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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슬픔이 변하여 기쁨이 되고 (슥 08: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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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단일체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을 백이면 백, 천이면 천으로 보이는 것과 아울러 또한 유기적인 단체로 보고 계십니다.
그래서 교회를 가리켜 한 몸이 되었다고 하고 하나님께서도 한 몸과 같이 보이는 것입니다.
용서하신다면 가정얘를 한 마디 하겠습니다.
저에게는 아이가 셋인데 가끔 큰 아이에게 둘째 아이 이름을 부르고 셋째 아이를 부른다면서 큰 아이 이름을 부릅니다.
그러면 이들은 자기들 이름도 모르냐고 하면서 항의하곤 합니다.
아이들이 생각할 때는 분명히 개인입니다.
그런데 아버지의 눈으로 볼 때에는 그 녀석이 그 녀석 같고 다 귀하고 훌륭해 보여서 달리 보이지가 않는 것입니다.
한 지체에서도 귀가 있고 눈이 있고 또 다리가 있고 팔이 있든지 우리들은 각자가 다 다른 사람입니다.
그러나 이것들은 모두 한 몸이 되기 때문에 어느 한 지체가 아프거나 어느 한 지체가 영광을 받게 되는 것은 모두의 아픔이요 모두의 영광이 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을 유기적인 단 일체로 간주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이 교회를 보실 때에도 충현교회의 아무개 목사 아무개 전도사 아무개 장로 아무개 집사가 각각 있지만 하나의 개체로 보십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전에 너희 열조가 나의 노를 격발할 때에 내가 그들에게 재앙을 내리기로 뜻하고 뉘우치지 아니하였었으나”(슥8:14)
이 말씀을 보면 한국말 성경에는 “그들에게 재앙을 내리기로” 라고 되어 있습니다만 이것은 번역을 할 때에 의역을 한 것 같습니다.
본래 헬라어나 히브리어 성경에는 “그들에게”가 아니고 “너희에게” 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너희의 조상들, 저100 년 전 아니면 바벨론에 포로로 갔던 70 년 전에 조상들에게 내리기로 한 재앙, 그것을 지금의 너희에게 내리기로의 뜻이 됩니다.
다시 말하면 조상이 잘못해도 네가 매를 맞아야 되고 조상이 잘하면 또 네가 상을 타는, 하나님 앞에서는 다 연결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네가 하나님을 잘 섬기면 자손만대에 복을 줄 것이고 네가 하나님 앞에 법죄하면 그 죄가 얼마나 무서운지 3-4대에까지 이르리라 하십니다.
그렇다고 5대부터는 괜찮다는 말이 아니고 3,4대가 벌을 받는다는 것은 멸족을 뜻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내가 그들에게 재앙을 내리기로 뜻하였다” 는 말은 유기적인 단일 체를 우리에게 보여 주는데 그러기 때문에 성도들은 서로 연결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발가락에 가시가 박히거나 혹시 무좀이라도 생기면 아무것도 아닌 줄 알았던 발가락 때문에 온 몸에 열이 나기도 합니다.
걸어다닐 수가 없고 일을 할 수가 없으며매우 고통스럽습니다.
조그만 티 하나가 눈에 들어가면 안보일 뿐만 아니라 몸을 움직이지 못합니다.
이렇게 우리의 몸이 지체로 형성된 단 일체이듯 성도들 간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성도 모두가 한 가족이 되어서 하나님 앞에 연대적인 단 일체로 움직이는 것입니다.
개인으로 볼 때는 개체인 성도가 하나님 앞에서는 이렇게 중요한 관계에 놓여 있는 것입니다.
교회에서는 예배 시간에 종종 광고를 합니다.
그럴 때 어떤 분들은 예배 시간에 왠 광고냐, 광고를 안하면 안되냐고 합니다.
그러나 광고는 예 순서 중에 하나이며 중요한 시간입니다.
자기 집이 발현상제가 되었다면 제일 큰 문제가 아닙니까. 한 가정의 결혼도 대사입니다.
그런데 성도가 한 형제 한 가정이라고 하면서 그런 광고를 귀찮아한다면 말이 안됩니다.
그래서 주보에 광고도 하고 기도도 하고 축하도 해주는 것은 모두가 한 몸이 되었다는 공동체 의식을 가지는 때문입니다.

2.,축복의 조건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이 죄를 범하면 약속하신 대로 진실하게 징계를 가하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잘 순종하면 약속된 축복도 신실하게 이행하십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약속된 축복을 받기 위해 성도들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살펴봅니다.1).진실을 말하라
“너희는 각기 이웃으로 더불어 진실을 말하며”(슥8:16상)
하나님 앞에서 구체적으로 지적된 죄는 거짓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진실을 말하고 진실을 사랑하신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것은 거짓말, 위증, 사기 불의등의 거짓입니다.
우리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거짓을 행하고 거짓말을 하며 그것을 따라 가는 때가 얼마든지 있습니다.
정직히 생각해 보면 좋겠습니다.
진실로 우리 자신이 예수님의 제자가 되고 예수님의 모습을 닮고 예수님의 명령대로 산다고 하면 아마 서울 장안에 변화가 일어날 것입니다.
요즘 데모를 하는 학생이 괴장히 많은 것 같지만 실제로 운동권 학생은 그렇게 많지를 않습니다.
그저 한 대학에 20명 내외입니다.
그런데 그 20명 내외의 학생들이 몇만 명을 움직이는 것입니다.
많은 대학생들이 적은 숫자의 그 운 동권 학생들에게 감동을 받아 끌려 다니며 죽기를 각오하며 돌을 던지고 데모를 하는 것입니다.
칼 막스가 공산당 혁명을 일으킨 때에도 처음에 120명이 시작했습니다.
그런 공산당 사상이 전세계를 무섭게 만든 것입니다.
우리에게 진리에 대한 확실한 신뢰가 있다면 우리의 생활은 달라질 것입니다.
우선 나 자신이 달라지면 가정이 바뀔 것이고, 내가 나가서 일하는 회사가 달라질 것입니다.
주변이 달라지기 시작할 것입니다.
2).공정 하라
“너희 성문에서 진실하고 화평한 재판을 베풀고”(슥8:16)
성문은 재판을 하는 곳입니다.
법적인 것과 관계가 되는 곳입니다.
세상 법적으로도 진실하고 화평한 재판을 해서 벌을 주려고만 하지 말고 평안을 유지해야 됩니다.
우리가 평화를 누리는 것은 균형이 이루어 공평해야 오는 것입니다.
벨란스가 맞지 않으면 수평은 언제든지 깨어집니다.
가정이나 교회에서도 편애할 때 화평이 깨어집니다.
가정에서 아들만 사랑하고 딸에 대해서는 편견을 갖는 것, 큰 아이나 막내만 사랑하고 중간에 있는 아이들에게는 소홀히 하면 평화가 깨어집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목회를 하는데 교회 내에서 자꾸만 분란이 일어나서 교회가 갈라지는 것을 가만히 분석해 보면 목회 하시는 분이 욕심이 지나치거나 혹은 균형 감각을 상실하여 교인을 편애하기 때문입니다.
목사가 부자만 좋아하고 자기를 좋아하는 사람만 사랑하고 어떤 사람이 제직회에서 싫은 소리한 마디 하면 아예 멀 찌기 보내 버리고는 끼리끼리만 모이면 교회는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그러므로 편견을 버리고 편애를 하지 말아야 합니다.
공평한 것이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장로들에게 권면하는 말씀 가운데에도 ‘너희는 공평 하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행정을 할 때에도 그렇거니와 부탁을 받을 때도 공평을 유지해야 됩니다.
하나님께서 ‘너희 성문에서 진실하고 화평한 재판을 베풀고’ 하셨는데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일을 성도가 하면 안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일을 하면 하나님이 우리를 미워하실 텐데 우리가 하나님의 미움을 받고 어떻게 살겠습니다.
정부의 미움을 받는 기업체는 살아나지를 못하고 선생의 미움을 받고는 학생이 공부를 잘할 수가 없는데 성도가 하나님의 미움을 받고서야 살 수가 없는 것입니다.

3.희락의 절기
“그날에는 방언이 다른 열국 백성 열 명이 유다 사람 하나의 옷자락을 잡을 것이라 ”(슥8:23중)
사월의 금식과 오월의 금식과 칠월의 금식과 시월의 금식에 대해서는 이미 앞에서 언급된 바가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런 금식이 변하여 기쁨이 된다고 하십니다.
더이상 금식할 이유가 없다는 말입니다.
가슴을 치던 일들이 이제는 주님 안에서 다 이루어 졌으므로 금식 일을 기쁨의 날들로 변화시켜야 되는 것입니다.
주님이 모든 것을 회복시켜 주셨고 하나님의 복을 받는 백성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먹는 것과 마시는 것으로 기뻐하는 것이 아니라 의와 평강으로 기뻐해야 됩니다.
이 의로운 나라, 평강의 나라, 희락의 나라 이것이 없으면 천국을 유지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을 축복이 임하시면 예전의 슬픈 추억은 오히려 현재에 기쁨을 더해 주게 됩니다.
우리 나라가 지금 복을 받고 보니 6.25 때를 생각하며 어려웠던 지난날들로 인하여 지금 기쁨이 더 큽니다.
그러니까 그때의 그 슬픔을 생각하며 지금 올 것이 아니고 오히려 더 기뻐해야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지난날들이 억울하고 원통하여서 가슴을 칠 것이 아니라 지난날들을 돌이켜 보면 지금 더욱 기뻐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제 온 백성들이 동서남북 사방에서 하나님 앞에 모입니다.
“우리가 속히 가서 만군의 여호와를 찾고 여호와께 은혜를 구하자 할 것이면 나도 가겠노라”(8:21) ‘나도 간다’란 즉각적인 반응을 나타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 앞에 모이는데 이 기쁨의 근거는 이방인까지 하나님 앞으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나만 복을 받는 것이 아니라 이방 사람들까지도 하나님 앞에 돌아오게 되니까 얼마나 기쁨겠습니다.
우리를 향하여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은 진실입니다.
조금 부족하고 조금 못났어도 하나님께서는 진실한 사람을 사랑하십니다.
학생들이 시험 볼 때 다른 사람의 것을 베끼는 것을 컨닝 한다고 합니다.
컨닝이란 교활하다는 말로 진실의 반대말입니다.
교활한 사람, 재주를 많이 부리는 사람, 이런 사람이 인간적으로는 똑똑한 사람 같고 성공을 하는 것 같아도 결국은 진실하지 못하기 때문에 망하게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손해가 나는 일이 있어도 진실하며 손해가 나는 일이 있어도 공평을 유지해야 됩니다.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커음을 받을 것입이요”(마5:9)
저와 여러분은 화평의 제물이 되고 진실의 열매를 맺는 성도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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