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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오직 그의 나라를 구하라 (눅 12:2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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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에는 재물에 대한 탐심을 경계하신 말씀으로 은혜를 받았습니다.
오늘은 생활에 대하여 염려하지 말고 “오직 그의 나라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런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는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전자는 일반 청중을 상대해서 주신 말씀이라면 후자는 제자들을 상대해서 주신 말씀이겠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마음 가운데 세상 염려가 있는 것을 보셨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쫓으면서 어떻게 먹고 살 것인가 또, 항상 가난한 생활을 해야만 될 것이 아닌가 하는 염려로 심령이 어두웠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제자들에게 하나님의 지고한 사랑을 믿도록 믿음을 심고 “오직 그의 나라를 구하도록”하십니다.

Ⅰ. 까마귀를 보라! 백합화를 보라! (22-30)

지난 시간에는 어리석은 부자 비유로 이 부자는 재물이 많고 밭에 소출이 풍성하여 곡식 쌓아 둘 곳이 없으니 어찌할꼬 하는 복에 넘치는 고민을 하며 곡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 두리라 했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에게는 재물이 전혀 없습니다. 입을 옷도 없습니다. 이렇게 없어도 예수님은 “염려하지 말라”하셨습니다.
22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고 몸이 의복보다 중하니라”
제자들은 부자처럼 곡식을 어디 쌓을까, 창고를 어디에 짓고 어디에 무엇을 쌓아 둘까 하는 즐거운 고민이 아닙니다. 제자들은 지금 먹을 양식이 없고 입을 옷이 없고, 먹고 마실 물이 없는 것이 고민이었습니다. 든든한 스폰서가 있는 것도 아니였습니다. 하루하루 은혜 받은 성도들의 섬김을 받으며 살아가야 했습니다. 어떤 때는 배가 너무 고파서 안식일에 밀밭 사이로 지나가다가 밀 이삭을 잘라 비벼 먹은 것이 화근이 되어 심한 비방을 당하기도 했습니다.(눅6:1)
또, 사 천명 떡을 먹인 후에 떡 부스러기를 가져오지 않은 것으로 염려했습니다.(막8:16)
또, 제자들은 갈아입을 옷이 없어서 단 벌 옷에 세탁할 시간도 없어서 냄새가 나기도 했을 것입니다.
저는 검정색을 그리 좋아하지는 않지만 대단히 감사했던 때가 있었습니다. 신학교를 다니면서 전도사로서 일을 할 때인데 양복이라곤 검은 양복 한 벌 뿐이 였습니다. 여름이 되어도 검은 것을 입으니까 사람들은 하복이겠지 생각하고, 겨울이 되어도 또 생각하길 동복이겠지 생각하게 되니까 검은 양복이 참 좋았습니다. 또, 단벌이니까 자주 세탁을 할 수 없는데 어지간히 먼지가 올라도 괜찮았습니다. 이런 단벌 옷에 몇 달씩 먼지 묻은, 냄새나는 옷을 걸치고 다니는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왜입니까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고 몸이 의복보다 더 중하기 때문입니다. 목숨을 주시고 몸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거기에 필요한 음식과 의복을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실로 우리의 목숨과 몸을 섭리하시는 하나님이 거기에 따르는 부수적인 음식과 의복을 주시지 않을 리 없습니다. 그러므로 더 큰 문제를 생각지 않고, 부수적인 문제로 염려하는 잘못을 범하지 말아야 되겠습니다.
예수님은 부수적인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는 제자들에게 까마귀와 백합화의 비유를 들어서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심어 주셨습니다.
24절을 보십시오.
까마귀는 심지도 않습니다. 씨뿌려 농사하거나 거둬들이지도 않습니다. 내일을 위하여 곡식을 쌓아 둘 창고도 갖지 않고 모아 두지도 않습니다. 어리석은 부자처럼 창고를 헐고 더 크게 짓고 곡식을 쌓아 두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까마귀를 먹이십니다. 까마귀는 새의 일종이며 성지에서는 독수리처럼 시체를 뜯어먹고 사는 부정한 새로 일컬어집니다. 노아 홍수 때나 또, 기도하시는 예수님을 시험할 때 이 까마귀가 등장을 합니다. 이런 부정한 새, 부정한 까마귀(레11:5)까지도 먹이시는 하나님께서 하물며 제자들을 먹이지 않겠습니까 씨 뿌리거나 거둬들이거나, 농사하지 않은 까마귀... 부정한 까마귀까지도 먹이시는 하나님께서 택하신 성도들을 먹이시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또, 염려하는 제자들을 책망하셨습니다.
25절을 보십시오.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하므로 그 키를 한 자나 더 할 수 있느냐” 염려한다고 키가 커진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제가 아는 친구 목사님은 키가 작아서 키가 크라고 3년을 철봉에 거꾸로 매달리기도 하고, 키 큰다는 약을 써도 크지 않더랍니다. 염려한다고 키가 커지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염려하면 몸이 오그라들어 더 작아질 뿐입니다.
염려하는 말은 “분열”이라는 의미를 가집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이 염려되면 마음이 분열되어 영적으로 무기력에 빠집니다. 사람이 어느 하나에 결정을 내리지 못할 때, 고민이 생기고 능력 있게 일을 할 수 없습니다. 마음이 분열되면 할 수 있는 일도 못합니다.
“그런즉 지극히 적은 것이라도 능치 못하거든 어찌 그 다른 것을 염려하느냐”(26)
지극히 적은 것 하나라도 해결 할 수 없는 인간이 어찌 목숨을 위해 무엇을 먹을까 염려하느냐고 하십니다. 키든 생명이든 자신에게 속한 것이요, 그것의 지극히 작은 변경도 자신이 어떻게 못하는데 왜 다른 일을 염려하느냐 입니다. 작은 것이든 큰 것이든 하나님의 섭리에 속하므로 그 하나님을 믿고 염려하지 말 것입니다.
또, 백합화는 어떠합니까
27절을 보십시오.
백합화는 실도 만들지 않고 짜지 않습니다. 그러나 들에 핀 백합화를 생각해 보십시오. 얼마나 아름답고 향기롭고 영화롭습니까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자연 가운데 스스로 자라고 꽃이 피는 백합, 얼마나 아름답고 향기롭습니까 그러나 솔로몬이 자기의 권세로, 지혜로 온갖 부귀영화를 누리며 옷을 해 입어도 하나님께서 입혀 주신 백합화의 아름다움보다 못하다고 하십니다.
또,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지 우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십니다. 꽃은 잠깐 피었다가 곧 시듭니다. 성지에는 가물고 또 흔히 열풍이 불어 꽃이 곧 시들고 마른풀은 화목으로 아궁 속에 던지 웁니다. 이렇게 하찮은 들풀도 하나님께서 입히시고 아끼시는데 하물며 너희일까 보냐 너희를 입히시며 기르시지 않으랴는 것입니다.
이상에서 볼 때, 제자들은 아무 것도 염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왜 염려합니까 믿음이 적기 때문입니다.
창고도 짖지 않고, 곡식을 곡간 안에 쌓지 않아도 까마귀를 먹이시고 부정한 까마귀까지 아끼시고 먹이시는 그 하나님,
또, 실도 만들지 않고 짜지 않은 아무런 수고하지 않는 백합화를 입혀 주시고 내일 아궁 속에 던지 우는 들풀도 하나님이 친히 입혀 주시는 이 거룩한 사랑을 믿지 못하기 때문에 염려합니다. 지금 제자들이 염려에 시달리는 것은 세상 살기가 어렵기 때문이 아닙니다.
창조주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이 사랑의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부족한 탓입니다. 믿음이 부족할 때 우리는 끊임없이 염려에 시달릴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아무런 염려하지 말고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 창조주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가지는 것입니다.
요 11:40절 “믿으면 영광을 보리라” 했습니다.
막 9:23절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셨습니다.
히 11:6절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했습니다.
여기 오늘 본문에 예수님이 친히 하나님을 믿도록 말씀하여 주셨으므로 이 사랑의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영광을 맛보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까마귀를 기르시고, 백합화, 들풀도 입히시는 하나님이 당신이 친히 부르시고 택하신 제자들이나 성도들을 입히시고 기르시지 않겠습니까!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저와 여러분을 구원하시기 위해 독생자 예수님을 보내 주셨습니다.
로마서 8;32절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 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 했습니다. 이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모든 염려를 떨쳐 버리고 주의 은혜를 맛볼 수 있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29, 30절을 보십시오.
예수님은 한 번 더 하나님을 확실히 믿을 것을 촉구합니다.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하여 구하지 말며 근심하지도 말라 이 모든 것은 세상 백성들이 구하는 것이라(마 6:32절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아버지께서 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될 줄을 아시느니라” 했습니다.
여기에 구한다는 것은 추구하는 것입니다. 세상 백성들은 인생의 목적이 어떻게 하면 어리석은 부자처럼 잘 먹고, 잘 살 수 있는가 하는 데만 있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위해서 그들의 전 생애를 바치고 드립니다. 그러면서도 끊임없이 염려에 시달립니다. 이것이 이방인들이 살아가는 모습입니다.

Ⅱ.오직 그의 나라를 구하라(31-34)

그러나 이제 제자들이나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합니까
우리는 염려 대신에 해야 할 일이 무엇입니까
31절을 보십시오.
“오직 너희는 그의 나라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런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했습니다. 오직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를 구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는 생활이란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고 사는 생활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최고의 헌법이요, 절대적인 진리의 말씀으로 믿고 순종하며 사는 생활입니다. 또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생활입니다. 자기의 이기적인 욕심을 위해서 살지 않고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는 생활입니다. 힘써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고,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하도록 하는 생활입니다.
마태복음에는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고 했습니다.(마 6:33)
그러나 “오직(only)”라는 말이 훨씬 더 뜻이 강합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현세의 물질, 이 두 가지 문제는 우리 성도들에게 꼭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 중에 성도의 구할 것은 오직 하나님의 나라요,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는 삶이 우선되어야 합니다. 그 하나님의 나라가 우선되어야 할 것을 예수님이 말씀하여 주셨습니다. 그리하면 “이런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하셨습니다.
이런 것이란, 먹고, 마시고, 입는 일상생활의 모든 것을 말합니다.
이 모든 것을 주시리라 했으므로 주를 믿는 그리스도 인은 오직 그 나라를 먼저 구하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이 까마귀를 들고, 들에 백합화를 들고, 내일 아궁 속에 던지는 들풀을 들어서 이야기를 해 주셔도 아직 제자들의 마음속에는 두려움이 있는 것을 아시고 “적은 무리여 무서워 말라 너희 아버지께서 그 나라를 너희에게 주시기를 기뻐하시느니라” 했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무리는 컸지만 예수님의 신변의 제자는 극히 적은 무리였습니다. 그러므로 두려워했습니다. 이를 아신 주님께서는 적은 무리여 무서워하거나 두려워 마라 하셨습니다.
실로 예수님의 제자들은 그 뒤에 전도 일을 나갔을 때,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않았습니다. 전대나 주머니나 두벌 옷이나 지팡이나 아무 것도 가지고 간 것이 없지만 아무런 부족한 것이 없었다고 대답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또, 3년 동안 제자들에게는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그러면서 33,34절을 보십시오.
제자들에게 이런 삶을 살도록 방향을 주셨습니다.
“너희 소유를 팔아 구제하여 낡아지지 아니하는 주머니를 만들라 곧 하늘에 둔 바 다함이 없는 보물이니 거기는 도적도 가까이 하는 일이 없고 좀도 먹는 일이 없느니라 너희 보물이 있는 곳에 너희 마음도 있느니라” 하셨습니다.
소유를 팔아 구제하라는 것은 하나님께 대하여 부유 하라는 것이겠습니다.
또, 낡아지지 않는 주머니를 만들라는 것은 도적도 가까이 하는 일이 없고, 구멍을 뚫거나 좀도 먹는 일이 없는, 곧 하늘에 둔 바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쓰는 것이겠습니다.
이 세상에서 하나님께 대하여 부유하고 하나님 나라에 대하여 많이 쓰고, 하나님께 대하여 보화를 많이 쌓아 둔 자는 늘 맘이 그 곳에 가 있습니다.
재물이 있는 곳에 마음이 가 있습니다.
“보물이 있는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했습니다.
어느 집사님이 열심히 일해서 집을 하나 마련을 했습니다. 그래 놓으니 너무 좋아서 잠도 안 오고 이게 내 집인가, 신기하고, 어딜 갔다 가도 자지 못하고 집에 돌아왔답니다.
저도 한 번은 돈을 호주머니에 많이 넣고 있은 적이 있었습니다. 버스를 탔는데 차안에 누가 탔는지 그것도 보이지 않고, 사람들이 내 가까이 오지 않나 혹시 돈 있는 것을 알아차리고 접근하지나 않을까 하며 돈을 손으로 움켜쥐고 있었습니다. 온통 제 마음이 거기에 가 있었습니다.
이렇듯이, 보물을 하늘에 많이 쌓아 두면 우리의 마음, 우리의 모든 소망이 하늘에 있게 됩니다. 그러므로 보물을 하늘에 쌓는 일에 부유한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이것이 오직 그 나라를 구하는 일이겠습니다.
사람이 물질을 쓰는 것을 보면 그 사람의 마음이 어디에 있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물질을 선한 사업에 쓰며 나눠주기를 좋아하는 자는 장래에 자기를 위하여 좋은 터를 쌓는 것이요 참된 생명을 취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딤전6:18)
우리도 하나님 나라에 부유한 자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오직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는 자들이 되어 이 모든 것을 더해 주시는 은혜를 덧입는 성도, 그리고 더욱 하늘에 보물을 쌓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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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일 낮 예배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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