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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 (마 27:2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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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가난한 시골에서 자라날 때 성탄절이 가까워 오면 예쁜 성탄카드를 받고자 교회에 다녔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 카드는 미국선교사들이 보내준 카드였습니다. 아무 철없이 교회에 나가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누구든지 예수 믿으면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으리라. 영생을 얻으리라하고 즐겁게 찬송을 불렀습니다. 그러나 이 찬송의 의미를 깊이 깨닫고 주님의 은혜에 감격하여 눈물을 흘린 것은 그후로 많은 세월이 지난 청년 때였습니다. 예수님은 내 구주요, 예수님의 공로로 나 같은 죄인이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음을 알고 기뻐 뛰었습니다. 주님을 섬기는 것은 내 삶의 유일한 기쁨이요, 내 삶의 목적임을 깨달았습니다. 이 진리를 깨달은 다음부터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기도하게 되었고, 수많은 기적적인 응답가운데 지금까지 살아오고 있습니다.
일년 가운데 이 주간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저와 여러분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고난을 기념하는 주간입니다. 예수님께서 당하신 십자가의 고난 까닭에 죄 많은 우리들이 용서함을 받고 구원을 얻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공로로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우리의 이름이 하늘나라 생명 책에 기록되었습니다. 이 귀한 고난 주간을 맞아 예수님이 내 구주이심을 더욱 깊이 깨닫는 은혜의 시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1. 왜 예수님께서 고난을 받으셨습니까
그 까닭을 이사야 53:5-6절의 말씀하시기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며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처음 창조하신 인간의 모습은 선하고 아름다웠습니다. 죄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사탄의 꾀임에 빠져 범죄 하므로 거룩하신 하나님과의 관계는 단절되고 말았습니다. 그 죄 값으로 지옥의 형벌이 모든 인간 앞에 놓여지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우리 인간들의 안타까운 처지에서 건지시고자 이 세상에 오신 분이 곧 하나님의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들의 죄 값을 담당하시고자 하나님의 아들 예수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습니다. 이 크신 은혜를 알고 뉘우쳐 죄악을 버리고 감사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가면 하나님은 모든 죄를 용서하십니다. 이러한 사람은 하나님과의 본래 관계가 회복되어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을 받아 누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요한복음 1:12)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들을 하나님은 사랑하셔서 이 험한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늘 함께 하시며 지켜주십니다. 그리고 이 세상의 삶을 다하는 끝날 우리의 본향인 하나님의 나라로 인도해 주십니다.

2. 주님께서 받으신 고난은 어떠한 고난입니까1) 비웃음의 고난을 받으셨습니다.
성경에 말씀하시기를 그의 옷을 벗기고 홍포를 입히며 가시 면류관을 엮어 그 머리에 씌우고 갈대를 그 오른손에 들리 고 그 앞에서 무릎을 꿇고 희롱하여 가로되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 하며 그에게 침 뱉고 갈대를 빼앗아 그의 머리를 치더라 희롱을 다한 후 홍포를 벗기고 도로 그의 옷을 입혀 십자가에 못 박으려고 끌고 나가니라(마태복음 27:28-31) 하셨습니다.
주님을 비웃고 멸시하며 주님의 인격을 모독하는 장면을 나타낸 말씀입니다. 사람이 견디기 어려운 것 가운데 하나가 인격의 모독입니다. 군대에서는 상관 모독 죄를 엄하게 다스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피조물인 인간이 창조주이신 주님을 비웃고 흉보며 모독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잠잠히 참으셨습니다. 왜 이러한 모독을 당하셨습니까 그것은 우리들의 죄 값입니다. 범죄한 사람은 다른 사람들로부터 멸시와 천대를 받게 됩니다. 우리들이 범한 죄, 우리들이 받아야할 멸시와 천대를 주님께서 대신 받으신 것입니다.
이에 대해 성경에 말씀하시기를 그가 곤욕과 심문을 당하고 끌려갔으니 그 세대 중에 누가 생각하기를 그가 산 자의 땅에서 끊어짐은 마땅히 형벌 받을 내 백성의 허물을 인함이라 하였으리요(이사야 53:8)라고 하셨습니다.
이제 주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나로 인해 주님께서 멸시를 받으셨는데, 이젠 나의 삶을 통해 주님께 영광을 돌려야 하겠습니다. 감사와 찬양으로 그리고 빛 된 삶을 통해 주님을 높여야 하겠습니다.
이렇게 주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만일 하나님이 저로 인하여 영광을 얻으셨으면 하나님도 자기로 인하여 저에게 영광을 주시리니 곧 주시리라(요한복음 13:32).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사람에겐 하나님이 주시는 영광이 임한다는 것입니다. 영광의 씨앗을 심었으니 영광의 열매를 거두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우리들은 매일 매일, 매 순간 순간마다 내가 무엇을 어떻게 하면 하나님께 영광될까 하는 거룩한 고민을 하며 살아야 하겠습니다.
2) 배신의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나귀를 타시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에 수많은 무리들이 몰려나와 호산나 찬양하며 환영했습니다. 그러나 그 환영은 잠시뿐 몇 일 뒤 이들은 하나같이 등을 돌리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을 박도록 아우성을 쳤습니다.
그뿐입니까 믿고 택한 제자들까지 다 배신하고 말았습니다. 3년동안 그들을 사랑하며 가르쳤는데, 그 제자 가룟 유다를 통해 은 30의 노예 값으로 팔렸습니다. 수제자 베드로까지 세 번이나 부인하며 저주하고 떠나갔습니다. 왜 이러한 현상이 있어졌을까요 예수님을 배반한 사람들을 살펴보면 몇 가지 유형이 있었습니다.
(1) 물욕에 눈이 어두워 배신한 사람이 있습니다.
이 사람은 은 30에 예수님을 팔아 넘긴 제자 가룟 유다 입니다. 물질로 하나님의 사람을 미혹하는 것은, 사탄이 6천년간 사용하는 유일한 도구요 방법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에 말씀하시기를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디모데전서 6:10)라고 하셨습니다. 돈은 귀한 것이지만 위험하기도 합니다. 살아가는데 한 순간도 없으면 안 되는 것이 돈이기에 사탄의 전략에 사람들은 쉽게 말려들게 됩니다.
아프리카 원주민들이 원숭이를 사냥할 때 조롱박을 잘 이용한다고 합니다. 원숭이들이 잘 다니는 길목의 나무 가지에 원숭이가 좋아하는 열매를 넣은 조롱박을 매달아 놓습니다. 그리고 그 조롱박에 원숭이의 손이 겨우 들어갈 만한 구멍을 뚫어놓습니다. 원숭이는 조롱박에 맛있는 열매가 들어있는 것을 확인하고 그 속에 손을 집어넣습니다. 원숭이는 조롱박의 구멍이 너무 작아 열매를 움켜쥔 손을 빼내지 못하게 됩니다. 사냥꾼들이 달려오면 쥐고 있던 열매를 놓고 도망을 가야하는데 이 원숭이에게는 그러한 지각이 없습니다. 결국 원숭이는 한 손을 조롱박 속에 넣은 채 사람들에게 붙잡히게 된다는 것입니다.
사람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재물에 대한 욕심은 사람의 판단을 흐리게 합니다. 착각에 빠지게 합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하나님을 섬기는 자녀들이 윤택한 삶을 살아가기를 바라고 계십니다. 그 방법을 가르쳐 주셨는데, 그 대표적인 것이 주님의 날을 잘 지키며, 하나님의 성물을 구별하여 하나님께 바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물질에 대한 우리들의 마음을 알아보시고자 한가지 제도를 마련하셨습니다. 그것이 곧 십일조입니다. 즉 소득의 십분의 일을 하나님의 것으로 정하여 하나님께 바치도록 한 것입니다. 이 말씀을 지키는 사람에 대하여 축복을 약속하시기를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황충을 금하여 너희 토지 소산을 멸하지 않게 하며 너희 밭에 포도나무의 과실로 기한 전에 떨어지지 않게 하리니 너희 땅이 아름다워 지므로 열방이 너희를 복되다 하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말라기 3:10-12) 하셨습니다. 물욕의 유혹을 이기고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그의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물질의 풍요로움을 준비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2) 자기의 기대에 어긋나므로 배신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호산나 찬양하며 환영하던 무리들은, 예수님이 이스라엘을 로마로부터 해방시킬 민족 지도자로 알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민족해방에 대해 관심조차 보이지 않으시고 그들의 잘못을 지적하며 회개만을 촉구하셨습니다. 이에 실망한 군중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도록 아우성을 쳤습니다.
그것은 그들의 잘못된 기대였습니다. 주님은 하나님의 택한 백성 이스라엘 민족이 로마에 지배를 받게된 원인을 지적하셨습니다. 그것은 곧 그들이 하나님께 범한 죄악이었습니다. 성경에 말씀하시기를 여호와의 손이 짧아 구원치 못하심도 아니요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도 아니라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내었고 너희 죄가 그 얼굴을 가리워서 너희를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이사야 59:1-2)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하나님의 아들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이고 말았습니다. 그 결과 이스라엘은 주 후 70년 로마에 의해 완전히 멸망을 당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후손은 2000년간 나라 없는 민족이 되어 고난을 겪어야 했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들 역시 우리의 소원만을 바라며 하나님께 구하는 어리석음을 범할 수가 있습니다. 이에 앞서 내 심령이 먼저 주님 앞에 바로서는 노력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 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요한삼서 1:2) 하셨습니다.
우리들은 육신의 것을 하나님께 우선적으로 요구하지만 하나님은 영혼이 먼저 하나님 앞에 올바로 서기를 바라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태복음 6:31-33) 하셨습니다.
(3) 핍박이 무서워 배반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예수님의 수제자인 베드로입니다. 로마군의 창과 칼이 무서워 주님을 세 번이나 부인하며 저주까지 했습니다. 이것은 베드로의 일생에 큰 오점이었습니다. 저가 저주하며 맹세하여 가로되 내가 그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 하니 닭이 곧 울더라 이에 베드로가 예수의 말씀에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생각나서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하니라(마태복음 26:74-75) 전설에 의하면, 베드로는 주님을 배반한 이일 까닭에 일생동안 새벽닭 울음소리를 들으면 깜짝 놀라 일어나 눈물로 회개를 했다고 합니다.
성도 여러분! 혹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생활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는 분이 계십니까 믿음으로 인내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 인정을 받으며 상급을 받는 기회이기 때문입니다.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을 이같이 핍박하였느니라(마태복음 5:11-12) 하셨습니다.

3. 세상의 죄악을 지시는 고난을 겪으셨습니다.
전혀 죄가 없으신 주님이 세상의 모든 죄를 짊어지셨습니다. 이 모습을 차마 보실 수 없으신 하나님은 얼굴을 돌리셨습니다. 그 결과 밝은 태양이 빛을 잃고 캄캄해졌습니다. 이 더러운 죄 짐을 지는 것이 너무 괴로워 주님은 기도하셨습니다.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가라사대 내 아버지여 만일 할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마태복음 26:39). 그러나 주님은 이 무거운 죄 짐을 지셨습니다.

4. 십자가의 고통을 겪으셨습니다.
십자가의 처형은 사형을 시키되 고통의 시간을 가장 길게 하기 위한 방법입니다. 이러한 십자가의 사형은 흉악범에 한해 적용을 했습니다. 로마 시민권을 가진 사람을 처형할 때는 죽음의 고통을 최소한으로 줄이기 위해 단두대에서 목을 쳐 죽였습니다. 그런데 우리 예수님께는 마지막 이러한 배려도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긴 시간 뜨거운 햇살아래 십자가위에서 양손과 양발에 못을 박혀 그 큰 고통을 당하시면서 돌아가셨습니다.
저의 죄 때문이었습니다. 여러분의 죄 때문이었습니다. 우리를 죄악에서 구원하여 하나님의 자녀를 삼기 위함입니다. 하늘나라의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 위함입니다. 이 땅에서 살아가는 동안 우리에게 복을 주시기 위함입니다. 이 큰 주님의 은혜까닭에 오늘의 우리들이 여기에 있습니다.
1974년도에 베스트셀러가 된 <생존>이란 책이 있습니다. 이 책의 내용은 눈 덮인 깊은 산 속에 불시착한 비행기안에서 살아남은 처절한 삶을 그린 것입니다. 1972년 10월 13일 우르과이의 몬테비데오를 떠난 전세 비행기 페어차일드 F227기가 칠레의 산티아고로 가던 중 악천후로 말미암아 안데스 산맥에 불시착을 했습니다. 양쪽 날개와 꼬리부분이 산봉우리에 부딪쳐 달아났고, 눈 덮인 산허리에 동체(同體) 착륙을 한 것입니다. 이 비행기에는 15명의 아마추어 럭비 선수들과 응원단으로 따라가는 친구 25명, 그리고 승무원 5명 등 모두 45명이 탑승하고 있었습니다. 그 중 더러는 불시착 중 즉사하고 더러는 부상을 입고 산 위에서 죽어갔습니다. 눈에 덮인 안데스 산맥은 등반 전문가들도 꺼려하는 죽음의 계곡으로 알려진 곳이었습니다. 정부당국은 10일간 이 수색을 한 후 아무 것도 찾지를 못하자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그 비행기에는 식량이 전혀 없었고 추위와 굶주림으로 67일간을 끝까지 견디어 구출을 받은 사람은 16명 뿐이었습니다. 이들의 생명을 두 달 이상 유지시킬 수 있었던 것은 죽은 사람들의 살을 뜯어먹으며 연명했기 때문입니다. 부상으로 여러 주간을 앓다가 산 위에서 죽은 니코라치 군이 아버지 앞으로 적은 메모에 이런 글이 있습니다. 아버지도 전혀 믿기 어려우실 일이 이 곳에서 벌어졌습니다. 죽은 친구의 살을 쪼개어 내는 일입니다. 이것 외에 다른 길이 없으니까요. 저도 이제 오래 살기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내가 죽은 뒤 나의 살이 친구들을 구원하게 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생존한 청년 호세는, 로저스 신부에게 이렇게 고백을 했습니다. 저는 학생 시절에 교회에 한 주일도 빠져본 적이 없었습니다. 부모님이나 동네 어른들은 모두 저를 칭찬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저는 저 죽음의 산 위에서 새로운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 동안 교회에는 다녔으나 '하나님의 집'에 살지 않았고, 신자라는 이름은 가졌으나 사실은 신앙이 없었다는 사실입니다. 저는 눈 덮인 산에서 죽음과 싸우며 지금 비로소 '하나님의 집'으로 돌아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교회에서 수 없이 성만찬 예식에 참석했으나 기계적으로 빵과 포도주를 든 것뿐이며 그 뜻이 내 가슴에 전해 오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산 위에서 죽은 친구의 살 조각을 손에 들었을 때 그것은 이미 예수 그리스도의 몸인 것을 알았으며, 정말 사랑이 무엇이며, 십자가가 무엇임을 깨달았습니다.
주님께서 당하신 고난 주간을 맞이하여 우리 모두에게 예수님께서 당하신 고난의 의미를 더욱 깊이 깨닫는 은총의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 진리를 깊이 깨닫게 될 때에 마음에 샘솟는 기쁨이 있을 것입니다. 강 같은 평화가 있을 것입니다.
이제 우리들은 주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주님의 영광을 위해 헌신하며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이 귀한 생명의 복음을 믿지 않는 가족과 이웃에게 증거하며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이러한 삶 속에 하나님의 은총이 충만하므로 삶의 승리와 행복이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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