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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아름다운 소문이 나는 교회 (살전 01: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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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가지고 있는 고민 중 하나는 아마도 ‘어떻게 살아야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며 살 것인가’ 하는 문제일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고민은 ‘말씀대로 살지 못하는 자신의 문제를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일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말씀대로 살고 싶으며, 많은 사람들에게 그런 삶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의 소식을 증거하는 사람이 되고 싶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지금부터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에 대해 본문에 나타난 데살로니가교회의 삶을 통하여 찾아 보도록 하겠습니다.

1. 주를 본받는 자가 되었다(살전1:6)
우리는 모두 신앙은 주님을 닮아가는 모습을 통해 나타난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삶이 되기를 서로간에 격려합니다. 그러나 항상 실패된 우리의 삶은 주님을 닮아간다는 기쁨보다 자신에 대한 분노와 실망으로 아픔을 갖습니다.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주님을 닮아가는 아름다운 신앙인들이었다고 사도 바울은 분명하게 말합니다. 그리고 그 이유를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는 많은 환난 가운데서 성령의 기쁨으로 도를 받아 우리와 주를 본받는 자가 되었으니” 다시말해 그들에게 많은 환난이 있었다고 말합니다. 이 증언은 신앙을 평가하는데 대단히 중요한 가치가 있습니다. 신앙은 많은 환난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사실을 암시해 주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신앙을 누리는 현실은 항상 두 부류의 상황으로 경험되어 집니다. 하나는 커다란 고통이 없이 일상적인 생활의 현실 속에서 신앙의 의미를 누리는 것이며, 또 하나는 어떤 이유에서 자신의 현실적 조건이 아주 어려워진 상황으로 다가왔을 때 신앙으로 그 위기를 누리는 생활입니다. 그리고 신앙의 가치가 분명하게 드러나는 순간은 우리의 위기적 현실속일 것입니다. 우리가 주를 본 받는 자가 되기 위해서는 특별한 위기 속에서 그 의미를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위기를 사도 바울이 말하고 있는 ‘많은 환난’ 이라는 말에서 찾아 보게 될 것입니다.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많은 환난 가운데서 그 문제를 극복하는 방법으로 자신의 감정에 충실하기 보다는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기쁨을 누렸다고 바울 사도는 말합니다. 여기에 우리는 신앙인의 삶의 방법을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창조하실 때 감정이라는 독특한 인격의 한 부분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감정은 아주 소중하게 우리의 삶속에 의미있는 가치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문제는 우리가 하나님을 떠난 이후로부터 타락된 우리의 감정을 우리의 삶에 주인으로 허락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우리의 신앙을 누리지 못하는 비밀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감정과 항상 다르다는데 우리의 어려움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감정을 포기해야 하는 순간을 두려워 합니다. 그것은 마치 삶의 의미가 사라지는 것처럼 우리의 삶을 경직 시켜버립니다. 그래서 우리는 할 수 있는 한 감정을 끝까지 지키려는 본능으로 말씀을 거부하고 맙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부족하고 연약해서 하나님 말씀보다 내 감정대로 살기로 했다고 말입니다. 과연 우리는 이런 사람을 향해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특별한 영적 훈련을 받은 무리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에게는 그럴만한 시간이 없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복음을 전한 후 로마의 핍박과 사역의 개인적 이유로 아덴으로 떠났습니다. 데살로니가 교인들의 변화 이유는 복음에 대한 감격이었으며, 그 복음에 의한 변화였습니다. 그들은 그리스도 밖에서 길들여진 감정을 포기하고 “성령의 기쁨”으로 자신의 삶을 지배하도록 허락합니다. 이것이 신앙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신앙은 예배당에 와 있다고 나타나는 것이 아닙니다. 신앙은 내가 어디에 있느냐 하는 장소적인 문제 이전에 나의 삶이 누구에 의해 지배 받느냐 하는데서 부터 시작인 것입니다. 더욱 우리가 이 본문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바울이 말하기를 “우리와 주를 본받는 자가 되었다”고 말하기 때문입니다. 다시말해 주님을 닮아가는 모습은 우리의 감정을 포기하고 말씀대로 순종하는 그 순간이 바로 예수님을 닮아가는 순간인 것입니다. 아마 여러분은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을 기억할 것입니다. 십자가를 지고 싶지 않은 예수님의 감정과 하나님의 뜻에 순종해야 한다는 신앙의 요구앞에 예수님은 얼마나 괴로워 하셨으며 고통하셨습니까 그러나 예수님은 자신의 감정을 포기하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기 위한 기도를 하십니다. 우리는 여기서 기도의 위대함도 발견하게 됩니다. 자신의 뜻을 포기하고 하나님의 뜻을 순종할 수 있는 능력은 바로 기도의 능력이기도 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기도가 주님의 기도인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예수님을 닮는다는 것이 감정이 없는 인간으로 변해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감정을 포기하고 말씀앞에 순종하는 그 순간이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만약 여러분들이 자신에 감정에 만족하기 위한 관계를 기대한다면 우리는 영원히 그리스도의 사랑을 함께 나누는 아름다운 형제와 자매의 관계는 경험할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불평과 불만으로 서로에게 상처만을 던져주며 인간의 불행을 만끽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주님을 닮아가는 모습을 가지고 있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 삶의 모습은 위기 속에서 자신의 감정에 충실하기 보다 성령의 지배에 자신을 순종했다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우리의 감정을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보다 포기하는 법을 배워야 할 것입니다. 그때 우리는 우리의 감정이 소중하게 대우받고 있는 경험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2. 믿음의 소문이 각처에 퍼졌다(살전1:7-8)
데살로니가 교인들의 아름다운 모습은 각처에 소문이 났다고 말합니다. 바울이 아덴에 도착해보니 데살로니가 교인들의 삶의 모습이 벌써 그곳까지 소문이 났으며, 그들은 소문으로 바울에 대해 벌써 알고 있었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주의 말씀이 너희에게로부터 마게도냐와 아가야에만 들릴 뿐 아니라 하나님을 향하는 너희 믿음이 각처에 퍼진고로 우리는 아무 말도 할 것이 없노라” 이 얼마나 놀라운 고백입니까 사도 바울의 사역의 특징은 끊임없는 훈계와 권면에서 발견하게 됩니다. 영적인 아비로서 책임적인 사랑을 하기 위해 전력을 다했던 사역자였습니다. 그는 자신이 가르쳤던 교회들이 잘못된 신앙이나 생활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순간 어김없이 인편을 통해 자신의 사랑을 훈계와 권면의 방법으로 전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서신들을 지금 신약성경으로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칭찬을 할 때도 목적은 그들의 부족함을 깨닫게 해 주고 더 나은 영적인 성숙을 돕고자 하는데 있었습니다. 그런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말하기를 더 이상 할 말이 없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데살로니가 교회가 얼마나 아름다운 공동체였는가를 쉽게 발견하게 됩니다.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개인적으로는 인정받는 그리스도인이 되고 싶은 열심을 가지고 있으나 공동체 그리스도인으로 아름다운 소문을 전하는 그리스도인이 되고자 하는 열심히 부족하다는 사실이 우리의 개인적인 신앙까지도 성숙하지 못하게 막고 있다는 사실을 잊고 있는 것입니다. 이 세상은 개인을 통해 감동받는 일은 아주 드물게 나타납니다. 그리고 개인이 이 사회를 감동 주기에는 결코 쉬운일이 아닌 것입니다. 이 사회에 그리스도를 전하기 원한다면 우리는 성경에 나타난 아름다운 공동체를 교회를 통해 증거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아름다운 공동체의 특징은 인간적인 감격이 있는 노력보다는 성령이 지배하는 기쁨의 공동체가 되었을 때 우리 하나님이 영광받으시는 그리스도의 공동체가 될 것입니다.
서로가 서로를 사랑하는, 결코 자신의 감정에 의해 지배받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기쁨에 지배받는 데살로니가 교인들처럼, 그런 삶이 각처에 소문이 나면서 그리스도를 증거했다는 이 사실에 대해 우리는 순종해야 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우리는 모두 신앙의 성숙을 기대하며 열망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진실입니다. 그리고 그 열망은 우리안에 계신 성령님이 허락하시는 갈증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렇게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그렇게 아름다운 삶을 개인적으로나 공동체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단지 하나님의 방법을 모르기 때문이며 하나님의 방법을 경험하지 못하는 것은 우리의 교만한 감정 때문인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더 이상 우리 자신에게 매여 하나님의 뜻을 지연시킬 수는 없는 것입니다. 우리의 진정한 행복은 바로 하나님의 뜻안에 있기 때문에 더욱 말씀앞에 순종하는 삶은 우리에게 절대적인 것입니다. 우리 서로 그리스도안에서 하나가 되는 지체의 겸손부터 경험하는 결단을 갖지 않겠습니까 주께서 이 부족한 종을 통해 여러분에게 전하고자 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깨닫기를 진정 주님께 기도합니다. 하나님앞에 순종하십시요, 보이는 영적 지도자에게 순종하십시요, 진정한 영적 겸손은 여러분을 섬기는 영적 지도자에게 진정으로 순종하는 그 순간부터 경험되기 시작할 것입니다. 제가 드리는 이 권면을 절대로 권위적으로 이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것은 영적인 질서를 가리키는 것이며 하나님이 공동체를 통해 역사하시는 성경적인 통로에 대해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교회를 하나님이 세우셨듯이 영적인 지도자도 하나님이 세우신 것입니다. 만약 이 질서가 무너지게 되면 그 공동체는 하나님의 간섭에서 떠나 사탄의 전리품으로 전락하게 될 것입니다. 그 안에서 형제자매의 사랑이 나눠지게 되는 것입니다.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 일하시기를 원하시며 그 때를 인내로 기다리십니다. 그러나 끝까지 순종하지 않을 때 하나님은 촛대를 옮기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우리 교회는 아름다운 소문을 전하는 공동체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교회는 많은 사람들에게 아름다운 공동체로 경험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 일에 부름받아 영혼들을 양육하는 사람이 바로 목사인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열망을 가지고 있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바로 여러분들인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그리스도안에서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기쁨의 가치를 누려야 할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어떻게, 얼마나 더 많이 사랑할 것인가에 관심을 가지는 교회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랑 가운데 아름다운 소문이 증거되는 교회가 되어져야 할 것입니다. 함께 기도하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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