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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예수님의 감사 (마 14: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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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성경에서 감사라는 말이 구약에서는 ‘야다라 하는데 이 말의 뜻은 찬양하다. 송축하다. 찬송하다’입니다. 신약 유레오(ευλοω)라는 말인데 이 말은 ‘감사를 돌리다. 감사한 마음이나 생각을 나타내 보이다. 찬양하다.’라는 말입니다.
이런 말들을 써서 다윗은 시145:1-2 “왕이신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를 높이고 영원히 주의 이름을 송축하리이다 내가 날마다 주를 송축하며 영영히 주의 이름을 송축하리이다”라고 하셨습니다.
다니엘은 자기를 헤치려는 조소에 어인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그 방의 예루살렘으로 향하여 열린 창에서 전에 행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단 6:10)라고도 하셨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감사에 대하여 히13:15 “이러므로 우리가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미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이는 그 이름을 증거하는 입술의 열매니라”라고 하셨고, 사도 바울도 골로세 교회에 보낸 편지에서 골 1:3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감사하노라”하였으며 에베소서에서는 엡 5:20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무엇을 감사하셨는가를 생각하면 우리가 하나님께 무엇을 감사해야 하는지 잘 알 수가 있을 것입니다.

1. 본문 말씀에 보면 주님은 음식물을 인해서 감사하셨습니다.
이것은 주님께서 세상에 사시면서 생명과 삶을 주신 하나님께 대한 감사를 말합니다.
예수님은 5천명을 먹이시기 전에 먼저 감사하셨습니다.:19 “무리를 명하여 잔디 위에 앉히시고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 사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떡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매”. 5천명 앞에서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는 너무나 보잘것없고 초라한 음식이지만 예수님은 5천명이 보는 앞에서 하늘을 우러러 큰 소리로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축사하시고 라는 말씀은 감사 기도하셨다는 말씀입니다.
마가복음 8:6-7에 있는 말씀에 보면 떡 7개와 생선 두어 마리로 4,000명을 먹게 된 사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막8:6-7 “예수께서 무리를 명하사 땅에 앉게 하시고 떡 일곱 개를 가지 사 축사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어 그 앞에 놓게 하시니 제자들이 무리 앞에 놓더라 또 작은 생선 두어 마리가 있는지라 이에 축복하시고 명하사 이것도 그 앞에 놓게 하시니” 이 말씀에 보면 마가는 4,000명을 앞에 두고 주님께서는 떡 일곱 덩어리를 가지시고 감사 기도하셨고 또 작은 생선 두어 마리를 가지시고 또 감사 기도를 하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런 대중들 앞에 이런 초라한 음식이 무슨 감사의 조건이 되겠습니까 마는 주님은 이 음식들에 대하여 감사의 기도를 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식사하시기 전에는 언제나 감사 기도를 하셨습니다.

식사시간의 감사는 단순히 먹는다는 것에 대한 감사가 아닙니다. 이 감사는 삶에 대한 감사요, 건강하게 해 주신 하나님께 대한 감사며, 이 감사는 우리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감사고 가장 실제적인 감사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하루 세끼를 먹는 것이 우리 삶의 기본적인 요소요, 가장 실제적인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하루 세끼의 식사를 할 수 없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희망도 없고 사랑도 없고 영광도 없고 아무 것도 있을 수 없으며 삶 자체도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런 기초적이고 실제적인 삶에 대한 감사를 잃어 가고 있습니다.
마음이 강퍅해지고 교만하고, 더 많은 것, 더 큰 것을 바라는 탐욕과 욕심으로 인해 진실로 소중하고 값어치 있는 것에 대한 감사를 잃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먹는 것에 대한 이 기본적인 감사는 이런 삶의 기초적인 의미 이외에 참으로 소중한 교훈을 있습니다.
음식을 주신 하나님께서 감사하면 그 음식이 어떤 음식이든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해지기 때문입니다. 이 문제에 대하여 바울은 (고전10:25) “무릇 시장에서 파는 것은 양심을 위하여 묻지 말고 먹으라” (고전10:26-27) “이는 땅과 거기 충만한 것이 주의 것임이니라 불신자 중 누가 너희를 청하매 너희가 가고자 하거든 너희 앞에 무엇이든지 차려 놓은 것은 양심을 위하여 묻지 말고 먹으라”라고 하시고 이어 이 이유를 바울은 디모데 전서 4:3절 이하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딤전 4:3-5 “식물은 하나님이 지으신 바니 믿는 자들과 진리를 아는 자들이 감사함으로 받을 것이니라 하나님의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니라”하셨으니 이 말씀은 음식이 어떤 종류의 음식이던지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한 음식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거룩한 음식을 먹는다는 다는 말씀이 무슨 말씀입니까

돼지는 되지 먹이를 먹고 소는 여물을 먹고 사자는 다른 짐승의 고기를 먹는 것이며 양은 풀을 먹는 것입니다. 즉 그 먹이가 어떤 것인가에 따라 그 생물의 이름이 달라진다는 말입니다. 사람이 죄인의 음식을 먹으면 죄인입니다. 즉 우상 앞에 바쳐진 음식을 먹고 악한 음식을 먹으면 악한 사람이 되고 죄인이 됩니다.
그러나 거룩한 음식을 먹으면 거룩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다 똑같은 음식을 먹는다고 생각을 말아야 합니다. 음식을 만든 재료는 같을 수 있으나 죄인의 음식이 있고 거룩한 음식이 있으니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감사하며 먹는 음식을 거룩한 음식으로써 성도들은 더욱 거룩하게 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 사회에 이 음식 문화 문제가 아주 심각합니다. 먹는 음식으로 인해 각종 질병이 생기고 풍기가 문란해지고 사회가 어지러워지고 죄인이 더욱 타락해 지는 것입니다. 인간의 최초의 죄가 먹어서는 안되는 음식을 먹음으로 생겼다는 것을 알아야 하고“(창3:6)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임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실과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한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 지라”하셨고 노아 홍수 때도 사람들이 “(마24:38)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라고 하셨으니 멸망의 죄악이 이 먹는 문제로부터 발생함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또한 죄인들이 누리는 영생도 먹는 것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창3:22)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보라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같이 되어 그가 그 손을 들어 생명 나무 실과도 따먹고 영생할까 하노라 하시고”

주님께서도 성만찬에 대해서 말씀하시기를 (요6:50) “이는 하늘로서 내려오는 떡이니 사람으로 하여금 먹고 죽지 아니하게 하는 것이니라” (요6:54-36)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 안에 거하나니”하셨습니다.

미국에서 한 그리스도인의 농부가 도시에서 점심 시간이 되어서 식당에 들어가서 식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음식이 왔을 때 그는 조용히 머리를 숙여 식사 기도했습니다. 그때 옆 테이블의 한 청년이 그를 놀려 주려고 큰 소리로 물었습니다. “여보세요. 농부 아저씨 당신이 사는 시골에서는 아직도 그런 짓을 하나요” 그러나 농부는 점잖게 대답했습니다. “아니라네 돼지들은 하지 않는 다네.”

2. 예수님은 단순한 자들에게 주신 영적 통찰력을 인하여 감사하셨습니다.
이 감사는 신령한 은혜에 대한 감사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영적 진리들을 단순하고 순진한 사람들에게는 나타내시고 스스로 지혜로운 척하고 자기의 지식과 경험을 앞세운 자들에게는 숨기신 것을 감사하셨습니다.
바리세인들과 서기관들은 스스로 잘난 척했습니다. 그들의 마음속에는 종교적 교만이 가득 차 있었습니다. 배우지 못한 사람, 자기들과 신분이 다른 사람들을 업신여겼습니다. 그들의 교만이 가득 차서 예수님까지 시험했습니다. 그러나 사실 그들에게는 영적 통찰력이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많은 기적을 베푸시고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셨지만, 그들은 예수님을 메시아이심을 알지 못했고, 믿지 않았고,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스스로 지혜 있는 척하고 슬기롭고 배운 척하는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이런 것 저런 것이 가득 차 있기 때문에 세상적인 통찰력은 있을지 몰라도 영적인 통찰력은 있을 수 없습니다. 바울 사도께서 로마서에서 말씀하신 대로 입니다. (롬1:21-23)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우준하게 되어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금수와 버러지 형상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이들에게 하신 주님의 말씀은 무서운 경고였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 날에 소돔 땅이 너희보다 견디기 쉬우니라.”하셨습니다. 그리고 나서 예수님께서 이렇게 기도하셨습니다. 마11:25-26 “그 때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

어린아이들에게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는 영적 통찰력을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라 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어린아이는 어린아이처럼 단순하고 마음이 순진하고 청결한 사람을 말합니다. 이 경우에 제자들을 마음에 두시고 하신 기도입니다.
그들이 어떤 사람입니까 어부였던 베드로 안드레, 야고보, 요한. 세리 마태... 세상적으로 볼 때 무식한 제자들이지만 단순하고 순수하기에 영적인 능력이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더냐 너희는 나를 어떻게 보았느냐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이른 알게 하신 이는 혈육이 아니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시니라.”(마16:17)라고 하셨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자신을 알아 볼 수 있는 영적 능력을 주셨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여러 성도들에게 (고전1:26)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 있는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 하도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런 사람들일지라도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하나님을 아는 지혜를 주시고 믿음을 주시고 영적 통찰력을 주셔서 (고전1:27-29)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 나니 이는 아무 육체라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라고 하신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골1:26) 이 비밀은 만세와 만대로부터 옴으로 감취었던 것인데 이제는 그의 성도들에게 나타났다”고 하시고 그 비밀은 “(딤전3:16) 크도다 경건의 비밀이여, 그렇지 않다 하는 이 없도다 그는 육신으로 나타난 바 되시고 영으로 의롭다 하심을 입으시고 천사들에게 보이시고 만국에서 전파되시고 세상에서 믿은 바 되시고 영광 가운데서 올리우셨음이니라”라고 하셨습니다.

세상의 지혜가 부족해도, 세상의 능력이 많지 않아도, 문벌이나, 가문이 좋지 않아도 하나님의 뜻을 깨닭게 알 수 있는 영적인 통찰력이 있다면 감사 또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들의 자녀들이 학교 공부를 잘하지 못하고, 영악하지 못하고, 자기 몫을 챙기지 못한다 할지라도 악인의 꾀를 좇지 않고, 죄인의 길에 서지 않고,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않지 않는 순수함과 단순함이 있다면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즉 하나님 잘 믿고 교회 잘 다니는 것이 영리하고 영악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거스르는 죄인 되는 일보다 100배 1000배 더 좋은 일입니다.

3. 예수님은 자신의 죽음을 인해 감사하셨습니다.
이 감사는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잘 감당하게 된 것을 감사하는 감사입니다.
“(마 26:26-28) 저희가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 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을 주시며 가라사대 받아 먹으라 이것이 내 몸이니라 하시고 또 잔을 가지사 사례하시고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곳 언약의 피니라.”하셨습니다

자신의 몸을 상징하는 떡을 가지시고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예수님은 자기 한 사람이 희생함으로 하나님의 택함 받은 모든 자녀들이 구원을 얻고 영생을 감사했습니다. (요12: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주님의 죽으심은 정말 비참하고 참혹한 죽음이셨고 말할 수 없는 고난과 멸시로 가득한 죽음이셨습니다. 그러나 그 죽음은 많은 사람의 죄를 대속 하신 대속의 죽으심이 였습니다.

사람이 어떤 모습으로 죽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무엇을 위해 죽었는가가 중요한 것입니다. 물에 빠져 죽던 불에 타 죽던 죽은 사람은 영혼이 그 몸에서 떠나는 순간에 아무 것도 느끼지 못하고 알지 못합니다. 그러니 무엇을 위해 죽었는가에 따라 그 영혼은 천국에 가기도 하고 지옥에 가지도 합니다. 그래서 어떻게 죽었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무엇을 위해 죽었는가가 중요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로서 일생을 마친 사도 바울은 자신을 빌립보 교회 성도들의 “믿음과 봉사 위에 관제로 드릴지라도 나는 기뻐하고 너희 무리와 함께 기뻐하리라”라고도 하셨습니다. 그리고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은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 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나의 희생으로 많은 사람들에 유익을 줄 수 있다면 감사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죽어 많은 사람들에게 유익을 준다는 이 진리는 사실 인간과 모든 생물체의 생존의 원칙입니다. 부모가 희생을 해야 자식들이 잘되고 어미가 희생을 해야 세끼가 잘 자라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당신이 죽으심으로 이러한 생존의 대 원칙을 다시 한번 모든 사람들에게 가르치셨습니다.

그러나 오늘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원칙을 거스려 자기만을 위해 살려고 하고 모든 사람들이 자기를 위해 살아 주기를 바라는 극도의 이기주의에 빠져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고상하고 거룩한 감사를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귀신이 득실거리고 지옥이 되는 세상은 바로 이기심으로 가득한 인간들이 살아가는 세상입니다. 천국은 어떤 곳입니까 내가 희생을 해서 다른 사람을 구원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만들어 내는 아름다운 세상입니다.

사랑이 무엇입니까 이것도 다른 사람을 위해 지신을 희생하는데서 시작이 되고 완성되는 것입니다. 덕이 무엇입니까 이것도 다른 사람을 유익하게 하는 것을 말합니다. 은혜가 무엇입니까 이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희생에 대한 감사가 있고 그 가치를 알 때에 비로써 우리들에게 진실한 아름다운 세상이 이루어지고 행복한 세상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감사! 우리 모두 주님으로부터 감사를 배워야 합니다, 그리고 그 감사를 실천해야 합니다. 그래야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질 것입니다.

1. 거룩한 양식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했습니다. 즉 삶에 대한 감사입니다.

2. 단순한 자들에게 주신 영적 통찰력에 대한 감사를 하셨습니다.

3. 당신의 죽음에 대한 감사를 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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