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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아름다운 헌신 (고후 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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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사랑이라는 말에 대해서는 좋아하며 또 경험하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사랑을 경험시켜 주는 헌신, 희생, 용서 같은 말에 대해서는 부담을 느낍니다. 우리는 모두 사랑에 모순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사랑이 생활이 되기보다는 동경이 되고 맙니다. 사랑을 누리는 사람은 사랑을 그리워하지 않을 것입니다. 사랑이 소중한 것은 바로 그 안에 아름다운 헌신과 희생이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리고 그 헌신과 희생은 기쁨과 권리로 자신의 마음을 충족시켜 줍니다. 그 때 우리는 사랑을 경험한다고 말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기쁨이 있는 헌신과 희생을 해 보지 못한 사람은 사랑을 한 번도 해 보지 못한 불행한 사람인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의 비극 중 또 하나는 그러한 사랑을 한 사람에게만 해야 한다는 강박 관념에 사로잡혀 살기 때문에 더욱 사랑을 누리지 못하고 삽니다. 성경은 우리의 사랑에 대한 고정관념을 바꾸기를 도전합니다. 특별한 한 개인을 찾아 헌신과 희생을 해야 한다고 가르치지 않습니다. 신앙은 모든 사람을 향해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그리고 그러한 삶을 통해 그리스도가 우리의 생활속에 나타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한 교회의 변화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본문을 통해 진정한 신앙인의 삶의 자세를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고린도교회에게 바울이 두번째로 보낸 서신의 내용 중 한 부분입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의 여러 가지 문제점들과 악행에 관한 소식을 듣고서 이를 바로잡기 위해 많은 눈물로 고린도전서를 썼습니다. 고린도전서를 보면 바울이 고란도교회의 악행을 심히 책망하고 있는 장면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린도 교인들이 회개치 않자 바울은 서둘러 고린도교회를 방문하여 책망합니다. 그러나 아무런 성과 없이 근심 중에 헤어지게 됩니다. 그 후 바울은 그의 신실한 동역자 디도를 보내어 고린도 교회의 악습을 시정하고 또한 신자들을 격려하여 예루살렘 교회의 가난한 성도들을 위한 연보를 모으도록 합니다. 바울은 디도를 만나 고린도교회의 소식을 듣기 원했습니다. 마게도니아에서 디도를 만난 바울은 고린도교회의 고무적인 소식을 듣게 됩니다. 고린도교회가 자신들의 악행을 회개하고 바울을 다시 사모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디도를 통하여 듣게 됩니다. 그러나 여전히 바울을 불안하게 하는 소식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거짓 교사들에 관한 소식이었습니다. 고린도교회에 들어온 거짓 교사들은 바울의 사도적 권위에 도전하면서 거짓 복음으로 하나님의 교회를 혼란케 하고 있었습니다. 거짓 교사들은 바울이 방문 약속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에 바울이 전한 복음도 믿을 만한 것이 못된다고 말하였으며 또한 바울은 자격없는 거짓 사도이며 예루살렘의 가난한 성도들을 구실로 삼아 연보로 거둔 돈을 착복하려 한다고 모함하였습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의 오해를 풀고 그릇된 진리로 교인들을 유혹하던 거짓 교사들에 대하여 단호히 행동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게 됩니다. 그래서 고린도후서를 썼던 것입니다. 자신이 고린도 교회를 방문할 것과 방문해서 거짓 교사들과 회개치 않는 범죄자들을 엄히 징계할 것을 내용에 담아 보낸 서신이 바로 고린도 후서인 것입니다. 그 가운데 오늘 본문은 고린도 교회가 가난한 자들을 위한 연보에 대해 칭찬하고 있는 내용인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 본문을 통해 진정한 사랑이 시작되는 현장을 경험해야 할 것입니다.

1. 변화의 열매(고후8:2-4)
고린도 교회 사람들은 변했습니다. 바울의 책망과 디도의 계속되는 가르침을 통해 고린도 교인들은 자신의 편견과 무지에서 벗어나 신앙인으로 올바른 생각과 생활을 어느 정도 감당하는 성숙한 신앙인들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서로 뜻이 맞는 사람들끼리 모여 파당을 만들고 뜻이 다른 형제들과는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다툼을 멈추지 않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 그들이 이제는 진정한 헌신을 나누는데 까지 신앙이 성장했습니다. 그들은 변했습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을 향해 이렇게 말합니다. “환난이 많은 시련 가운데서 저희 넘치는 기쁨과 극한 가난이 저희로 풍성한 연보를 넘치도록 하게 하였느니라” 다시말해 그들은 환난을 만나 큰 시련을 당하면서도 오히려 기쁨에 넘쳤고 극심한 가난에 쪼들리면서도 자신보다 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많은 희사를 했다는 말인 것입니다. 그리고 3절에서는 “내가 증거하노니 저희가 힘대로 할 뿐 아니라 힘에 지나도록 자원하여” 고린도 교인들은 억지로가 아니라 자원하는 마음으로 가난한 자를 돕는 일에 적극적이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4절에 보면 “이 은혜와 성도 섬기는 일에 참여함에 대하여 우리에게 간절히 구하니” 현대인의 성경에 보면 “그리고 부디 자기들에게도 성도를 구제하는 일에 참여하는 특전을 달라고 자진해서 간청해 왔습니다.”라고 번역되어 있습니다. 고린도 교회는 변해도 너무 변했습니다. 그들은 바울이 고린도 전서에서 그렇게 강력하게 권면했던 사랑을 나누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아름다운 헌신을 누리고 있었습니다. 헌신이라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났으며 경제적인 손익계산에서 자유했습니다. 그들은 자신보다 가난한 신앙인에 대해 구제적인 헌신에 동참했던 것입니다. 기쁨과 자원하는 마음으로 그들의 헌신은 더욱 빛나고 있었습니다. 이 구체적인 헌신이 예루살렘 교회에 전달되었을 때 예루살렘 교인들은 그리스도인의 형제사랑에 감격하게 됩니다. 아름다운 헌신이 없이는 사랑이 경험될 수 없는 것입니다. 아마도 우리는 작은 인간관계 속에서도 이런한 헌신의 기쁨을 가져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을 때 우리는 우리 자신을 시간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그 사람을 위해 헌신하는 일이 그렇게 부담스럽고 힘들지만은 않았을 것입니다. 오히려 기쁨과 특권의 감정이 행복감으로 경험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누군가가 그 사람에게 자신과 같은 헌신을 나타낸다면 우리는 그 사람에 대해 오히려 자신의 헌신의 특권에 침해했다고 분노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헌신을 통해 서로의 사랑이 경험된다는 사실을 우리는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신앙은 이 헌신의 폭을 넓혀 줍니다. 자신의 희생이 두렵지 않고 오히려 특권처럼 느껴집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특권을 더욱 많이 행하려는 열망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고린도 교회가 그렇게 변했습니다. 그들은 다툼에 익숙했으나 이제는 아름다운 헌신과 희생에 익숙한 사람들로 변했던 것입니다. 이 변화의 시작은 어디에서 시작되었을까요

2. 변화의 시작(고후8:5)
“우리의 바라던 것뿐 아니라 저희가 먼저 자신을 주께 드리고 또 하나님의 뜻을 좇아 우리에게 주었도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의 변화의 시작을 주님과의 관계로부터 였다고 말합니다. 저희가 먼저 주께 드렸다고 말합니다. 과거에 고린도 교회는 복음을 듣고 이해하였으나 그 복음을 자기의 삶에 경험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복음에 담겨진 주님의 사랑에 멧세지를 듣기 보다는 초자연적인 기적과 교회의 직위와 자신의 축복에 관심이 더 많았던 것입니다. 그들은 그래서 다투었습니다. 그러다 그들은 이제 바울과 디도를 통하여 사랑과 복음을 배우며 새로운 가치와 생활에 눈을 뜨기 시작합니다. 그들의 놀라운 변화는 그리스도와 자신과의 관계에 대한 새로운 이해였습니다. 그들의 헌신의 배경은 바로 그리스도와의 올바른 관계 회복이었다는 것입니다. 과거에 그들은 주님께 자신을 드린다는 말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주님께 드리는 인생이 어떻게 형제와의 관계속에 경험되는 것인지 그들은 몰랐습니다. 그들은 자신에게 매여 알고자 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들은 서로의 다툼의 원인이 서로에게 있다고 믿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신앙을 누리지 못하는 비밀이 자신에게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그것은 주님에 대해 관심이 없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자신에게 관심이 집중되었을 때 결코 주님을 경험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관심이 주님에게 집중되는 순간 우리는 주님으로부터 얼마나 크고 아름답고 놀라운 사랑을 받았는지 확인하게 되는 것입니다. 더 이상 주님께 바랄것이 없다는 완전한 사랑의 고백을 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께 자신을 드리는 기쁨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이 아름다운 헌신에서 우리의 형제사랑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저희가 먼저 자신을 주께 드리고 또 하나님의 뜻을 좇아 우리에게 주었도다.” 우리는 이 고린도 교회의 변화를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꿈이 필요할 것입니다. 서로의 관계속에서 연령적인 차이가 있을 때 아래사람이 말합니다. “내가 언니 나이가 되었을 때, 형 나이가 되었을 때 언니처럼 되고 싶어, 형처럼 되고 싶어.” 이런 말을 들을 수 있다면 우리는 어떠한 삶에 놓여 있다 하더라도 신앙으로 올바로 살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감동의 인간관계는 바로 아름다운 헌신이라는 경험속에서 발견되는 인간관계이기 때문인 것입니다. 우리에게 가장 감동적인 사람이 있다면 어떠한 환경이나 인간관계속에서도 신앙으로 온전히 살아가는 사람일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생활은 주님께 자신을 온전히 드릴 수 있는 사람의 삶일 것입니다. 주님과 올바른 관계를 누리는 사람은 아름다운 헌신이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변화의 시작은 바로 그리스도와의 관계로부터 였다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이제 고린도 교회의 변화에 대해 바울은 이렇게 권면합니다. “오직 너희는 믿음과 말과 지식과 모든 간절함과 우리를 사랑하는 이 모든 일에 풍성한 것같이 이 은혜에도 풍성하게 할지니라 내가 명령으로 하는 말이 아니요 오직 다른 이들의 간절함을 가지고 너희의 사랑의 진실함을 증명코자 함이니라” 바울은 그러한 헌신된 삶을 개인적인 만족을 위해 명령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자신이 그들에게 진정한 사도로서 권위가 있는가를 확인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사랑을 모든 사람들에게 나타내는 일이기에 그렇게 살라고 권면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우리는 사랑을 원합니다. 그리고 관념적인 사랑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경험되는 사랑을 우리는 바랍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아름다운 헌신에 자신을 순종할 수 있는 결단이 필요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순종의 시작은 바로 주님께 자신을 드리는 기쁨이 무엇인가를 알았을 때 시작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께 자신을 드릴 수 있다는 말은 주님을 사랑한다는 고백일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랑의 시작은 바로 우리 형제 자매에게 아름다운 헌신이라는 특권적인 행동으로 누려지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저도 여러분에게 바울과 동일한 권면을 하기 원합니다. 우리는 모두 그리스도의 사랑을 자랑할 권리가 있는 사람들입니다. 여러분의 관심을 예수님의 십자가로 모아지기를 바랍니다. 그 십자가는 우리에게 완전하고 완성적인 사랑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그 십자가안에서 우리 인생에 답을 찾게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주님께로부터 받은 사랑입니다. 그 사랑을 잊지 않는다면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이 공동체는 얼마든지 아름다울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아름다운 삶은 바로 우리들의 현실이 될 것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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