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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죽도록 충성하라 (계 02: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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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봉독한 말씀은 서머나 교회에 보낸 서신 가운데 한 말씀입니다.
서머나는 에베소 북쪽에 위치한 도시이며 에게해를 끼고 있으며 ‘멜레’라는 강이 흐르고 있는 현존한 도시입니다. 그리고 서머나 교회는 AD53-56년경 바울의 제3차 전도 여행 시에 바울에 의해서 세워진 진 것입니다(행19:10). 당시 서머나 교회는 아세아 일곱 교회 가운데 칭찬만 받은 교회로 유명한 교회입니다. 그 교회의 담임 목사인 폴리갑은 그 지역 교회의 감독으로서 요한의 제자였습니다. 그는 교회를 위해 죽기까지 충성한 분으로서 모든 사람에게 존경을 받은 분이었습니다. 그는 주후 155년에 빌라델비아 성도 11사람과 함께 화형으로 순교하였습니다. 한 교회에서 순교자 12명이 나왔다는 것은 이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그것이 평신도들의 순교였기 때문에 더 귀한 일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모든 사람은 죽기를 싫어합니다. 이유는 죽음이란 고통과 괴로움의 극치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죽지 않을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모두가 그렇지만 사람이 마음대로 되는 일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 이유는 생사 화복이다 다 하나님께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것이 죽음입니다. 그러므로 죽음을 피하려고 몸부림치는 어리석은 사람이 아니라 언제나 죽음에 대해서 준비된 성도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언제 어디에서 죽음을 맞던 지간에 준비된 사람은 두려움이 없을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보면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자기만의 유익을 생각하고 그저 살 궁리만 하는 사람에게는 ‘충성’이란 없는 것입니다. 언제 하나님의 부름을 받아도 여한이 없이 준비된 사람은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일을 위해서는 어떤 손해나 죽음까지도 두려워하지 않고 그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충성입니다.

마10:39절에 보면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고 했습니다. 사람이 잘 살려고 발버둥친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람의 생명이 하나님의 장중에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이 진리를 깨달은 사람은 어떤 손해나 죽음을 무서워하지 않고 주를 위해서 충성을 다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실 두려워하지 않고 최선을 다하는 충성스러운 사람에게는 심지어 죽음도 그에게 복이 되는 것입니다.

잠14:32절에 보면 “...의인은 그 죽음에도 소망이 있느니라”고 했고, 계14:13절에는 “...자금 이후로 주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라고 했습니다. 당시 소아시아의 모범적인 서머나 교회 신자들의 충성스럽고 아름다운 신앙생활을 묵상하면서 피차 은혜를 받고자 하는 것입니다.

1.‘죽도록 충성하라’는 말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헬라 원어로 ‘피스토스’인데 그 뜻은 신실함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믿음’이란 말도 바로 여기서 파생된 말입니다. 이런 점에 있어서 ‘충성’이란 믿음으로 사는 사람의 생활의 일면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진정한 믿음의 소유자라면 우리에게 구원의 믿음을 주신 주님을 위해서 충성을 다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과 충성, 불신과 불 충성은 동일한 관계를 가지는 것입니다.

죽도록 충성하라는 의미를 다섯 가지로 설명해 보겠습니다.
첫째는 하던 충성을 더 하라는 것입니다.
이미 충성했고, 최선을 다했지만 그것으로 만족하거나 자족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계속해서 최선을 다하라는 것입니다. 훈련의 의미와 가치는 지속성에 있습니다. 게임이 끝났다고 훈련을 중단하는 선수는 다음 경기에 이길 수가 없는 것입니다. 게임이 있던 없든 훈련을 계속해야 강한 선수가 될 수 있습니다.

둘째는 작은 일에 소홀히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시계를 조립하거나 자동차를 조립할 때에 적은 것이라고 소홀히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더 신중하게 다루어야 합니다. 사람들은 감기를 크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감기가 만가지 병의 원인이 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충성도 마찬가지입니다. 작은 일에 충성된 자는 큰 일에도 충성하고, 작은 일에 불의한 자는 큰 일에도 불의하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셋째는 드러나지 않는 일에 최선을 다하라는 것입니다.
일이란 성과가 당장 눈앞에 드러나는 일이 있는가 하면, 드러나지 않는 일이 있습니다. 우리가 지나치게 실적 위주의 일에 치우치다 보면 거짓과 형식에 빠지기 쉬운 것입니다. 그런데 신령한 일은 오늘 당장 그 실적이 드러나지 않습니다. 오늘 충성했다고 해서 상급이 당장 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은 드러나는 일을 하기 좋아합니다. 칭찬과 영광을 받으려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께서는 무어라고 하셨습니다. 마6:3-4절에 보면 “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의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네 구제함이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가 갚으시리라”고 했습니다. 마6:2절에 보면 “그러므로 구제할 때에 외식하는 자가 사람에게 영광을 얻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는 것 같이 너희 앞에 나팔을 불지 말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희는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고 했습니다.

넷째는 내 맡은 일에 충성하라는 것입니다.
세상일은 나 혼자 다 맡아 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각각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맡은 일에는 관심이 없고, 맡지 않은 일에 관심을 가지는 분이 있습니다. 내 맡은 자리에서 감사하며 충성을 다해야 합니다.

지미 카터가 대통령에 출마해서 선거 유세를 하던 중에 주일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웬만하면 표를 얻으려는 뜻에서 큰 교회에 찾아가 자기 선전을 할 수도 있었겠지만, 그는 그 주일 아침에도 자기 고향 조지아주에 있는 교회에 들어가서 예배를 드리고 23년 동안 가르쳐 온 주일학교 교사의 임무를 성실히 수행했습니다. 먼 곳에서 비행기를 타고 가서 매주일마다 가르치던 학생 20명을 앞에 놓고 평소와 같이 성경을 가르쳤는데 그날 신문기자들이 몰려들어 70명이 되었습니다. 카터씨는 조용히 웃으며 말했습니다. “기자 여러분, 오늘은 여기에 오셨지만 다음 주일에는 여러 분이 소속한 교회에 열심히 출석해 주십시오.”
우리는 하나님의 일군입니다. 하나님이 일을 맡겨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맡은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다섯째는 죽도록 충성하라는 것입니다.
그 뜻은 죽음을 각오하고, 죽을 힘을 다해, 순교 정신으로 일하라는 것입니다.
한국 교회 역사를 보아도 순교자들과 신앙의 선배들이 뿌린 피와 흘린 땀 위에 오늘의 교회가 이루어진 것입니다. 오늘날도 하나님께서는 순교 정신을 가지고 일하는 일군을 들어서 사용하시고 그래서 승리케 하시며, 흥왕께 하시며, 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2. 어려운 환경 속에서 최선을 다했습니다.
9절에 보면 “내가 네 환난과 궁핍을 아노니....자칭 유대인이라 하는 자들의 훼방도 아노니 실상은 유대인이 아니오 사단의 회라”라고 했습니다. 서머나 교회는 환난과 궁핍 가운데 처하여 있었고 자칭 유대인이라고 하는 자들에게 극심한 훼방을 받았습니다. 그 이유는 그들이 개으르고 나태하였기 때문이 아니라 바로 살려고 하였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세상의 불의와 불법과 타협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딤후3:12절에 보면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으리라”라고 했습니다.
당시의 상황을 구체적으로 말하면 서머나 교회 로마의 황제 숭배와 유대인의 율법주의에 굴하지 않았습니다. 황제 숭배를 거절하면 누구를 막론하고 재산을 몰수했으며 일터를 박탈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흔들리지 않고 신앙의 정절을 끝까지 지켰습니다. 그 이유는 그들의 신앙이 자신의 감정이나 지식과 경험에 기초를 둔 것이 아니라 살아 역사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를 두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진정한 그리스도인들은 오히려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더욱 더 신앙생활에 최선을 다합니다. 서머나 교회가 바로 그런 교회였습니다.

3. 영적인 주의 일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교회 생활을 잘 한다든지, 예수를 잘 믿는 다든지, 신앙생활에 최선을 다하는 것은 영적인 것입니다. 솔직하게 말하면 교회에 나와서 하루 봉사했다고 일당을 받는 것도 아니고 그것이 경력으로 인정되어 회사에서 진급에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닙니다. 어디까지나 신앙생활은 영적인 것입니다.
영적인 것은 당장 손에 잡히거나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닙니다. 신령한 축복을 받는 것도 당장 내 손에 수표가 들어오는 것도 아니고, 당장 아파트가 당첨되는 것도 압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영적 분야를 소홀히 취급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서머나 교회는 영적인 문제를 가장 소중히 여기고 최선을 다했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영이 본질이기 때문입니다. 영이 살고 영이 복을 받아야 육신이 살고 바로 되는 것입니다.
폴리갑이나 그 교회 성도들이 즐거움으로 주의 일에 충성하며 마지막까지 순교의 제물이 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복되신 천국의 약속과 놀라운 상급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믿습니까 그렇다면 주의 일에 충성하는 복된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 나라 초대 교회의 주기철목사님, 이기선목사님 같은 분들도 순교의 잔을 받으신 분들입니다. 그들이라고 해서 생명이 아깝지 않다든지 고문이 고통스럽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 주님도 십자가의 고통을 원치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신앙의 선배들과 서머나 교회의 성도들은 환난과 궁핍과 고통을 당하면서도 믿음을 지켰던 것은 영적인 문제가 더 중요했기 때문입니다.

제아무리 좋은 집에서 떵떵거리며 잘 산다고 해도 그 집에서 앞으로 80년 이상을 살 수 있는 사람은 하나도 없을 것입니다. 모두가 80년 안에 죽을 것입니다. 인간의 육체와 그 육체를 둘러싼 조건들은 모두가 제한적이고 한시적입니다.
그러나 영적인 문제는 영원한 것입니다. 잠깐 되는 것 때문에 영원한 것을 잃어버리는 어리석은 자가 되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세상에 잠깐 있다고 없어질 것보다 영원한 생명의 면류관을 소중히 여기시기 바랍니다. “네가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 말라 볼지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고 지금도 주님께서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 말씀을 읽고 듣고 순종하는 자들이야말로 정말 복 있는 성도 인줄로 믿습니다.

4. 충성하는 자에게 생명의 면류관이 약속되어 있습니다.
10절 하반 절에 보면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사람의 약속이 아닙니다. 실실하신 주님의 약속입니다. 생명의 면류관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왕관이 아니라 승리의 면류관입니다. 이 세상에서 억천만 금을 가지고 세상 부귀영화를 누리고 살다가 지옥에 가는 것보다는, 거지 나사로와 같이 가난하게 살다가 천국에 가는 것이 훨씬 지혜롭고 복 있는 사람일 것입니다. 마5:11-12절에 보면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을 이같이 핍박하였느니라”고 했습니다.
고난과 어려움 가운데서도 낙심하지 아니하고 끝까지 믿음을 지키는 자에게 복이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충성한 자에게 주신다는 것입니다. 끝까지 믿음을 지키고 승리한 자에게 주시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주님께서는 충성을 다하는 자에게 생명의 면류관, 의의 면류관, 영광의 면류관을 우리에게 주시기 위해서 가시면류관을 참으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찌 잠깐 되는 고난의 면류관을 마다할 수가 있겠습니까 오히려 감사하며 그 고난에 참여해야 할 것입니다. 벧전5:4절에도 “그리하면 목자 장이 나타나실 때에 시들지 아니하는 영광의 면류관을 얻으리라”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맡은 일에 충성스럽다고 인정받은 두 달란트, 다섯 달란트 받은 사람처럼 그리고 서머나 교회의 성도들처럼 주께서 오늘 우리에게 맡겨 주신 귀한 직분에 죽도록 충성하여 생명의 면류관 받아쓰고 영광스러운 주인의 즐거움에 다 참여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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