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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악한 농부의 비유 (마 21:3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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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의 비유는 악한 농부의 비유 혹은 포도원의 비유라고 합니다. 이 비유는 본 문 외에도 마21:33-46, 막12:6-12절에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다라서 이 비유 는 세 복음서에 다 기록된 만큼 보편적이고 중요한 의미를 가진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본문 말씀은 십자가를 지시기 직전 종말론적으로 주어진 예수님의 최후 통첩적인 의미가 있는 종말적 메시지입니다. 특별히 이 말씀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으려는 사람들을 앞에 놓고 정면으 로 충돌하는 시간에 주신 마지막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본문 19절에인 마지막절 에 가서 보면 서기관들과 대제사장들이 예수의 이 비유는 자기들을 가리켜 말씀하심인줄 알고 즉시 잡고자 하되 백성을 두려워하더라고 하였습니다. 알기 는 알고 그 통분함을 감출 길이 없지만 당장은 어쩌지 못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만큼 이 말씀은 분명하게 이스라엘 지도자를 상대로 그들을 향하여 하신 말 씀입니다.

대상은 그런가하면 말씀의 내용은 전 이스라엘 역사를 종합하여 짧은 한 문장으로 나타내신 것입니다. 이 말씀은 성경66권의 요약이요, 동시에 인류 역사의 요약입니다. 역사가 하나님 앞에서 진행되는 것이라고 한다면 우리 인간 과 하나님과의 관계를 통틀어 이 몇마디로 요약해놓은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본문은 대단히 중요한 것입니다. 또 영적인 안목에서나 한 사람, 한 사람, 나 개인의 생애를 한 눈에 통찰해 보는 것으로 말할 수 있습니다.

본 비유는 하나님에 대한 말씀인가 하면 이스라엘 대한 말씀이며, 온 인류의 이야기인가하면 선지자들을 이야기하고, 그리스도에 대하여 말씀하며 마지막 심 판을 이야기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인간과의 관계에서 비롯되는 모든 역사 가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빠짐없이 나열된 것입니다. 이 비유에는 하나님은 어떤 존재인가 인간은 어떤 존재인가가 나와있으며, 선지자를 보내신 하나님의 의 도와 그 사명을 말씀하시고 이제 최후의 방법으로 에수 그리스도를 보내시는 입 장과 상활, 그 결과를 말씀하시며 나아가서는 역사의 최후, 종말론까지 다 설명 해주는 것이 본문의 내용입니다.

 배유의 배경 2000년전 이스라엘 사람에게는 흔히 있던 일을 그 배경으로 한 것입니다.당시 에는 교통수단이 좋지 않았기 때문에 한 번 이사를 한다든가 멀리 장사라도 떠 나가면 쉽게 왕래를 하ㅈ지 못하게 됩니다. 그래서 소식을 자주 전하지 못한 채 몇 년이고 있다가 돌아오게 되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훌쩍 떠났던 사람이 저곳 에서는 벼슬아치가 되기도 하고 작은 마을에서는 왕이 되기도하는 그러한 일들 이 생기는 시대를 배경으로 한 것입니다. 이제 한 사람이 포도원을 만듭니다. 마태복음의 기록을 빌린다면 산울로 두르고 포도즙 짜는 틀을 만들고 망대를 짓기까지 하였으니 필요한 것은 모두 갖추었다 는 것입니다. 짐승들과 도둑으로부터 포도원을 지키기 위하여 산울을 두르고 망 대를 세웠으며 생산된 포도는 그 자신에서 처리할 수 있도록 포도즙 짜는 틀까지 준비한 훌륭한 포도원이라는 말씀입니다. 지금도 이스라엘의 포도는 유명합니다. 어쨌든 이렇게 좋은 포도원을 만들어 놓고 이 주인은 다른 나라에 갈 일이 있어 서 이것을 세로 맡기고 떠났던 것입니다. 그후 얼마를 있다가 그동안 포도도 많이 따고 포도주도 많이 만들어 큰 수확을 올렸을터이니 이번에는 그 소출의 얼마라도 세로 바치게 해야겠다고 한 종을 보냅 니다.

그랬더니 포도원 농부들은 마땅히 내놓아야할 세는 주지 않고 주인 대신 보 냄을 받은 종을 때리고 능욕하여 그냥 돌려 보냅니다. 도대체 이들이 때리고 능욕 하는 목적이 어디에 있습니까 이들은 이렇게 함으로써 두려운 소문이 나게해서 다시는 못오게 되어 관계가 끊어질 것을 계산한 악한 속셈에서인 것입니다.

그러 나 주인은 게속하여 다른 종을 보냅니다. 그럴 때마다 이들은 두 번, 세번 똑같 은 방법으로 능욕하여 그저 돌려보내고 맙니다. 이제 주인은 마지막으로 생각하기 를 지금까지는 아마도 종들이 가서 그럴터이니 최후의 수단으로 내 아들을 보낸다 면 아들의 말은 들을지 모른다는 바램으로 사랑하는 아들을 보내게 됩니다. 그런 데 이들 악한 농부들은 어히려 주인과는 정반대의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이 사람 은 주인의 상속자인 하나뿐인 아들이니 이를 죽이면 그 유산의 전부가 자신들의 것이 될 수 있겠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 아들을 포도원 밖으로 내어좇아 죽였 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주인은 포도원을 빼앗아 다른 사람들에게 주는 것이 당연하지 않느냐는 말씀이 주님의 뜻입니다.

이제 본문의 내용을 살피며 먼저 포도원을 생각합니다. 여기 본문에서 처럼 포도 원을 이스라엘에 비유한 것은 구약성경에 많이 있습니다. 사5:1-7내가 나의 사랑하는 자를 위하여 노래하되 나의 사랑하는 자의 포도원을 노래하리라 나의 사랑하는 자에게 포도원이 있음이여 심히 기름진 산에로다 땅을 파서 돌을 제 하고 극상품 포도나무를 심었도다 그 중에 망대를 세웠고 그 안에 술틀을 팠었 도다 좋은 포도 맺기를 바랐더니 들 포도를 맺혔도다 예루살렘 거민과 유다 사 람들아 구하노니 이제 나와 내 포도원 사이에 판단하라 내가 내 포도원을 위하 여 행한 것 외에 무엇을 더할 것이 있었으랴 내가 좋은 포도 맺기를 기다렸거 늘 들포도를 맺힘은 어찜인고 이제 내가 내 포도원에 어떻게 행할 것을 너희에 게 이르리라 내가 그 울타리를 걷어 먹힘을 당케 하며 그 담을 헐어 짓밟히게 할 것이요 내가 그것으로 황무케 하리니 다시는 가지를 자름이나 북을 돋우지 못하여 질려와 형극이 날 것이며 내가 또 구름을 명하여 그 위에 비를 내리지 말라 하리라 하셨으니 대저 만군의 여호와의 포도원은 이스라엘 족속이요 그 의 기뻐하 시는 나무는 유다 사람이라 그들에게 공평을 바라셨더니 도리어 포 학이요 그들에게 의로움을 바라셨더니 도리어 부르짖음이었도다 비유의 요점은 하나님이 포도원의 주인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포도원을 이스라엘에게 맡겼다는 것입니다. 크게는 하나님이 온 우주를 창조하시고 그 속에 사람을 지으시어 친치 창조하신 것들을 맡겨주셨습니다. 그리하여 창1:28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 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일단 우리 인간에게 그 모든 것을 내어주셨다는 말씀 입니다. 이는 참으로 하나님에 버금가는 특권이며 책임이 나닐 수 없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 말씀에 의하면 창조주이신 하나님, 그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는 오래 오래 무던히도 참으신다는 것입니다. 잘못하는 일, 악한 행동을 다 아 시면서도 두번, 세번 계속 종을 보내시고 마지막에는 아들까지 보내시는 하나 님의 깊고 아픈 인내를 보게 됩니다. 하나님은 참으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참으심을 알아야하고 그 참으심에 민감해야 합니다.

이 비유에는 심판이 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악하다고 그 때, 그 때 심판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도대체 살아 남을 사람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러기에 하나님은 길이 길이 참으시는 것입니다. 아들을 보내시기까지 참으셨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한 가지 알알야 할 것은 하나님의 인내는 한계가 있다는 것입 니다. 오래도록 많이 참으십니다. 그러나 그 인내에도 끝이 있습니다. 이제 그 아들을 보내고는 마지막입니다. 그 이상 더 참지 않으신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일찌기 선지자들을 보내시어 여러 모양, 여러 방법으로 일깨 워주며 경고하셨고, 어떤 때는 놀랍고 두려운 사건을 만나기도 하며 멀고 가 까운 삶의 현장에서 직접 간접으로 심판의 경종이 사건으로 보여지고 들려지며 가까이 옵니다. 문제는 그런데도 불구하고 회개하지 않는 것입니다. 충분히 알 수 있도록 정신차릴 만큼 경고하고 참고 또 참으시며 인내하시는 하나님, 그러나 어느 순간에 가서 자기 아들을 보내심으로 그 참으심은 끝이 나고 이 제는 진멸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따라서 오늘 본문에서 가장 문제되는 것이 무엇이냐고 할 때에 그것은 이스라 엘의 죄입니다. 이스라엘의 죄는 무엇입니까1)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지 않은 것입니다. 포도원은 주인의 것입니다. 그런 데 내 것으로 만들겠다는 착각을 합니다. 그보다 아예 내 것이라는 집념으로 서슴치 않고 주인의 아들을 죽이기까지 합니다. 놀랍게도 인간의 죄의 뿌리는 여기에 있습니다. 창조주를 부인합니다. 하나님의 소유됨을 부인합니다. 이때 문에 자식도, 재산도, 내 자신도 자기의 것으로 여기게 됩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들이며 우리는 일시적으로 맡아 관리하는 청지기에 불과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하나님됨과, 나의 피조물됨, 그리고 관리자이며 청지기됨을 분명히 하여야 합니다.

2)회개의 기회를 이용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선지자, 종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회개할 기회를 거듭 주시는데 그 기회를 계속 놓쳤습니다. 하나님의 인내를 만홀히 여겼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악용했습니다. 멀리서 종만 보내 고 계시니 이것만 해치우면 되겠구나 하는 것이 얼마나 잘못된 생각입니까 회개할 기회를 주실 때에 호개하지 않는 것, 그리고 하나님의 인내를 만홀히 여기시는 이것이 큰 죄가 됩니다. 이제 더욱 무서운 죄가 여기 있습니다.

그것은 자기들의 행위를 정당화하고 자기들의 소유권을 굳히기 위해 하나님의 선지자들을 죽인 죄입니다. 그리고 여기 사람들은 지금 완전 범죄를 하겠다 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 아들까지 죽이려고 합니다. 아들은 곧 주인의 대 표요, 아들을 죽인다는 것은 주인을 죽이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이는 주인 에 대한 정면 도전입니다. 이 때문에 마지막 회개의 기회를 놓치고 맙니다. 하나님의 마지막 인내와 마지막 회개의 기회를 자신들의 욕구를 이룰 수 있 는 최후의 수단과 기회로 삼으려는 것입니다. 아들이니까 죽이고 상속자니까 죽이자.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것을 허락치 않으십니다. 이렇게 하여 예수 님은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하셨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희생, 예수님의 십자 가는 우연한 사건이 아닙니다. 많은 선지자들을 보낸 후 종말적으로 보낸 그 리스도를 죽임으로써 마지막 심판의 증거가 되고맙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 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의 맥락을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창세기1장 부터 시작된 모든 역사와 그 많은 선지자의 기록과 그 모든 사건의 결론으로 예수님의 십자가가 세워지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는 마지막 통첩이요 마지막 지표가 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어느 선지자를 죽였든지 마지막 아들의 말만 들 었으면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요3:36아들을 믿는 자는 영생이 있고 아들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 물러 있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마지막 통첩, 이 한 가지만 받아들였으면 그 동안의 모든 잘못을 다 묵인하고 저들을 구원하셨을 것입니다.

3)건축자의 버린 돌에 대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것은 히브리적인 하나의 중요 한 비유입니다. 어떤 건축자들이 쓸모 없다고 버린 돌이 다른 건축자에 의하여 가장 요긴한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돌위에 떨어진 사람은 깨어지겠고, 이 돌이 사람 위에 떨어지면 그는 가루가 되어 흩어질 것 이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버림받은 예수님이 교회의 머릿돌이 됨을 말합니 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구원에 이르러야할 뿐, 그를 거역하거나 배척함으로 그 돌 위에 떨어져 그로 인하여 심판을 받아야하는 유 감된 심령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신 말씀은 분명히 무서운 심판의 확정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놀라운 복음이 이 속에 있습니다. 이 마지막 통첩을 마지막 기회로 받아들일 수가 있었다면 그들은 과거에 지은 죄에 상관없이 구원을 받게 되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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