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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예수 고난의 삼중주 (마 27:4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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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을 싫어하거나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예수님도 완전한 인간이시기에 그러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스스로 그 고난의 길을 가길 마다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의 고난이야말로 인류를 구원한 대 사건이었습니다. 생애에 있어 다른 고난들도 그렇지만 십자가에서 당하신 고난은 없었다면 우리가 구원받을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고난받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신 분, 그분이 바로 예수님입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편하고 평화로운 삶을 기대합니다. 예수님이라고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분은 인류를 위하여 기꺼이 고난을 감수하셨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잘못 때문에 당하는 고난도 당하지 않으려고 피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 다른 이들의 잘못을 위해 대신 그 고난을 자초하십니다. 주님이 왜 고난을 당하셨습니까 인간을 지극히 사랑하셔서 인간이 마땅히 당해야만 할 고난을 대신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당한 고난은 영혼육(靈魂肉)의 전인적 고난입니다.
육체적 고난
예수님께서 십자가 처형을 당한 사건은 극도의 육체적 고난을 말해 줍니다. 목요일 밤중에 겟세마네 동산에서 붙잡혀 가야바의 뜰에 끌려오셨습니다. 이곳에서 밤새도록 심문 받고 매 맞으며 모진 고통을 당했습니다. 그 집 가속들이 예수님을 주먹으로 치고 발로 찼습니다. 밤새도록 모진 고통을 당했습니다. 맞아서 얼굴이 퉁퉁 부어 올랐고, 수염은 뽑혔습니다. 침 뱉음을 당해서 얼굴은 침 범벅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로서 예수께서 당하신 모욕과 고통은 말로서는 표현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이게 웬일입니까 목요일 밤새도록 심문과 고문을 당하신 예수님은 금요일 새벽 빌라도의 뜰로 끌려갔습니다. 그리고 빌라도에게 심문을 당하신 후 사형언도를 받았습니다. 로마의 군인들은 예수께 홍포를 입히고 머리에는 가시관을 씌우고 채찍으로 등을 때렸습니다.
당시 로마 군인이 사용한 채찍은 다섯 줄기로 되었는데 줄기마다 그 끝에 쇠고리가 붙어있습니다. 한번 채찍으로 때리면 다섯 줄기가 몸에 파고 들어가고 채찍을 당기면 등이 그대로 짖어져 파헤쳐 졌습니다. 이것을 39번이나 맞았습니다. 예수님의 등은 다 찢어져 피가 강물처럼 흘러내렸습니다.
(마27:26) 이에 바라바는 저희에게 놓아주고 예수는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게 넘겨 주니라 이사야 선지자는 (사53:5)에서 이렇게 예언했었습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그렇습니다. 그 예언은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이미 여러 번 고문과 채찍질로 다 지치신 예수님께서 골고다 언덕길을 십자가를 지고 올라가시는 모습을 상상해 보십시오. 얼마나 힘드셨으면 끝내 못다 가 주저앉고 말았겠습니까 결국 예수님께서는 골고다 언덕에서 발가벗겨진 채 십자가에 양손과 발을 대못으로 박히신 후 십자가에 높이 매달렸습니다. 예수님은 너무 괴로워 절규하십니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
금요일 오전 9시에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은 6시간만인 오후 3시에 운명하셨습니다. 유월절에는 시체를 두지 않도록 하기 위해 예수님 좌우에 못 박힌 강도는 아직 죽지 않아서 해지기 전 그들을 십자가에서 내려놓기 위해 로마 군인들이 그들의 무릎을 꺾어서 죽였습니다. 예수님은 이미 운명했기 때문에 그들이 창으로 옆구리를 찔러 창이 심장을 꿰뚫자 물과 피가 흘러 내렸습니다. 이것이 누구를 위한 고난입니까
정신적 고난
육체적 고난보다 더 이기기 힘든 것은 정신적 고난입니다. 가장 믿고 사랑했던 제자 가롯 유다에게 배신당했습니다. 배신의 아픔은 당한 사람만 압니다. 유다는 총명하고 똑똑한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유다를 신뢰하고 사랑하여 돈궤를 맡겼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 돌아 온 것은 배신입니다. 예수님을 은 30냥에 팔아 넘겼습니다. 그 마음의 고통이야 오죽했겠습니까 얼마나 그 배신감이 크셨으면 이렇게 말씀하셨을까요 (막14:21) 인자는 자기에게 대하여 기록된 대로 가거니와 인자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그 사람은 차라리 나지 아니하였더면 제게 좋을 뻔하였느니라
예수님을 배신한 것은 유다만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체포당할 때, 제자들도 모두 주님을 버리고 도망갔습니다. 주님과 함께 죽는 곳까지라도 가겠다고 호언장담하던 수제자 베드로도 몇 번씩이나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하면서까지 예수님을 버렸습니다.
군중들은 어땠습니까 주님께서 십자가를 짊어지고 골고다 언덕길 올라가실 때 평소에 예수님께 사랑을 받고 병고침을 받고 은혜를 받았던 군중들마저도 주님을 향해 '저를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외쳤습니다. 주님께서 사랑을 베푸신 군중들이 돌이켜 그 사랑을 원수로 갚았습니다. 그러니 마음의 고통이 얼마나 크셨겠습니까.
여전히 그 반대자들은 인면수심(人面獸心)입니다. (마27:29,30) 가시 면류관을 엮어 그 머리에 씌우고 갈대를 그 오른손에 들리 고 그 앞에서 무릎을 꿇고 희롱하여 가로되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 하며 그에게 침 뱉고 갈대를 빼앗아 그의 머리를 치더라 갈대로 머리 맞은 것이 아파 고통이겠습니까 그들의 그 조롱이야말로 견디기 어려운 수모입니다. 입으로는 왕이라 하면서 개나 돼지 취급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예수님의 마음이 얼마나 찢어질 듯 하겠습니까 이것이 누구를 위한 고난입니까
영적 고난
사람들이 깨닫지 못해서 그렇지 가장 극한 고난은 영적 고난입니다. 욥은 고난하면 생각해야 할 분입니다. 그 어려운 고통 중에도 믿음을 굳건히 지킴으로 후대의 우리들에게 신앙적 귀감을 주는 분입니다. 그는 친구들의 악의적인 정죄 속에서 신앙적 고뇌를 이렇게 표현합니다. (욥10:1) 내 영혼이 살기에 곤비하니 내 원통함을 발설하고 내 마음의 괴로운 대로 말하리라 참으로 견디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영혼이 살기에 곤비할 정도의 극한 고난임을 알 수 있습니다.
아마도 예수님의 고난이 그랬을 것입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마지막 기도는 차라리 영의 절규였습니다. 예수님의 영적 고뇌는 그 기도의 내용에서 잘 드러납니다. (마26:39)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가라사대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자신의 뜻과 하나님의 뜻 사이에서 괴로워하는 한 인간의 모습을 봅니다.
육체적으로 당할 십자가 처형이라는 고통이 두려운 게 아닙니다. 제자들이 자신을 버리고 가서 그 배반감으로 마음의 상처를 입어서만이 아닙니다. 자신의 삶과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삶 사이의 괴리에서 괴로워하시고 있습니다. '아버지, 제 뜻은 이것입니다. 그러나 아버지의 뜻만 이루어지길 원합니다' 맞습니다. 그게 힘든 결정입니다.
시편 기자도 그런 경험을 이렇게 말했습니다. (시57:6) 저희가 내 걸음을 장애하려고 그물을 예비하였으니 내 영혼이 억울하도다 저희가 내 앞에 웅덩이를 팠으나 스스로 그 중에 빠졌도다 자신은 하나님의 의로운 뜻을 따라 살았는데 기다리는 것은 원수의 웅덩이입니다. 이런 영적 괴리는 오늘날 성도들이 많이 느끼는 것입니다. 믿는 자의 삶이 더 윤택하고 잘 되어야 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그게 그렇지 않을 때 신앙인은 영적 고민을 하게 됩니다. 이것은 세상의 그 어느 것보다 심한 고통입니다. 이것이 누구를 위한 고난입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종려주일에 예수님의 고난을 생각해 봐야 합니다. 예수님이 연주하는 영혼육으로 아우르는 고난의 삼중주를 들으십시오. 전인적 고통으로 우릴 사랑하시는 그 분의 연주를 들으십시오. 지금도 우리 주님의 고난의 삼중주는 그치지 않고 있습니다. 조금만 힘들어도 주저앉고, 잠시만 어려워도 불만에 쌓이는 우리의 삶을 회개해야 합니다. 이제는 예수님이 들려주는 고난의 삼중주의 아름다운 음률에 취할 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 이제 예수님께서 전 생애로 연주한 그 고난의 의미를 알고, 감사하는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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