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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주 안에 거하는 자의 생활 (요일 03:1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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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두 사람이 있는데 누가 현명한 사람인지를 가려 보시라.

한 사람은 큰 배를 타고 망망대해를 건느고 있고 또 한 사람은 자신의 재능과 경험을 믿고 맨손으로 헤엄을 쳐서 바다를 건느고 있다.

 마찬가지로 큰 배보다도 더 든든한 배가 되시는 주님 안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이 있는가하면 또 자신의 능력만 의지하기 때문에 주 밖에 살고 있는 사람들도 매우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오늘의 말씀은 주 안에 거하는 자의 생활을 말하고 있다.

 1,마음에 책망할 것이 없다.

 19절 "이로써 우리가 진리에 속한 줄을 알고 또 우리 마음이 주 안에서 굳세게 하리로다"

19절에 "알고"라는 말이 있는데 이는 알고라기 보다는 "우리가 확신한다"라는 말이다.

 그래서 해석은 "이로써 우리가 진리에 속한 줄을 확신 한다"가 더 정확하다.

 그럼 우리가 무었을 했기에 우리가 진리에 속한 것임을 확신하는가 바로 17-18절의 말씀이다.

우리가 작은 사랑을 실천했을 때였다.

 위대한 신앙고백을 했을 때가 아니다.

믿습니다 믿습니다.를 자주 반복할때도 아니다.

조그마한 사랑을 실천할 바로 그것 때문이다.

 20절 "우리 마음이 혹 우리를 책망할 일이 있거든 하물며 우리 마음보다 크시고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일까보냐"

우리 마음의 책망은 쉽게 말하면 양심의 가책을 말한다.

양심의 가책은 왜 생기는 것일까 우리 마음에 책망할 일이 왜 생기는가

이것도 베드로처럼 위대한 신앙 고백을 하지 못해서가 아니다.

큰 일을 하지 못했기 때문도 아니다.

순교적인 삶을 살지 못했기 때문도 아니다.

 작은 사랑을 실천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소자에게 냉수 한 그릇, 병든 자의 손을 제대로 잡아주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천산 교회는 돌 부쳐같은 사람이 한 사람도 없기를 바란다.

 형제에게 웃음을 선사하자.

화내지 말자. 분노하지 말자. (옆 사람의 손을 잡자)

지금 여러분의 그 손이 거지의 손도 잡을 수 있기를 바란다.

지금 여러분의 그 손이 문등병자의 손도 잡을 수 있기를 바란다.

지금 여러분들의 그 손으로 절망에 빠져 있는 자들의 손도 잡아 줄 수 있기를 바란다.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작은 사랑인 것이다.

그렇게 할때 우리는 우리의 양심에 가책할 것이 없게 된다.

마음에 책망할 것이 없게 될 때 우리가 진리에 선 것을 확신하에 된다.

 교회에 와서 일을 찾으라! 시시해 보여도 그 일을 시작하라.

별것 아닌 것 같아도 그 일부터 시작하시라.

그러면 아주 큰 일을 하게 된다.

 장기려박사 (1911년생) 이인모씨와 함께 무조건 송환하라고 북쪽이 떠들고 있는 인물.

복음병원 원장을 역임.

 교회에 시시한 일은 어떤 사람이 해야 하는가 (전도사가)

21절 "사랑하는 자들아 만일 우리 마음이 우리를 책망할 것이 없으면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얻고"

양심에 가책할 것이 없을 때 우리는 담대해 진다.

이것을 양심의 자유라고 말할 수 있다.

 히4;16절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헤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양심에 가책에 가책할 일이 있으면 하나님 앞에 나가고 싶어도 가나기가 쉽지가 않다.

그러나 양심에 가책할 일이 없으면 하나님 앞에 담대하게 나아갈 수 있다.

 작은 사랑을 실천할 때 양신에 가책할 일이 사라진다는 것이다.

작은 사랑을 실천할 때 담대해져서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2,무었이든지 구하는 것을 받는다 양심에 책망할 일이 없는 자가 주 안에 거하는 자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다.

그리고 주 안에 거하는 자는 무었이든지 다 받게 되 있다.

 22절 "무었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 받나니 이는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고 그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함이라"

하나님 앞에 담대하게 나아갈 수 있는 자가 하나님께 구할 수도 있고 구한 것을 받을 수도 있는 것이다.

 여기의 "담대함"이란 무슨 뜻인가 "face to face" with God.

fleedom in speaking 을 말한다.

 담대함은 언론의 자유를 말한다.

하나님 앞에 무었이든지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된다는 의미가 되는 것이다.

무었이든지 구할 수 있는 사람, 또 받을 수 있는 사람이 된다는 것이다.

1),We Keep His commandments.

 2),We do those things that are pleasing in His sigth.

 요15;7절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었이든지 원하는대 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3,서로서로 사랑한다 주 안에 거하는 자는 서로서로 사랑하게 되 있다.

이 말은 지금 서로서로 사랑하고 있으면 곧 주 안에 있다는 증거라는 말이다.

 23절을 다 같이 보자 "그의 계명은 이것이니 곧 그 아들 에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그가 우리에게 주신 계명대로 서로 사랑할 것이니라"

이 23절을 신학자들은 아주 요약된 즉 압축된 신경이라고들 말한다.

 01,그의 계명 = 예수의 이름을 믿는 것이다.

02,예수의 이름을 믿는 것은 = 서로 사랑하는 것이다.

 막1;28-31절 28 "...모든 계명 중에 첫째가 무었이니까" 29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첫째는 이것이니 이스라엘아 들으라 주 곧 우리 하나님은 유일한 주시라" 30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희 하나님을 사랑하신 것이요" 31 "둘째는 이것이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라 이에서 더 큰 계명은 없느니라" 1),We should belive on the name of His son Jesus Christ.

요1;12절 "영접하는자 곧 그의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셰를 주셨으니"

2),We shouldlove one another.

요15;12절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라" (요13;-17:)

24절 "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는 주 안에 거하고 주는 저 안에 거하시나니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우리가 아느니라"

사랑하는 자는 그것이 아주 작은 사랑일지라도 사랑하는 자는 주 안에 거하는 증거인다.

주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앞에 담대히 나아 갈 수 있고 또 무었이든지 구하는대로 다 받을 수 있다.

그리고 주 안에 있는 결정적인 증거는 서로 서로 사랑하고 있는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작은 사랑을 실천함으로써 우리가 진리 안에 잇고 주 안에 거함고 있음을 확신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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