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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우리가 자랑하는 십자가 (고전 01: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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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사순절을 지나고 있다. 은혜를 받는 기간이요 예수님의 십자가를 깊이 생각하는 절기이다. 교회 전통에 의하면 부활주일을 앞둔 46일의 전날이 사순절에 해당한다. 그러나 그 기간동안 들어있는 주일은 즉 6주간은 예수님의 죽음을 기념하는 날이 아니라 부활의 승리를 기념하는 날이기에 거룩한 안식일로 지킨다.
특히 이 기간은 예수님께서 지신 십자가의 의미를 깊이 생각하는 절기이요, 이러한 과정을 통하여 우리의 믿음이 자라게 하는 과정이다.
십자가가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엄청나게 많이 있다. 하나님의 사랑, 예수님의 고난, 나의 구원이요, 주를 위한 헌신을 의미하기도 한다. 모두가 맞는 말이다. 여기에서 강조하고 싶은 것은 십자가는 하나님의 능력이 표현되어 있다.
그러나 유대인들이 생각하기에 십자가는 걸림돌이요 헬라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다. 그러나 십자가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가 담겨져있다.

그렇다면 왜 유대인들은 십자가를 그렇게 걸림돌로 생각하였는가 유대인들은 기적을 원하는 사람들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건이 있는데 그것은 출애굽의 사건이다.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출애굽의 사건을 보라. 얼마나 하나님의 기적의 사건이 많이 나타나 있는가
모세의 부름을 받을 때에 손이 문둥이 손으로 되었다가 다시 정상적인 손으로 변화되었다. 지팡이를 던지니 뱀으로 변했다가 다시 지팡이로, 열가지의 재앙, 홍해가 갈라지는 경험, 여리고 성이 무너지는 역사, 등이 있다.
복음서를 읽어보라. 예수님에게 시험한 내용은 기적을 원한다. 돌이 떡으로 변해라. 높은 성전에서 뛰어 내려보라는 기적을 원한다. 십자가 상에 달렸을 때에도 마찬가지이다.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그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즉각적인 기적을 원하는 것이 유대인의 중요한 가치관이다.
이러한 전통을 가졌기 때문에 그들이 기다리는 메시야는 강력한 힘을 가진 마치 슈퍼맨과 같은 사람이 메시야로 올 줄을 알았다. 그런데 예수님은 어떻게 되었는가 말도 없이 십자가 상에서 목마르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이같은 말을 하면서 아무런 힘도 없이 연약하게 죽고 말았다.
이같이 유대인은 기적을 원한다. 그러나 십자가의 사건은 연약하게 예수님께서 돌아가셨으니 십자가가 얼마나 믿음의 걸림돌이 되겠는가
그러나 헬라인은 유대인들과 다른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지혜이었다. 헬라인들에게 철학이 발달한 것을 잘 알고 있다. 이같은 전통에서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와 같은 철학가가 나왔고 그 전통에 이어서 오늘날 서양철학이 전개되었다.
즉 헬라인들의 관심은 인간의 생각하는 이성에 한계를 두는 것이다. 십자가 상에서 힘없이 죽어가신 예수님을 생각할 때에 그 분이 메시야라고 할 때에 얼마나 그것이 미련한 것인가
그러나 바울은 우리에게 분명히 말씀하고 있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십자가는 하나님의 지혜이다. 우리는 유대인의 전통을 따르는 자들도 아니요, 우리는 헬라인의 철학을 따르는 자들이 아니다. 우리는 바울을 통하여 전달된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하나님의 자녀들이다. 누가 뭐라해도 십자가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십자가는 하나님의 지혜가 충만한 줄 믿자.
그런데 유대인과 같은 생각을 하는 우리도 얼마나 많이 하는가 기적이 나타나면 믿겠다는 생각이다. 내가 사업을 하는데 이 사업이 잘되면 하나님을 믿고 잘 되지 않으면 하나님을 믿지 않겠다는 생각. 불치의 병이 걸렸는데 이 병이 하나님의 기적으로 나으면 믿지만 병이 낫지 않으면 않 믿겠다는 생각. 기도했는데 자녀가 시험에 합격하면 믿고 떨어지면 믿지 않겠다는 생각. 물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잘 되도록 우리를 도와 주신다. 그러나 우리의 신앙이 기적에 뿌리를 둔 믿음이라면 그것은 분명히 잘못된 신앙이다. 우리의 믿음은 오직 예수 십자가에 중심을 둔 믿음이어야 한다.
오늘날 우리 주변에 악이 많이 있는데 이 악을 하나님께서 확 쓸어버리지 아니하시는가 일본사람들이 우리 나라를 침략하여 많은 사람들을 괴롭히고 젊은 여자들을 정신대로 잡아가는 과오를 범했다. 어떤 정신대 출신의 할머니는 새롭게 태어난다면 가정을 이루고 예쁜 딸을 나아 길러보는 것이 소원이라는 가슴아픈 이야기를 들었다. 오늘날 이북에서는 몇 사람의 이득을 위하여 수 많은 사람들이 고생하고 있는데 당장 몇 사람이 죽어서 통일이 되면 좋겠는데 하나님은 지금 뭘하고 계시는가 화끈하게 뭔가 보여 주시면 얼마나 좋겠는가
죄 없는 사람들이 가스실에서 억울하게 죽어가고 있을 때에 하나님은 뭘하고 계시는가 뭔가 확실한 기적을 통하여서 못된 사람들을 거두어 가시지 이렇게 남겨두고 계시는가 하는 생각이 들 수가 있다. 그러나 우리의 믿음이 즉각적인 기적에 근거를 두면 십자가는 걸림돌이 되고/ 만다. 우리는 기적과 표적이 근거를 둔 믿음이 아니라 십자가에 중심을 둔 믿음이어야 한다.
바리새파 사람들이 예수님에게 시비를 건다. 나에게 하늘로부터 내리는 표적을 요구하였다. 예수님의 대답이 어찌하여 이 세대가 표적을 요구하는가!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이 세대는 예언자 요나의 표적 밖에는 아무 표적도 받지 못할 것이다. 요나가 큰 물고기 뱃속에 사흘 밤 동안 있었던 것 같이 예수님께서 땅 속에 사흘동안 있을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우리가 엄청난 기적과 표적을 원하지만 이미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부활하신 그 사건이 충분한 기적과 표적이 이루어 진 줄로 믿으라.
반대로 오늘날 헬라인과 같은 사람도 얼마나 많은가 예수의 사건은 이성적이지 못해서 못 믿겠다는 것이다. 지혜롭지 못해서 믿지 못하겠가는 생각이다. 지금 얼마나 과학이 발달된 시대인데 어떻게 처녀의 몸에서 예수가 탄생하다니. 도저히 지혜롭지 못하고 이성에 맞지 않아서 믿지 못하겠다는 사람들이 있다. 어떤 사람은 어떻게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날 수가 있을까 이런 성경의 내용을 볼 때에 십자가의 사건은 엉터리같은 사건이라서 믿지 못하는 자들이 있을 수도 있다.
이같이 오늘날에도 유대인이나 헬라인 같은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있는가 기적을 보여줘야 믿겠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뭔가 생각데로 착착 맞아져야 믿겠다는 사람이 있다.
그러나 바울이 우리에게 전한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능력이다. 인간의 눈으로 보기에는 약해 보였지만 그 십자가는 엄청난 힘을 가진 하나님의 능력이다. 산에 호랑이하고 토끼하고 있다. 어떤 것이 힘이 세겠는가 물론 호랑이의 힘이 더 세다. 그러나 세월이 지날 수록 호랑이가 많아지는가 토끼가 많아지는가 토끼가 더 많아진다. 유대인들은 강한 힘을 가진 메시야, 기적을 일으키고 어려운 문제를 즉각 풀어줄 호랑이와 같이 힘이 센 메시야를 원했지만, 예수님은 마치 힘없는 어린 양처럼 십자가에 못박혀 죽고 말았다. 호랑이와 같이 강한 힘을 지닌자가 기적을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어린 양과 같이 연약해 보이지만 호랑이보다 더욱 많아지는 기적을 일으킨다.
바울은 로마서에서 나는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이 복음은 유대 사람을 비롯하여 그리스 사람에게 이르기까지 모든 믿는 사람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사람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가 친구들과 사이좋게 지내는 것도 중요하다. 대학입시에 합격하는 것도 중요하다. 풍성한 양식이 있어서 배부르게 먹고 사는 것도 중요하다. 성공해서 많은 사람들에게 명예와 존경을 받으면서 사는 것도 중요하다. 민주주의 나라에서 평화롭게 살아가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이런 것들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우리의 죽음의 문제이다. 우리의 육신이 아무리 행복하게 살았다고 해도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불안하게 산다면 어떻겠는가 비록 삶 속에 고통이 있어도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고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 중에 바라보며 살아간다면 얼마나 행복한가
유대인들은 육신의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는 기적을 일으키는 메시야를 원했지만, 예수님의 십자가는 육신의 문제뿐만 아니라 우리의 영적인 문제를 해결해 주었다. 그래서 바울은 십자가는 하나님의 구원하시는 능력이라고 우리에게 말씀을 전하고 있다. 바울의 마음 속에 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몸부림을 친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 무엇이 우리의 마음에 구원의 기쁨을 줄 수 있는가 물질인가 명예인가 학식인가 건강인가 아름다움인가 어떤 것도 우리에게 구원의 기쁨을 줄 수 있는 능력이 없다. 오직 예수의 십자가는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다.
오늘날 우리 주변에 헬라인과 같은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성경은 무식해서 읽지 못하겠다. 어떻게 죽은 사람이 다시 부활할 수 있는가 이 시대가 어떤 시대인데 그렇게 원시적인 내용을 읽고 있는가 그러나 그렇지 않다. 여호와의 말씀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
물론 사람은 참으로 지혜롭다. 요즘에 생명복제가 사회문제가 되어있다. 영국에서 양을 복제하더니 얼마전에는 미국에는 원숭이를 복제하고 우리나라에서도 원숭이도 똑같이 복제할 수 있다고 한다. 이 말은 사람을 똑같이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건이 있자 몇일전 타임지에서 재미있는 기사를 실었다. 만일 히틀러를 복제해 낸다면 그 사람의 생각까지도 똑같이 복제해 낼 수 있을까 아니다. 히틀러의 겉모습은 똑같이 복제해낼 수가 있어도 그의 성격과 영적인 상태는 다를 수 밖에 없다. 사람이 지혜로운 것은 대단한 일이지만, 아무리 지혜롭다고 할찌라도 하나님의 지혜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십자가의 사건은 하나님의 가장 큰 역사적인 사건이다. 이 사건 속에 얼마나 하나님의 지혜가 담겨져 있겠는가
유대인들은 기적을 원하였고 헬라인은 지혜를 원하였지만 우리는 십자가를 통하여 하나님의 능력을 깨닫고 하나님의 지혜를 깨닫기를 바란다. 이것이 우리의 자랑이요, 십자가를 통해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를 경험하며 살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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