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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쓴나물도 함께 먹으라 (출 12:1-14)

첨부 1


기독교 신앙의 출발은 유월절에서 시작한다. 양을 죽여 피를 문설주에 바른 이스라엘 집에는 생명이 있었고 양의 죽음도 없고 피도 없었던 애굽 집에는 죽음이 있었다. 그리고 이스라엘은 애굽 종살이에서 해방되어 가나안 땅으로 간 것이다. 양을 잡아 피를 바르는 유월절은 유대인의 절기 중 첫 절기이다.
예수님은 유월절 양을 잡을 때 십자가에서 죽으셨고 양을 잡는 방법대로 죽으셨다. 그래서 바울은 유월절 양은 예수님이라고 고전5:7에서 말한다.
유월절 양을 잡아 피를 바르는 유월절은 유대인의 절기중의 첫절기이다.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짊어지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셨다는 사실은 기독교의 기둥이자 뼈대이자 신앙이자 믿음의 근거이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셨다는 것은 구원의 충분조건이자 필요조건이다.
십자가 없이 구원 없고, 예수 없이 생명 없고, 피흘림 없이 죄 사함은 없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신 것은 구약에서는 유월절로 표현되고 있다. 그런데 유월절에는 피를 바를 뿐만 아니라 무교병과 쓴 나물을 같이 먹어야 한다. 무교병은 누룩이 없는 떡, 누룩은 죄를 상징한다.
성도는 예수의 피로 죄를 씻은 누룩 없는 떡이고 예수 안 믿는 사람은 누룩 있는 떡 즉 유교병이다. 그래서 우리 성도들은 누룩 없는 떡을 먹는데 예수의 피로 죄를 씻어서 누룩 없는 떡이 되었다는 믿음의 고백이다.
그리고 무교병을 먹을 때는 반드시 무교병만 먹지 말고 쓴 나물도 같이 먹으라고 하나님은 명령했다. (8)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영원토록 유월절을 지키라고 하면서 무교병과 아울러 쓴 나물도 함께 먹으라고 하셨다.
신앙생활이란 무교병과 쓴 나물을 아울러 먹는 생활이다. 성도들은 너무나 달콤한 생활만 추구하고 있다. 축복만 간구하고 있다. 사랑만 원하고 있다. 좋은 것만 좋아하고 있다. 그러나 기독교의 역사는 그런 것이 아니다.
쓴 나물도 먹으란 뜻은

1. 쓴 감정도 먹으라는 말이다.
구원받은 성도는 쓴 감정도 삼킬 수 있어야 한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사람은 감정이 얄팍한 사람이다.
감정은 날씨와 같아서 주변 상황에 따라서 수시로 변하는 것이다. 밝은 감정일 때는 문제가 안되는 것이 쓴 감정이 오면 큰 문제가 된다.
쓴 감정을 토하는 이는 소인이고 쓴 감정을 먹고 표시하지 않는 이는 대인이다. 성경에 나타난 큰 인물들은 쓴 감정을 먹고 잘 소화시킨 사람이다.
다윗은 아들 압살롬이 반란을 일으켜 도망하는 길에 시므이에게서 모욕을 받았으나 유유히 도망했다.
모세는 구스여자와 결혼하자 미리암에게 비난의 화살을 받았으나 미리암 위해 기도했다.스데반은 돌을 치는 이들에게 사랑의 감정으로 저들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기도했다.

사람이 오래 살고자 하는 욕망을 조사했다.
(미국, 일본 연구, 100세이상 연구)

1. 평상시 적게 먹는 자

2. 장수하는 가정 태어남

3. 80%여자

4. 아이 많이 낳은 자

5. 반농반어촌 사람 6. 늙도록 일감,꾸준히

7. 생활정도 중하, 하상

8. 병 누운 적 없는 사람

9. 별실, 외식 적고 일정음식 먹는 자
10. 대체로 마음이 모나지 않고 관용스럽다. 웬만한 일이면 웃어서 넘길 수 잇는 여유가 있었다. 수년이 지나도 화내는 일을 잘 볼 수가 없었다.
이렇게 쓴 감정도 잘 먹을 수 잇는 것은 정신적으로 좋고 건강 적으로도 좋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딱딱한 마음, 굳은 마음은 바리새인들의 마음이다. 그것은 율법주의적인 사고로 절대적으로 또는 반드시 나하고 딱 맞아야지 그렇지 않으면 정죄하고 심판한다.
개개인은 다른 사람과 안 맞도록 되어 있다. 맞아떨어질 수 없는 것을 맞출려고 하니 문제인 것이다.부부문제도 마찬가지이다. 용납해 주는 마음으로 바뀌어야 한다. 나와 다른 사람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받아주고 용납하는 것아 바로 옥토밭인 것이다.
용납 못해주는 마음이 곧 길바닥 마음이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의 율법을 가지고 있다. 절대로 시간은 지켜야 한다.
바울은 율법에서 복음으로 해방되었다고 고백하고 가르친다. 화 안내는 비결은 다른 신앙, 의견, 태도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이것이 이상한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다.
내가 가진 길바닥 마음 해결하면 분노의 노예에서 해방된다. 이제는 주인이 된다. 화를 지배할 수 있는 것은 길바닥 마음 벗어날 때다. 무교병을 먹는 성도들은 쓴 나물도 먹어야 한다.

2. 쓴말도 먹으라는 말이다.
쓴 말도 먹을 수 있는 사람은 성장할 수 있다. 그러나 쓴 말이라고 뱉어 버리거나 불쾌하게 여기며 먹지 않는 사람은 성장을 할 수가 없다.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에게 회칠한 무덤 같은 놈들아독사의 자식들아 그러나 죽이려고 기회 엿보고 있었다.
베드로에게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은 쓴말 중 쓴말이다 모욕적이었으나 삐쳤다는 말없다. 꽁하고 있다거나 공격하지 않았다. 즉각 주님모시고 변화 산에 기도했다. 후에 대 사도가 되었다.
좁은 나라 국민일수록 신경질적 사람이 많다고 한다. 외국사람들은 대체로 느긋하다고 한다.
100마리의 쥐 실험을 했다.
넓은 곳-여유 있는 성품 형성
좁은 곳-신경질적인 쥐
주 비좁은-공격적인 쥐
그래서 그런지 우리민족 은 쓴말, 듣기 싫은 말에 발끈하는 민족이 되었다. 예수님 십자가에 우리 위해 죽으실 때, 대제사장, 서기관들 희롱하면서 내려오라고 했다. 남은 구원하고 자기는 구원하지 않는다고 강도도 욕했다. 십자가 현장에서 사방에서 모욕과 희롱 말뿐이었다. 그러나 주님은 꿀꺽 꿀꺽 받아 먹으셨다. 무교병 먹는 이들은 쓴 나물도 먹어야 한다.
주의종 한테는 책망을 받고 하나님께 칭찬을 받아야 한다 그런데 오늘날 성도들이 책망은 받지 않고 칭찬만 받을려고 하니까 성도들이 참다운 믿음의 사람이 되지 못하고 나중에는 주님과 주의종을 배반하고 마음 아프게 하는 것입니다

3. 쓴 일도 하라는 말이다.
어떤 사람은 좋은 일만 하지 굳은 일은 하지 않으려고 하는 사람이 있다. 그러나 안 좋은 일도 하라는 말이다.
1>새벽기도나 철야 기도는 쓴 일이다
새벽에 일어나 기도한다는 것은 그리 달콤한 일이 못된다. 철야 기도나 금식기도 등도 쓴일이다 그러나 일어나 기도로 하루를 시작하는 사람이 나중에 큰일을 하게 된다.
2> 헌금도(십일조) 쓴일 중에 하나이다.
내가 쓰면 무엇이든지 더할 수 있다. 어려운데 드리기 는 쓴 것이다. 그러나 나중에 보면 그것이 30배 60배 100배의 축복이 되어 돌아온다. 하늘의 상급으로 쌓인다.
3> 전도도 쓴 것이다.
불신자에게 예수 소개하고 인도하기란 쉬운 일 아니다. 그러나 무교병 먹은 성도는 쓴 나물도 먹어야 한다.
4> 선교도 쓴 일이다.
안하면 편하고 돈도 남고, 문제도 없다. 편하다고 좋은 것은 아니다. 돈 남아 돌아간다고 좋은 것 아니다 지금 좋다고 나중도 좋은 것 아니다.
5> 주일성수도 쓴 것이다.
모처럼의 주일, 연휴 산이나 바다로 놀러 가고 싶을 것이다. 늦잠도 자고 싶을 것이다. 하루 쉬는 것을 하나님께 바치고 지내는 것은 쓴 나물이다.
6>봉사와 충성하는것도 쓴 것이다
충성하고 봉사하는 것은 쓴일이다 열심히 일해 놓으면 잘한 것은 다 자기 잘란 탓이고 안되는 것은 조상 탓이라고 앞장서서 일하는자를 원망하고 불평하는 것입니다
7>용서하고 사랑하며 화목하는 일도 쓴일이다
남을 용서하는 일이나 사랑하고 화목하는일이 쓴일이지만 내가 먼저하면 서로 좋고 힘이되고 은혜가 되는 것입니다

4. 말씀의 쓴 나물을 먹어야 합니다.
요한계시록 10장 9절에 보면 천사가 사도 요한에게 작은 두루마리 책을 갖다주며 받아 먹으라고 했습니다. 받아 먹으니까 내 입에는 꿀같이 다나 먹은 후에 내 배에서는 쓰게 되더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먹을 때는 꿀같이 달고 맛이 있지만, 이 말씀을 깨달은 대로 내 생활에 실천해 옮기려면 쓰디 쓴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말씀의 쓴 맛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은 덜된 신자요, 성숙되지 못한 신자입니다.
어떤 고통이 오고 손해가 와도 말씀대로 실천해 옮기는 삶이 있어야 합니다. 예수께서 아버지의 뜻대로 십자가를 지려고 하실 때 너무 너무 고통스러운 쓴잔이므로 밤새도록 기도하시며 그 쓴잔이 물러가게 해 달라고 하셨지만, 나중에는 내 아버지여 만일 할만 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십자가의 쓴 잔을 마셨습니다.
제1의 아담은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달콤해 보이는 선악과를 따먹으므로 죄와 멸망을 끌어 들였지만, 제2의 아담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 하여 십자가의 쓴 잔을 받아 마심으로, 죄사함과 구원을 가져 왔습니다. 말씀의 쓴 맛을 날마다 경험해야 합니다.

5. 징계의 쓴 나물도 먹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녀들이 불순종하고 곁길로 갈 때에는 사랑의 채찍으로 때립니다. 무섭게 때릴 때가 있고 약하게 때릴 때가 있습니다. 물질로 때릴 때가 있고 질병으로 때릴 때가 있고, 교통사고나 재난으로 때릴 때가있습니다. 또 자식을 통해서 때리실 때가 있습니다.
예수 믿는다고 하면서 아무리 죄를 지어도 징계가 없으면 사생아요, 즉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기 때문일 수가 있습니다.
히브리서 12장 5절 이하에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주께서는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의 받으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니라고 했습니다. 11절에는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달한 자에게는 의의 평강한 열매를 맺나니라고 했습니다.
징계의 쓴 나물을 감사히 받아 먹고 회개하면 달콤한 축복의 열매를 먹여주시는 것입니다.
주일 한번만 범해도, 십일조 하다가 마귀의 시험에 들어서 한 번만 떼어먹어도 하나님은 징계의 쓴 나물을 먹여서 깨닫게 하십니다.
모든 고통과 슬픔을 우연으로 돌리거나 도리어 하나님을 원망하지 말고, 하나님의 사랑의 채찍으로 알고 감사함으로 받아야 합니다.
욥기 5장 17절로부터 보면 볼지어다 하나님게 징계받는 자에게는 복이 있나니 그런즉 너는 전능자의 경책을 업신 여기지 말지니라 하나님은 아프게 하시다가 싸매시며 상하게 하시다가 그 손으로 고치신다고 하셨습니다.6. 수치의 쓴 나물도 먹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영광과 칭찬만 받게 하시는 것이 아니라 수치도 당하게합니다. 쓰디 쓴 욕도 먹게 합니다.
예레미야애가 3장 30-33절에 보면 하나님이 우리의 뺨을 때리시며, 수치를 당하게도 하시는 때가 있다고 했습니다. 때리는 자에게 뺨을 향하여 수욕으로 배불릴지어다 이는 주께서 영원토록 버리지 않으실 것임이며 저가 비록 근심케 하시나 그 풍부한 자비대로 긍휼히 여기실 것임이라 주께서 인생으로 고생하며 근심하게 하심이 본심이 아니시로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뺨을 때릴 때는 실컷 맞고, 망신을 주고 수치를 당하게 하실 때는, 아무 변명이 불평하지 말고 실컷 당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다가 때가되면 하나님이 그 풍부한 자비대로 갚아 주시는 때가 온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높이실 때가 있는가 하면 낮추실 때가 있고, 낮추실 때가 있는가하면 높이실 때가 있습니다. 언제나 높여주시지만 않고, 또 언제나 낮추시기만 하지도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자기도 모르게 자만하고 우쭐하고 교만해지기 쉽기 때문입니다.
또 억울하게 욕을 먹고 핍박을 받게 하실 때가 있습니다. 모두가 우리에게 유익이 되고 축복이 되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5장11-12절에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전에 있던 선지자들을 이같이 핍박하였으니라고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이사야 51장 7-8절에는 의를 아는 자들아, 마음에 내 율법이 있는 백성들아, 너희는 나를 듣고 사람의 훼방을 두려워 말라 사람의 비방에 놀라지 말라 그들은 옥같이 좀에게 먹힐 것이며 그들은 양털같이 벌레에게 먹힐 것이라 의는 영원히 있겠고 나의 구원은 세세에 미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의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 앞에서 진실하게 살도록 노력하면 됩니다. 사람들의 비방이나 훼방에 지나치게 반응을 보일 필요가 없습니다. 주님도 부끄러움을 개이치 아니하시고 십자가를 지시므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구원을 완성하셨다

7. 환난의 쓴 나물도 먹어야 합니다.
언제나 맑게 개인 하늘만 계속되면 기분은 좋을런지 모르지만, 나무도 자랄 수 없고 농사도 지을 수 없고 이 세상은 사막이 되고 말 것입니다. 이와같이 우리의 생활에도 기분좋은 일이나 평안만 있는 것이 아니라, 쓰디쓴 고난과 환난도 받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온실 안의 꽃처럼 만들기 원치 않습니다. 때때로 환난도 당하고 승픔도 당하고 고통도 당하게 합니다. 언제나 성공과 승리만이 있는것이 아니라, 실패도 있고 낭패도 당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때에 죄를 깨닫게 되고, 죄를 끊게도 해 주시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난공불락의 큰 여리고성도 함락시켰는데, 조그마한 아이성 싸움에서 실패하여 크게 혼난 적이 있습니다.
불의 사자 엘리야는 바알 선지자 450명 아세라 선지자 400명 도합 850명과 대결해서 갈멜산에서 큰 승리를 거두었는데, 아합의 아내 이세벨 한 여자의 공갈 협박에 낙심하여 도망치다가 로뎀나무 아래서 차라리 죽여달라고 까지 요청하는 신세로 전락하기도 했었습니다.
노아는 당대의 의인이라고 칭찬을 듣고 홍수심판에서 구원을 받았으나, 후에 포도주에 취해서 하체를 드러내놓고 큰 망신을 하고 수치를 당하기도 했습니다.
어느 누구도 늘 승리와 성공의 삶만 살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의 과정으로 보고 인내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사야 45장 7절에 나는 빛도 짓고 어두움도 창조하며 나는 평안도 짓고 환난도 창조하나니 나는 여호와라 이 모든 일을 행하는 자니라 하였노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환난과 고통의 쓴 나물도 먹어야 합니다.
모든 고난에는 몇가지 원칙이 있는데 A.감당치 못할 고난과 시험은 없는 것과, B.고난과 시험 뒤에는 큰 축복이 있다는 것과, C.모든 고난은 합동하여 유익하게 해 주신 것입니다.
(결론)
어린아이에게 약을 먹일때 약이 얼마나 쓴지 어린아이들이 먹지 않으려고 합니다. 먹어야 병이 낫겠는데 안먹으려고 합니다. 먹어야 병이 낫겠는데 안먹으려고 하니까, 어떤 엄마는 사탕을 보여주면서 먹으면 이 사탕을 주겠다고 달래기도 합니다.
영의 세게에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영혼이 잘되고 신앙의 연단을 주기 위해서, 쓰디 쓴 약을 먹이실 때가 종종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해서 가나안 땅을 향해 떠나기 전에, 일년된 양이나 염소를 잡아 그 피는 대문에 바르고 고기는 불에 구워 먹되 쓴 나물도 아울러 먹으라고 명령하셨습니다. 부드럽고 맛있는 고기만 먹지 말고 반드시 쓴 나물을 사이 사이에 먹어 가면서 고기를 먹으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오늘날도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무엇이 유익하고 무엇이 해로운지를 잘 아시기 때문에 달콤한 것만 주시지 않고 때로는 쓰디 쓴 것을 먹으라고 주실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쓴 나물을 먹이실 때는 괴로워도 그것을 먹어야 우리에게 유익하고, 수지맞는 큰 축복을 주십니다.
달콤한 것만 주시는 하나님이 결코 아닙니다. 반드시 쓴나물을 먹이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아무리 예수를 잘 믿고 하나님의 뜻에 꼭 맞는 사람이라도, 하나님이 달콤한 은혜만 주시는 법이 없고, 수지맞는 일만 생기게 하는 법이 없습니다.
만일 하나님이 그렇게 해주신다면 그 사람을 축복해 주시는 것이 아니라 영 육간에 망하게 하는 것입니다.
고난이 있기에 생명력은 더욱 강합니다.
북쪽 바다에서 청어 잡이를 하는 어부들의 가장 큰 관심사는 어떻게 하면 북해로부터 먼 거리에 있는 런던에까지 청어를 싱싱하게 살려서 가지고 갈까 하는 것이었다. 모든 어부들이 아무리 잘해도 배가 런던에 도착 해보면 청어들은 거의 다 죽어있는 것이다. 그런데 꼭 한 어부만은 북해에서 잡은 청어들을 싱싱하게 산채로 런던에 가지고 와서 큰 재미를 보는 것이었다. 동료 어부들은 이상하게 여겨 그 이유를 물었더니 그 어부가 고민 끝에 말하기를 나는 청어를 넣은 통에다 메기를 한 마리씩 집어넣습니다. 라고 하는 것이다. 그러자 모든 어부들은 눈이 동그래지면서 그러면 메기가 청어를 모두 잡아먹지 않소 라고 이구 동성으로 물었는데, 그는 이렇게 말했다.
네 메기가 청어를 잡아먹지만 두 세 마리밖에 못 먹지요. 그러나 그 통에 있는 다른 많은 이들은 잡혀먹지 않으려고 계속 도망쳐 다니지요. 런던에 올 때까지 모든 청어들은 열심히 헤엄치며 살려고 애를 쓰지요. 그래서 청어들은 싱싱하게 살아있는 것입니다.
그렇다. 누구에게나 고난은 있다. 고난이 없다면 그것은 죽은 삶이다. 하나님께서 욥에게 고난을 주신 의미는 욥에 그 고난의 의미와 이유를 알게 하는데 있지 않았고 오히려 고난 중에도 하나님이 여전히 인생의 주인이시며, 인간의 아무런 항의나 요구가 필요치 않다는 것을 알려주려고 하신 것이다. 우리는 현재의 고난으로 더욱 생명력 있는 삶을 살아야 한다. 더욱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하여야 한다. 그리고 여전히 하나님이 우리 삶의 주인이신 것을 믿고 고백해야 한다. 그렇게 하면 욥이 고난 후에 이전에 말로만 듣고 생각만 하던 하나님을 눈으로 본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을 더욱 가까이서 보고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는 것이다.
평안이라고 하는 것은 걱정과 어려움이 전혀 없는 상태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어려움 중에서도 하나님을 모시고 있는 상태를 말한다. 참된 평안은 환경에 의해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 하나님이 거하시는 여부에 달려있는 것이다. 조금 아프면 울 수 있지만 많이 아프면 울 수가 없다.
광야의 샘
카프만 부인의 [광야의 샘]이란 글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나는 누에고치들을 관찰하고 있었다. 마침 여러 마리의 누에고치가 나비로 탈바꿈을 하는 중이었다. 너무도 작은 구멍을 통해 나오려고 애쓰는 그 모습을 보면서 나는 불가능하리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한 마리, 두 마리, 그토록 작은 구멍을 통해 천신만고 애쓰더니 결국은 빠져 나와서 공중으로 훨훨 날아올랐다. 나는 마침 또 나오려고 애쓰는 고치를 발견하고 가위로 그 구멍을 넓게 잘라 주었다. 그러면서 내가 하나님보다 더욱 사랑과 자비가 많다고 자족하면서 혼자 웃었다. 내가 넓게 열어준 구멍으로 나비는 쉽게 나왔으나 문제가 생겼다. 공중으로 솟아오르려고 몇 번 시도하면서도 결국 오르지 못하고 땅바닥에서만 맴돌 뿐이었다. 앗 차!! 나는 깨달았다. 작은 구멍에서 고통하며 힘쓰면서 나와야 그 몸의 영양분을 날개 끝까지 공급하게 되고, 날개가 나올 심하게 마찰되면서 날아오를 만큼 강건해 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시편기자는 이렇게 고백하지 않았던가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 아멘

[적용]1).과거의 죄의 노예 생활이나 곤혹스러운 경험도 해방의 만찬인 유월절 식탁, 오늘의 성만찬의 식탁에서 회상해 보아야 합니다.
2).과거의 회상을 위한 쓴 나물보다는 오늘 나의 삶에 감당하기 어려운 쓴 나물은 없었는가를 보면서 나타날 영광된 그날과 비교를 해보시기를 바랍니다.
3).주님의 살과 피를 받는 성만찬 성례 전에서, 하나님의 은총을 그리면서 쓴 나물을 먹었던 이스라엘 백성을 생각하시길 바랍니다.

출애굽기 12장 강해
12:1
여호와께서...가라사대-하나님께서 직접 말씀하심을 강조하는 구약 특유의 관용
어로서 앞에서도 몇번 반복되었다(6:1 ; 7:1 ; 8:1 ; 9:1 ; 10:1 ; 11:1).
애굽 땅에서-여기서는 특히 애굽 땅이라는 장소가 강조되었다. 이것은 이스라엘
이 애굽에서 떠나기 바로 직전임을 강조하며, 또한 더 이상 그곳에 머무를 수 없음을
강력히 시사하는 말로 볼 수 있다.
12:2
해의 첫 달이 되게 하고-이 말은 출애굽 하는 달을 그해 정월(正月)로삼으라는
뜻이다. 하나님께서 기존의 시각 환산법을 초월하여 새로운 월력을 제정하신 이유는,
이제 이스라엘이 하나의 자연인으로부터 하나님의 은총으로 선택, 구원받은 선민이 되
었다는 뜻이다.따라서 이제부터 이스라엘은 그분의 통치권 아래 머물게 된다는 구원
사적 의미를 부각시키기 위해서였다. 즉 이스라엘 백성이하나님의 자녀로 새롭게
태어난 날을 기념하기 위해서였다. 이와 같이 영적인 일은 그 변화(중생 또는 해방)
에서 출발점을 찾는다(벧전 2:2). 왜냐하면 이것이 새로운 영적 성장과 그 여정의
발판이 되기 때문이다. 한편 여기에 나오는 '첫 달'은 아빕( , Abib)월이라
불리 우는데 바벨론 유수(幽囚) 이후에는 니산( , Nisan)월로 그 이름이 바
뀐다(느 2:1). 한편 이 달을 태양력으로 환산하면 대략 3, 4월에해당된다<성경 총
론, 성경의 도량형과 화폐 및 월력).
12:3
회중( , 콜 에다)-'이스라엘의 온 백성'(Living Bible, all the
people of Israel), '이스라엘의 공동체'(TEV, the whole community of Israel)를 뜻
한다. 그리고 이스라엘 회중은 이스라엘 장로들에 의하여 대표되었다(21절).
어린 양( , 세)-문자적으로는 염소나 양의 새끼를 가리킨다(5절). 이는
중요한 예표론적 의미를 지니고 있는데, 곧 여기서 어린양은 인류의 죄를 대속하기 위
하여 자신을 십자가에 내어 준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한다(사 53:1-12).
각 가족대로-유월절 식사는 가족 중심의 공동식사로 이루어졌다. 이것은 1년 된
한 마리의 양이나 염소를 소비시키는데 최소한 10명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더욱이 여
기서 가족 단위로 유월절 규례를 지키게 하신 것은 가족은 하나의 혈연 공동체 이상의
집단으로서, 여호와의 구원의 은총을 찬송하는 신앙 공동체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
였다. 한편 자세한 유월절 규례에 대해서는 <레위기 서론, 히브리 절기와 축제>를 참
조하라.
12:4
그 어린 양에 대하여 식구가 너무 적으면-즉 '한 자리에서 양고기를 다 먹을 수
없을 정도로 식구가 적으면'이란 뜻이다. 이럴경우 이웃 가족과 연합해서 한 마리를
잡아야 했다.
각 사람의 식량을 따라서-'한 사람이 먹을 분량을 생각하여'(공동번역)라는 의미
이다. 이는 가족 중에 노인과 어린아이 및 식욕이 왕성한 청년의 처지까지 일일이 감
안해서 양을 잡으라는 뜻이다. 한편 그처럼 해야 되는 이유에 대하여는 10절 주석을
참조하라.
12:5
유월절 희생 제물의 4대 요건이 제시되어 있다. 즉 그것은 (1)양이나 염소중에서
(2)흠 없고 (3) 일 년 된 수컷이라야 했다.
흠 없고-거룩하신 하나님께 바치기에 적절하고 완벽한 상태의것이라는 의미이
다. 즉 몸에 어떤 결함이나 질병 등 조그마한 흠도 없는 것을 뜻한다(레 22:20;말1:8).
한편 여기서 흠이 없다는 것은 죄에 대하여 절대 무흠, 순결하셔서스스로 인류 대속
의 제물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성을 상징한다(히 7:26; 벧전 1:19).
일 년 된-특별히 '1년'이 요구된 것은 양이나 염소에게 있어 그때가 가장 신체적
으로 왕성하기 때문이고, 또한 한 가족 단위(약 10명)에 적절한 고기량을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Lange). 따라서 너무 미숙하거나 늙은 것은 제물로서 부적합 했다.
수컷-또한 '수컷'이 요구된 것은 아마 이 수컷이 양성(兩性)을 대표한다는 기능
과 10번째 재앙의 대상이 장자이므로 수컷이 그 사실을 상징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일
것이다.
양이나 염소 중에서-양을 가진자는 양을 잡고, 양이 없는 자는 염소를취하라는
뜻이다. 제물로서 이 둘의 가치는 동등하였다(레 1:10). 그러나 실제로는 대부분
이 어린 양으로서 유월절 희생 제물로 삼았다.
12:6
십 사 일까지 간직하였다가-유월절 어린 양은 아빕 월 10일에 준비하여(3절) 그
달 14일이 되기 전까지 4일 동안 간직해야 했다. 그 이유는 (1)어린 양의 상태를 충
분히 검사할수 있는 시간적인 여유를 갖도록 하기 위해서였고 (2)또한 그 어린 양을
바라보면서 대신피 흘리는 '대속'(代贖)의 의미를 깊이 새기도록하기 위해서였다. 즉
희생 제물이 될 양과 염소를 통해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더욱 선명하게 인식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해질 때에( , 벤 하아르바임)-히브리 원문대로 해석하면 '저녁
들 사이'이다. 이것의 정확한 시간에 대해서는 크게 2가지 의견이 있다. (1) 어떤 학
자들은 해가 질 무렵부터 해가 진 사이, 곧 오후 3-5시로 생각하며(Josephus), (2) 또
어떤 학자들은 해가 진 후 부터 땅거미가 지기 시작해서 어두워질 때까지의 사이, 즉
오후 6-7시를 의미한다고도 본다(Aben Ezrs, Keil). 그러나 오늘날 유대인들은 첫째
견해를 따라 대략 오후 3-5시 사이에 유월절 양을 잡는다.
회중이 그 양을 잡고-제사장이 특별히 요구되지 않았다. 가족을 대표하는 자가
준비한 제물을 피흘려 잡으면 그만이었다. 이는 구약 시대에 나타난 만인 제사장 제
도의 한 예표적 집례로서, 후일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총 안에서 모든 자들이 제사장이
될 것을 시사하고 있다(벧전 2:5; 계 1:6).
12:7
그 피로...바르고-피는 생명을 상징하는 것으로 희생 제사의 요체가 된다(레 17
:11).따라서 이 의식은 이스라엘 집의 모든 생명이 대속의 은총으로 구원받았음과
또한 그 생명이 하나님께 바쳐졌음을 상징하는 성별 의식이었다. 한편 죽음의 천사로
부터 피해를 막는 확실한 증표인 유월절 어린양의 '피'는 곧 인류를 죄와 사망의 권
세에서 보호하시고 생명을 얻게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예표한다. 실로 '피
흘림이 없이는 용서함도 없다'(히 9:22)는 것이 속죄의 대원칙이다. 한편 어린양의
피를 문에 바르는 이 의식은 첫번째 유월절에만 실시되었으며, 두 번째 유월절부터는
양 잡는 일과 피 뿌리는 일이 성소와 성소의 제단에서 시행되었다.그리고 어린양의
피는 우슬초 다발에 적셔 문 인방과 좌우 설주에 뿌려야 했다.
설주-문설주의 준말로 문의 양쪽에 세워 문짝을 끼워달 수 있게 만든 기둥(post)
이다.
인방-좌우 문설주 곧 기둥과 기둥사이를 위아래서 가로지르는 나무(lintel)이다.
12:8
그 밤에-즉 첫번째 유월절이 시작되던 아빕월 14일 밤이다.
불에 구워-제물의 고기는 완전히 소화(燒火) 되거나 삶아지는 것이 통례였다(레
1:9 ; 삼상 2:14, 15). 그러나 출애굽의 급박한 상황 아래서 하나님은 유월절 희
생을 요리하고먹기 간편하도록 불에구우라고 명하셨다. 그런데 혹자(Keil,
Delitzsch)에 따르면, 불에 구운 것은 고기의 원형을 그대로 보호하는 것으로서, 곧
일치와 통합을 상징한다고 한다.그러나 그것보다는 후일 뼈가 꺾이지 않은 채 돌아
가실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 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 더욱 타당하다(요 19:36).
무교병-효소의 역할을 하는 누룩을 넣지 않고 만든 빵이다. 이것은 누룩으로 부
풀릴 시간조차도 없는 첫 유월절의 긴박한 상황을 나타낸다. 동시에 누룩은 죄와 옛
생활의 상징이기 때문에(고전 5:5-7), 무교병은 구속받은 거룩한 자가 먹을 신령한
음식을 상징한다.
쓴 나물-원문에는 구체적으로 어떤 종류의 식물인지는 밝히지 않고 단순히 '쓴
것'( , 메로림)이라고만 표기하였다. 그러나 분명 이것은 애굽의 쓰라린
생활을 상징한다. 따라서 이것을 먹을때마다 애굽의 쓰라린 옛 생활을 겸손히 돌아보
고 그곳으로부터 피흘려 구원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해야 했다(신 5:15 ; 15
:15).
아울러 먹되-쓴 나물의 쓴맛은 어린 양의 달콤한 고기와 중화된다는 점에서 의미
가 깊다. 이는 우리의 고난스런 삶을 대신 짊어지신 예수 그리스도의 아름다운 사역
에 대비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사 52:4-6 ; 마 11:28).
12:9
날로나 물에 삶아서나 먹지 말고-유월절 식사 의례시 반드시 지켜야 할 금기조항
이다. 이는 분명 신적 권위에 의해 규정된것인 만큼 이스라엘 백성들은 철저히 지켜
야했다. 하나님께서는 오직 당신의 방법에 따라 이스라엘의 구원을 실행하기를 원하
셨던 것이다. 한편 희생 제물을 날고기로 바치고 먹는 행위는 고대 이방 우상 종교의
흔한 관습이었고, 또한 '삶아서' 먹는 행위 역시 애굽의 일반적인 풍속이었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것과 구별시킨 듯하다.
머리와 정강이와 내장을 다 불에 구워-희생 제물의 몸통 부분만이 아니라, 율법
조항에서는 대부분 소각시키도록 되어 있는 머리, 내장, 정강이 등을 포함한 신체 모
든 부위를 구워 먹도록 했다. 물론 이때 각 부위는 일단 드러내어져 오물이 깨끗히
제거된 뒤 원상 복귀된 채 구워졌을 것이다(유대 주석가들). 이처럼 각 부위를 보존
케 한 것은 8절에도 언급했듯이, 뼈를 손상 당하지 않고 죽어가실 예수 그리스도를 예
표하는 기능을 하기 때문일 것이다(요 19:36). 아울러 온전히 보존된 어린 양의 고
기를 함께 나누어 먹는다는 것은 '일체 의식'에도 상당히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Keil,
Bahr). 이러한 사상은 후일 사도 바울에 의해 더욱 명확해진다(고전 10:17).
12:10
아침까지 남겨두지 말며-일가족이 먹을 분량을 이미 계산한 터인지라(4절), 이런
염려는 없었겠으나 만에 하나 남겨질 경우를 대비한 규례이다. 여기서 '아침까지 남
은 것'이란 다 먹지 못한 고기 부위 및 살을 제하고 남은 뼈 등의 부스러기를 가리킨
다.
곧 소화하라-'불에 완전히 살라버리라'는 뜻이다. 만일 먹다 남은 것을 그냥 버
릴 경우, 그리스도의 몸을 예표했던 그 성물이 더럽혀지거나 소홀히 취급당할 우려가
있었기 때문이다. 한편 이 규례는 그후 모든 제사 음식에 다 적용되었다.
12:11
허리에 띠를 띠고...급히 먹으라-마치 출정하는 군인들의 그것처럼 긴장이 감도
는 지시이다. 사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언제 출애굽하라는 명령이 떨어질지 모르
는 상황이기 때문에, 만반의 여행 준비를 갖추고 모든 행동을 재빨리 시행해야 했다.
실로 이 지시는 430년간 기다렸던 출애굽이 이제목전에 다가왔음을 시사한다. 그리
고 여기서 '급히'에 해당하는 히브리어'히파존'( )은 '도망하다'는 뜻의 '히
파드'에서 온 말로서 도망치듯 서두르는 것을 뜻한다. 한편 하나님께서 이렇게 급히
먹도록 하신 이유는 그들이 당시 그토록 급하게 구출된 것이 오직 주의 은총 때문이었
음을 후손들에게 두고 두고 알리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이것이 여호와의 유월절이니라-지금까지 지시한 모든 내용은 이스라엘의 구속자
여호와께서 당신의 백성을 위해 특별히 제정하신 유월절이었다. 따라서 너희는 경건
한 마음으로 이 식사에 임하라는 뜻이다.한편 여기서 '유월절'( , 페사흐)
이란 문자적으로 '넘어간다'(Passover)는 뜻으로서, 즉 여호와께서 애굽을 심판하시던
날 밤, 죽음의 천사가 피 묻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집은 그냥 지나쳐 넘어간사건에서
유래된 말이다.이 사건 이후 이스라엘 민족이 출애굽하면서 부터 준행해야 할 이 유
월절은 이스라엘인과 애굽인(이방인) 사이를 구별하여 축복과 저주, 생명과 죽음의 대
조적인 일을 행하신 여호와의 구원 행위를 기념하는 절기인 동시에, 애굽의종살이에
서 이스라엘이 해방된 것을 기념하는 절기이다 <레위기 서론, 히브리 절기와 축제>.
또한 이는 오순절, 장막절과 함께 이스라엘 3대 절기 중 하나이다.
12:12
 昰煊 관한 규례
애굽의 모든 신에게 벌을 내리리라-사람과 짐승을 막론하고 애굽의 모든 장자와
초태생의 죽음은 곧 애굽의 각종 신(神)에 대한 징벌이기도 했다. 왜냐하면 장자의
죽음에는 바로의 장자도 포함될 것이 분명한데, 그 당시 애굽에서는 바로와 그의 아들
까지 신격화된 상태였으므로 바로 장자의 죽음은 애굽신에 대한 징계로 간주될 수 있
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한 애굽의 여러 우상 신들은 당시 고양이, 염소, 암소 등 각
종 짐승의 형태로 형상화되어 숭배 받았기 때문이다<32:1-6 강해, 애굽의 우상 종
교>. 결국 자신들의 생명조차 지키지 못하고 여호와의 심판으로 죽임을 당한 애굽의
모든 신들은 무엇보다 이 열번째 재앙에서 그 무기력과 헛됨을 여실히 드러내고야 말
았다.
나는 여호와로라-장자 심판을 통해 애굽의 모든 신들에게 벌을 내리는 주역이
바로 오직 홀로 유일한 참 신이신 하나님 여호와란 사실을 강조하는 말이다. 동시에
여호와란 이름으로 시행되는 그 심판의 불변성과 긴급성을 강조한 말이다<3:15>.
12:13
내가 피를 볼 때에 너희를 넘어가리니-피는 생명이다(창9:4). 따라서 피흘림은
생명의 허비 즉 죽음을 의미하므로 죽음의 천사가 다시 죽음의 피가 발려 있는 집을
칠 필요는 없었다. 따라서 이 유월절 어린 양의 피는 죽음을 통하여 생명을 탄생시키
는 구속의 피이다. 즉 일찍이 에덴 동산에서 가죽을 만들기위해 잡은 짐승의 피로 예
표되었듯이(창3:21), 장차 십자가 위에서 죄인들의 죄를 속하기 위해서 흘리실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피를 상징한다. 따라서 본절은 그리스도의 보혈을 통해서만 죽음
으로부터 생명을 건질 수 있음을 뚜렷이 계시하고 있는 복음의 말씀이다(요 6:54 ;
엡 1:7 ; 벧전 1:19).
12:14
이 날-아빕월(정월) 14일을 가리킨다.
영원한 규례로 대대에 지킬지니라-유월절을 영영할 기념일로 지킬 것을 명한 데
에는 다음과 같은 뜻이 있다. 당신의 백성을 악한 세력에서 구원하시는하나님의
사역이 영원히 계속될 것과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선민(選民)된 것이 오직 당신의
은혜였다는 사실을 영원토록 기억하여 감사케 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따라서 영적으
로 이 출애굽의 유월절 역사는 예수의 재림 때까지 각 개인과 나라의 역사속에 계속
재생될 것이다.한편 여기서 특별히 '영원한', '대대에'라는 말은 무엇을 의미하는
가 그것은 우리가 지금도 계속 유월절을 지켜야 한다는 뜻인가 유대인들은 이 절
기를 지키는 일에 있어서 현재도 매우 충성스럽다고 한다.그러나 유월절의 참된 의
미는 진정한 어린 양인 그리스도의 거룩한 십자가 희생을 기념하는 기독교의 성찬 예
식속에서 계속 살아 있게 되는 것이다(고전 11:26). 그러므로 유월절 어린양이 예
표한 바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들은 문자적으로 유월절을 지킬 필요가 없이, 다만 그리
스도의 보혈을 믿음으로 구속의 은혜를 받은 사실을 기념하는 성찬에 참여함으로써 사
실상 그리스도 안에서 '대대로 영원히' 유월절을 체험하고 있는 셈이 되는 것이다.
12:15
칠 일 동안-아빕월 14일 저녁부터 21일 저녁까지의 기간을 말한다(18절). 히브
리인들은 하루를 해 질 때부터 시작해서 다음날 해 질 때까지로 간주한다.
그 첫날-16절의 첫날은 아빕월 제 15일 낮을 의미하지만 여기서의 첫날이란 말은
14일 저녁 시간을 가리키는 말이다. 왜냐하면
첫날부터 칠 일까지-14일 저녁부터 21일 저녁까지의 기간(18절)을 말하기 때문이
다. 따라서 여기서 첫날이란 말은 14일저녁 이후의 시간을 포함한다.
이스라엘에서 끊쳐지리라-이스라엘 회중으로부터 제거당한다는 말인데(19절), 이
것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자격을 상실한다는 말이다. 무교병(無敎餠)은 누룩이 없
는 순수한 떡으로 죄와 옛생활로부터 깨끗해진 새 생명을 상징한다. 그런데 만일 어
떤 자가 그러한 무교병 먹기를 거절한다면, 그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허여해 준
그 새 생명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하는 자이다. 그러한 자가 하나님의 백성된 자격을
가질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한편 여기서 '끊쳐진다'는 말은 이스라엘 공동체 내에
서의 추방 곧 출교(黜敎)를 뜻하는 말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각종 권리를 누리지
못한다는 의미이다<민 9:13>.
12:16
첫 날-아빕월 15일 낮을 가리킨다(레 23:6 ; 민 28:17). 15절에서와 16절에
서 첫날이라는 말이 혼용된 것은 유대인들이 하루의 시작을 저녁부터 생각한데서(창 1
:5) 연유한것 같다.
성회( , 미크라 코데쉬)-이것은 여호와를 예비하기 위해 모
이는 종교적 모임이다(겔 46:3, 9).
제 칠 일-무교절의 마지막 날 즉 아빕월 21일을 가리킨다.
아무일도 하지 말고-이는 6일간의 창조 사역을 마치시고 제 7일째 휴식하신 하나
님의 안식에 동참하는 신앙적 의미가 담겨 있는 말이다<창2:2, 3>. 따라서 아무 일
도 하지 말라는 말은 도무지 수족을 놀리지도 말고 음식 장만하는 일도 하지 말라는
뜻은 아니다. 여기서 금하는 노동은 직업상의 일이나 경제적인 활동을 가리킨다(레
23:7). 따라서 여기서 휴식은 소극적 의미를 갖는 것이 아니라, 일을 쉬면서 여호
와께 경배와 감사를 드리는 적극적 의미를 갖는다.
12:17
무교절-아빕월 15일부터 21일 까지를 말한다(레 23:6). 유월절이 하나님의 심
판과 구속의 밤을 상기시키고 기념하는 절기라면, 무교절은 출애굽한 사실 자체를 기
념하는 절기이다<레위기 서론, 히브리 절기와 축제>.
이 날-무교절 첫날을 가리키는데, 이 날은 아빕월 15일이다.
너희 군대-애굽에서 비겁하게 도망쳐 나온 것이 아니라, 애굽의 모든 신들을 철
저히 정복하고 당당히 나오는 이스라엘 민족의 출애굽 모습에서 군대라는 표현이 나온
것이다. 이제 이스라엘 민족은 힘없는 노예 집단이 아니라 가나안을 정복하러 가는
막강한 군대, 곧 하나님을 대장으로 모신 여호와의 군대가 되었다<민 1:3>.
12:18
정월-아빕(니산)월 즉 종교력으로 1월을 가리킨다.
십 사 일 저녁부터 이십 일 일 저녁까지-유월절을 포함하는 광의의 무교절 기간
을 가리킨다.
12:19
칠 일 동안-성경에서 '7'이란 숫자는 종종 '완전수' 내지는 '하나님의 수'를 상
징한다. 따라서 '7일 동안'의 무교병 취식 규례는 죄악으로부터의 완전한 분리, 곧
절대 성결을 강조하는 규례라 할 수 있다.
누룩을...있지 않게 하라-여기서 누룩을 제하는 것은 옛 생활을 버리고 새 생활
을 시작하는 것을 의미한다. 유월절 어린 양의 피로 새 피조물이 된(고후 5:17) 이
스라엘에게는 새 존재에 합당한 생활이 요구되었다. 따라서 이스라엘은 집안 구석
구석에 스며 있는 죄악의 흔적을 말끔히 씻어 내고 새로 태어나는 역사를 이뤄가야 했
다. 사실 하나님의 백성에게 있어서 가장 요구되는 것은 성결이다.
유교물-'누룩이 든 음식'(공동번역). '발효된 것'(What is leavened)을 말한다.
이 모든 것은 과거의 죄악된 삶, 즉 부패한 육신의 삶을 상징한다.
타국인-이스라엘인과 함께 살던 잡족(雜族)을 말한다. 잡족에 대한 자세한 설명
은 38절을 참조하라.
본국에서 난 자-여기서 '본국'은 약속의 땅 가나안을 일컫는다. 따라서 위의 말
은 '가나안 땅에서 난 자'로 이해할 수 있으나 좀 더 광의적인 의미에서 출생 때 부터
이스라엘 백성이 된 자를 가리킨다. 한편 본절은 단순히 15절 내용의 반복이 아니다.
15절에는 타국인에 대한 언급이 없었는데 여기서는 그 대상이 타국인에게도확대되었
다. 이는 여호와의 종교가 폐쇄적이라는 사실을 부인하는 내용으로, 이방인도 하나님
이 베푸시는 구원의 축제에 참여할 수 있음을 강력히 시사한다.
12:20
모든 유하는 곳-15절에 이어 여기서는 지리적 범위가 보다 확대된다. 따라서 이
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에서 뿐만 아니라, 향후 그들이 거하는 곳이 어디든지 간에 같
은 규례로 무교절을 지켜야 했다.
무교병 <12:8>.
12:22
우슬초-박하과에 속하는 키가 작고 보잘것 없는 식물로(왕상 4:33)팔레스틴
등지에서 흔히 발견된다. 이것은 잎사귀에 털이 많아 액체가 쉽게 들러붙고, 또한 줄
기에 힘이있어 짧은 막대기로 사용할 수도 있었다(요 19:29). 이것은 문둥병자를
정결케하는 의식에 사용되었으며(레 14:2-7), 붉은 암송아지를 희생 제물로 드릴 때
도 사용되는(민 19:2-6) 등 구속과 정결의 도구로 성경에서 자주 언급되었다.
문 인방과 좌우 설주<12:7>.
아침까지-아침까지 한 사람도 집 밖으로 나갈 수 없었다는 점을 생각할 때 우리
는 이스라엘 민족이 아빕월 15일 아침에 출애굽의 첫 발을 내디뎠다고 생각할 수 있
다.
문 밖에 나가지 말라-어린 양의 피로 적셔진 문 하나 사이로 죽음과 생명이 교차
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비록 문설주에 피를 발랐다 하더라도 죽음의 천사가 방문한
그 밤에 집 밖으로 나간다면 그는 죽음을 면치 못할것이었다. 이처럼 우리의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과 그 보혈의 능력을 믿는 믿음(순종)으로 이뤄진다(계 7:3,
4).
12:23
피를 보시면...넘으시고-<12:13>.
멸하는 자-'벌하는 사자'(시 78:49)로도 표현되었다. 즉 '장자를 멸하는'(히
11:28) 죽음의 천사였다. 여기서 우리는 본절 앞 부분의 '여호와께서...두루 다니
실 때에'라는 말과 연관해 보면 하나님께서 애굽 전역을 두루 다니시며, 죽음의 천사
를 친히 지휘하셨음을 알 수 있다. 이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임재는 죄인에겐 파괴
와 멸망을 가져오며, (구속의 피로 정결케 된) 의인에게는 보호와 생명을 가져오는 2
중적 역할을 함을 발견할 수 있다.
12:24-28
지금까지는 유월절 준수 방법에 대해 상술하였으나, 여기서는 유월절이 거룩한 예
식으로 오고오는 세대에 영영히 지켜져야 할 것과 그 예식에 관한 자녀 교육의 필요성
을 강조하고 있다. 사실 유월절은 어린 양의 구속의 피로 새 생명을 얻은 구속의 날로
서 모든 믿는 자들의 영적 생일이며, 자유와 해방의 축제일이다. 더욱이 이 사건은 후
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으로 승화된 복된 날이기에 성도의 가슴 가슴에 영영
히 기억되어야 마땅한 소망의 축일이다(16:32-36).
12:25
너희에게 주시는 땅-곧 가나안 땅(3:8, 17)을 가리킨다. 따라서 본장에 언급
된 유월절 규례는 출애굽 당시에만 국한된 것이아니라, 가나안 정복 이후에도 계속 지
켜져야 할 규례임을 알 수 있다.
예식-유월절을 지키는 의식(ritual, 27절)이란 뜻이다. 물론예식은그자체가
구원의 방법인 것은 아니지만, 구원받은 백성들이 참여하는 구속 사건의 상징적 증거
였다. 따라서 예식의 형식화도 배격하여야 할 일이지만 의미 깊은 예식을 범하는 것
도 큰 죄악인 것이다.
12:26
이 후에...묻기를-지나온 역사를 정확히 조명하는 일이야말로 바로 현재와 밝은
미래를 가져올 수 있는 한 방법이다. 특별히 하나님의 크신 은총과 사랑으로 선민이
된 이스라엘 백성들은 과거 조상들의 삶 가운데 베풀어 주신 하나님의 구속 역사를 묻
고 또 물어 그 구속 사건을 현재화 함으로써, 자신들의 삶을 신앙으로 정립하여야 할
것이었다.
12:27
구원하셨느니라 ( , 히칠)-'움켜 빼앗다', '해방하다'는 뜻의 '나찰'
()에서 유래한 말로서, 대적의 손아귀에서 강탈하듯이 구출하는 장면을 상기시
켜 준다. 이는 출애굽 당시의 상황이 얼마나 긴박하였던가와 또한 하나님의 구원 행
동이 얼마나 신속했던가를 암시해준다.
백성이...경배하니라-여기서 직집 머리 숙인 자들은 모세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모였던 이스라엘의 장로들이었다(21절). 그러나 장로들은 전 이스라엘 백성들을 대표
하는 자들이었으므로, 모는 백성이 머리 숙인 것이나 다름없다.
12:28
그대로 행하되-참 믿음은 말씀에 대한 순종을 동반한다. 이스라엘이 죽음의 천
사로부터 피해를 받지 않은 것은 바로 이같은 믿음에 따른 순종의 결과였다. 비록 고
귀한 진리라 하더라도 그것을 자기의 삶과 결부시키지 않고는 무의미한 가르침에 불과
하다.
12:29
바로의 장자로부터-애굽에 10대 재앙이 내려지던 당시의 바로 왕은 아멘호텝 2세
(B.C. 1448-1424)였다. 그런데 성경 기록에 의하면, 마지막 열번째 장자 재앙시 그의
왕위를 이을 장자도 죽음을 면치 못했다.따라서 그의 뒤를 이은 애굽 왕은 그의 장
자가 아니라는 결론이 된다. 이러한 사실은 성경 외적 자료에 의해서도 확인된다.
즉 애굽 기제(Gizeh)에 있는 대형 스핑크스의 발 사이에 기록된 '꿈' 비문이 이를 입
증한다. 곧 그 비문에는, 이 스핑크스가 꿈에 한 젊은이(아멘호텝 2세의 뒤를 이어
애굽왕이 된 투트모세 4세))에게 '특별히' 애굽의 왕위를 약속하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이것은 곧 이 젊은이가 애굽의 정상적인 왕위 계승자가 아님을 반증하는 것이
다. 왜냐하면 그가 만일 애굽 왕의 장자라면, 그는 당연히 합법적이고도 자동적으로
애굽의 왕위 계승권자가 됨으로 이와 같은 치장된꿈 내용은 무의미하기때문이다
(Leon Wood, A Survey of Israel's History ; W.C. Hayes, The scepter of Egypt,

2.
p.147).
옥에 갇힌 사람-가장 미천한 자를 상징하는 의미로 사용된 말인데, 11:5에서는
'맷돌 뒤에 있는 여종'으로 표현되어 있다. 당시 이들은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으며
힘겨운 강제 노동을 하였다(삿 16:21).
다 치시매-혹자는 이 열번째 재앙을 급성 전염병에 의한 자연적인 동시 다발적
죽음으로 해석한다(Knobel, Hartmann). 그러나 분명 이 열번째 재앙은 하나님의 초자
연적인 심판 사건이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11:4-8). (1)재앙이 분명히 미리
예고되었다 (2)사람과 짐승을 막론하고 정확히 처음 난 것에만 국한되었다 (3) 지리적
으로 엄격히 애굽인들에게만 적용되었다.
12:30
일어나고-죽음의 재앙이 잠을 자고 있는 동안에 발생하여 애굽인들이 놀라 급히
일어난 것을 묘사하는 동사이다.
큰 호곡이 있었으니-11:6에서 이미 예고된 말의 성취이다. 애굽인들에게 있어
가계의 대들보이자 소망인 장자를 잃은 것은 무엇보다 큰 슬픔이었다. 그러나 이 통
곡의 밤에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개조차 그 입을 봉하고' 고요히 잠든 평안의 밤을 지
낼 수 있었다.
하나도 없었음이었더라-아들이 없는 집도 있었을 것을 감안할 때 이 표현은 수사
학적인 표현이다. 그러나 이는 그 대상 지역이 전국적이라는 것을강조하는 것으로
볼 수있다.
12:31
바로가 모세와 아론을 불러서-바로와 모세의 마지막 대면에서 바로는 '다시 내
얼굴을 보지 말라'(10:28)고 모세에게 말했으며, 모세도 '내가 다시는 왕의 얼굴을
보지 아니하리이다'(10:29)라고 말했다. 따라서 여기서 바로가 모세를 불렀다는 것
은 바로가 모세를 만났다는 것으로 해석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아마 호출을 받은 모
세는 바로가 보낸 그의 신하(11:8)들을 만나서 바로의 말을 전해들은 것으르 생각된
다(Pulpit Commentary).
너희의 말대로-지금까지 모세와 아론은 몇번씩이나 이스라엘 백성을 해방시켜 줄
것을 요구했었다. 그런데 번번이 거절되었던 이 요구가 마침내 열번째 재앙이 임하고
나서야 비로소 성취되게 된 것이다. 이처럼 하나님의 계획은 비록 간교한 인간의 방
해를 받을지 모르나, 끝내 당신이 정하신 때에 성취되고야 만다(엡 1:9).
12:32
너희의 양도 소도 몰아가고-이로써 양과 소를 남겨두라던 바로의 주장(10:24)
은 무너지고 대신 모는 백성이 모든 재산을 갖고 나가겠다던 모세의 본래 요구가 관철
되었다. 더욱이 애굽인들에 의해 신으로 숭배되어 온 바로 조차도 모세에게 '자신을
축복해 달라'고 간청하고 있다. 실로 장자 재앙은 어떤 면에서 전 애굽의 멸망을 상
징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이제 그들은 도무지 하나님의 능력을 부인할 의지가 없었고
동시에 애굽 신의 무능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를 위하여 축복하라-여호와의 능력과 모세의 권위 앞에 완전히 압도당한 연약
한 인간 바로의 절실한 요청으로서, 곧 다시는 이러한 재앙들이 애굽 땅에 임하지 않
도록 제발 여호와께 축복 좀 빌어달라는 뜻이다. 이는 모세로 하여금 바로에게 신
(神)이 되게 하겠다던 여호와의 말씀의 성취이기도 했다(7:1).
12:34
발교되지 못한-'발효되지 않은'이란 뜻으로 이러한 반죽을 구운 떡이 곧 무교병
이다<12:8>. 이는 '고난의 떡'으로 흔히 묘사되는데(신 16:3), 이스라엘이 애굽
에서 당한 고난을 회상시켜 주는 역할을 했다.
옷-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시믈라'( )는 '감싸다'는 뜻의 '사말'에서
유래한 말로 내복 위에 걸쳐 입는 외투용 '넓은 천'을 말한다. 이는 여러 조각으로
된 커다란 옷감으로 물건들을 싸는 데도 쉽게 이용될 수 있었다.
12:35,36
3:22의 예언이 성취되었다.이것은 마치 전쟁에서 승리한 자들이 전리품을 얻는
것과 흡사하다.이스라엘은 400년 동안 노예 생활을 했으나, 하나님은 이제 지난날
그들의 수치를 완전한 승리로 바꿔 주셨다.
구하매-'빌다'(KJV, borrow)란 뜻이 아니고, '요구하다'(RSV, ask)란 뜻이다
(Kurtz, Hengstenberg).은혜 <11:3>.
12:37

<출애굽의 경로>

라암셋-이스라엘의 고역으로 건축된 도시로 생각되는데(1:11), 나일강 동쪽 삼
각주에 위치하였다. 한편 오늘날 대부분의 학자들은 이곳을 타니스(Tanis)지역으로
추정한다(G.E. Wright, J. Finegan). 숙곳( )-문자적으로 목자들의 숙영지인 '오두
막집'을 뜻하는데 이곳은 에담으로 가는 길목에 위치했다(13:20 ; 민 33:5, 6).
한편 야곱이 에서와 재회 후축사를 지었던 곳도 '숙곳'( )이라 했는데,
이 경우는 히브리어 철자도 틀린다른 지역이다(창 33:17 ; 수 13:27).
유아( , 타프)-이 말은 보행하지 않고 짐승과 마차를 타고 여행한여자들과
아이들을 의미한다(Keil). 따라서 이 '타프'는 '딸린 식구'(공동번역), '여자들과 아
이들'(TEV, women and children)로 번역되기도 하였다.
육십 만 가량-모세가 출애굽 후 시내 산에서 백성을 계수하였을 때 레위 지파를
제외한 20세 이상의 장정이 603,550명이었다(민 1:46, 47). 따라서 이 숫자를 이스
라엘 전체 인구의 1/4로 보고 여자들과 아이들의 수까지 더한다면 백성의 총수는 약
200만명 가량으로 추산된다.
가나안을 떠나 애굽으로 70명의 숫자로 이주한 야곱 후손이 430년어간에 이렇게
엄청난 국가적 규모의 숫자로 불어난 것이다. 실제로 이러한 번식이 가능한지에 대하여
많은 학자들이 의심을 품어 왔으나,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사실을 감안할 때 충분히
가능한 사실이다.
즉 (1)아브라함에게 훈련된 종들만 318
명이나 있었듯이(창 14:14) 야곱의 12아들들에게도 각기 딸린 종들이 있어 함께 애
굽으로 이주했을 가능성. (2)비옥한 지역에서 하나님의 특별한 출산의 축복을 받았다
는 점(1:7). (3)출애굽시 많은 잡족(雜族)들이 같이 따라 나왔다는 점 등이다. 여
기에 인공적인 인구피임 정책이 없을 경우 매 25년마다 인구가 배가(倍加)한다는 경제
학자 맬더스(Malthus)의 이론을 적용시키면 200만 명 이상의 출애굽 인구는 충분히 가
능한 일이다. 이처럼 한 가족(70명)에 불과했던 이스라엘이 430년만에 한민족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약속의 땅 가나안에서 당신의 나라를 건설코자 하셨던 하나님
의 의지가 얼마나 확고했는지를 잘 보여준다.
12:38
중다한 잡족-이스라엘 민족과 섞여살던 여러 이방 족속들을 말하는데, 그들은 결
혼이나 직업 등의 이유로 해서 이스라엘 집안의 일원이 된 자들이거나 혹은 하나님께
서 이스라엘 민족을 위하여 베푸셨던 여러 이적과 기사들을 보고 이스라엘의 출애굽에
가담했던 자들이다. 아마 이들은 나일 강 삼각주 지대에 거주하던 다른 셈족들과 일
부 애굽인들로 생각된다. 이들은 후에 광야 여행시 고기를 먹게 해달라고 불평함으로
써, 이스라엘 민족들로 하여금 시험에 들게 한 적도 있다(민 11:4). 그러나 한편
이렇게 스스로 원하여 출애굽에 동행한 이방인들은 사회적으로 이스라엘 공동체의 일
원이 된 것은 물론 48절에서 보듯이 할례 예식을 통하여 종교적으로도 이스라엘 공동
체에 포함될 수 있었다.이를 통해 우리는 이스라엘은 폐쇄 집단이 아니라 개방적 공
동체임을 알 수 있다. 아울러 우리는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이방화(세속화)는 철저히
경계하는 대신 이방인의 이스라엘에로의 개종에는 항상 관용적이었음을 알 수 있다.
12:39
쫓겨남으로 <6:1 ; 11:1>.
12:40
사백 삼십 년-야곱이 그 가족과 함께 가나안에서 애굽으로 이주한 연대(V.C.
1876)에서부터 애굽에서 가나안으로 출애굽한 연대(B.C. 1446)까지 총 애굽 거주 기간
을 가리킨다. 그런데 이 기간은 창 15:13에 제시된 400년이란 숫자와 30년의 시차
가 있다(행 7:6). 이에 대해 랑게(Lange)는 이스라엘 민족의 애굽 정주 기간은 430
년이나 실제 압박을 받은 기간은 400년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는 확실한 근거가
없는 주장이다.그리고 혹자는 이 기간이 아브라함 언약으로부터 시내 산에서 모세가
율법을 받은 때까지를 말한다고 했다. 그러나 이 주장 역시 정확한 역사적 증거가 없
다. 따라서 결론적으로 말하면, 이스라엘 민족의 애굽 체류기간은 정확히 430년이고,
창 15:13에 언급된 400년이란 숫자는 1대(代)를 100년으로 계산하여 '4대'(代)에 맞
춘(창 15:16) 예언적 숫자라고 볼 수 있다<창 15:13>.
12:41
사백 삼십 년이 마치는 그 날-이 말이 곧 애굽에 체류한 지 정확히 430년 후 애
굽에서 나왔다는 뜻인지는 단언할 수 없다. 물론 Living Bible에서는 '제 430년의 마
지막 날'(on the last day of the 430th year)로 번역하여 하루의 오차도 없는 430년
만기일로 표현하였다. 따라서 크노벨(Knobel)은 야곱이 아빕월 14일에 애굽에 들어갔
다고 보았다. 그러나 반면 혹자(Keil, Delitzsch)는 '그 날'을 14, 51절 및 13:4과
연결시켜 '아빕월 15일'로 해석함으로써 그 정확한 숫자 언급을 회피하고 있다. 여호
와의군대 <6:26 ; 7:4 ; 12:17>.
12:42
여호와의 밤-애굽인에게는 하나님의 심판이, 이스라엘인에게는 하나님의 보호가
있던 그 밤 곧 유월절 밤을 의미한다. 유월절은 이스라엘 모든 절기 중 밤에 지키는
유일한 절기이다. 이 밤은 아빕월 14일 저녁이다. 실로 이 밤은 오랜 고통과 속박에
서 이스라엘 백성이 구속받은 기쁨의 밤이요, 해방의 밤이다. 동시에 이 밤은 구속사
적으로 예수의 성만찬의 밤(고전 11:23-26)을 예표하는 여호와의 특별하신 밤이다.
이스라엘 자손이 다 대대로 지킬 것이니라 <12:14>.
12:43
유월절 규례 <레위기 서론, 히브리 절기와 축제>.
이방 사람은 먹지 못할 것-유월절이란 하나님의 은총을 통해 어린 양의 피로 구
속함 받은 백성들이 그 구속의 기쁨을 기념하는 절기이다. 따라서 이방인 곧 할례받
지 못한자들<48절>이 유월절 식사에 참여할 수 없는것은 당연하다. 왜냐하면 그들에
게는 어린 양이 상징하는 구속의 은혜가 그 효력을 끼칠 수 없기 때문이다.
12:44
돈으로 산 종-이는 후일 이스라엘 사회 내에서도 노예 계층이 존재할 것이고, 또
한 그들이 재산적인 가치로 매매될 수 있음을 밝힌 말이다(21:20-27).
할례를 받은 후-할례는 하나님의 언약을 받아들이는외적 증표이다<창 17:
10-14>. 따라서 이것이 구약 시대에는 종교적으로 하나님의 백성과 이방인 사이를 구
분하는 결정적 역할을 하였다.
12:45
거류인과 타국 품군-여기서 거류인은 영구 거주의 의사가 없이 잠시 머물다 가
는자, 그리고 타국 품군은 품삯을 위해 이스라엘에 거주하는 비이스라엘인을 가리킨
다. 이들은 이스라엘을 언제 떠날지 모르는 이동 집단의 사람들로서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언약과 별관계가 없는 자들이기 때문에 유월절 예식에 참여할 수 없었다.
그러나 이들 중에서도 유월절 예식의 의미를 깨닫고 함께 참여하고자 하여 할례를 받
을 경우에는 얼마든지 참여할 수 있었다.
12:46
한 집에서 먹되-모든 음식은 그것이 준비된 그 집안에서 먹어야 했다(3-10절).
이말은 곧이어 나오는 '조금도 집 밖으로 내지말고'라는 말과 같은 뜻이다.
뼈도 꺾지 말지며-희생 제물이 된 유월절 어린 양은 장차 십자가 수난을 겪으실
그리스도의 몸을 예표한다<8절>.따라서 이것은 그리스도의 몸의 뼈가 하나도 꺾이우
지 아니할 것을 암시한다(시 34:20 ; 요 19:36). 동시에 이것은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가 온전히 하나로 연합될 것임을 상징한다(Kalisch, Rawlinson).
12:48
본토인과 같이 될 것-이는 나면서부터 이스라엘인인 것처럼 취급받을것이라는
의미이다. 즉 사회적으로나 종교적으로 완전히 이스라엘 공동체 내에 포함될 것이라
는 의미이다. 이것은 혈통과 신분을 떠나 할례가 이스라엘 공동체의 안과 밖을 갈라
놓는 유일한 기준임을 알려 준다. 따라서 이것은 유대인과 이방인을 초월하여 오직
믿음만이 구원의 유일한 길임을 제시하는 이신득의(以信得義) 교리의 구약적 형태이
다. 또한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모든 사람은 혈통, 계급, 지역을 초월하여 모
두 평등한 자유민임을 암시한다.
12:49,50
이 부분은 하나님께서 명하신 유월절 규례가 이스라엘 백성들 뿐 아니라, 할례를
받은 이방인들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어 그대로 실시되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즉
하나님의 구속의 규례를 백성들이 믿음으로 순종함으로써 위대한 출애굽의 역사가 일
어난 것이다. 실로 인간의 순종은 하나님의 뜻을 이 땅 위에 이루는 첩경이다.
12:51
그같은 날에...인도하여 내셨더라-본장의 마무리 글이자 다음 장(13장)의 서론으
로서 여호와의 유월절 규례가 그대로 준수된 그날에 구원과 해방이 주어졌다고 요약하
고 있다. 이처럼 출애굽의 역사는 그 계획부터 성취까지 하나님의 단독 주권에 의해
이뤄졌는데, 그럼에도 우리가 한가지 놓치지 말아야 할 사실은 하나님의 명령에 대한
인간의 믿음과 자발적인 순종이 꼭 필요했다는 점이다. 이처럼 믿음과 순종은 하나님
의 뜻을 기뻐하는 성도가 취할 유일한 태도이다. 그 군대대로 <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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