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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왕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 (마 0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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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에 왕이 나온다. 왕은 모든 권력을 자기의 손아귀에 쥐고 움직이는 사람이다. 사실 왕에게는 백성들의 의사는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오늘날 우리에게 왕과 비슷한 사람이 있다면 바로 대통령일 것이다. 민주주의가 발전하기는 했지만, 대통령이야말로 최고의 권력자이다. 우리들은 그 동안 여러 대통령을 경험했다. 백성들을 속여서 정권을 연장한 대통령도 있었다. 총칼을 앞세워 그 자리에 앉았던 사람도 있었다. 그 자리에 앉더니 탐욕의 배가 얼마나 크던지 수천억을 긁어 삼킨 사람도 있다. 사실 지금의 국민들의 어려움은 대통령들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오늘 본문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왕'으로 태어나셨다는 말씀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잘 이해가 가지 않는 말이다. 그러면서도 어느 정도 부정적인 이미지를 풍기는 말인 것 같기도 하다. 모든 왕이나 대통령이 자기 마음대로 권력을 휘두르는 전제정치의 영향이 크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이 말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의 의미를 바르게 이해할 수 없다.

1. 야웨께서 너희를 다스리시리라-왕을 세우지 않았던 이스라엘
이스라엘 사람들이 가나안에 정착한 것은 주전 13세기이다. 가나안에 정착한 후, 주전 1200-1020년까지의 약200년 동안은 사사시대였다. 사사는 하나님께로부터 특별한 능력을 받은 지도자였으나 그 직분은 세습되지 않았다. 사사는 위기가 지나면 다시 원래의 자기 자리로 되돌아 간다. 그러므로 사사직은 임시직이었다. 이들은 왕권을 소유한 자들이 아니었다. 사사시대에 이스라엘은 왕권은 하나님께만 속한 것으로 사람들은 믿고 있었다. 즉 사사시대의 이스라엘의 왕은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이셨다. 사사시대에는 중앙집권적인 정치권력이 없었으므로, 정규군대도 없었다. 이 때는 적이 침입하면 사사를 중심으로 민병대(民兵隊)가 조직되어 출동하여 물리쳤다.
사사기 8장에 보면, 기드온의 이야기가 나온다. 기드온은 이스라엘의 사사로서, 이스라엘을 미디안의 압제로부터 해방시켰던 대단히 중요한 인물이다. 그래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기드온에게 가서 당신과 당신의 아들과 당신의 손자가 우리를 다스리게 하여 주십시오(삿8:22)라는 말을 한다. 즉 기드온으로 하여금 왕이 되어 달라는 요구를 한 것이다. 여기에 대해서 기드온은 나는 여러분을 다스리지 않을 것입니다. 나의 아들도 여러분을 다스리지 않을 것입니다. 오직 야웨께서 여러분을 다스리실 것입니다(23) 하고 대답했다. 하나님이 우리의 왕이신데, 어찌 인간이 왕이 될 수 있느냐는 말이다.
그런데 기드온의 아들 아비멜렉이 백성들의 요구를 틈타 외가의 세력을 업고 자기 형제들 70명을 다 죽인 후 왕이 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발생하였다(삿9:1-6). 이렇게 즉위하는 과정에서부터 무자비한 살육이 자행되었다. 하지만 아비멜렉은 오래 가지 못했다. 훗날 데베스 성읍을 점령하러 나섰다가 망대에서 한 여인이 내리던진 맷돌 위짝에 맞아 급사하고 말았던 것이다(삿9:50-55). 아비멜렉이 저지른 죄에 대한 하나님의 형벌이셨던 것이다(삿9:56).

2. 왕을 세워 우리를 다스리게 하소서-왕을 세운 이스라엘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사람들은 주변 국가들의 왕정제도를 무척 부러워했다. 왜냐하면 그들이 외세 침입을 받는 것이 미흡한 국가 조직 때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신들 주변의 작은 국가들도 왕이 있어 일사불란하게 국민들을 다스리며, 또한 군대는 잘 훈련되어 있어 강력한 힘을 소유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정착한 때와 거의 같은 시대에 일단의 해양족들이 크레타섬을 중심으로 한 에게해지역으로부터 배를 타고 남부 해안 지역에 상륙하였다. 이들이 블레셋 민족이다.
현재 이스라엘 지역을 팔레스타인이라고 부른다. '팔레스타인'이라는 말은 '블레셋 사람'이라는 히브리 말 '펠리쉬팀'에서 왔다. 지금의 이스라엘 지역을 팔레스타인이라고 부르게 된 것은 로마제국 시대에 유대인들이 두 번씩이나 반란을 일으키자 '유대'라는 이름을 지도에서 지우고, 유대인들의 숙적인 블레셋 사람들의 이름을 따서 '팔레스타나'라고 바꾸어 버렸던 것이다. 로마가 세계를 다스렸기에 로마가 정한 이름이 당연히 공식적인 이름이 되어 그 후로부터 이 땅이 팔레스타인이라고 불리워지게 되었다. 다윗이 물리친 거인 골리앗 장군도 바로 블레셋 사람이었다. 요즘도 팔레스타인 지역이 분쟁에 휩싸여 있다. 현재 유대인과 지중해 남부 연안의 팔레스타인의 싸움은 이스라엘과 블레셋의 싸움의 연장인 셈이다. 물론 현재의 팔레스타인이 블레셋의 혈통을 순수하게 이어받지는 못했다고 해도 말이다. 하여튼 성경의 블레셋은 가나안 지역에서 가장 먼저 철기시대를 열었다. 청동기시대에 머물러 있던 이스라엘은 블레셋의 빈번한 침입을 당하게 되었다. 여기다가 사무엘의 아들들이 사사직을 올바로 수행하지 못하였다(삼상8:1-3). 그래서 이스라엘은 비상 대책의 하나로 왕을 세워 달라고 사무엘에게 가서 요청하였던 것이다. 마음이 잔뜩 상한 사무엘이 하나님께 기도하였다. 그때에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다.
백성이 너에게 한 말을 다 들어 주어라. 그들이 너를 버린 것이 아니라, 나를 버려서 자기들의 왕이 되지 못하게 한 것이다(7).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버렸다. 왕을 세움으로써 말이다. 왕정제도는 하나님이 원하셨던 제도가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무엘은 왕이 얼마나 백성들을 못살게 굴게 될 것인지를 조목조목 가르쳤다. 심지어는 마침내 너희들까지 왕의 종이 될 것이다(삼상8:17)라고 경고하였다. 사무엘은 왕권이 전제군주적 성격을 띨 수밖에 없음을 누누이 강조하고 있었다.
이렇게 해서 사울이 주전 1020년 경에 이스라엘의 초대왕으로 등극하게 되었다. 사울을 이어서 다윗과 솔로몬이 이스라엘을 지배하였다. 왕정제도는 계속되다가 남유다가 주전 587년에 바빌론에게 망하게 될 때까지 약 430년간 지속되었다.
그런데 성경에는 왕정제도 자체에 대해 부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즉 우리들이 모범적인 왕으로 알고 있는 다윗이나 솔로몬과 같은 왕에 대해서도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다. 다윗이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간음한 사건이나, 솔로몬이 왕위쟁탈전에서 형제까지 죽인 것(왕상2:19-25), 또 이방여인을 아내로 삼아서 우상숭배를 하게 된 것 등을 들어서 이들의 허물을 숨김없이 폭로하고 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왕이라고 하는 존재에 희망을 걸기도 했다. 그러나 실제 역사상 나타났던 왕들은 그렇지 않았다. 백성들은 화려한 왕궁의 살림을 감당하기 위해서 무거운 세금과 억압적인 부역 등 큰 희생을 치루어야만 했던 것이다.

3. 평강의 왕의 기대-메시야 사상
많은 사람은 왕들에게 큰 실망을 했다. 왕이라는 이름만 들어도 벌벌 떨 정도로 왕은 공포의 대상이 되어 버렸다.
그런데 하나님은 주전 8세기에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예언하셨다.
한 아기가 우리에게서 태어났다. 우리가 한 아들을 얻었다. 그는 우리의 통치자가 될 것이다. 그의 이름은 '기묘자, 모사, 전능하신 하나님, 영존하시는 아버지, 평화의 왕'이라고 불릴 것이다(사9:6).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자라서 열매를 맺는다(사11:1).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왕들에 의해 착취당하던 백성들에게 새로운 왕 곧 메시야가 나타나서 그들을 구원하실 것을 뜻한다. '메시야'는 기름부음을 받은 자라는 뜻인데, 다윗 왕조와 관련해서는 이상적인 왕을 가리킬 때 쓰는 말이다. 인간들이 왕이 되었을 때는 무력(武力)으로 다스렸지만, 오실 메시야는 공의로 다스려 세상에 평화를 가져올 것이다.

4.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왕의 탄생
그런데 예수님은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마1:1)으로 이 세상에 태어나셨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이 유대인의 왕(2)으로 태어나셨다고 증언하고 있다. 예수님은 왕중 왕이시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왕이시다. 우리가 그를 왕으로 인정하고 추대하여 왕이 되신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예수님을 우리를 다스리는 왕으로 삼으셨다. 예수 그리스도는 만물의 으뜸이고 궁극적인 주권자이시다. 우리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사랑하셔서 자기의 목숨을 버리심으로써 우리를 죄로부터 해방시켜 주셨다. 예수님만이 우리의 왕이시다. 오늘 우리는 옛날에 사람들 위에 군림하여 지배하던 그런 왕에게 더 이상 지배받지 않는다. 우리는 더 이상 바로나 시이저, 알렉산더나 징기스칸, 다윗이나 솔로몬 같은 왕을 인정하지도 않고 그들의 지배를 받지도 않는다. 그러나 실상 우리는 다른 많은 존재들을 왕으로 섬기지는 않는가 황금이라는 왕, 권력이라는 왕, 명예라는 왕, 성공이라는 왕을 모시고 거기에 절하고, 그들의 지배를 받고 있지는 않는가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왕이어야 한다. 모든 가치, 모든 목적, 모든 이상, 모든 야심과 소원을 예수 그리스도의 주권 아래에 둘 때에만, 곧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에게만 우리의 궁극적인 충성을 돌릴 때에만 오늘의 우리 세계의 문제, 우리 민족의 문제, 우리 교회의 문제에 대한 진정한 해답과 해결을 얻을 수 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을 궁극적인 왕으로 섬길 때, 이 세상에는 참평화가 찾아올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왕이라는 말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다스리신다는 말씀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임하는 곳, 예수 그리스도의 다스림이 있는 곳은 곧 하나님이 임하시는 곳이며 하나님의 다스림이 있는 곳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다스리시는 곳이 하나님의 다스리시는 곳이다. 하나님의 다스림이 있는 곳이 하나님의 나라이다. 하나님의 나라가 곧 천국인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다스림이 있는 곳이 하나님의 나라이며 천국인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영원한 왕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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