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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필요한 사람 (요 10:4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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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크게 세 종류로 나눌 수 있습니다. 하나는 있어서는 안될 사람이고 다른 하나는 있으나 마나 한 사람이고 나머지 하나는 꼭 필요한 사람입니다. 있어서는 안될 사람은 백해무익한 존재로써 남에게 해만 끼칩니다. 사실 거미만도 못한 사람입니다. 거미는 때로는 해충이라도 잡아먹으니 유익을 줄 때도 있습니다. 그러니 짐승만도 못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있으나 마나 한 사람은 부지런하고 열심히 일은 하지만 자기만 이익을 챙기고 남에게는 결과적으로 조금도 이익을 주지 않습니다. 철저한 이기주의자 입니다. 그리고 꼭 필요한 사람은 오늘 본문에 나오는 세례 요한 같은 분입니다.

1. 허영심이 없는 자 입니다.
허영심이란 자기를 과시하려는 심사입니다. 그리고 자기의 부족한 것을 다른 것으로 대신해 보려는 위선입니다. 그리고 교만의 부산물입니다. 어쨌던 저질 인생의 한 모습입니다. 속이 차 있는 사람은 교만이나 허영심이 없습니다. 겸손하고 있는 그대로 삽니다. 평범하게 행동하고 평범하게 삽니다.
요한은 평범한 선지자였습니다. 그에게는 능력도 보이지 않았고 이적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적을 부인하지 않았습니다. 이적을 부인하는 것은 불 신앙이며 그렇다고 해서 이적을 절대시하는 것 역시 비 성경적입니다. 이적이란 때와 장소와 경우에 따라 하나님이 허락하시기도 하고 허락지 않으시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이적을 경시해도 안되고 또한 너무 갈구해도 안됩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이적의 은사나 체험을 주시면 겸손히 이를 선용할 것이며 주시지 않는다면 억지로 이를 갈구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이적이 반드시 그리스도인의 평가 기준이 아니며 선지자의 성패를 가늠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왜 예나 지금이나 이적을 제일로 여기며 그것을 갈구하고 있을까 말입니다. 심지어는 주님께 대해서까지도 주님 자신보다 이적을 요구했던 것입니다. 모두가 무엇인가 특별한 것, 유명한 사람만을 추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내 자신도 유명해지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사짜” 많이 붙이기를 좋아합니다. 이것이 바로 과시요 허영입니다.
사람이 특별하고 유명하게 되기만을 바라다보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요술쟁이 시몬이 되어 버린다는 사실을 유의해야 합니다.

마귀가 예수님을 시험한 적이 있습니다. 돌로 떡을 만들어 먹고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 내리고 하여 예수의 초인간적 힘을 과시하면 사람들이 쉽게 그를 따르리라는 제안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이것을 단호히 일축해 버렸습니다.
주님은 이상하고 유명하게 살기보다 옳고 바르게 사셔야 했기 때문입니다. 모두들 별나게 살기만을 바라기 때문에 이상한 것만 좋아하고 있습니다. 사람이라면 옳고 바르게 살기를 힘써야 합니다.
오늘날 많은 신자들이 이적이나 이상한 것들을 좋아하여 이산, 저 산 이 교회, 저 교회로 헤매며 다니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들 중에 얼마는 이단으로 시한부 종말론 자들에게 유혹되어 자식도 망치고 가정도 망치는 불행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세례 요한은 이적을 행한 일이 없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적의 선지자 엘리야와 동격으로 대우하고 있습니다. <마16:14>에 보면 “가로되 더러는 세례 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 이는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 그랬습니다.
그리고 <마11:11>에 보면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요한보다 큰이가 일어남이 없도다 그러나 천국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저보다 크니라” 이토록 세례 요한을 지상에서 큰 사람으로 여겼습니다.
그는 참으로 위대한 선지자 였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주시는 대로 그저 순종한 평범한 선지자였습니다. 순박하고 겸손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기에게 주어진 일에 원망이나 불평하지 아니하고 충성하였습니다. 유명해지고 위대해 지기만을 힘쓰지 말고 하나님께 순종하며 소임에 최선을 다하며 살기를 힘써야 합니다.

2. 그는 진실한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진실하신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그의 사랑하는 자녀들이 모든 일에 진실하기를 원하십니다.
진실이란 사전에서나 찾아 볼 수 있는 단어이지 현실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것이라고 탄식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마저도 진실이란 것이 인기 없는 품목으로 도외시 되어 가는 판에 세상에 대해 진실을 바란다는 것부터 잘못된 것이라는 체념도 있습니다.
진실을 염불처럼 뇌까리는 교회에서조차 진실보다 외식이 잘 팔리는 풍토라면 도대체 세상 어디에서 진실을 찾아볼 수 있을 것입니까! 그래서 교회까지도 자의 반, 타의 반에 의해서 조금씩 바리새인이 돼 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요한은 진실한 사람이었습니다. 본문 41절 하반 절에 보면 “..요한이 이 사람을 가리켜 말한 것은 다 참이라 하더라”고 하였습니다.

예수께 대한 그의 증언은 다 참된 것이었습니다. 예수는 참 빛이며, 하나님의 어린양이며, 창조주이며, 하나님의 아들이며, 그리스도라고 증거한 그의 증언은 하나도 가감이 없고 조금도 과장이 없는, 모두가 진실한 것이라는 사실이 입증된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입을 모아 말했습니다. “요한은 아무런 표적을 행하지 않았지만은 요한이 예수를 가리켜 말한 증거는 다 참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인인 내가 반드시 유명한 사람이 되어야 할 이유는 없지마는 반드시 진실한 사람이 되어야 할 이유는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예수께 대한 증거를 천직으로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만일 내가 진실치 못하면 예수께 대한 참 증인이 될 수 없을 것이며, 만일 내가 예수께 참 증거를 못한다면 결국 내 인생은 실패를 면치 못할 것입니다.
사람이 아무리 많이 배우고 아무리 많은 것을 가지고 있다 할 찌라도 진실하지 못하면 사기꾼이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사기꾼이 별다른 사람이 아닙니다. 바로 진실하지 못한 것뿐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지식 있는 자, 부유한 자, 권세 있는 자를 원하지 않으시고 모든 일에 진실한 자를 필요로 하십니다.

다윗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진실한 분이었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본래 죄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진실하였기에 하나님께서 그를 사랑하셨고, 그가 진실로 회개할 때에 그의 모든 죄를 용서해 주시고 그를 의롭다고 인정해 주셨으며, 그를 높이 세우사 의의 병기로 사용하셨습니다.
진실한 자에게 하나님은 함께 하십니다. 진실한 자에게 은혜를 주십니다. 진실한 자에게 참된 평안을 주십니다. 그리고 진실한 자를 높여 주십니다.

오늘날도 꼭 필요한 사람은 바로 진실한 사람입니다. 특별하고 유명한 사람이 되지 않아도 좋습니다. 그러나 진실한 사람은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의 참 증인이 되시기 바랍니다.

3. 그는 희생적인 사람입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희생을 두려워합니다. 희생하면 손해가 되고 망하게 되는 줄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희생하기를 싫어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희생을 통해서 복을 받고 희생을 통해서 보람을 얻도록 하셨습니다.
<시126:5-6>절에 보면“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정녕 기쁨으로 그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라고 하였습니다. 씨를 뿌리는 일은 손해 같습니다. 먹을 것 먹지 못하고, 쉬지 못하고, 시간과 노력을 낭비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기다리면 때가 이르매 풍성한 열매를 거두게 되는 것입니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정녕 기쁨으로 그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 이 약속을 믿습니까 믿고 순종하는 자에게 이 약속의 축복이 임하시기를 축원합니다. 희생이 있는 곳에 사랑의 역사가 있고 희생이 있는 곳에 봉사의 보람이 있고, 축복의 은혜가 있고, 내 마음에 기쁨과 평안히 임합니다.
<요3:30>절에 보면“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하니라”고 요한은 말했습니다. 그는 그의 일생을 오직 주님을 위해서 받혔습니다. 마지막에는 순교로 그의 삶을 마친 것입니다. 그의 헌신적이고 아름다운 행위는 시들지 아니하고 영원히 빛나는 천국 행위 록에 기록되었을 것입니다. 이거야말로 적자 인생이 아니라 흑자 인생인 깃입니다. 헛된 인생이 아니라 참으로 복된 생애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누구를 위해서, 무엇을 위해서 희생하느냐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이에 따라 헛되거나 복된 인생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돈을 위해서 생을 바치는 사람, 자식을 위해서 바치는 사람, 사업을 위해서 바치는 사람...많이 있는데 이것으로 끝난다면 정말 헛된 인생이 되고 말 것입니다. 그러나 인생의 참된 목적인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올바로 산다면 모든 일에 복이 되며 자신에게는 말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무엇을 위해서 일하며 뛰고 있습니까 돈 그 자체입니까, 사업 그 자체입니까 아니면 무엇입니까 세례 요한과 같이 정말 사나, 죽으나 주님을 위해서 투자되는 삶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어떤 목사님이 회개하고 집사가 된 깡패 두목의 집에 초청을 받아 갔습니다. 가보니 두 부부가 함께 지독히 못 쓸 짓을 많이 한 사람들인데 예수님을 영접하고 완전히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보니 부부가 다 허약하게 생기도 키도 작아 도저히 깡패 두목 노릇할 것 같지 않았습니다. 하도 이상해서 어떻게 그런 몸을 가지고 깡패 두목을 할 수 있었느냐고 물었더니 그 남편이 하는 말 ‘이거 내 놓으면 됩니다’하며 목 짜르는 시늉을 해 보였습니다.

세상에서도 목 내놓으면 두려울 것이 없는데 복되고 귀한 하나님의 일에 생명을 내놓는다면 얼마나 자랑스런 일입니까! 하나님은 다른 사람을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희생적이고 헌신적인 사람을 필요로 하시는 것입니다.

4. 성공적인 사람이었습니다.
우리 주변에는 성공이라는 말이 너무 남용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성공한 것처럼 자부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성공이 그리 용이한 것이 아닙니다. 성공같이 보이는 실패도 있고 실패같이 보이는 성공도 있는 것입니다.
세례 요한의 목을 베어 죽인 헤롯 왕은 성공한 것 같지만 실패한 자요 헤롯에게 목 베임을 당한 요한은 실패한 자 같으나 성공한 사람입니다.
요한은 일찍 죽었습니다. 그것도 비명에 죽었습니다. 그것도 아무런 잘못이 없이 당했습니다. 분하고 억울한 일입니다. 요한은 이적을 행한 일이 없습니다. 신앙이 부실해서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총애를 받지 못해서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허락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육신 적인 안목으로 볼 때에 참으로 초라해 보입니다. 무능해 보입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목적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심령 구원입니다.
그에게 이적은 없었으나 그가 행한 예수께 대한 모든 증거는 참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그가 세례를 주고 증거하던 요단강, 거기서 많은 사람이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성공입니다.

특별난 사람, 유명한 사람되려고 애쓰지 말고 내가 살고 있는 거기서 많은 사람이 나를 인하여 예수 믿게 되도록, 그리고 내가 일하고 있는 일터, 거기서 나와 접촉하는 모든 사람이 내가 증거한 예수를 믿도록 힘써야 합니다. 홀이라도 나로 인하여 실망하거나 실족하지 않도록 힘써야 합니다.

성공을 세속적인 차원에 찾으려 말고 주안에서 찾아야 합니다. 나는 지금 명예심과 영웅심이 너무 강하지 않은가 그러면서도 예수께 대한 입의 증거와 삶의 증거가 무력하지 않은가 밖에 나가서는 유명하지만 내가 살고 있는 거기, 내가 일하고 있는 거기, 내가 몸을 담고 있는 거기서는 실패하고 있지 않은가 조용히 살펴보아야 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세례 요한과 같이 교만과 허영심이 없이 겸허하며, 진실하며, 그리고 주의 일에 헌신과 희생을 아끼지 아니하는 일군이 되어 하나님 앞과 교회와 이 사회에 없어서는 안될 꼭 필요한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무슨 일에 있어서든지 성공 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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