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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자기 생각으로 사는 종 (왕상 05:2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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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자기의 죄상을 감추기 위하여 거짓 말을 합니다.

 그러나 자기의 양심을 지키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사라이라면 자신의 행동을 거짓말로 위장하려고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들의 잘못을 니우치기 보다는 "그럴 수 밖에 없었다" 말로 변명하기에 급급함을 봅니다.

 물론 남에 충고를 묵살하고 자기의 양심을 속이는 사람들이야 말할 가치도 없읍니다.

 01,어떤 잘란체 하기를 좋아 하는 사람이 있다고 합시다.

그는 자기 자신의 행동을 권위를 지키기 위한 불가피한 것이라 했을 것입 니다.

 02,또 분노가 가득차서 화를 잘 내는 사람이 있다고 합시다.

그는 남들도 자기와 같은 환경에 처하면 다 자기처럼 화를 내게 될 것이라고 자신의 태도를 변명할 것입니다.

 누구에게도 다 변명이 있을 수 있읍니다.

 그러나 변명이 다 합당하다면 강도와 폭력과 사기와 음행의 죄등으로 심판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습성에 젖어서 르랬노라고 변명 을 해도 되는 것입니까

예수 믿는 사람들이 사회 생활에서 다른 것은 다 좋은데 딱 한가지 변명하는 것 때문에 동려들에게도 미움을 받을 때가 많습니다.

 변명하지 않고 솔직했으면 얼마든지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 일인데도 자기 자신을 변명이라는 것으로 위장을 하다가 오히려 더 손해를 보고 있 음을 모릅니다.

 더우기 사람들 앞에서 솔직하지 못한 것이 곧 하나님 앞에서 솔직하지 못한 삶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도 그리 많치 못합니다.

 오늘 본문에 그런대로 솔직했던 한 사람이 있었는가하면 반대로 매우 솔지하지 못했던 한 사람의 결과가 기록되 있읍니다.

 솔직했던 사람은 이방인인 문둥병신 나아만 장군이었고 솔직하지 못했던 사람은 유대인인 게하시였읍니다.

 1,요단강(심판의 강)의 교훈 1),하나님의 은혜-예수님께서 나사렛 회당에 가시어 말씀을 증거 하실 때 오늘의 사건을 예로 들어 말씀하신 일이 있읍니다.

 눅4;27절입니다/ "또 선지자 엘리사 때에 이스라엘에 많은 문둥이가 있었으되 그 중에 한 사람도 깨끗함을 얻지 못하고 오직 수리아 사람 나아만뿐이니라"

이 사건은 한 마디로 사람을 차별하시지 않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이스라엘의 역사상 문둥이가 많았지만 개끗함을 받은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읍니다.

 오직 한 사람 나아만이 있었는데 그는 이방인이었읍니다.

 눅17;17,18절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흡은 어디 있느냐 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온자가 없느냐"

예수님 당시에도 열 사람의 문둥이가 고침을 받은 사건은 하나님의 은혜는 이스라엘이나 이방인이나를 구별 없이 사랑하심의 증거들 입니다.

 열 문둥이 중에는 이스라엘인이 9명이었고 이방인도 한 명 있었읍니다.

 2),요단강의 의미들

(1),내려가는 것 강물들이 다 내려가게 되 있읍니다.

그런나 요단강의 뜻 중에 내려간다는 뜻이 있읍니다.

 이는 사람이 하나님을 거슬러 올라 갈 수 없음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으면 언제나 겸손히 내려 가는 삶을 살아야함을 말함입니다.

 나아만이 얼마나 겸손해졌읍니까 말에서 내렸읍니다.

인간적인 것들을 다 벗었읍니다.

그리고 강 물 깊숙히 내려 갔읍니다.

 (2),물의 심판자 또 요단강은 물의 심판자라는 뜻을 가지고 있읍니다.

 그렇습니다.

숭종하고 요단을 건느면 천국이요 불순종하고 요단을 거절하면 심판인 것입니다.

 요단을 건느면 살고 요단을 거역하면 죽는 것입니다.

 나아만과 같은 죽을 수 밖에 없고 흉칙한 문둥병일지라도 요단강에 들어만 가면 깨끗함을 받는 것입니다.

 세례 요한이 요단가에서 세례를 외친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회개하고 세례를 받았다함은 죄에 대하여 죽은 것을 의미합니다.

 눅12;50절에서 예수님께서 "나는 받을 세례가 있으니 그 이루기까지 나의 답답함이 어떠하겠느냐 " 고 하셨읍니다.

 예수님게서 바드셔야할 세례가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십자가의 죽으심이었읍니다.

 그래서 이 요단은 우리의 세레를 뜻하며 이 세례는 죄에대한 죽으심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죄에 대하여 죽지 못하면 우리의 구원은 히미한 것입니다.

사람이 요단강의 역사를 경험하지 못하면 구원은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나아만은 문둥병자였읍니다.

나아만은 이방인이었읍니다.

나아만은 자기 뜻대로 살던 사람이었읍니다./ 나아만은 죄 많은 사람들의 한 모형이었읍니다.

 그런데 그 흉칙한 나아만이 요단강에 내려간 것입니다.

 14절 "나아만이 이에 내려가서 하나님의 사람의 말씀대로 요단강에 일곱 번 몸을 잠그니 그 살이 여정하여 어린아이의 살 같아서 깨끗하게 되었더라"

요단강이 주는 교훈을 한 마디로 요약을 하면 강물에 어떤 신비함이 있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대로의 삶을 살 수 있는가 없는가의 시험이었읍니다.

 나아만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순종함으로 살길을 얻었읍니다.

 2,주어진 특권의 종

나아만은 이방인으로 또한 이방 종교 즉 우상을 섬겨 왔던 사람이었으나 그가 그 과거를 청산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전환이 되었을 때 그에게 살길이 열렸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와는 정 반대로 대조되는 한 사람이 있읍니다.

 엘리사의 종 게하시입니다.

 게하시는 이스라엘의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 밑에서 종교의 특성을 한껏 누려온 사람입니다.

 엘리사 밑에서 하나님의 사람들이 가야할 길이 어떤 것인가를 누누히 지켜 본 사람입니다.

 게하시는 자기의 스승인 엘리사가 엘리야로부터 요단강에서 겉 옷을 취해받은 역사적인 사실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수 없이 많은 하나님의 기적을 체험하면서 살아 온 사람입니다.

 그 누구 보다도 종교적 특권을 많이 누려본 사람입니다.

 엘리사가 가는 곳이면 그 어디나 함께 동행했던 사람입니다.

 저는 이 게하시를 보면서 생각나는 사건이 하나 있었읍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지시기 위하여 예루살렘으로 입성 하실 때에 작은 나귀 새끼를 타시고 입성을 하시었읍니다.

 그때 길에 많은 사람들이 호산나 찬양과 함께 주님을 향하여 것옷을 땅바닥에 깔며 경배를 했읍니다.

 그때 주님만 경배를 받은 것이 아니라 주님은 등에 싫고 가던 나귀가 얼마나 신이 났을까하고 생각해 보았읍니다.

 게하시는 엘리사의 사랑 받는 종입니다.

간데 마다 동행을 했으면 얼마나 많은 영광을 받았에ㅆ나하고......

 군대 장관의 운전사.........

 성경에 이런 말씀이 있읍니다.

 마19;30절입니다.

"그러나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으니라" 고 하셨읍니다.

 그렇습니다.

나아만과 게하시를 놓고 볼때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게하시가 먼저입니다.

 그런데 그 결과는 너무나 엄청난 것입니다.

 먼저와 나중이 뒤바껴도 엄청나게 뒤 바꼈읍니다.

 오늘 우리들이 예수 믿으면서 받은 특권이 어마나 많습니까

우리는 이미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읍니다.

이미 우리들은 새 맹명을 얻은 사람들입니다.

이미 우리들은 유복한 사람들입니다.

이미 천국도 소유한 사람들입니다.

 어떻게 하시겠읍니까

받은바 직분을 남에 빼았기면서 사시겠읍니다.

받은바 달란트를 남에게 양보를 하시겠읍니까

게하시가 나아만 보다 먼저 되었다가 지극히 나중 된 이유가 무었입니까

게하시가 나아만 보다 나중 되었던 이유는 너무나 서글픕니다.

 금과 은 때문이었읍니다.

썩어지고 날가질 옷가지 때문이었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금과 은 때문에 나의 주어진 특권을 망각하는 일은 없스십니까

하잘것 없는 옷가지들 때문에 나의 신앙의 지조를 팔고 있지는 않으십니까

나아만은 그 많은 금과 은 그리고 세상에서 좋자하는 그 옷가지들을 다 버리면서라도 그 귀중한 하나님의 특권을 얻기 위하여 머나먼 길을 달려 왔던 것입니다.

 그런데 왜 어쩌자고 게하시 처럼 살려고 하십니까 왜 먼저 되 놓고 왜 나중 되려고들 하십니까

옷을 버리는 한이 있더라도 금과 은은 포기하는 일이 있더라도 먼저 된자의 특권을 빼았기 않기를 축원합니다.

 3,유익을 준적이 없는 종 게하시가 그렇게 나중 돠게된 이유가 또 있읍니다.

 게하시의 신분이 무었입니까

게하시의 신분은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의 종입니다.

종입니다. 종입니다. 종 종!

종은 어떻게 살아야하는 것입니까 종은 누구의 뜻을 따라야 하는 것입니까 종의 생각과 주인의 뜻이 마주칠 때 그때는 어떻게 해야합니까

사실 종에게는 자기의 생각이나 뜻이 있을 수 없읍니다.

종은 종입니다.

 그런데 게하시는 종으로서의 삶을 살지 못했읍니다.

 다시 말해서 주인에게 유익이 되질 못했다는 말입니다.

사람들에게도 아무런 유익을 주지 못하고 살아 온 사람입니다.

 전3;1--"천하에 범사가 기한이 있고 모든 목적이 이룰 대가 있나니 날 때가 있으며 심을 때가 있으며 심은 것을 뽑을 때가 있으며......."죽 나아 갑 니다.

 이 말에 때라는 것이 많은데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정하신 때들입니다.

하나님은 중구 난방으로 일하시는 것이 아니고 때를 정하시고 일을 하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그 하나님의 때가 우리 인간들에게 주어질 때는 때가 아니고 기회 즉 Chance인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때 즉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하여 힘써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날 우리들에게 수 없이 많은 기회들이 주어지고 있읍니다.

 마찬가지로 엘리사의 종 게하시에게도 수 없이 많은 기회가 주어 졌읍니다.

1),왕하4;27절입니다.

수넴에 사는 여인이 자기의 아들이 갑자기 열이나서 죽게 되었을 때 그 아들을 엘리사의 침대에 뉘어 놓고 먼 길을 달려 엘리사를 찾아 왔을 때의 일인데 그 때 수넴 여인이 엘리사의 발을 붙들고 간청을 할 때성경은 이렇 게 기록을 했읍니다.

 "게하시가 그녀를 물리치고자 하매" 무리치고자 했읍니다.

주인인 엘리사가 금하지 않는 일을 자기가 앞장서서 물리치고 있는 게하시였읍니다.

 2),왕하4;29절입니다.

엘리사가 게하시에게 지팡이를 주시면서 그 지팡이를 죽은 아이의 얼굴 위에 올려 놓으라고 했읍니다.

그러나 31절에 보면 아무런 일이 일어 나지 않았읍니다.

 믿음으로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3),왕하4;43절에서 또 기회가 왔읍니다.

그때는 믿고만 있었으면 수지맞는 일이었읍니다.

 무슨 일인고하니 엘리사가 보리 떡 20과 약간의 채소를 놓고 많은 사람들을 머ㄲ이기 위하여 오병이어의 역사를 나타내려고 하고 있는 순간 에 게하시가 끼어 들었읍니다.

 "그 사환이 가로되 어찜이니이까 그것을 일백명에게 베풀겠나이까 "

때로는 가만히 있기만 하여도 점수를 딸때가 있는데 믿음이 없는 것을 스스로 폭로하고 있는 게하시입니다.

 남에게 아무런 유익이 되질 못하고 살고 있는 게하시입니다.

물론 자기의 주인에게 유익은 커녕 엄청한 해를 끼치고 있읍니다.

 왕하5;22절입니다.

주인인 엘리사는 분명히 거절을 했는데 게하시는 주인 몰래 달려 가서 주인의 체면에 먹칠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게하시는 시키지도 않은 거짓말을 했읍니다.

물론 거짓 말 때문에 금도 얻고 은도 얻고 옷 가지도 얻을 수 있었읍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은 거짓을 많이 행하나 봅니다.

 그런데 문ㅈ는 5;25절입니다.

또 26절입니다.

 게하시가 거짓말을 하고 받지 말아야 할 것을 받을 때에 엘리사의 심정은 뛰었읍니다.

 그런데도 게하시는 끄까지 순기고 거짓말을 했읍니다.

조금 뉘우치기는커녕 회개를 할려 하지 않았읍니다.

 옷이 뭐 그리 대단합니까 금이 웜 그리 대단한 것입니까 은이 그렇게도 귀중한 것입니까

목숨보다도...

신앙 보다도.......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 보다도.....

하나님 보다도 소중하단 말입니까

게하시는 결국 나아만 믿음과 겸손 순종으로 내 버린 문둥병의 소유자가 되 버리고 말았읍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종입니다.

말씀의 종들입니다.

 우리들에겐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가 있다손 칠지라도 우리의 것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우리는 주인을 위해서 즉 하나님만을 위해서 사셔야합니다.

하나님만을 위해서 말씀만을 위해서 사실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 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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