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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거인의 도전 앞에서 (삼상 17:3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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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우리에게 주신 말씀은 어릴 때 교회학교에 다닐 때부터 들은 아주 익숙한 이야기입니다.
여러분이 아시는 대로 블레셋은 이스라엘 옆에 있으면서 언제나 이스라엘에 도전해 오고 이스라엘을 괴롭혔습니다. 더구나 블레셋 군대에는 가드 사람 골리앗이란 거인이 있어서 매일같이 이스라엘 군대에 싸움을 걸어 왔습니다.
골리앗은 정말 거인이었습니다. 아마 그렇게 큰 사람은 이 세상에 일찍이 없었을 것 같습니다. 그 키가 2미터 80쯤 되었습니다. 거기에 놋투구를 쓰고 갑옷을 입었으니 얼마나 장대하게 보였을까 짐작이 갑니다. 창자루만 해도 베틀채 같았다고 했습니다. 그의 앞에는 방패를 든 사람이 따로 있었습니다. 생각만 해도 어마어마합니다.
이스라엘과 블레셋 두 나라의 군인들은 엘라 골짜기를 사이에 두고 진을 쳤습니다. 거인 골리앗은 매일 오전과 오후에 자기 진 앞에 나서서 위풍당당하게 소리를 지르며 싸움을 걸었습니다.
“이스라엘놈들아, 너희 중에서 한 사람을 택하여 내게로 보내라. 그가 나와 싸워서 나를 죽이면 우리가 너희의 종이 되겠고, 만일 내가 이겨 그를 죽이면 너희가 우리의 종이 되어 우리를 섬기리라. 내가 오늘 이렇게 이스라엘 군대를 모욕했으니 어서 사람을 보내어 나와 더불어 싸우게 하라”하는데 목소리가 얼마나 큰 지 이스라엘 진영이 귀가 따가울 정도로, 울를 지경이었습니다.
이렇게 거인 골리앗이 나와서 싸움을 걸면 이스라엘 진영에서는 듣고 놀라서 도무지 기를 펴지 못했습니다. 한 사람도 저 블레셋 거인 골리앗과 대항해서 싸우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여러분이 아시는 대로 그 당시 이스라엘의 왕이었던 사울도 보통사람보다는 어깨 위가 높을 정도로 키가 큰 사람이었습니다. 싸움도 잘 했습니다. 그러나 거인 골리앗 앞에서는 무서워서 어쩔 줄을 몰라했습니다. 그래서 사울은 자기 천막에 숨어서 이 블레셋 거인 골리앗을 물리칠 작전을 세우노라 고심하고 있었습니다.
이때 일선에 어린 소년 하나가 나타났습니다. 그는 아직 어리기 때문에 군에는 복무하지 못하고, 나이 많은 아버지를 대신해서 그의 형 셋이 나와서 싸우는 일선에 먹을 것을 가지고 위문을 온 것이었습니다. 그는 베들레헴 들에서 아버지 이새의 양을 맡아 치고 있는 목동 다윗이라는 소년이었습니다. 다윗은 아버지의 말씀대로 형들이 싸우는 일선에 위문품을 가지고 왔는데, 마침 그때 블레셋 사람 골리앗이 나와서 싸움을 돋우며 이스라엘을 모욕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이스라엘 군대에 도전한다. 나와 싸울 놈을 어서 내보내라”하면서 호통을 칩니다.
이 광경을 가만히 보고 있던 소년 다윗의 마음에는 의분이 일어났습니다. 가슴에 피가 솟구치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옆에 있던 어느 군인에게 물었습니다.
“아저씨, 도대체 주 하나님의 군대에 이렇게 도전하는 녀석이 어디에 있습니까 저놈이 누굽니까”
그때 옆에 있던 군인이 벌벌 떨면서 “이 사람, 말도 말아. 저 거인은 골리앗인데, 이 세상에서 가장 크고 가장 강한 사람이야. 우리 대왕께서도 어떻게 못하시고 지금 고민하고 계신 중이야.”
“아, 그래요. 그러면 우리 가운데 아무도 저놈하고 싸우러 나가지 못합니까”
“이 사람, 싸우는 게 다 뭐야, 우리는 저놈에게 그만 질렸어. 저몸하고 싸워서 이길 수도 없거니와 싸운다고 해도 승부는 뻔해. 누가 죽을 줄 뻔히 알면서 나가”
“그래요 제가 나가서 싸우겠습니다. 아니 할례도 받지 못한 저 이방인 블레셋 사람이 무엇이기에 살아 계신 우리 하나님의 군대를 이렇게까지 모욕할 수 있습니까 아저씨 제가 저 골리앗과 싸우겠습니다. 저를 보내주세요”
이렇게 군인아저씨와 말을 주고받는 동생을 지켜 보고 있던 다윗의 맏형 엘리압이 노해서 다윗을 꾸짖었습니다. “이놈아, 너 미쳤니 네가 치던 양은 어떻게 하고 이렇게 일선에 와서 전쟁을 구경하며 교만한 말을 하는거냐 빨리 돌아가 양이나 쳐. 위문품 전달했으면 어서 돌아가서 네가 할 일이나 할 것이지 어디 건방지게 나서는 거야 어서 썩 꺼져‘ 예나 지금이나 형들은 동생들을 구박하기 일쑤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굽히지 않고 말했습니다.
”형님, 제가 아무런 이유도 없이 이런 말을 하는 줄로 아십니까 저를 대왕에게 보내 주십시오. 제가 저 블레셋 거인 골리앗과 싸우기 위해 지원하겠습니다.”
이때 옆에서 이 말을 듣고 있던 어떤 군인이 얼른 달려가서 사울 왕에게 아뢰었습니다. “대왕이시여, 지금 우리 이스라엘 진에서 블레셋 골리앗에게 도전하겠다고 나선 사람이 있습니다.” 사울 편에서는 지금 거미줄이라도 붙잡을 형편이기에 “그 사람이 누군지 속히 데려 오라.”고 명했습니다.
아마 사울은 천막 안에서 초조한 마음으로 도전자를 기다리며 상상했을 것입니다. 저 골리앗에 도전하겠다니 분명히 그는 신장도 그와 대등할 것이고, 어깨가 딱 벌어진 장수일 것이라고 상상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골리앗에게 도전한다는 자가 들어오기에 보니 상상했던 것과는 너무 거리가 멀었습니다. 사울 왕은 속으로 실망했습니다. ‘철없는 아이의말이었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다윗은 사울 왕 앞에 서서 “대왕이시여, 저 블레셋 사람 골리앗 때문에 낙심하시지 마시옵소서. 주의 종이 가서 저 블레셋 사람과 싸우겠습니다.”
이 말을 듣고 있던 사울 왕은 소년 다윗에게
“네 생각은 정말 고맙다. 허나 너는 아직 어려서 내가 너를 골리앗과 싸우는 데 내보낼 수가 없어. 그는 어려서부터 용사된 자로 너같은 것은 나가 봐야 단번에 목이나 잘려 버려.”
그때 다윗은 담대하게 말했습니다.
“대왕이시여, 제가 양을 지킬 때 사자와 곰이 와서 양떼를 움키면 제가 따라가서 그것들을 치고 그 입에서 새끼를 빼앗았습니다. 그놈들이 저를 해하려고 하면 제가 그 수염을 잡고 그놈들을 쳐죽였습니다. 대왕이시여, 주 우리 하나님의 군대를 멸시하고 도전하는 저 골리앗을 용서할 수도 없을 뿐더러 그와 싸우면, 사자와 싸울 때 함께 하시던 하나님께서 반드시 함께 하실 줄 믿습니다. 그러니 저를 꼭 보내주십시오. 제가 골리앗과 싸우겠습니다.”
그 용기와 신념에 사울 왕이 감동을 했습니다.
“그러면 가라.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하시기를 구하노라.”
사울 왕은 너무 감격해서 자기의 군복을 입히고 무기를 들려주었습니다. 그러나 어린 다윗이 사울 왕의 군복을 입으니 도무지 몸을 움직일 수조차 없을 지경이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그것을 사양하고 자기가 양을 칠 때에 하던 방법대로 손에는 막대기를 가지고, 나가다가 시내에서 매끈한 돌 다섯을 골라 제 주머니에 넣고, 다른 한 손에는 물매를 가지고 블레셋 거인 골리앗을 향하여 나아갔습니다.
다윗이 어떻게 이처럼 담대하게 온 이스라엘 군대가 두려워 하는 거인 골리앗과 싸우겠다고 나설 수가 있었습니까
형들이 꾸짖고, 친구들이 비웃고 조롱해도 그는 그의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조금도 주저하지 아니하고 담대히 나섰습니다. 다윗에게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굳게 서서 자기가 할 일을 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함께 하실 때 승리한 체험이 있었습니다.
사람이 믿음을 가질 때 놀라운 힘이 생깁니다. 믿음 없이 인생의 대업이 이루어진 일이 없고, 믿음 없이 고난과 시련을 극복한 예가 없습니다.
믿음은 힘의 원천입니다. 그러므로 승리와 성공을 원하는 사람은 먼저 큰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인간은 무한한 잠재력과 놀라운 가능성을 가진 존재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믿고 그 힘과 가능성을 최고로 발휘해야 합니다.
승리는 전력투구의 산물입니다. 성공은 전력투구의 결과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을 가지고 전력투구해야 합니다.
블레셋 사람 골리앗이 방패 든 사람을 앞세우고 점점 가까이 나아옵니다. 40일간이나 아침저녁으로 싸움을 걸어도 검은 개 하나 얼씬하지 않던 이스라엘 진에서 사람 하나가 나아갑니다. 블레셋 거인 골리앗은 호기심도 있고, 긴장된 상태로 한 발자국, 두 발자국 이스라엘 진을 향하여 나아오고, 이스라엘 진에서도 블레셋 진을 향하여 나아갑니다. 숨막힐 듯한 긴장의 순간이었습니다. 양편 진영에서는 생사의 운명을 앞에 놓고 손에 땀을 쥐며 지켜봅니다.
그런데 갑자기 거인 골리앗은 어이없다는 듯이 “하하하핫.....”웃어대며 말합니다. “야 이놈아, 너는 나를 개로 여기고 막대기를 들고 나아오느냐 나와 싸우겠다는 놈이 무기를 들고 나아와야지 그게 도대체 뭐냐 이스라엘에는 사람이 없어 저렇게 어린 놈을 내 적수로 내보내느냐 도대체 너희가 나를 무엇으로 생각해서 이러는 거냐” 또한 다윗을 저주하고 “아무튼 좋다. 내가 네 고기를 공중의 새들과 들짐승들의 밥이 되게 하겠다.”하며 호통을 칩니다.
이때 다윗은 담대하게 가슴을 펴고, 확신에 찬 어조로 힘차게 골리앗에게 말합니다.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오지마는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간다. 오늘 여호와께서 너를 내 손에 붙이실 것이다. 내가 너를 쳐서 네 머리를 베고, 블레셋 군대의 시체로 오늘 날 공중의 새와 땅의 짐승들에게 주어 온 땅으로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계신 줄을 알게 하겠다. 그리고 분명히 들으라.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로 하여금 똑똑히 보게 하겠다.”
골리앗의 목소리만 들려 와도 부들부들 떨며 도망치던 이스라엘 군대는 눈이 휘둥그래졌습니다. 아니, 우리 이스라엘 군대에 저렇게도 강하고 담대한 사람이 있었던가 그들은 다시 한번 놀랐습니다.
다윗이 훌륭해서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것을 믿었기 때문에 다윗은 담대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거인 골리앗은 “아, 저것이 보기와는 다른 데가 있구나 도대체 어떤 놈이길래 백전노장인 나를 무서워하지 아니하고 덤벼드는가”하며 다윗에게 가까이 나아옵니다.
이때 다윗은 거인 골리앗에게 가까이 나아가며 주머니에 넣었던 돌을 물매에 얹어 돌리기 시작합니다. 다윗의 시선은 골리앗의 이마를 쏘아봅니다. 물매는 점점 빨리 돌아갑니다.
전쟁 역사상 도무지 보지 못했던 사건이었습니다. 칼과 창을 든 거인 장사와 물매를 든 소년 목동이 대전을 합니다. 상대가 되지 않는 전투입니다.
그런데 다윗의 물매가 ‘휘-익’ 하는 소리와 함께 거인 골리앗의 이마에 명중했습니다. 거인은 ‘음’하는 소리와 함께 땅에 엎드러져 죽고 말았습니다. 다윗은 얼른 달려가 골리앗을 발로 밟고, 그의 칼을 빼서 그 머리를 잘랐습니다. 다윗이 완전히 승리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에게도 영적인 면에서 골리앗과 같은 거인들이 도전해옵니다. 이 거인은 우리를 위협합니다. 조롱합니다.무시합니다. 이 거인을 대항할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런데 이 거인은 여러 가지 모양으로 우리에게 도전합니다. 때로는 아주 작은 것 같으면서도 거인인 것이 있습니다. 길가의 먼지는 눈에 보일락말락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눈 속에 들어가면 바위 하나 들어간 것만큼 아픕니다. 실오라기 하나가 그렇게 질긴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둘로 잡아매면 좀 질겨집니다. 셋으로 잡아매면 겨우 끊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넷, 다섯으로 잡아매면 아주 끊을 수 없게 됩니다. 조그마한 나쁜 급관은 아무렇지 않게 생각됩니다. 그러나 그것이 점점 거듭될수록 나중에는 끊을 수 없는 거인이 됩니다.
삼손을 보세요. 그 장사가 블레셋 여인 들릴라와 가까이했습니다. 처음에는 몰랐습니다. 그러나 하나, 둘 잡아매는 줄을 종래는 끊지 못하고 그 말로가 얼마나 비참하게 되었던가를 우리가 기억합니다. 삼손에게는 들릴라가 거인이었습니다
이 죄의 거인을 죽이는 길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밖에는 없습니다. 믿음은 개인적인 것입니다. 다윗은 부모님의 신앙에 속해 있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기 자신의 하나님과 함께 하는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신앙은 개인의 것입니다. 주님을 영접하는 것도 내가 영접해야 합니다.
부모님은 우리를 사랑합니다. 그러나 부모님이 우리 대신 믿어 줄 수는 없습니다. 믿는 것은 내가 믿어야 합니다. 다윗은 자기자신이 하나님을 온전히 믿었습니다. 그 믿음이 거인 골리앗을 이겼습니다.
때로는 고통의 거인이 우리에게 도전합니다. 예고 없이 도전 합니다. 옛말에 “병은 눈썹에서 떨어진다”는 말이 있습니다. 악성 베에토벤은 심각한 고뇌의 거인으로부터 도전을 받았습니다. 17세 때 사랑하던 어머니를 여의었습니다. 27세 때 귓병을 앓기 시작했습니다. 음악가가 귀머거리가 된다는 것은 청천벽력과 같은 비극입니다. 그 비극이 현실로 나타났습니다. 그래서 그는 희미해지는 청각을 보충하려고 네 개나 되는 보청기를 사용하려면서 결사적인 노력을 해 보았습니다. 그러나 거인은 점점 그를 위협하며 다가왔습니다. 보청기로도 별 효과가 없었습니다. 1801년 그가 쓴 일기에 “나는 운명에 도전하고 싶다. 운명에 반항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32세의 젊은 베에토벤은 자살을 결심하고 하이리겐슈타트에서 유서를 썼습니다. 그 마지막 부분에 이런 말이 나옵니다. “그 굳센 용기도 이제는 다 사라졌다. 아아, 하나님! 순수한 기쁨의 날을 단 하루라도 나에게 다시 한번 주옵소서”
그러나 음악에 대한 사랑과 창조적인 욕구가 그의 자살을 중지시겼습니다. 그는 거인을 물리치고 용감하게 살았습니다.
뛰어난 사람이 어떤 사람입니까 용기가 있는 사람입니다.
용기가 무엇입니까 고난과 시련의 거인 앞에 섰을 때 늠름 하고 흔들리지 않는 것입니다. 그는 용기로써 고난이라는 거인이 도전하여 오는 것을 이기고 승리의 영광을 거두었습니다. 1815년 45세 때 어떤 백작 부인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인간은 무한한 정신을 가진 유한한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고뇌와 환희의 두 가지를 받게끔 태어났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인간 중에서 몇 사람만은 고뇌를 뚫고 환희에 도달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베에토벤은 그 몇 사람 중의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괴로움의 거인을 물리치고 기쁨에 도달했습니다. 보통사람은 고뇌의 거인에게 지고 맙니다. 고뇌의 거인에게 포로가 되어 고뇌 속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용감한 사람만이 고뇌의 어두움을 뚫고 기쁨의 광명에 도달합니다. 고뇌가 클수록 그것을 극복하면 환희도 큽니다. 성공과 승리는 쉬게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영광은 분투, 노력 없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승리는 피땀의 산물입니다.
나중에 베에토벤은 이렇게 절규했습니다.
“나는 거인의 목덜미를 꽉 졸라매었다. 결코 거인의 도전 앞에서 압도당하지 않겠다” 그는 용기로써, 도전하는 거인의 이마를 깨고 승리의 면류관을 차지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거인의 도전 앞에서 맥없이 도망치려 하고 아예 싸울 생각도 못하고 포기하는 것을 봅니다.
하나님은 분명히 이스라엘 민족에게 가나안 땅을 주시기로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약속하신 대로 지키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나 가나안 땅은 아무런 노력도 없이 그냥 주어지는 땅은 아니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노력하고 싸워서 정복해야 하는 땅이었습니다. 그 땅에는 거인이 있었습니다. 아낙 자손이 있었습니다. 그 땅에 미리 다녀온 사람 중의 대부분이 그 땅은 점령할 수 없는 땅이라는 판단을 내렸습니다.
“그 땅에는 거인들이 살고 있는데 우리는 그들에 비하면 메뚜기와 같다”고 했습니다. 거인과 메뚜기는 상대가 되지 않습니다. 그렇습니다. 많은 사람이 거인의 도전 앞에서 자신은 메뚜기 같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사람은 싸워 보지도 않고 항복하고, 시작도 해 보지 않고 포기한 것입니다.
여러분, 산다는 것은 싸운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선한 싸움을 싸운다고 말했습니다. 빅토르 위고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오늘의 문제는 싸우는 것이요, 내일의 문제는 이기는 것이다.” 옳은 말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다 안 된다고, 못 한다고, 싸워 봤자 진다고 말했지만 여호수아와 갈렙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가나안 땅에 아낙 자손 거인의 도전이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두려워할 것 없습니다. 하나님이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기로 약속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키가 큰 거인임에는 틀림없지만 그들을 지키던 신이 이미 떠났습니다. 그 거인은 우리의 밥입니다.
이런 용기가 어디서 생겼습니까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약속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경쟁사회에서 살아갑니다. 사람은 시련 속에서 성장하고 경쟁 속에서 강해집니다. 우리는 경쟁에서 도피할 수 없습니다. 경쟁에서 도피한다는 것은 인생에서 도피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경쟁을 두려워해서는 안됩니다. 정말 두려워해야 할 것은 용기를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윗처럼 용기를 가지고, 거인의 도전 앞에서 싸우러 나서야 합니다. 전력투구의 자세로 인생을 살아야 합니다. 전력을 다해 싸워도 패배하는 수가 있습니다. 인생행로에는 언제나 승리와 성공의 문만이 열려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실패에 대처하는 지혜와 용기를 가져야 합니다. 한 번의 실패로 절망하여 재기하지 못하면 그는 젊은이가 아닙니다. 젊었다는 것은 미래가 있다는 것이요, 미래가 있다는 것은 기회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실패했어도 용기를 가지고 실패를 극복해야 합니다. 용기는 인생을 전진시키는 에너지요, 칠전팔기의 활력소입니다. 고난을 뚫고 나아가는 힘이요, 역경에 패배하지 않는 의지요, 실패에 도전하는 강력한 정신력이요, 넘어질 때 다시 일어나는 기운입니다. 무엇이 무섭다, 무섭다 해도 용기를 잃어버리는 것처럼 무서운 것이 없습니다.
용기가 있는 사람은 싸움에서 이깁니다. 용기가 있는 사람은 경쟁에서 살아남습니다. 우리는 지금 국제화라는 거인의 도전 앞에 섰습니다. 우리 국민 중의 많은 사람들이 두려움에 싸여있습니다. 이때 우리 믿는 사람이 할 일이 무엇입니까
다윗처럼 믿음과 용기를 가지고 거인을 물리칠 수 있는 본을 보여야 합니다.다윗은 믿음과 용기만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늘 준비했습니다. 물매 쓰는 법을 잘 배웠습니다. 맹수를 죽이던 다윗은 거인 골리앗을 죽였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귀한 시간 허비하지 말고 준비합시다. 아브라함 링컨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나는 준비하겠다. 그러면 언젠가는 나의 기회가 올 것이다.”
여러분, 다윗에게 기회가 왔습니다. 그는 자기 혼자 거인과 싸운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셨습니다. 그래서 이 거인을 이겼습니다. 우리에게도 거인의 도전이 있습니다. 개인에게도, 민족에게도 거인의 도전이 있습니다. 준비 잘 하고, 용감하게, 주 안에서 거인과 싸워 승리하시기를 바랍니다.
1994년 1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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