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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십자가의 도 (고전 01:1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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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스 아켐퍼스는 그의 명저 '그리스도를 본받아' 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지금까지 예수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많았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짊어진 사 람들은 거의 없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와 함께 기쁨을 나누고 싶어했지만 극히 작은 소수 만 그의 쓴잔을 마셨다 라고 말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예수의 십자가를 사랑하고 믿어야합니다. 그리고 십자가를 전해야 합니다.

십자가는 예수가 나를 위해 죽은 이야기가 기록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십자가에서 예수의 피가 없으면 그것은 우상입니다.

예수가 내 대신 못 박히고 죽은 대신 내가 살아난 곳이 십자가입니다. 그런데 이 십자가를 바라보는 두 가지 견해가 있습니다.

십자가를 보는 관점 사도 바울 시대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지심을 어떻게 보는가 하는 문제에 있어서 두 가 지의 시각이 있습니다.

첫째는 미련하게 보는 시각이 있습니다.

예수가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십자가에 죽은 것은 그 방법에 있어서 이해할 수 없는 미련한 방법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시각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렸을 때 이미 나타났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그 앞에서 조롱하였습니다.

마 27:40-41절에 보면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장로들이 군중들과 함께 예수 그리스도를 희롱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가로되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 자여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자기를 구원하고 십 자가에서 내려오라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그렇게 비참하게 십자가에 달려 죽겠느냐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방법은 사람들 보기에 전혀 이해되지 않는 방법일수도 있습니다. 세상을 구원하시 려는 하나님의 방법이 그렇습니다.

우리 생각에 단 번에 천둥 번개를 쳐서라도 이 악한 세대에 경종을 울리시고 하나님이 큰 음성으로 한 번 소리치시면 안믿을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런데 그렇게 간단한 방법이 있는데도 하나님은 어떻게 하십니까 고전 1:21절에 보면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 는 고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라고 했습니다.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세상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다는 것입니다. 즉 십자가가 미련하게 보일지라도 그것은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방법이 멸망하는 사람들에게는 미련하게 보입니다.

멸망당할 사람들에게 십자가는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그리고 바보스럽고 어리석게 보일 뿐 입니다.

바울은 고전 1:23절에서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 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라고 했습니다.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고 이방인 즉 철학과 학문을 중요시했던 헬라 사람들에게는 미 련하게 보인 것이 십자가입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배척했고 헬라 사람들은 조롱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러한 미련하게 보이는 방식으로 저를 믿는 모든 사람들에게 영생을 얻게 하시기를 원하셨습니다.

요 3:14-15절에 보면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저를 믿 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라고 했습니다.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하다가 하나님이 보내신 불 뱀에 물려 다 죽게 되었습니다. 모세는 그들을 위해 기도하였고 하나님은 불신하고 원망하는 사람들의 회개와 믿음을 위해 놋뱀을 만들어 장대에 높이 달고 누구든지 쳐다보면 살 것이라는 말씀 을 전하게 하였습니다.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고 회개하는 사람들은 모세가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장대에 달린 놋뱀을 쳐다보았습니다. 그때 하나님의 능력으로 그들은 살았습니다. 그 러나 여전히 불신하고 원망하는 사람들은 모세의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너무 똑똑 하고 잘나서 놋 뱀을 쳐다보지 않았습니다.

놋 뱀을 바라보면 산다구! 웃기는 소리하지마! 하나님이 살아 계신다면 저 따위 쓸데 없는 짓 하지말고 당장 나타나서 내 상처를 고쳐봐.. 라고 완악하게 말하면서 끝내 하나님의 말 씀을 듣지 않았습니다.

결국 쳐다보지 않은 그 사람들은 다 죽었습니다.

누가 은혜를 받게 됩니까 누가 구원을 받습니까 믿는 사람입니다. 비록 어리석고 미련하게 보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그대로 믿고 따르는 사람입니다. 예수님도 인류의 구원의 능력이 되시기 위해서 모세가 불 뱀에 물려 죽 어가는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해 놋뱀을 장대에 높이 매단것처럼 예수 그리스도도 죄악의 독 으로 죽은 인생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에 높이 들려야 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십자 가는 철학이 아닙니다. 어떤 이론도 아닙니다. 그냥 실제입니다. 내 죽을 것을 예수가 대신 죽었다는 것입니다. 그저 믿고 영접하면 삽니다. 생명을 얻습니다.

사람들은 고상한 학문이나 철학을 가지고 접근하면 매력 있어 합니다.

아주 합리적인 이론을 제시하면 그럴듯하게 속아넘어갑니다. 그래서 다른 이방종교들의 경 전은 이론적이고 합리적이며 철학적입니다. 남의 종교 이야기를 해서 안됐지만 불교의 경전 만 보더라도 그쪽은 팔만 대장경입니다. 동양의 유교의 경전이라고 할 수 있는 사서 삼경같 은 책들은 분량이나 내용 면에서 얼마나 방대한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그것들은 고상해 보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아주 단순합니다.

분량이라고 해야 작은 소책자 66권으로 된 단 한 권의 책입니다. 그리고 내용면에서도 처음 부터 끝까지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내용 전개가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이 하나님의 기쁨을 위하여 인간을 비롯한 세상을 만드셨고 세상에 죄가 들어와서 인 간과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졌고 그 깨어진 관계로 인하여 인간에게는 온갖 불행과 저주, 그리고 사망이 찾아왔습니다.

인간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불행과 저주와 사망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하나님이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낼 것을 약속한 것이 구약의 얘기이고 약속하셨던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 가 와서 인간을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고 누구든지 그를 믿으면 죄와 사망에서 구원 받을 것이지만 믿지 아니하는 자들은 그가 후일 이 땅에 다시 오셔서 심판하시고 영원한 형 벌에 처할 것이라는 이야기를 담은 것이 바로 성경의 내용입니다.

내용 전개가 아주 단순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믿지 않으려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구원의 도리를 어렵게 만들지 않았습니다. 왜냐면 누구든지 다 구원받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그 러나 멸망당할 사라들은 예수 십자가의 도를 아주 우습게 압니다. 그러기 때문에 믿지 못합 니다. 그리고 믿지 않기 때문에 구원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이 우습게 아 는 그 십자가의 원리는 놀랍게도 사람을 구원합니다. 아무 공로 없어도 어떤 죄인도 그 십 자가의 원리만 알고 믿으면 구원을 받습니다.

엡 2:16절에 보면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라고 했습니다. 십자가는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는 능력이 있다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원리를 알고 믿으면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원수 되어진 관계가 소멸되어지고 하 나님의 자녀가 되는 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엡 1:7절에 보면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으니...' 라고 하였고 엡 2:13절에 보면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 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 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는 입장입니다.

바로 멸망당하는 사람들에게 미련하게 보이는 그 십자가를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는 사람들 이 있습니다. 믿음의 사람 하나님의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우리를 구원하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봅니다. 적어도 믿는 성도들의 눈에는 그렇게 보여야 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십자가를 어리석게 바라봅니다.

왜 십자가를 어리석게 봅니까 자신들의 생각과 맞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구원에 있어서 내 생각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예수님의 생각이 어떠냐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영광으로 생각하였습니다.

요 12:23절에 보면 예수님은 십자가의 죽음을 향하여 한 걸음 두 걸음 다가가시면서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인자의 영광을 얻을 때가 왔도다'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 말씀을 들은 당시의 제자들과 많은 사람들은 인자의 진군 나팔소리가 하늘에서 들릴 줄 생각하고 가슴이 뛰었을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이 말씀하신 인자의 영광 영광을 사람들 위에 군림하는 왕의 영광으로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영광을 자신이 십자가를 지시는 일로 생각하셨습니 다.

세상 사람들은 영광을 승리에서 얻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얻고, 이기고, 누림에서 영 광을 보려고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자기 희생에서 영광을 보았습니다. 십자가의 죽음에서 영광을 보신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신앙이 예수님처럼 십자가의 죽음에서 영광을 볼 때, 참 된 그리스도인의 영광 을 소유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에 대한 이해를 깊이 생각해 야 합니다.

죽어야 살고 버림으로 얻는 것 이것이 바로 십자가의 영광이고 십자가의 능력입니다.

예수의 십자가 가지고 있는 능력은 무앗입니까 예수의 십자가가 가지고 있는 능력이 무엇입니까 ① 속죄의 능력입니다.

속죄라는 말은 죄값에 상응하는 값을 치루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 십자가에 흘린 피는 속 죄의 피입니다. 즉 하나님의 택하신 자녀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아낌없이 흘려주신 피가 있 기에 예수의 십자가는 속죄의 능력이 있습니다.

② 생명의 능력입니다.

십자가의 두 번째 능력은 죽어도 사는 생명의 능력입니다.

요12:24절에 보면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 은 열매를 맺느니라 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십자가의 능력입니다.

한 알의 밀이 떨어져 죽은 것 같아도 그곳에서 백 배의 결실을 거두는 능력이 바로 십자가 의 능력입니다. 그러기에 십자가는 반드시 죽어야 산다는 원리가 있습니다.

부활 이전에 십자가의 죽음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십자가는 자기 희생이요, 자기 죽음입니다. 자기가 죽어야 사는 길이 있고 자기 를 포기하고 얻는 것입니다.

순교자들의 피는 교회의 초석이다 라고 누군가 말했습니다.

수 많은 순교자의 헌신의 피가 있었기에 오늘날 교회는 생명이 넘치는 산 교회가 되는 것입 니다.

위대한 일을 이룩한 사람들은 대개의 경우 죽음을 각오했기 때문에 그것을 이룩할 수 있었 던 것입니다. 진리를 위해 죽는 사람이 있어야 진리는 살고, 사랑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사 람이 있어야 사랑이 이루어집니다. 십자가를 지는 수난의 길에서 인류도 민족도 사는 새 역 사가 창조되는 구원의 진리를 주님의 십자가는 우리에게 제시하신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가 힘을 잃고 진리의 빛이 나타나지 않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성도들이 그리스 도의 능력을 나타내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성도들이 십자가의 능력을 버렸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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