾아 오셨습니다. 그 중에도 특별히 하나님 자신께서 사람들과 만나자고 우리에게 만나는 장소와 방법과 내용을 알려주셨습니다.
그것이 번제단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아벨에게 제단과 제물을 통하여 만나 주었습니다. 하나님은 노아에게, 욥에게도 제단과 제물을 통하여 만나 주었습니다. 더욱이 아브라함 때 와서 이 사실이 절정에 달했습니다. 그 때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만난 장소를(모리아산) “여호와 이레”라고 까지 새 이름을 불렀습니다(창22:2, 14, 대하3:1).
그후 광야교회 시대에 와서는 모세와 여호수아는 성막(회막)에서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이제 신정국가 시대에 와서 솔로몬이 지은 성전을 통하여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만나 주는 장소로 지정하였습니다.
이 사실을 입증하는 여러 표현들이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표현들 가운데는 ① 하나님이 이름이 거할 처소로서 내 이름이 거기 있으리라고 하였습니다(왕상8:29). ② 하나님의 눈이 거기에 머문다고 하였습니다(왕상8:29) ③ 하나님의 입이 열려서 말씀하고 있는 장소라고 하였습니다(왕상9:2-3) ④ 하나님의 마음이 열려 있는 곳이라고 하였습니다(왕상9:3) ⑤ 하나님의 귀가 열려 있어 여러류의 기도들을 들으시는 장소라고 하였습니다(왕상8:28, 29) ⑥ 그리고 온갖 맹세와 서원에 대하여 하나님의 축복이 임하는 집이라고 하였습니다(왕상9:5) ⑦ 이사야 선지자는 이곳이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고 하였습니다(사56:7). 예수님은 이 집을 아버지의 집이라고 하므로 아들과 아버지가 서로 만나는 장소라고 하였습니다(요2:16).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솔로몬의 성전역사(役事)!
그것은 새로운 축복의 시대를 여는 새 장(章)이었습니다. 그것은 선민이 살아 계신 하나님을 경외하고 섬기는 증거의 집이었습니다. 그 성전에서의 예배를 통하여 이스라엘을 세상과 이방 신들로부터 성별 시키는 표식으로 삼았습니다. 그리고 그 성전 예배를 통하여 선민의 거룩한 동맹을 나타내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이 성전은 세상 중에서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특별히 만나 주는 집이었습니다.
바로 오늘 경향교회 성전의 착공의미가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께로부터 받은 새 성전의 역사는 하나님을 향한 우리와 우리 자손들의 신앙수호와 계승을 위함입니다. 그리고 우리와 우리 자손들을 세상에서 구별시켜 하나님의 자녀로서 동맹을 이룩하기 위함입니다. 말하자면, 거룩한 무리, 곧 성도(聖徒)를 이루기 위함입니다.
그리고 이 집에서 하나님을 만나기 위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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