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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라 (빌 04:4-7)

첨부 1


어느 날 A라는 사람이 이웃에 살고 있는 게으른 농부의 집에 갔습니다. 들어가 보니 집안 은 청소를 하지 않아 지저분했고, 집 주위에 있던 밭은 다듬지를 않아 풀이 무성하였습니다.

주인이 나오자 A라는 사람이 당신은 장을 얼마나 담갔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게 으른 농부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구더기가 무서워서 전혀 담그지 않았습니다.

또 물어보았습니다. 그럼 논에 모는 얼마나 심었습니까 그러자 대답하기를 가물까 두려 워서 하나도 심지 않았습니다.

기가 막힌 A는 마지막으로 또 이렇게 물어봅니다. 그러면 감자는 얼마나 심었습니까 게 으른 농부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 벌레 먹을까 겁이 나서 한 알도 심지 않고 특별히 조심하 였소라고 했다고 합니다. 그에게 할 일은 태산같았지만, 무섭고 두렵고 겁이 나고 염려가 되어 아무 일도 할 수 없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인생들을 가리켜 불안과 위기 속에 서 있는 존재라고 말했고, '길모어'라는 사람은 이 세상에 근심된 일이 많고 참 평안을 몰랐구나 이 세상에 곤고한 일이 많고 참 쉬는 날 없었구나 이 세상에 죄악된 일이 많고 참 죽을 일 쌓였구나(찬송가 474장)라는 가 사를 지어 찬송을 했습니다. 이 세상은 참으로 근심된 일이 많고, 곤고한 일이 많고, 죄악된 일이 많은 세상입니다. 언제 어떤 사건이 생기고, 언제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도무지 예측할 수 없이 살아가는 것이 우리의 인생인 것입니다.

건강을 자랑삼아 살았던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불치의 병에 걸려 병원에 입원을 하고, 내 의지하고는 상관없이 일어난 사고 때문에 병원에 입원하든지, 아니면 죽음을 당합니다. 그렇 게 잘 나가던 사업이 하루아침에 부도가 나고, 승승장구하던 직장에서 갑자기 퇴직명령을 받습니다. 내 남편만은, 내 아내만은, 내 자식만은 하면서 믿었는데,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히 는 신세가 되어 그 배신감에 부르르 떨기도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끊임없이 염려를 합니 다. 어제도 염려를 했고, 지금 이 시간에도 염려를 합니다. 아마 내일도 분명히 염려하며 살 아가게 될 것입니다.

높으면 높을수록 염려와 걱정이 많고, 낮으면 낮을수록 염려와 근심이 있으며, 또 가진 사람 은 가진 사람대로 걱정이 끊이지 않고, 없는 사람은 없기 때문에 또 걱정을 합니다. 실로 이 세상에는 염려나 걱정이 없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는 것 같습니다.

염려 란 나누어지다, 마음을 놓지 못하고 근심하다, 걱정하다라는 뜻이 있습니다. 염 려는 사람을 갈래갈래 찢어놓습니다. 염려는 정상적인 마음과 생각에서 벗어나게 합니다. 염 려는 마음을 나눕니다. 그래서 근심하고 걱정하니 마음에 평안이 없습니다. 염려는 감정을 나눕니다. 그래서 감정에 안정성이 없이 기복이 심합니다. 염려는 이해를 나눕니다. 그래서 확신은 얕고 쉽게 흔들리게 됩니다. 염려는 감지의 기능을 나눕니다. 그래서 관찰을 잘못하 며 심지어는 거짓될 수도 있습니다. 염려는 판단의 기능을 나눕니다. 그래서 몸가짐과 판단 이 공평하지 못할 때가 많아 손해와 슬픔을 가져오게 합니다. 염려는 결심의 기능을 나눕니 다. 그래서 계획이나 목적이 잘 세워지지 못함으로 계속적인 성취를 이룰 수 없습니다.

이러한 염려가 쌓이고 누적되면 결국 인생의 파탄을 몰고 올뿐만 아니라, 요즘 흔한 신경성 질환이나 우울증, 또는 노이로제나 불면증 같은 질환에 걸려 고생을 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많은 정신분석가들이 염려를 홍역이나 디프테리아와 같은 전염병보다 더 강하다고 주장한 다.

바울은 고린도후서 11장 28절에서 …날마다 내 속에 눌리는 일이 있으니 곧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라고 말한 반면, 오늘 본문에서는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라면서 상 반된 말을 하고 있습니다. 이 두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어떤 염려는 해도 되고, 어떤 염려 는 해서는 안 된다'는 말씀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럼 어떤 염려는 해야 하고 어떤 염려는 하지 말아야 할까요 첫째로, 해야하는 염려가 있습니다.1) 먼저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라고 하시는 것들을 순종하기 위해 염려해야 합니 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우리가 어떠한 삶을 살기를 바라시는지를 알고 순종해야 합니다.

부모님이 원하는 삶을 살고, 부모님의 뜻에 순종하면 그는 효자입니다. 임금의 명령에 순종 하며 살면 충신이고, 선생님의 말씀을 잘 따르면 모범생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원하 시는 삶,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가면 우리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잘 믿어 보려면 염려도 많게 됩니다. 순종하고자 할 때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순종할까 염려를 하고, 어떤 일을 결정하고자 할 때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 까 하면서 염려를 하고, 회개하고자 할 때 자신이 지은 무수한 죄 때문에 염려하고 슬퍼합 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영육간의 축복을 받아 누리기 위해서 우리는 마음을 쓰 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2) 성도로서 할 일을 다하고 있는가 염려해야 합니다.

주일 예배를 드리며 하나님께 경배와 찬양을 올리는 것은 성도의 의무이며, 새벽 기도회, 수 요예배, 금요철야 등 교회에서 드려지는 예배나 행사참석은 성도로서의 사명입니다. 더 나아 가 예배를 위하여 봉사하고, 지역의 복음화를 위해 전도하고, 어려운 이들을 찾아가 도와주 고 위로해주며, 주님의 사랑을 나타내고, 우리 마음이요 믿음의 표시인 헌금을 드리면서 내 가 할 일은 다하고 있는지 마음을 써서 염려해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우리의 가정이 복음 화가 될까 어떻게 하면, 우리의 자녀들을 믿음의 자녀들로 키울까 이것이 과연 하나님의 뜻인가 정말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일인가 우리는 염려를 해야 합니다. 이것에 대해 바울 은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이라고 했습니다.

3) 그리고, 시민으로서 할 일을 다하고 있는지 염려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세상과 구별되어 거룩한 존재로 부름 받은 존재이지만, 그렇다고 하나님은 우리가 세상과 상관없이 세상을 떠나 살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주님의 사랑을 가지고 세상 속으로 들어가라고 하셨고, 복음을 들고 아골 골짝 빈들에나 소돔 같은 거리에 도 찾아가라고 하셨습니다. 괴로우나 즐거우나 주님만 따르며 나에게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하고 성실하게 살면서 이 세상을 변화시키라고 하셨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크리스천인 우리 는 이 나라와 이 민족을 뜨겁게 사랑해야 합니다. 모세가 그랬듯이, 이사야와 예레미야가 그 랬고, 바울이 그랬듯이 우리는 이 나라 이 민족의 복음화를 위해 눈물로써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 사회와 나라가 정해준 방향과 도덕, 행정과 법률을 지키며 살아야 합니다. 세금은 정직하게 내야 하고, 교통법규는 내가 먼저 지키고, 대한의 남자라면, 국방의 의무는 당연히 해야 합니다. 또한 이번 413 투표에서는 국민의 한 사람으로 주권을 행사해야 할 것입니 다.

둘째로, 해서는 안 되는 염려1) 먼저, 이방인이 하는 염려는 하지 말아야 합니다.

마태복음 6장 31절-32절에,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 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의 삶의 방식은 먹고 마시고 입는 것이 전부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 님을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고, 만복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이 우리의 하나님이 되신다면, 우리의 삶의 방식은 달라져야 합니다. 하나님은 심지도 거두지도 창고에 들이지도 않는 새 들을 기르시고, 길쌈도 수고도 하지 않지만 솔로몬의 모든 영광보다도 더 아름다운 백합화 도 자라게 하시고, 들풀도 때를 따라 입히시는 분이십니다. 그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며 신뢰 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우리의 범사에 형통과 축복이 임하게 될 것을 믿습니다.

2) 불신앙이 되기 때문에 염려를 하면 안됩니다.

마태복음 13장 22절에 보면, 사람들은 세상의 염려와 재리의 유혹 때문에 염려를 하고, 누가 복음 10장 41절에서는, 많은 일 때문에 염려하고 근심을 한다고 했으며, 마태복음 6장 30절 에는 믿음이 적어서 염려를 하고, 누가복음 21장 34절에는,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졌 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또한, 잠언 17장 22절에는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 은 뼈를 마르게 하느니라고 했고, 고린도후서 7장 10절에서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느 니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마태복음 6장 34절에 보면 한 날 괴로움은 그날에 족하니라고 했습니다. 즉, 오늘 최선을 다하여 살았다면 그 후의 일은 하나님께 맡기고 안심하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문 제로 인해 우리의 눈앞이 아득한 절벽인 것 같아도 반드시 피할 길을 주시고, 아무리 캄캄 한 어둠뿐인 것 같아도 곧 새아침의 태양의 빛을 준비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아무 리 황당한 일을 당해도, 어떤 위기가 다가왔다 해도 염려하지 말기를 바랍니다.

염려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데서 오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은 불신앙의 소치임을 기억하시고, 야웨는 내편이시라, 사람이 내게 어찌할꼬라고 고백했던 시편기자처럼 오직 우리편이 되어 주시는 하나님만을 믿고 나아가시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3) 염려는 죄가 되기 때문에 하지 말아야 합니다 불신앙이 근거가 되어 한 염려는 분명히 죄입니다. 왜냐하면 불신앙이란 하나님을 절대적으 로 의지하지도, 믿지도, 신뢰하지도 않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염려는 하나님보다 자기 중심일 때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보다 세상나라 중심일 때 염려를 합니다.

마태복음 6장 34절에서 주님은, 이런 염려는 '괴로움을 더하는 것이라'고 했고, 마태복음 13 장 22절에서는, 이런 염려는 '결실치 못하게 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러한 염려와 근심 은 우리에게 큰 고통과 괴로움을 안겨줄 뿐입니다. 우리 자신의 몸을 쇠약하게 하고 결국은 사망을 가져오게도 합니다. 온갖 질병에 걸려 고통을 당하게도 하고, 삶의 의욕을 잃어 자살 하게도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지금 어떤 염려를 하고 있습니까 혹시 남편 때문에 근심 을 하십니까 아니면, 자식과 물질과 장막과 생활 때문에 걱정을 하십니까 그러면 수고하 고 무거운 짐진 자들이 다 내게로 오라고 하시는 주님의 초청에 응답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곤고한 삶 속에서 염려와 죄의 짐을 벗어버리십시오. 그러면 우리의 주님 예수께서 기꺼이 여러분의 짐을 대신 져주실 것입니다.

셋째로, 염려를 없애기 위해 해야 할 일이 있다.1) 먼저, 과거의 일을 잊어버려야 합니다.

이사야 43장 18절에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적 일을 생각하지 말라고 했습니 다. 옛적 일을 생각하며 염려하는 것은 헛된 일이요, 비생산적인 일입니다. 특히 우리는 이 웃들에게 받은 마음의 상처를 잊어야 합니다. 서운한 마음을 오래오래 되새기며, 염려나 근 심만 하고 있으면 오히려 신앙이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과거에 실패했던 경험도 잊어야 합니다. 물론 우리는 고난 중에 고난의 이유가 나에 게 있는 것이 아닌지 지난날의 삶을 돌이켜 보아야 합니다. 하지만, 실패의 쓴 기억을 가슴 에 품고 염려를 하고 있다면, 그 염려는 우리로 하여금 삶의 소망과 기쁨을 빼앗아가고, 낙 심케 할뿐입니다.

2) 또, 염려를 없애기 위해서는 쉬지 말고 기도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말했습니다. 사무엘 선지자는 백성들에게 나는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야웨 앞에 결단코 범치 아니하겠다라고 할 정도로 기도의 삶 을 살았습니다. 조지 물러는 생애 동안, 5천 번 이상 기도의 응답을 받았다고 합니다. 예수 님께서도 늘 한적한 곳을 찾아 기도하셨습니다. 그렇게 기도의 삶을 사신 예수님께서 마가 복음 11장 24절에서 믿고 기도한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그대로 되리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기도는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만능의 열쇠요, 기도 응답의 고속도로 입니다. 기도하는 가정과 민족은 망하는 법이 없고, 기도하는 자에게 실패와 염려는 있을 수 없습니다.

본문 빌립보서 4장 6절-7절에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 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고 했습니다. 기도할 때 우리의 영혼 에 기쁨이 있고, 간구할 때 우리의 마음에 평화를 얻으며, 마음의 염려를 하나님 앞에 토로 할 때 우리는 언제나 승리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1년 365일, 8,760시간을 기도의 시간으 로 삼으셔서 온전히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성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그리고, 염려를 없애기 위해서는 항상 기뻐하며 감사해야 합니다(본문 4, 6절).

많은 근심과 끊이지 않고, 다가오는 염려의 문제로 인해 항상 기뻐하고 감사한다는 것은 참 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하라고 하셨습니다. 슬플 때 기뻐하고, 어려운 일을 당할 때 감사해야 합니다. 힘들고 고통스럽고 괴로운 일이 있을 때 오히려 기뻐할 수 있어야 하고, 실패하고, 모함과 오해를 받고, 수치를 당할 그때 오히려 감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기쁨은 성령의 열매이고, 감사는 구원의 감격이 있는 자만이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성령으 로 충만할 때, 우리는 언제나 기뻐할 수 있고, 또한 참 감사를 맛볼 수가 있습니다. 성령이 충만한 곳에는 사탄이 한길로 왔다가도 일곱 길로 도망을 갑니다. 성령이 충만한 곳에는 항 상 승리만이 있습니다. 성령으로 충만하여 기적의 역사를 체험하시고, 근심과 걱정은 아침 안개의 사라짐 같이 사라지며, 슬픔과 한숨은 빽빽한 구름이 물러감 같이 물러가게 되시기 를 바랍니다. 성령으로 충만하여 여러분의 남은 생애가 기쁨과 즐거움, 그리고 감사의 날들 만이 있게 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4) 무엇보다 여러분의 미래를 주님께 맡기십시오.

사람은 언제나 미래에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남들보다 더 잘 살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행복할 수 있을까 하며 나름대로 설계하고, 생각하고, 계획을 세 웁니다. 그러나 아무리 우리가 지상 최고의 계획을 세우고, 장미빛 미래를 위해 설계를 했다 하여도 그것을 이루시고 성취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심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잠언 16장 1절의마음의 경영은 사람에게 있어도 말의 응답은 야웨께로서 나느니라와 잠언 16장 9절의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는 자는 야웨시니 라는 말씀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인간의 힘이나 어떤 수단, 환경의 조건을 의지해서는 안됩니다. 오직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창조자요 주관자가 되시는 하나님만을 신뢰하고 의지하여야 합니다. 그리 고 그 하나님께 우리의 모든 것을 맡겨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삶을 간섭하 여 주시고, 우리의 일을 이루어 주십니다. 시편 37편 5절에 너의 길을 야웨께 맡기라 저를 의지하면 저가 이루시고, 네 의를 빛같이 나타내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같이 하시리로다 라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나 더할 수 있겠습니까 누가 생명을 일각이나 연장할 수 있겠으며, 누가 재물을 한 푼이나 더 모을 수 있을까요 결국은 아무 목적도 달성하지 못하고, 염려하는 일이 공연한 헛수고만 되고 말 것입니다.

그러므로 염려하지 말고 기도와 간구로 하나님께 아뢰십시오. 그리고 모든 염려를 주님께 맡겨 버립시다.

베드로는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버리라(벧전 5:7)고 권면했고, 시편기자는 네 짐을 야 웨께 맡겨 버리라…시( 55:22)고 했습니다. 주님은 여러분이 어떤 염려를 가지고 구하기 전 에 우리에게 있어야 할 것을 아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따라서 모든 염려를 버리고 평강의 왕 이신 예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또한, 하나님의 도우심과 평안이 넘치는 복, 범사에 형통하는 복을 받고, 삶 속에 승리의 복을 받아 누리는 여러분 모두가 되 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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