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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승리의 면류관 (딤후 04: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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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에 무슨 미인선발대회가 많습니다. 1) 미스코리아선발대회를 위시로 해서, 슈퍼모델선발대회, 혹은 또 각 지역마다 자기 특산 물을 선전하기 위해서 감귤아가씨, 사과아가씨, 인삼아가씨 뭐 이렇게 해서 미인선발대회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미인선발대회에 나가서 경선 하는데 참여하고 한다고 합니다.

2) 성형수술, 체형교정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많은 경우에 성형수술도 한다고 합니 다. 요즘에는 뭐 성형수술 정도가 아니라 체형까지도 다 바꿀 수 있다는 얘기를 듣습니다.

그래서 컴퓨터 화면에 아무개 배우 눈 같이 해달라, 아무개 배우 코 같이 해달라, 주문을 해서 거기에 맞게 이렇게 성형수술을 한다고 그럽니다. 그런데 원판 불변의 법칙이 있답니 다. 그래서 수정을 하면 수정한 그 때는 수정한 것이 되지만 결혼해서 아기 낳으면 2세는 수정판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 원판이 나오게 되는 것이지요. 그래서 원판은 불변한다는 이 야기를 합니다.

3) 참 재미난 것은요, 그 여러 가지 과정을 거쳐서 내가 수상자가 됐어요. 내가 상을 타게 됐습니다. 전년도 수상자가 나와서 왕관을 씌어주고 그럴 때 보면 아, 얼마나 기뻐서 감격 해서 울고 그 예쁘게 화장한 것 다 지워지고 그런 것을 봅니다. 1년 왕관 쓰고, 그거 해서 그렇게 대단할 것 같지 않은데 감격하며 눈물 흘리며 영광스러워하며 좋아하는 것을 봅니 다.

여러분 오늘 성경 말씀은 영원토록 영광을 누릴 변치 않는 면류관을 우리에게 주신다고 말 씀을 하고 있습니다. 잠깐동안이 아니구요, 이 땅에서의 면류관 정도가 아니고 하나님 나라 에서 영원토록 영광을 누릴 그런 면류관을 주신다는 것이지요. 우리 성도들의 신앙생활은 오늘 성경말씀에 있는 것 같이 선한 싸움을 하는 것이요, 달려갈 길을 달려가는 경주를 하 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싸움과 경주에서 승리를 하게 되면 우리 주님께로부터 영원토록 변 치 않는 영광스러운 면류관을 우리에게 주신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참 감격적인 말씀이지 요.

I. 성도의 삶 (6-7) 오늘 본문 말씀에서 사도 바울은 자기 자신의 삶을 회고하면서 내가 이렇게 살았다고 간증 을 합니다. 그의 삶을 간증한 것을 보니까 그것은 마치 전쟁이나 전투와 같고, 그것은 마치 장거리경주를 하는 것과 같은 그런 인생을 살았습니다. 그는 그런 전쟁같은 인생, 장거리경 주 같은 인생을 살아가면서 그 모든 것들을 훌륭하게 잘 완수했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1. 선한 싸움 (7a)1) 선한 싸움을 다 싸웠다고 말씀합니다. 지난 주일은 간증주일이었기 때문에 제가 다른 설 교를 하구요, 10월 둘째주일, 셋째주일, 예수님의 좋은 군사, 영적무장, 군인에 대해서 전 쟁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렇게 군인에 대해서 전쟁에 대해서 설교를 하니까 어떤 분들은 목사가 무슨 집안에 누가 군대를 갔나, 무슨 일이 있나, 그렇게 의아하게 생각하시 는 분들이 있습니다. 오늘 이 승리의 면류관을 얻는 이 말씀까지 세 개를 제가 시리즈로 설 교를 하고 있는데, 우리 성도들이 인생을 살아가며 신앙생활 하는 것은 마치 싸움, 특별히 선한 싸움이라고 말씀을 하는 것이지요. 사도 바울의 인생은 정말 극적인 인생이었습니다.

예수님을 믿기 이전의 삶을 돌이켜보면, 그 때도 예수 믿는 사람을 잡아다 감옥에 가두고, 돌로 쳐서 죽이고 피를 흘리는 그런 참 전투 같은 인생을 살았어요. 너무나 광적이라고 할 정도로 그렇게 인생을 살았습니다.

그런데 예수 믿고 나더니, 예수 믿기 전에 자기가 한 그대로 또 그대로 당하는 겁니다. 고 난을 당하는 겁니다. 오랜 세월동안 선교여행을 다니면서 때로는 감옥에 갇히기도 하고, 매 를 맞기도 하고, 굶주리기도 하고, 배가 파선해서 물 속에 죽을 위험에 처하기도 하고, 온 갖 위험을 당하면서 목숨이 위태해지는 고난을 겪는 극적인 삶을 살았습니다. 그래서 바울 은 자기 인생을 선한 싸움을 살았다고 이야기를 하는 것이지요.

바울 선생님이 선한 싸움을 살았다는 것은 그 내용이 무엇일까요 무엇 때문에 선한 싸움을 싸웠을까요 오늘 2절 말씀을 보면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말씀을 전파한다고 말씀하고(딤 후4:2) 5절 말씀에는 전도인의 일을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딤후 4:5) 사도바울이 이야 기하는 선한 싸움은, 전쟁 같은 그 인생은, 왜 그런 인생을 살았느냐, 전도하기 위해서 하 나님의 말씀을 전파하기 위해서 그는 그런 싸움을 한 것입니다. 내 일신의 명예를 위해서 영광을 위해서 그래서 전쟁 같은 삶을 살아온 것이 아닙니다. 그런 싸움은 선한 싸움이라고 말하기 어렵지요. 그런데 바울 선생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위해서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기 위해서 전쟁 같은 인생을 살아왔다고 그래서 그것을 선한 싸움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바울 선생님은 극적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죄인의 괴수요, 죽을 수밖에 없는 그런 죄인 중의 죄인인데 그런데 주님께서 바울을 받아주셨습니다. 바울의 죄를 사하셨습니다. 하나님 의 백성으로 삼으셨습니다. 그리고 바울에게 사명을 주셨습니다. 이방인에게 복음 전할 사 명을 주신 것입니다. 바울은 너무나 기쁘고 감격해서 이 구원받은 감격, 이 받은 사명, 이 것을 완수하기 위해서 생명을 건 싸움을 한 것입니다. 믿지 않는 세상 속에, 어둠의 세상 속에 가서 그들 속에 복음을 전하고 그들을 변화시키기 위해서 그래서 전쟁 같은 삶, 선한 싸움을 싸우게 된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종교개혁주일을 지킵니다. 종교개혁자들은 선한 싸움을 싸운 사람들입니다. 루 터라든지 혹은 또 칼빈이라든지 이런 위대한 종교개혁자들은 싸움을 싸운 분들입니다. 그들 앞에는 종교권력과 세속권력이 같이 힘을 합친 광대한 굉장히 커다란 권력이 그들 앞에 놓 여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종교권력은 사람들에게 자기들 나름대로의 교리를 가지고 가르치 면서 거기에 사람을 얽매었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가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삶을 살기 위해서는 자기 공로를 세워야 한다, 행위를 해야 한다, 그런 교리를 가지고 그리고는 사람들의 것을 착취하고 사람들을 억압하고 사람들을 도탄 가운데 빠지게 하는 그런 일들을 했습니다. 종교개혁자들이 성경을 읽어보니까 그렇지 않단 말이에요. 하나님의 말씀을 읽어 보니까 종교권력자들이 이야기하는 그 교리는 맞지 않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러 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해야 할 것인가, 권력을 가진 사람들의 생각에 순종해야 할 것인가.

종교개혁자들은 과감하게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기로 결정을 했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 해서 권력을 가진 사람들에게 대항하다 보니까 그것은 틀렸습니다. 이게 맞습니다 하고 자기들이 가진 믿음을 가지고 그것을 가르치고 주장하다 보니까 목숨을 건 싸움이 될 수밖 에 없는 것이지요. 종교개혁자들은 그런 싸움을 거쳐서 그렇게 해서 종교개혁을 이끌어 낼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전적으로 순종한 사람들이지요. 그렇게 해서 전쟁을 한 것입니다.

2) 우리 성도들의 삶도 선한 싸움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죄악이 관영한 이 세상 속에서, 하나님께 순종하는 의로운 삶을 살고자 하면 선한 싸움이 필연적으로 될 수밖에 없는 것입 니다. 그저 선한 싸움을 그만두고 편안하게 삶을 살기로 작정하고 타협하면, 싸울 일이 없 지요. 그러나 점점 죄악 가운데 어두움 속에 내가 물들게 되는 것이구요,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아무런 능력도 가질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삶을 살고, 그래서 이 세상 속에서 성도답게 삶을 살고 세상을 변화시키 고자 했을 때에 그것은 치열한 싸움이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순종해서 의로운 삶을 산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입니까 그것은 전쟁 같은 삶입니다. 우니 주님께서 서 로 사랑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세상 속에서 서로 사랑하며 삶을 살아가야 할텐데, 우리 주 님의 명령에 순종해서 살아야 할텐데, 세상 속의 삶을 살아가는 현실을 보니까 그 속에는 미움과 시기와 질투와 다툼이 관영한 세상 가운데 있습니다. 그 속에서 세상같이 똑같이 시 기하고 질투하고 다투고 삶을 살아가면 편안하겠지만 거기에 대항해서 사랑하는 삶을 살고 자 하니까 내 자신의 내면적인 싸움도 있고, 세상 속의 삶을 살아갈 때에 전쟁 같은 싸움을 싸울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우리 주님께서 거짓증거하지 말라, 네 이웃의 것을 탐내지 말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우리 주 님의 명령에 순종하고자 하니까 세상은 너무나 부정직한 거예요. 부정과 부패가 만연되어 있고 부정직하고 어찌하든지 남의 것을 빼앗아서라도 내 탐욕을 채워야 하는 것이 세상입니 다. 그 속에서 남의 것을 탐내지 아니하고 정직하게 삶을 살고자 하면 선한 싸움이 필연적 으로 있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나 혼자 정직하고자 하니까 완전히 바보가 되지 않습니 까 얼마나 많은 손해를 봅니까 도저히 정직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정직하기 위해서는 치 열한 선한 싸움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법을 지킨다든지 질서를 지킨다든지 이런 것들도 치열한 싸움입니다. 내 자신 내면의 나와 싸움이 있고 다른 사람과의 싸움이 있고 싸움이 있습니다. 저는 새벽에 교회를 나올 때에 남산을 통해서 내려오는데요, 신호가 몇 개 있습니다만, 차량이 거의 안 다니니까 신호들을 거의 다 안 지킵니다. 특히 이제 고가도로가 있고 그 밑에 신호가 있는데 거기는 진짜 거의 차가 안 다녀요. 그래서 신호가 빨간불이 돼서 서 있으면 뭐 거의 저 혼자 있다가 떠나는 때가 있구요, 제가 이렇게 서 있으면 옆에 다른 차는 와서 거의 다 그냥 지나갑니다. 서 있 는 차가 없어요. 어떨 때는 제 뒤에, 제가 서 있으면 제 뒤에 다른 차가 멋모르고 섰다가 가만히 보니까 충분히 갈 수 있는데 안가고 서있거든요. 그러면 뒤에서 빵빵거리고 야단이 지요. 남들 다 가는데 혼자 있으려면 나만 바본가 해 가지고 속에서 내면의 싸움이 벌어집 니다. 또 서 있는데 뒤에서 빵빵거리고 막 들리진 않지만 욕을 하면, 그것을 또 이겨내기가 쉽지 않지요. 작은 것, 별거 아닌 그런 것들도 치열한 싸움이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여 러분, 우리가 기도할 때, 그것도 싸움입니다. 영적 싸움을 하는 것이에요. 전도할 때도 영 적 싸움을 하는 것입니다. 때로는 오해를 받으며 때로는 핍박을 받으면서 싸움을 하는 것이 바로 이 선한 싸움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에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삶을 살아가면 선한 싸 움을 싸울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3) 여러분, 선한 싸움은 어떻게 싸워야 할까요 총칼로 싸워야 할까요, 주먹으로 싸워야 할 까요. 바울 선생님은 총칼을 가지고 싸우지 않았습니다. 바울 선생님은 주먹을 쓰지 않았어 요.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이 선한 싸움을 싸울 때에, 총칼로 주먹으로 싸울 필요는 없습니 다. 선한 싸움을 싸우자, 우리가 예수그리스도의 군사라고 했을 때에 지금부터 우리가 다 태권도를 배워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선한 싸움은 사랑으로 싸우는 것입니다. 인내로 싸우는 것입니다. 희생으로 싸우는 것입니 다. 눈물로 싸우는 것입니다. 양보하고 고난을 받으면서 선한 싸움을 싸우는 것이지요. 우 리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자기 생명을 희생하시는 선한 싸움을 싸웠습니다. 바울 선생님도 매맞고 감옥에 갇히는 고난을 통해서 선한 싸움을 싸웠습니다. 우리 성도들도 마 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싸워야 할 선한 싸움은 고난 받으며 희생하며 섬김으로 내 믿음을 지 키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싸움을 우리가 싸워나가는 것이지요.

 2. 경주 (7b)1) 그 다음 두번째 보면, 우리 사도바울 선생님께서 달려갈 길을 마친다, 자기 일생을 경주 에다 비교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달리기 경주에 비유를 하고 있어요. 이 달리기 경주는 단거리 100m 잠깐 뛰고 마는 그런 경주가 아닙니다. 인생이 오랜 것 같이 장거리 경주를 뛰 는 것이구요, 삶을 살아가면서 여러 가지 장애물이 앞에 나오는 것 같이 장애물 경주를 뛰 는 것 같은 인생을 살아갑니다.

2) 바울 선생님은 복음으로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해서 눈물과 인내로 선교여행을 했습니다.

장시간동안 장거리 여행을 했습니다. 이것이 바울 선생님의 달려갈 길입니다. 장거리 경주, 장애물 경주, 그런 것들을 다 훌륭히 잘 완주한 것이지요. 여러분 우리 성도님들의 신앙생 활도 역시 장거리 경주요 장애물 경주입니다. 잠깐 하고 말면 얼마나 편하겠어요. 그런데 그게 아닙니다. 오랫동안 계속해서 장거리 경주를 하는 것이고, 경주를 하다 보면 여러 가 지 장애물이 있어서 그것을 넘어야 하는 것이고 그래서 우리의 이 경주는 인내가 필요하고 눈물이 필요한 것입니다.

우리 예수님께서 십자가 보혈을 흘림으로 인해서 우리가 구원받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나 님과 화목한 삶을 살아가게 됐어요. 그런데 한 번 화목한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계속 해서 우리 하나님과 화목한 관계,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하여 경주와 같은 노력을 기울 여야 하는 것입니다. 어떤 무슨 특정한 행사, 지난주에 우리가 선교부흥회를 했습니다만, 선교부흥회 같이 짧은 그런 기간, 특별한 행사, 그럴 때에 기도 열심히 하고 그럴 때에 성 경 열심히 읽고 그 행사 기간만 하고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일생동안 하나님과 친밀한 관 계를 가지고 교제를 하고 지속적으로 우리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인내와 눈물로써 장거리 경주, 장애물 경주를 해야만 되는 것이지요.

얼마 전에 TV뉴스에 세계 여러 가지 일들을 이야기하는 순서가 있었는데, 짧은 시간입니다 만, 아주 참 감동적인 장면을 봤습니다. 어떤 아버지가 철인경기에 참석했어요. 철인경기라 는 것은 수영도 하고, 자전거도 타고 마라톤도 하고, 굉장히 험하고 힘든 경기를 하는 것입 니다. 그 철인경기, 그것이 굉장히 힘든 것인데, 아버지가 장애인인 자기 아들을 데리고 참 석을 했습니다. 아들을 데리고 수영을 하구요, 아들을 앞에 태우고 자전거를 타고, 아들을 휠체어에 태워서 그것을 밀면서 마라톤을 하고 그렇게 해서 결승점에 들어오는 모습을 봤습 니다. 혼자서 하기도 참 어려운 일인데, 아들 뛸 수도 없고 활동할 수도 없는 아들을 데리 고 철인경기를 하는 것입니다. 참 용기 있는 부모입니다. 참 사랑이 많은 분입니다. 여러 분, 우리가 일생동안 믿음의 경주를 하는 것은 이렇게 장거리 경주, 장애물 경주를 하는 것 같이 믿음의 경주를 하는 것이지요. 이런 경주를 통해서 우리 하나님과 계속해서 친밀한 관 계를 가질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3. 믿음 지킴 (7c) 이렇게 고난과 희생으로 주께 전적으로 헌신하는 삶을 살아갈 때에,(6) 선한 싸움을 싸우고 달려갈 길을 달릴 때에, 그럴 때에 우리 믿음을 잘 지키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신앙생활 은 한 번 영적인 체험을 화끈하게 하고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 믿고 거듭나 고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시작입니다. 그때부터 시작해서 지속적으로 변 치 않고 하나님 나라에 갈 때까지 내 믿음을 지키고 간직하는 것이지요.

이렇게 선한 싸움에서 승리하고, 달려갈 길, 이 경주에서 이기고, 믿음을 잘 지키면, 우리 주님께서 상을 주시는 것입니다. 고난 당하고 인내하고 눈물 흘리고 희생하면서 우리 주님 과 함께 경주를 해 나갈 때에 상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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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 상급 (8)

1. 예비된 것 8절 말씀을 보십시오.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 되었으므로 주 곧 의 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운동경기를 하면, 경기 다 끝난 다음에 그 때서부 터 메달이나 트로피 등을 마련하러 갑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미리 다 메달, 트로피 다 준 비해 놓고 있다가 경주 딱 끝나서 들어오면 1, 2, 3등을 정해서 거기서 메달을, 트로피를, 상을 수여하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이미 상을 예비해 놓고 계십니다. 우리 경주 끝날 때를, 다 완수할 때를, 우승하고 들어올 때를, 승리하고 들어올 때를 우리 주님께서는 기다 리고 계십니다. 다 준비해놓고 기다리시는 것입니다.

 2. 의의 면류관 그리고 우리가 경주를 다 마쳤을 때에, 승리했을 때에 우리 주님께서 영광스러운 자랑스러 운 의의 면류관을 주시는 것이지요. 우리 성경에는 이 면류관에 대해서 여러 가지 설명을 합니다. 생명의 면류관, 의의 면류관, 영광스러운 면류관, 썩지 않고 쇠하지 않는 면류관, 여러 가지 용어를 사용하는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이 면류관은 영원토록 변치 않 고 영원토록 영광을 누릴 그런 영광을 우리에게 주시는 것입니다. 미인선발대회에서 1년 동 안 사용할 왕관을 썼을 때에 얼마나 감격해 합니까 그 정도가 아닙니다. 영원토록 영광을 누릴 그런 면류관을 우리에게 주시는 것이지요. 군인들이 별을 달아서 장군이 됐어요. 장군 이 되면 얼마나 영광스러운지 모릅니다. 장군이 지나가면 사병이 경례 딱 붙이고 지나가야 할텐데, 경례 붙이고는 얼어붙어서 못 갑니다. 그렇게 권위와 위엄이 있고 영광스럽습니다.

공부를 오랫동안 해서 많은 학문적인 업적을 쌓으면 박사학위를 줍니다. 화려하게 생긴 박 사 가운에다가 박사모를 쓰고 그리고 학위수여식에 나오면 그 사람이 학위수여식 그 날에 가장 영광스러운 사람이 되는 것이지요. 명예로운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에게 주시는 면류관을 어떻게 미인대회의 왕관에 비교할 수 있으며 별에 비교할 수 있으며 박사모에 비교할 수 있겠습니까 인간 삶을 살아가면서 일시적으로 영광을 가지는 것에 어 떻게 비교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이 면류관은 영원토록 영광을 누 릴 면류관입니다. 세상의 어떤 명예와 세상의 어떤 상과도 바꿀 수 없고 비교할 수 없는 가 장 영광스러운 상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것이지요.

 3. 의로우신 재판장이 주심 우리 주님께서 마지막 심판하실 때에 그 재판정 앞에 우리가 서서 이 면류관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든지 인생을 살아가면서 우리 주님의 심판대 앞에서 최종 결산을 하 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지 아니하는 사람들은 멸망과 지옥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고, 또 믿음으로 선한 싸움에 승리한 사람은 영광스러운 면류관을 받게 되는 것이지요. 말할 수 없는 기쁨과 말할 수 없는 영광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최종승리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마라톤 하는 사람들이 그들의 최종목표는 뭡니까 마지막 결승점에 도달하는 것이 마라톤 하는 사람들의 목표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보면 가 다가 힘이 들어서 슬슬 걸어가고 주저앉아 쉬는 사람들이 있어요. 또 가다보면 물도 주고 그렇습니다. 마라톤 하는 목표가 뭡니까 거기에 참가한 목적이 뭡니까 가다가 쉬려고 참 가합니까 물주면 그 물을 마시고 머리에 끼얹고 그러던데, 얼마나 시원하겠어요 그 시원 함을 누리기 위해서 합니까 그게 아닙니다. 최종목적지에 도달하기 위해서 마라톤 경기에 참여하는 것이지요.

III. 결 여러분 우리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달려가는 경주를 하는데 그것은 최종목적지를 향해서 우 리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달려갈 길을 달려가는 것입니다. 때로는 중간에 힘들고 어려워서 주저앉고 또 조금 잠깐의 편안함과 쾌락을 위해서 안일하게 주저앉고 그런 일이 생긴다면 최종 목적지에 도달할 수가 없는 것이지요. 여러분 우리 인생은 선한 싸움을 싸우는 것입니 다. 장거리 경주, 장애물 경주를 우리가 한 것입니다. 때로는 눈물 흘리고 고난을 당하고 인내하고 희생을 하면서 이런 대가들을 치루면서 이 싸움과 이 경주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목표는 중간에 있는 편안하고 안일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 주님 심판대 앞에 서서 면류관 받는 것이 우리의 목표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잘 싸우고 달려갈 경주를 잘 달려가서 우리 주님에게로부터 영광스러운 영원한 면류관을 얻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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